쇼생크 탈출 SE (2disc) - [할인행사]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팀 로빈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  오물이 흐르는 하수구는 여성 성기'를 뜻한다.  앤디는 자궁에서 빠져나와 세상 밖으로 탈출한다. 

 

언젠가 여성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데생을 공부한 학생이라면 남성적인 육체가 직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여성의 바디라인'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직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인 감옥과 군대가 모방하는 것은 수컷들의 도상학이다. 감옥에 갇힌 남성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반면, 감옥에 갇힌 여성 이미지가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여성이 남성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감옥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와 열은 수컷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미학이며 줄과 각은 폼생폼사. 영화 < 쇼생크탈출 > 에서 탈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탈옥이란 아버지가 정해놓은 선/밑줄을 넘는 행위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만든 법을 어기는 행위이다. 금기이다. 그래서 탈옥에 실패한 자는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영화 <쇼생크 탈출 > 에는 두 가지 도상'이 대립한다. 하나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사각형'이고, 다른 하나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동그라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직선은 남근의 세계이다. 그것은 거칠고, 딱딱하다. 반면 동그라미는 여성스러운 젖가슴과 촉촉한 검은 동굴이다. 주인공인 팀 로빈스/앤디는 말이 거의 없다. 어쩌다가 한 마디 하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는 교도소 소장의 개인 비서로 내성적이며,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정성일의 말투를 흉내내자면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아주 이상한 영화입니다 ! 거친 남성 과잉 서사의 극단적 변형인 감옥 영화에서, 주인공이 지나치게 여성스럽다는 사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 그러니까 이 영화는 뿜빠라뿜빠뿜빠빠 입니다. “

 

아닌게 아니라 나레이션을 담당한 모건 프리먼도 앤디를 그는 약간 세게 부는 산들바람에도 꺾일 것 같아 보였다. “ 고 말한다. 닝기미... 그는 달려라 하니보다도 더 나약하며, 참고 참고 또 참는 캔디보다도 허약해 보인다. 이상하기는 하다. 마초 사회엔 감옥 영화에서 주인공이 여성스럽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탈옥에 멋지게 성공하지 않았던가 ?

 

이 영화가 다른 탈옥 영화들과 다른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탈옥 영화 속 주인공들이 대부분 강인한 남성 마초들이었던 반면,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은 마초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동료를 괴롭히는 나쁜 녀석을 주먹으로 단 한 방에 날려버리는 설정은 없다. 산들바람에도 꺾일 것 같은 비실비실 비실이와 등이 둥글게 굽은 늙은 노인이 전부다. 도대체 이 힘없는 자들은 탈옥에 성공할 수 있을까 ?

 

우려와는 달리 앤디는 탈옥에 멋지게 성공한다. 그가 남긴 것은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리타 헤이워드가 그려진 포스터 한 장이 전부이다. 그 포스터 뒤에 숨겨진 것은 촉촉한 검은 구멍'이다. 이 오브제(들)은 앤디가 여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앤디의 여성성을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남성 육체에 갇힌 여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앤디는 겉은 남성과 같은 육체이지만 속은 여성처럼 섬세한 정신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감옥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 영화에서 앤디가 남성 동료 죄수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에피소드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탈옥 영화라는 장르를 빌린 동성애 러브스토리다.

 

 

 

 

그가 빠져나간 동굴은 ( 아프로디테의 ) 자궁이다. 그가 자유를 찾아 밖으로 기어나올 때 우리는 기시감에 시달린다. 그것은 출산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얼굴과 몸에 묻은 진흙은 산모가 흘린 피다. 그가 똥오줌이 지나가는 하수도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출산에 대한 은유'임을 확고히 한다. 그는 이 상징적인 제의를 통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남성 세계인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여성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 ( 내가 이 장면을 성전환에 대하 은유라고 하면, 당신은 지랄을 하겠지 ? )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건 프리먼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앤디는 늙은 흑인을 위해서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그들은 푸른 해안가가 보이는 곳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 만남을 우정이어고 말해도 좋고 근사하게 재회'라고 말해도 좋다.

 

이 장면은 마치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다가 다시 만나는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지켜본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늙은 흑인은 이름이 앨리스 레딩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앨리스 레드 레딩이다. 남성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여성스럽지 않은가 ? 하여튼 그들은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둘이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낮에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밤에는 감옥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앨리스는 늙어서 죽을 것이다. 앤디는 죽은 앨리스의 힘없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린 후 입에 마지막 키스를 할 것이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엔 레드가 작년에 잡은, 1미터 32센티미터나 되는 커다란 참다랑어 표구 액자가 걸려 있을 것이다.

 

 

 

후일담

누군가 나에게 왜 이런 식으로 영화를 해석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성일 흉내를 내며 그것이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 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영화가 끝난 이후를 늘 상상한다. 그 후일담들은 본편보다 더 재미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형편 없는 영화는 우리를 <허걱!>하게 만들지만 좋은 영화는 우리를 <울컥! > 하게 만든다. 또 누군가는 내가 쓴 이 글을 읽고 갑자기 이 영화가 좋아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나기 위해서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를 찾아다닌다. 돈이 없어서 풍찬노숙을 하더라도 말이다. 나에게 <쇼생크 탈출 > 은 내가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영화. 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 > 이라는 낱말이 좋아졌다. 어릴 때 자주 썼던 말인데, 나이를 들면서 촌스러운 말투 같아서 잘 쓰지 않던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 < 쇼생크 탈출 > 은 총 8편으로 이루어진 에세이다. 다음 회'는 < 쇼생크 탈출 2 : 쇼생크와 야구 편 > 이다. 많은 애독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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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5-2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는 마지막 탈출 때 리타 헤이워스의 사진으로 막아놓고 탈출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 사진의 네 귀퉁이 모두를 구멍속에서 붙일 수 있었을까?>- 이 영화의 광적인 팬인 어느 분이 '옥의 티'랍시고(?) 네이버에 올린 것 중의 하나인데요, '가능하다'는 얘길 남편한테 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갑자기 '그게 어떻게 가능한거지?' 싶은게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정말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7 22: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군요. 차마,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 이 영화 한 10번 정도 본 것 같은데, 그 생각은 전혀 못했네요..

