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이 없는 미래를 믿습니다

- 응팔앓이에 빠진 시청자가 좋아하는 우리 선이(덕선이)
지금이야 노트북이 손톡톡상자(핸드폰)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가 되어서 그렇지 노트북 초창기 모델들은 재산 목록에 가까웠다. 순실 씨 딸이 취미로 타고 다닌다는 말보다는 싸지만 어찌 되었든 그만큼 그 시절에는 노트북이 비쌌다는 말. 요즘 초경량 노트북 무게에 비하면 초기 모델의 중량'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든든한 느낌 ?!
침대 옆에 의자를 갖다 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얹어 영화를 보는 재미는 다들 아시리라. 어느 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좀더 가까이서 화면을 보려는 마음에 의자를 당겼는데 노트북이 의자에서 떨어진 것이다. 평소 배터리 충전으로 영화를 보곤 했는데 그날은 배터리 용량이 부족해서 전기 코드를 콘셉트에 연결했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애지중지 다루던 도시바 노트북을 떨어뜨렸으니 내 마음은 투포환 선수가 던지는 포환처럼 쿵, 하며 가라앉았다. " 이 개놈의 전깃줄 ! " 전깃줄만큼 걸리적거리는 것이 또 있을까 ?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 그리고 프린터의 전깃줄이 서로 뒤엉키다 보면
지저분하게 보이니 이만저만 골치 아픈 존재가 아니다. 티븨와 오디오 제품은 어떤가 ? 전자 제품 본체에 연결된 전기줄은 고사하고 각종 음향 단자에 연결된 줄을 감안하면 메두사 머리를 연상케한다(이사를 하면 이 줄이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리라). 그렇기에 소비자는 무선 전자제품을 선호한다. 꼬리(줄) 달린 전기 제품을 파는 기업 입장에서는 꼬리를 거세해야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 응답하라 1988 >> 에서 덕선을 연기한 혜리가 요즘 대세라지만 적어도 전기 제품 시장에서는 무선이 대세인 셈이다. 덕선과 무선은 유선보다 몸값이 비싸다. 그런데 손톡톡상자를 파는,
미래를 선도한다는 혁신의 아이콘 애플社는 " 요즘 대세 " 라는 덕선이를 우습게 보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 우리는 선이(덕선) 없는 미래를 믿습니다 ! " 맙소사, 요즘 덕선이가 얼마나 인기 있는 캐릭터인데......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애플은 한발 더 나아가 황당한 혁신안을 내놓는다. " 우리는 구멍이 없는 미래를 믿습니다 ! " 무슨 말인고 하니 애플은 아이폰7을 출시하면서 3.5㎜ 단자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이어폰을 꽂을 자리도 없으니 괴상한 말이다. 구멍이 없으니 줄이 없는 것은, 그러니까 내 말을 새겨들으시길. 세 말 하면 입 아프니 두말 하지 않으련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하련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라고 말이다. 혁신, 그렇다 ! 이 단어를 끄집어내기 위해 지금까지 장광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혁신이라는 단어가 과거가 아닌 미래에 방점이 찍힌 단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혁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창조 따위이니 말이다. 아는 것은 쥐뿔도 없는 박근혜 씨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한 것을 보면 혁신 =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혁신이라는 낱말에서 한자 新이 새롭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하지만 혁신은 미래와는 상관이 없다. 혁신은 과거의 캐캐묵은 풍속, 관습, 조직이나 방법 따위를 없애는 것이다.
과거의 찌꺼기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새것이 될 수 있다. 마치 세재로 녹을 제거한 오래된 냄비처럼 말이다. 그 냄비는 새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찌꺼기를 제거한 것에 불과하니 혁신이란 녹이 슨 냄비를 제거하는 방법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니까 박근혜가 야심차게 준비한 " 창조경제혁신센터 " 는 뚱뚱한 의사가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 난민에게 비만은 몸에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치인은 입만 열었다 하면 혁신, 혁신, 혁신을 주장하며 혁신 조직을 설립해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겠다 설레발을 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묵은 때를 밀면 되는데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선(善)이 없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심은 등심을 사먹기 위해 판지 오래이다. 선이 없는 전자제품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정부 조직에서는 쥐꼬리 만한 선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논어의 그 유명한 문장,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있지 않은가 ! 새로운 공천 제도를 만들겠다, 혁신 센터를 설립하겠다며 꼴값 떨지 말고 때나 밀어라 _ 라고 충고하고 싶네. 또 한 가지, 빨간색과 흰색의 조화는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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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61384.html ( 요즘 김도훈의 낯선 정치라는 칼럼을 즐겨 읽는다. 글 재주가 상당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