새벽 2013-05-2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엄훠. 저 이 영화 엄청 미워하는데.. (싫어한다기보다 미워합니다. 하하 ;;)
음. 저와는 전혀 다른, 상상초월의 시각.. 이번 기회에 곰곰발님 연재를 꼼꼼 읽어가면서 애정을 가져볼까BoA요. :)

+ 메모로그 기억하고 싶은 글 카테고리에 담아 두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7 23:49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저 이 영화 엄청 좋아합니다. 이거 옛날에 올렸던 글들인데요기로 이전하면서 다시 씁니다.
저 이거 10번 정도 봤어요..아니 그런데왜 미워하십니깡..

새벽 2013-05-28 00: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 영화 볼 당시의 좀 희한한 제 자의식과 결벽증에 걸려 들어서.. 무지 거부감을 지니고 봤었거든요.
그러니까 소시민의 탈출, 승리가 아니고 또 다른 미국식 영웅 이야기로 받아들였었달까요.

특히 제가 팀 로빈스를 당시 브루스 윌리스,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삼적으로 꼽을만치 싫어해서.. 하하 ;;
지금 생각해보면, 팀 로빈스가 여러 영화를 통해 보여준 캐릭터에 절묘하게 제 모습도 비춰지는 게 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이번 기회에 글도 읽고 영화도 다시 곱씹어보려 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00:48   좋아요 0 | URL
3적이라.... 여기에 남양유업과 윤창중을 더하면 을사5적이 되겠습니다. ㅎㅎㅎㅎ.
전 팀 로빈스, 이 영화 빼고는 다 싫어합니다. 참.. 묘한 배우예요.
기묘한 배우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그를 처음 본 건 야곱의 사다리였군요.
생각해 보니 이 영화도 재미있었어요..

새벽 2013-05-28 05: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암만 그래도 그들이 남유, 윤창중 만큼 나쁜 놈들이겠습니까. 하하.
왜 그리 유독 그 미국 배우들이 싫었을까요. 너무 전형적인 양키 느낌을 줘선지..

아! 야곱의 사다리도 있었네요. 연출, 연기보다 각본 자체의 내용이 참 후덜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제가 팀 로빈스를 미워했나봅니다.
참 흥미진진하고 서늘한 작품인데 별로였던 느낌으로 남아있는 거 보면..

그나마 팀 로빈스가 별 거부감 없었던 영화는 밥 로버츠,였던 것 같아요.
영화 속 인물과 배우 이미지가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아선지.

지금에 와선 어릴 적 뭐 그리 가리는 게 많았나 싶기도 합니다.
로빈 윌리암스 때문에 죽인 시인의 사회, 굿모닝 베트남도 싫어했을 정도니까요. ^^;

그럼.. 쇼생크 두 번째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12:00   좋아요 0 | URL
일종의 팀 로빈스 트라우마를 앓고 계신듯합니다.
신기한 트라우마인데요. 흠흠....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겠습니다.
팀로빈스는 유독 살이 하얀... 아닌가 ? ㅎㅎ. 팀은 전형적인 양키 스타일이 맞습니다.
전 팀보다는 클린턴이 전형적인 양키같더라고요... 클린턴 싫어했어음..ㅎㅎㅎㅎ

새벽 2013-05-28 18:3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트라우마..일까요? 음.. 정말 일종의 트라우마 겸 포비아 증세 같기도 하고.. 둘 다 좀 이상하군효. -_ㅜ

암튼, 이번 연재를 통해서 트라우마..인지 포비아..인지 조금 극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히히 2013-05-2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한밤의 아이들]을 읽고 살만루슈디에게 놀라고 김진준의 번역에 감동했더랬습니다.
그래서 그의 번역서를 찾아 읽은 글이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스티븐킹의 [스텐바이미] 였습니다.
'호흡법'을 읽다가 목이 잘려도 호흡을 할 수 있는거구나! 하고 착각할 정도로 소름 돋았습니다.
.
.
모건프리먼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아 더 좋았던 쇼생크 탈출...
교도소장이 원작에도 자살하나요?
스티븐 킹 답지 않다는 부자연스러움이 생기더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14:45   좋아요 0 | URL
실제로 목이 잘리면 몇 초 간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메리로취의 스푸트인가.. 그런 책에서 얼핏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흠흠.. 아마 사계 중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에서... 죽나 ? 잘 모르겠군요.
제가 모건 프리먼 좋아합다앙... 목소리가너무좋아요. 정말 좋은 목소리입니다.

전 한밤의 아이들 안 읽었는데 읽어봐야겠는데요. 흠흠..

히히 2013-05-2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마도 ..거의..
곰...발님과 코드가 맞을 듯 합니다.
전 많이 놀랐어요.
인도의 슬픈 역사를 정말 코믹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살만 루슈디의 수다가 끝나기까지 인내가 필요합니다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입니다.
곰..님이니까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단정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15:29   좋아요 0 | URL
아랍권 소설은 나집 마흐프즈의 < 우리동네 아이들 > 이후로는 안 읽어보았습니다.
이 참에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일단, 이리저리 정보를 긁어모아야겠군요.

소나기 2013-05-3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가 끝난 이후를 늘 상상하는데, 왜 이런 멋진 글을 쓰지 못하는 건지... ?
저는 이리저리 엮어 보는 상상력이 문제.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30 11:14   좋아요 0 | URL
옛날부터 버릇이었던 거 같아요. 옛날에 왜 사춘기 때 야리야리한 청춘영화 보고 나면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런 생각하며 막 상상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이 버릇이 된 것 같아요.. 하하..
 

 

 

 

 

 

끝이 주는 위로 : "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그녀는 2005년 3월 4일에 태어났다. 혈통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축복이라도 받았겠지만 평범한 부모를 둔 탓이었을까. 다른 이'보다 몸집이 작았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작고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한다. 고작 430kg이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작고 귀여운 그녀를 보고 차밍걸'이라고 불렀다. 혹자는 g를 kg으로 잘못 표기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몸무게는 430kg이 맞다. 경주마 차밍걸 이야기'다. ( 보통 혈통 좋은 명문가 경주마는 평균 500kg이 넘는단다. ) 다음은 차밍걸에 대한 중알일보 기사'이다.

 

 

“차밍걸, 욕하지 마세요. 얼마나 열심히 뛰는 말인데….”  (유미라 기수)

을(乙)들의 희망’으로 불리는 경주마 ‘차밍걸’이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긴 이래 최다연패 신기록을 세웠다. 2005년 태어난 8세 암말 차밍걸은 26일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6경주에 출전해 11마리 중에서 9번째로 골인했다. 이로써 2007년 데뷔, 7년간 96번 경주에 출전한 차밍걸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며 자신과 당나루(1995년 기준)가 갖고 있던 95연패 기록을 넘어섰다. <본지 5월 25일자 1, 14 ,15면>
   

차밍걸은 다른 경주마보다 몸무게 100㎏이 덜 나가는 430㎏의 왜소한 말. 1등은 못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뛰는 ‘소시민’ 또는 성실한 ‘을’로 비유되며 서울 경마공원의 ‘화제마’로 부상했다. 차밍걸이 96연패 기록을 세운 26일, 1등 기수보다 더 조명을 받은 기수가 있다. 차밍걸의 기수 유미라(29)씨다. 2008년 6월 기수로 데뷔한 유씨는 같은 해 8월 차밍걸을 처음 타 12두 가운데 6위를 한 이래 차밍걸이 출전한 96회 경주 중 75번을 함께 달렸다.

유 기수는 “오늘도 레이스 중반까지 꼴찌로 처졌다. 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달려 직선주로에서 두 마리를 제쳤다. 1등을 못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꼴찌도 안 하는 투지 있고 열심히 뛰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로라하는 특급 기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랭킹은 서울경마공원 소속 기수 56명 중 46위다. 유 기수는 “2007년 교육생 때부터 내게 배정돼 인연을 맺은 말이다. 연습 때는 까불대지만 막상 경기를 뛰면 승부욕이 정말 강한 말”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차밍걸을 응원하는 팬도 있지만 ‘똥말이 또 뛴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차밍걸이 연패 기록을 쌓아가는 동안 유 기수의 기량은 향상되고 있다. 데뷔 이후 지난해까지 5시즌 동안 622번 달려 6번 우승에 그친 유 기수는 올해 벌써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기수를 시작했다. 말이나 기수나 여자라고 봐주는 게 없는 종목이다. 결혼을 한 뒤에도 차밍걸처럼 오랫동안 기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굵고 짧은 것보다는 가늘고 긴 걸 선호하는 ‘을’다운 포부다.

 

이해준 기자

 

 

 

드라마 같은 기적은 없었다. 성적은 말 그대로 초라했다. 96전 96패'였다. 최고 기록은 3위가 유일했다. 경마 역사상 최다 연패'를 기록한, " 불명예 기록 " 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늙은 말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경주마에게 8살이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별다른 부상 없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과 비록 우승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으나 열심히 뛰어서 꼴등'을 한 적도 별로 없었던, 차밍걸의 성실한 태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앞에서 보느냐 아니면 뒤에서 보느냐, 에 따라서 입장'은 달라진다. 뒤'란 끝, 변방, 패자, 꼴찌, 비주류의 다른 이름이다. < 앞 > 에서 보면 차밍걸'은 한심한 경주마'이지만 < 뒤 > 에서 보면 성실한 경주마'이다.

 

이처럼 관점은 보는 위치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 중심'이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거나, 얼굴이거나, 뇌이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누군가에게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거나, 얼굴이 아니거나, 뇌가 아닐 수도 있다.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나처럼 피똥을 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온통 항문에 신경이 집중된다. 신장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신장이 몸의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중심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모든 관심은 아픈 곳에 쏠린다. 병든 곳이 중심이다. 다양성이란 차원에서 보면 승자독식은 독이다. 아주, 지독한 독이다. 중심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주장하는 이건희 리더쉽'은 가짜다. 그것은 이건희가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노망에 가까운 실언이다. 마치 21세기형 군주제 같다. 이건희는 핸드폰을 팔아서 노동자를 먹여살린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한다. 대통령이 정치를 통치로 착각하면 위험하듯이, 경영자 또한 경영과 통치를 혼동하면 안 된다. 생각을 달리 하자. 오히려 만 명의 노동자가 이건희를 먹여살리는 것은 아닐까 ?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초라한 어깨'이다. 사람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어깨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얼굴이라는 강력한 아우라 때문이다. 얼굴은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구멍'이라는 도상학은 강력한 유혹'이라 할 만하다. 눈, 코, 귀, 입. 얼굴이란 온통 구멍투성이'다. 텅빈 기표이다. 독자여, 이런 표현을 용서해주신다면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은 처음에는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은 초라한 어깨'라고 말이다. 타자의 어깨를 발견하게 되면 사랑에 빠지나니, 그것는 사랑의 묘약'이다.

 

 

- 나다니엘 페인, 1949

 

이 사진은 1949년도 풀리쳐 대상 작품으로 홈런 타자 베이비 루스가 은퇴를 알리는 공식적인 무대를 찍은 것이다. 사진 기자들이 이 역사적인 장면을 담기 위해 앞다투어 화려한 얼굴을 담을 때, 사진 작가인 나다니엘 페인은 쓸쓸한 어깨'를 담는다. 이 사진에는 화려한 얼굴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 끝이 주는 위로 > 가 짙게 깔려 있다.  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 칼 끝보다 더 벼린 끝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끝......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것은 관계이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쓸쓸한 끝이 있다.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 관계를 맺거나 끊는다. 관계란 힘껏 당기면 끊어지는 끈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에는 연필심처럼 날카로운, 조금이라도 손에 힘을 주면 똑, 부러지는 그런 연약한 끝이 있다. < 사랑의 끝 > 은 < 연필의 끝 > 과 같다. 그래서 연필을 쥘 때 너무 힘을 주면 안 된다. 연필과 사랑(집착)은 이음동의어이다. 연필이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는다. 힘껏 잡으면 잡을수록 心은 부러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끝은 절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끝이 보일 때 위로'를 얻기도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이 끝나갈 때 기쁨을 얻듯, 연인들이 지독한 사랑 싸움 끝에 서로 끝내기로 결심을 할 때, 그때 끝이 보이는 관계는 위로'가 된다. 96전 96패를 기록한 차밍걸'은 다음 경주에도 출전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현역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명예 기록을 하나 더 추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질주를 할 것이다. 늙은 말에게 있어서 우승은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젖은 빨래를 마르게 하는 바람은 무섭게 휘몰아치는 한겨울 칼바람이 아니다. 오뉴월의 느린 바람이다.  그녀는 열심히 달렸다. 바람보다는 느리지만 냇물보다는 빠른 속도로......

 

 

 

■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함께 하는 책  :  < 퓰리처상 사진 > 은 가격이 부담 된다. 장바구니'에서 갇힌 지 꽤 오래되었다. 미셀투르니에의 사진 에세이 < 뒷모습 > 은 도서관에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여러 꼭지 가운데 하나인 < 뒤쪽이 진실이다 > 라는 짧은 글'이 책 전체를 말해준다. " 뒤쪽이 진실이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오히려 이 책을 번역한 김화영 교수의 " 뒤에 붙임말 " 이 인상 깊다.

 

 

"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벌거벗은 엉덩이는 그 멍청할 정도의 순진함 때문에 아름답다. "

 

 

 

 

 

 

 

 

 

 

 

 

 

 

 

 

 

 

말이 나온 김에 사진과 관련된 몇몇 책을 책장에서 뽑아본다. 롤랑 바르트가 쓴 < 카메라 루시다 > 는 수잔 손탁의 < 사진 이야기 > 와 함께 가장 중요한  사진 에세이'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와 함께  존 버거가 쓴 < 이미지 > 를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버몬트 뉴홀의 < 세계사진사 > 보다는 장클로드 르마니, 앙드레 루이예가 편집한 < 세계사진사 > 를 추천한다.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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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5-27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에 대한 얘기일까 하다가 뉴스 검색해보곤 알았네요.
꼴찌에게 갈채를. 글에서 느껴진 페이소스에도..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7 10:02   좋아요 0 | URL
정보가 약했군요. 기사 내용 첨부합니다. 참...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시선의 문제가 이렇게 달라보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한쪽 논리로 보면 한심한 말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성실한 말....
바로 이런 시선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2013-05-27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7 20:09   좋아요 0 | URL
아니 소나기 님 그동안 왜 아무 연락도 없으셨어요.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버럭 ~
잘 지내시지요 ? 하이고.... 소식 없길래 무소식이희소식이려니 하며 밤마다 울었습니다.

소나기 2013-05-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곰발님이었군요.
하루도 빠짐없이 곰발님의 알라딘과 네이버 블로그에 들러 가니 이젠 울지 마세염.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30 11:12   좋아요 0 | URL
흑흑.....며칠 비가 오더니 오늘은 활짝 필 모양입니다. 날씨가 말이지요.
그나저나 올 여름은 무지 더울 것 같아 걱정스럽군요. 흠흠...

히히 2013-05-3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심이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대목에서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생각나네요.
"나는 내게 몸이 있단 사실을 깨닫는 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혓바늘이 돋은 순간만큼 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때도 없는 것처럼,
각 기관들을 아주 세부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습니다.

근데 하루키 새 소설 선인세로 16억이상을 제시했다는 기사 아세요?.
하루키 때문에 일본작가 책은 거의 읽지 않았을 정도로 ...난 별로던데.
모임의 언니는 하루키 책은 3번 이상 읽어야 확실해진다는데, 속으로 '너나 읽으세요'
그 언니가 참 일본스럽다는 느낌인건 확실합니다. 그녀와 나는 코드에러!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9 07:53   좋아요 0 | URL
흠... 댓글을 달지 않았군요. 미안합니다.
김애란 두근두근을 읽었지만 저도 개실망한 작품입니다.
사실 저만큼 김애란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듯...
그만큼 실망이 큰 탓일 거예요....


하루키에 대한 생각도 저와 비슷하네요. 저도 하루키는 도통 못 읽겠습니다.

경마댄스 2013-08-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 집에서 맥주와함게 편안하게 즐기십시오!!
멋진사장님 GoGo
http://mj724.com
 

 

 

 

 

 

 

 

 

 

 

 

 

 

 

 

 

 

 

 

 

 


 

 

 

 

 

 

 

두 편의 세태소설 : 위대한 개츠비 vs 삼부녀.

 

 

나는 < 위대한 개츠비 > 를 읽지 않았다. 읽지 않은 이유는 하루키가 쓴 < 상실의 시대 > 때문이었다. 이 책을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하루키의 허세가 웃겨서 읽지 않기로 굳은 맹세를 했다. 내가 읽은 소설 가운데 제일 후진 소설이 바로 < 상실의 시대 > 이다.  하루키 씨, 저도 당신과 친구할 생각 없습니다. 아마, 하루키는 지구가 멸망하는 그날에도 사과 나무 대신 자위'를 할 것이 분명하다. 지퍼를 내리면 희망이 보인다 ! ( 아흥 ) " 상실의 시대 " 가 후졌다, 에 500원 건다.

 

이곳저곳에서 매일 < 위대한 개츠비 > 이야기'다. 알라딘 메인을 장식한 지는 이미 오래이고, 무시무시한 반값 할인에 덤으로 + 2'이다. 한곳이 물량으로 공세를 펴니 다른 출판사도 기본적으로 50% 세일은 깔고 간다. 이런 상황이니 할인'을 안 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이상할 정도'이다. 신문 서평은 물론이고 방송 여기저기에서도 온통 개츠비'다. 레츠비가 그냥 커피라면 개츠비는 티오피다.  와와, 도대체 개츠비는 어떤 소설이더냐.  문득 남양유업의 < 밀어내기 > 논란이 생각난다. 이 정도면 아스트랄적 밀어주기'라 할 만하다.

 

밀어내기'나 밀어주기'나 < 물량 > 으로 쇼부를 본다는 측면에서 보면 결국은 매한가지 아니던가. < 위대한 개츠비 > 열풍은 " 될 놈만 밀어준다 " 는 자본주의적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경우이다. 알라딘에서 < 도서정가제'에 반대한다 > 라고 했을 때, 앞다투어 반대했던 출판사들이 이제는 50%는 물론이고 사은품까지 준비하는 이율배반적 자세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아 다르고 어 다른 경우다.

 

< 위대한 개츠비 > 열풍은 영화 < 아이언맨 > 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스크린 수가 2400개인데 아이언맨 상영 스크린 수가 1300개라는 것은 결국 아이언맨을 제외한 개봉 영화의 총 스크린 수보다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화 한 편이 나머지 전체 영화보다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10개 스크린을 가진 극장'에서 최소 5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 아이언맨 > 을 집중적으로 상영했다는 말이 된다.  이 정도면 시장 논리를 떠나서 횡포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경상도 총인구수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총 인구수'보다 많은 것과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경상도 독과점 국가'다. 독과점은 반드시 나쁜 쪽으로 영향을 준다.  

 

주인공 아이언맨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측면에서 " 문제적 철면피 " 다. 철면피/鐵面皮'를  풀어쓰면 쇠로 만든 낯가죽이라는 뜻이니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대기업 주도로 이루어지는 특정 영화 밀어주기'는 작은 영화가 상영될 기회를 박탈한다. 나 또한 아이언맨이 재미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상영관 독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 위대한 개츠비 > 가 훌륭한 소설일 거라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물량 공세'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사실 < 위대한 개츠비 > 와 같은 훌륭한 풍속소설'은 한국 소설에도 많다. 피자 먹으로 이탈리아까지 갈 필요 없다는 말이다. 손창섭이 쓴 < 삼부녀 > 는 그 가운데에서도 압권'이다.  손창섭의 < 삼부녀 > 는 나쁜 가족극‘이다. 근친 욕망이라는 이름의 총천연색 만화경’처럼 화려하다. 일본 도까이 에이브이 성인 공작소‘라면 이 원작을 입수해서 근사한 포르노를 찍었을 것이 분명하다.

 

손창섭은 이 소설에서 에둘러 이야기하는 법‘ 이 없다. 읽다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이 작품은 1970년 주간여성에 연재된 장편소설인데 과연 이러한 내용의 소설이 검열 없이 연재되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점은 생생하다는 것이다. 40년이나 지난 작품이 2010년의 당대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니깐 손창섭은 40년 앞을 내다보고 이 소설을 쓴 것이다. 그는 너무 앞서간 인물이었다.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가족은 해체된다. 아내는 바람나서 도망가고, 딸들도 모두 아버지를 부정하고 집을 나간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 수컷‘과 텅 빈 집이다. 소설은 해체된 가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한다. 위기를 겪은 가족의 복원이 아닌,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하는 것이다. 스폰서를 하는 조건으로 아내의 빈자리‘를 젊은 여자가 채우고, 딸의 빈자리 또한 다른 젊은 여자’가 채우는 방식이다. 계약 가족이다. 문제는 두 여자 모두 아버지의 남근을 빨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끊임없이 유혹한다. 가짜 아내는 딸의 욕망을 견제하지만 나무라지는 않는다. 가짜 딸은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의 침실을 노린다 !

 

하지만 유사 가족 관계 안에서 불협화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유사 가족은 평화‘ 롭다, 놀랍게도 ! 손창섭이 보기에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해체를 주장한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안가족의 탄생이다. 박정희가 군화발로 동토를 철권통치하는 시대에 손창섭은 성적으로 도발을 한다. 엿 먹어라, 페니스 !

 

그는 남근 중심의 숨 막히는 한국 유교 사회‘를 혐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근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했고, 그 속에서 광기의 소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국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는지도 모른다. 이 위대한 소설가는 끝끝내 조국을 등진 채 일본에서 숨을 거두었다.이 소설 놓치면 후회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데 500원 건다. 내게 있어 500원은 껌값이다. 그리고 < 삼부녀 > 가 < 상실의 시대 > 보다 훌륭한 소설이라는 데에는 1000원 건다. 내 촉은 틀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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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5-2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면 다 막장이죠.70년대라고 해서 지금보다 더 도덕적이었겠습니까...우리 때는 순수했다느니 요즘 사람들은 물질만 추구한다느니 하고 늘어놓는 이야기는 다 거짓말입니다.70년대 소설 해설한 책이 있는데 요즘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우습게 안다느니...애들이 싸가지가 없다느니...젊은이들이 노인을 공경 안 하느니...남녀 간 문란하다느니...다 그런 이야기죠.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채만식 <태평천하>도 그대로 드라마로 옮기면 막장인 장면이 많으니 70년대야 뭐...할 말 다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6 17:02   좋아요 0 | URL
아이구. 이 댓글 좋군요. 맞습니다.
제가 늘 하는 소리가 "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공부 열심히 한다 " 라고 말하지 ? 난 학창시절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의 천성이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고쳐지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이 좋았다고 ?
웃기지 마라라. 그때 어린나이에 있을 때를 회고해 보면 날마다 지옥이었다. 이런 식으로말하고는 했죠.
싸구려 향수는 정말 좀, 쫌 촌스럽습니다.

새벽 2013-05-2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실의 시대 후졌다,에 저도 오백원 콜.
(제가 유일하게 읽은 하루키 소설입니다.
솔직히 무슨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길게 늘여논 거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그의 작품 읽지 않지요.)

요즘 영화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가 출판시장까지 출렁이게 하나보죠?
예전에 로버트 레드포드, 미아 패로우 나왔던 70년대 영화가 기억나네요.
분위기만 잔뜩 잡고 칙칙하게 끝나버린...
제 경우 소설은 좋았습니다.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로활자 책으로 읽었는데 참 오래됐네요.

아! 그리고 하루키 쯤 염상섭에게 비견할 수 없다에도 천원 콜입니다 :-)
그런데 삼부녀는 못 읽어봤어요..! e북으로라도 훑어보려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6 17:00   좋아요 0 | URL
소설은 저도 좋을 거 같아요. 약속 취소... 위대한 개츠비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
내용 보니 딱 내 스타일일 것 같아요. 개츠비.
솔직히 피츠제랄드 단편은 읽었는데 실망을 좀 많이 한 상태거든요. 개츠비로 만회를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이벤트는 출판사가 좀 자재를 해주었으면 해요. 물량 밀어내서 골목 상권 죽이는 거 진짜 끔찍합니다. 개츠비 10% 할인하는 출판사'는 마치 얌체처럼 느껴져요. 그들이 정상인데 말이죠.

맥거핀 2013-05-26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가 확실히 허세 덩어리이기는 하죠. 그런데 90년대에 그렇게 이 소설이 먹혀든 것은 아마도 그 시대가 또한 허세덩어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요즘에는 저는 그런 허세로 가끔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허세는 민낯이 부끄러워지는 이들, 적어도 부끄러움은 조금 아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리얼로 까는 시대, 정말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없는 요즘을 보면요. (그 아이언맨, 아니 철면피도 참 어찌나 그렇게 부끄러움이 없는지..) 물론 이건 그냥 뻘소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6 16:57   좋아요 0 | URL
뻘소리'치고는 삘'이 충만한 지적 문장이십니다. 전 첫 단추가 잘못 되어서인지 하루키 소설을 계속 읽으려고 하느데 계속 안 읽히비다.집에 쌓아둔 하루키 책만5권은 됩니다. ( 고백하자면 안 읽고 방치한 책이 200권은 되는 것 같습니다. ) 소설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고 함 에세이 쪽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괜찮을려나 모르겠네요..
 
청장관전서 세트 - 전13권
이덕무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실패한 첫사랑은 모두 독이다.

 

아름다움이란 우리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에 불과함으로

- 두이노의 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황석영이 몽골 대연합을 주장하고 김지하가 율려운동이라는 범우주론을 제시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코 팠다. 꼴사나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구호가 거창할수록 가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연합론이나 범우주론은 얼핏 보기엔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뜬구름 잡는 헛것이다. 두 거목은 이러한 거대 담론이 자기 몸에 맞는 옷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 정도 수준은 되야 내 품격에 맞다는, 일종의 허세가 작용한 탓이다. 누누이 지적하지만 미시적 비판은 쪼잔한 것처럼 보이고, 거시적 비판은 거창한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 새정치 > 는 거시적 비판이다.

 

인간 존중 사회, 특권 없는 사회, 공정 사회, 신뢰 프로세스 등 또한 모두 거대 담론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 아무도 없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적 색깔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확장된 범위를 좁히면 충돌이 된다. 무상급상, 수도 이전,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등. 사실 여기까지도 범위가 넓다. 이 범위를 더 좁혀보자. "화장실에서 똥 닦은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변기 안에 버리자. 개새끼들앙 ! " 이라거나, " 데이트 비용은 각자 추렴하자, 개새끼들앙 ! " 이라고 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안철수 같은 분들은 결코 화장실 휴지 문제나 데이트 비용 쪼개기'에 대한 이의 제기'는 하지 않는다. 왜냐, 쪽... 팔리니깐.

 

여기에 직격탄을 날린 지식인이 있었다. 김수영 시인'이다. 그는 지식인들이 항상 거창한 것에만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다. 생활인으로써의 지식인은 없고 온통 민주, 평화, 자유와 같은 투사 이야기만 쏟아낸다고 비판한다. 그가 보기엔 한심한 것이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위대했던 이 시인'은 에세이'에서 온통 쪼잔한 일상을 쏟아낸다. 가난 때문에 쪽팔리다는 말은 해도 가난 때문에 넉넉한 삶이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는 " 나는 왜 쪼잔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 "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김수영을 대신해서 내가 속 시원히 한마디 하련다. " 글 좀 쓰는 문인이라고 하는 양반들, 김수영이 쓴 글은 읽어봤냐, 개새끼들앙 ! "

 

한국 문단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이도 김수영이었다. 등단은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없어져야 할 제도라는 지적과 함께. 그 스스로도 등단 작가이면서 말이다. 등단 작가 중에서 한국 등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는 김수영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가 지금 쓰고자 하는 이는 김수영이 아니라 이덕무'라는 선비이다. 현대사에 김수영이 있다면, 조선사에는 이덕무와 같은 백탑파'가 존재했다. 조선 선비들이 사상과 선비로서의 자세에 대해 글을 쓸 때, 이덕무라는 선비는 신변잡기에 대한 글을 썼다. < 이목구심서 > 는 잡다한 것투성이'다. ( 박물학적 글쓰기의 결정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아닐까 ? )

 

쥐가 닭 똥구멍을 갉아먹는 이야기, 지네가 뱀 몸속에 들어가 뱀을 죽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사대가 양반들이 보기엔 잡문이요, 신변잡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 작품이야말로 위대한 작품이다. 그는 박학다식했으며 박물학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다. 耳目口心書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이 그는 공자, 맹자 같은 뜬구름 잡는, 뽐나는 사상을 말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이 듣고, 보고, 마음이 동한 것'들에 대한 담담한 것만을 적는다. 적어도 알지도 못하면서 구름 위를 걷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내가 < 이목구심서 > 에서 흥미롭게 본 대목은 뱀과 지네'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지네-포비아'라고 할 만큼 지네를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다리 없는 무지류에 대한 애정 ( 지렁이를 직접 키웠다. ) 은 다지류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 전이된 탓이리라. 하여튼.... 다지류 가운데에서도 지네는 범접을 할 수 없는, 절대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짐승이었다. 지네를 보면 사람들은 오금이 저린다. 땀이 나고, 호흡이 빨라지며, 무서워서 몸이 굳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토록 무서운 존재이면서도 지네를 계속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 지네- 포비아'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나는 한 여자'를 우연히 보았다. 땀이 났다. 호흡이 빨라졌다. 모든 시간은 멈춘 채 동상처럼 한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 토록 무서운 존재.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지네를 무서워하는 것은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지네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첫눈에 반한 거라고 말이다. 매혹적인 주체는 모두 독을 가지고 있다. 조인성과 송혜교는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독을 가진 얼굴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경험들. 그래서 나는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에 다음과 같이 쓴다.

 

지네 : < 동물 > 지네강의 절지동물을 통들어 이르는 말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그 마디마다 한쌍의 밭이 있다. 다리에는 한 쌍의 더듬이와 독을 분비하는 큰 턱이 있고 눈은 없거나 네 개의 홑눈만을 가지고 있다. 붉은 색일수록 독이 강하다. 축축한 흙에 살고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데 전 세계에 2000여 종이 분포한다. [ 비슷한 말 ] 첫눈에 반한 사람 : 실패한 첫사랑은 모두 독이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형설시공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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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5-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이지 지네님의 위엄 앞에 바퀴쯤이야...
처음 글을 접했던 순간부터 팬이었지만, 곰곰발님 글은 싸지르듯 쓰신 글들까지 좋아하지만
어제 오늘처럼 조금은 정색하면서 쓰신 글들이 전 참 좋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3 2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벽 님 저의 본질을 꿰뚫고 계십니다. 저 싸지릅니다...ㅎㅎㅎㅎㅎ

새벽 2013-05-24 03: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감히 곰곰발님 본질을 꿰뚫다니요. 거기까진 아닌 것 같구요.
제 표현이 좀 부적절하고 경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어느 쪽이든 독자로서의 제겐 좋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4 07:3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정확히 보신겁니다. 싸지르는 거 저 좋아해요.
제가 무슨 이런 표현에 꽁하고 그러겠어요.. 하하하.. 정마 전 싸지르는 거 좋아합니다.

2013-05-24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3 21:09   좋아요 0 | URL
사실 독은 모두 약입니다. 약초는 본질적으로 독이잖아요.
적당한 약초는 약이 되지마 과하면 독이 됩니다.
문득 지네 생각ㅎ다가 오래 전에 써둔 글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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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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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스 벗고 덤벼라 : 윤창중 사태'에서 희망을 보아야 하는 이유.

 

윤창중은 빤스'를 벗었다. 거두절미하고... 아무래도 그는 기자 생활을 너무 열정적으로 해온 탓에 영화 관람 같은 문화 생활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공포 영화 몇 편'만 보았어도 국제적 개망신'은 피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공포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피 범벅 난도질 영화가 주는 교훈은  집 밖에서는 빤스를 내리지 마라, 이다. < 할로윈 > 이나 < 13일밤의금요일 > 같은 영화에서 잔인하게 죽는 사람은 항상 무리에서 벗어나서 으슥한 곳에서 빤스를 내리는 남녀'가 아니었던가 !  이들 영화에서는 빤스를 자주 내리는 남자와 브래지어를 자주 풀어헤치는 여자가 제일 먼저 죽는다. 반대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대부분 금욕적인 사람이다. 우리 빤스까지는 내리지 말기로 해요 ! 아흥.

 

" 꼴리면 죽는다 " 는 서사는 신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기나 덴타타 신화/ 이빨 달린 질' 가 대표적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메두사 신화'일 것이다. 프로이트는 남자들이 메두사를 보면 돌처럼 굳어서 죽는 현상을 < 페니스의 발기 > 라고 설명한다. 타당한 접근이다. 자세히 보면 메두사는 여성 성기'를 닮았다. 메두사 얼굴은 촉촉한 검은 구멍이고, 뱀은 여성 성기 주변에 웃자란 거웃이다. 메두사는 바기나 덴타타이다. 이 신화를 변형해서 현대적 감각에 맞게 각색해서 성공한 작품이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 링 > 이다. 영화 속에서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검은 우물은 말 그대로 촉촉하고 검고 깊은 구멍이다. 이 영화에서 링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디오를 보는 사람은 모두 딱딱하게 굳은 채 죽는다. 곰곰생각하는발이란 녀석이 근본없는 태생임을 너그럽게 봐주신다면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서 한 마디 하련다. " 링은 성병에 대한 공포를 다룬 영화다. 링은 여성 성기를 의미하고, 바이러스는 성병 병원균을 의미한다 !!   " 이처럼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미국에서 빤스 벗고 주접 떤 사건 > 으로 윤창중은 단칼에 갔다 !  그가 슴가 속에 품은 에로스는 타나토스로 연결이 되었다. 윤창중이 공포 영화에서 이 메시지'를 깨달았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포영화, 꽤..... 좋은 장르다. 무시하지 마라.  만약에 내가 감독이어서 이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로 각색한다면 제목으로 < 개새끼들아, 빤스 벗고 덤벼라 ! > 따위로 짓겠다. 블랙코미디 장르로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누가 될까 ? 문제는 주인공이다. 윤창중일까 ? 아니면 ( 윤창중 식으로 ) 가이드일까, ( 박근혜 식으로 ) 해외 동포 학생'일까 ? 나라면 문화원 여직원'을 주인공으로 선택하겠다. 핵심은 윤창중이 아니라 문화원 여직원'이다. 그녀는 작은 영웅이다. 불의에 분노한 내부 고발자이며 정의를 알리기 위한 공익 제보자'이다. 만약에 당신이 문화원 여직원이라고 하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사표까지 던지고 불의에 대항한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피해자의 불행에 함께 분노하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린 용기'야말로 아름다운 용기'다.

 

언론은 온통 윤창중과 피해 여성에게만 촛점을 맞추고 있을 뿐, 불의에 대항한 한 여성의 용기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언론의 생태적 천안함이다. 오타다, 천박함이다. ( 천안함, 아님 !! ) 내가 아는 선에서는 이 공익 제보자에 대한 용기를 조명한 기사나 사설'은 찾아볼 수 없다. 사회적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느니, 나라 망신이니 그만하면 됐다는 논조가 슬슬 기어나온다.  내부 고발자, 공익 제보자를 대하는 삐딱한 자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삐딱함에는 감춰도 될 것을 중뿔나게 설치고 다닌 문화원 여직원에 대한 원망도 섞인 것처럼 보인다. 국익을 위해서는 사소한 공익은 은폐해도 좋다는 사회적 동기가 암암리에 작동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좋은 태도가 아니다. 국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해야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애국심은 타자가 보기에는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떠올려 보라.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일본군의 용맹은 애국심이 되지만 식민지 국가로 전락한 한국인이 보기에는 군국주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당신이 하면 불륜이 되는 것이 바로 애국주의'이다. 문화원 여직원은 국익보다는 공익'을 선택한다. 그녀는 정의를 위해서 사표까지 던진 것이다. 번데기보다 뻔뻔하고 쫀드기보다 쫀쫀한 우리는 늘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불의를, 그녀는 정면으로 직시한 것이다.

 

허먼 멜빌의 눈부신 걸작 < 필경사, 바틀비 > 에서 바틀비'는 항상 " i would prefer not to ~ " 라고 말한다. 문법적으로나 통사적으로는 딱히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문장도 아닌 이 상투어를 번역하면 " 차라리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시렵니다아아아앙. "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상사에게 웃으면서 개긴다. 상사가 이것 하라, 라고 주문하면 웃으면서 "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 잇힝 ! " 하며 코판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말투에는 핵심을 찌르는 화두'가 숨겨져 있다.  바틀비의 불복종을 단순한 거부이거나 게으름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왜냐하면 바틀비는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 하는 것 > 과 < 안 하는 것 > 사이에서 심사숙고 끝에 < 안 하는 것 > 을 선택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乙인 바틀비는 ( 甲인 상사의 명령에 대항하여 ) 소극적 거부 대신 적극적 거부를 선택한 것이다. " 선택 " 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는 바틀비가 취하는 태도를 소극적 저항이라고 했는데, 왜 이러한 태도가 소극적 저항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신이라도 해야 적극적 저항으로 인정해 줄 것인가 ? ( 피식 ) 웃으면서 코 판다. 바틀비는 할 건 다 한다. 해고에 저항해 출근 투쟁을 벌이고,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바틀비가 거부하는 것은 상사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 대한 거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거부한다는 것은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갑을 향한 빅엿'이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8737  : 필경사 바틀비.

 

문화원 여직원은 국익보다는 공익을 선택했다. 甲 입장' 에서 보면 그녀의 태도는 적극적 거부'에 해당한다. 명령 불복종이다. 그녀가 사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윗선에서 강압'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표란 결국 불복종에 대한 강한 의사 표현이 아니었던가 ? 아마도 정부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쉬쉬하는 차원에서 막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국익이라는 거대한, 정말 거대한 甲 앞에서 쫄지 않을 소시민 乙이 있을쏘냐.  더군다나 여성들이 아니었던가. " 여성이여, 군대에서 딱총은 쏴봤냐잉? " 보잘것없는 여자가 방미/ 訪美 를 불미/不美'로까지는 번지게 하지는 않으리라, 라는 수컷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을 했을 거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녀의 이름이 바틀비였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는 내부 고발자나 공익 제보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북아메리카나 유럽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시츄에이션이다. 한국에서 영웅은 김연아나 박세리 같은 스포츠 스타이지만 북아메리카나 유럽 국가에서는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자를 영웅 취급한다. 문화적 차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자랑할 만한 문화적 차이'는 아닌 것 같다. 김연아는 개인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 빙판을 달렸고, 추신수 또한 부와 명예를 위해 방망이를 휘두른 것뿐이지 애국심과는 관련이 없다. 외화벌이'를 했으니 애국했다'는 주장은 매우 낯익은 기시감을 전해준다. 그렇다, 북한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다. 도토리 키재기다.

 

노무현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것은 상부의 권력 구조가 매우 견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안철수를 믿지 않는 것만큼 문재인도 믿지 않는다. 그들을 폄하하자는 의도는 없다. 그들이 상부 권력에 대항하기에는 벽은 지나치게 딱딱하게 고착화되어서 부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에서부터의 개혁이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의 실패가 그 예이다. 오히려 희망은 아래로부터의 딴지'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문화원 여직원이 내린 용기가 좋은 예이다. 남양유업 사태에 대한 乙의 단결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창대'는 미미한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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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5-2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뻥~~~ 유쾌 상쾌 통쾌
위에서부터의 개혁은 강령, 명분만을 내세울 뿐이고...
맞아요 참 맞아요 아래로부터의 갈망정도에 따라 새벽이 오지요.
곰..발님 100표 아니 하늘 만큼 땅 만큼 표 꾸욱.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11:53   좋아요 0 | URL
음... 하늘 땅 만큼 표 주욱 대신.... 감사 표시로
광화문에서 만세삼창 10번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9시 뉴스로 확인하겠습니다.

히히 2013-05-2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엥@@
여서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하지 싶은데...
주소를 알면 울동네 특산물인 미더덕을 보낼 수는 있삼요.
눈 보다는 입이 행복해지리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23:14   좋아요 0 | URL
미더덕이라... 흠냐... 후르릅... ㅎㅎㅎ.
안됩니다, 만 !!!! ( 요거 직장의신 컨셉입니다. )
반드시 광화문에서 홀랑 옷 벗고 만세삼창 하십시요 !

새벽 2013-05-2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감 또 공감.. 근본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사고, 체제 전환 없이 세상이 변하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다만 그 밑, 서민 혹은 보통 사람들, 을의 가치와 행동 메커니즘이 갑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회의적인 게 늘 저의 문제..
참, 무슨 일이 있어도 필경사 바틀비는 반드시 읽겠습니다.
(기왕이면 이참에 모비딕도 청소년 문고판 말고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지만 과연...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23:15   좋아요 0 | URL
모디딕... 좋습니다. 하지만 엄청 지루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읽고 나면 엄청난 감동이 몰려옵니다.
아마, 타임캡슐에 들어간 한 권의 소설은 아마도.... 모비딕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
전 퇴근하겠습니다.

새벽 2013-05-22 00:0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음.. 네이버와 알라딘의 미쓰김 곰곰발님의 퇴근을 늦추려면 시간외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건가요.. -_ㅜ

말씀 들으니 겁보다 기대감이 더.. :)
저는 아주 얇은 축약판으로 오래 전 읽었으니 읽은 것이 아니고
존 휴스턴 감독이었나요, 영화를 보긴 봤는데 암튼..
여러 개인적인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모비딕은 꼭 제대로 읽어봐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2 09:59   좋아요 0 | URL
어제 드디어 미스김이 끝났군요. 원래 마지막 회란 그냥 보는 것...ㅎㅎㅎ.
전 1회부터 12회 정도까지가 제일 재미있더군요. 1회는 정말 한편의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만 !!!!!!!!!!!!!!!!!!!
됐고.... 전 이제 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