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 싸 우 듯 이 :
정지돈과 나
" 쓰는 기계 " 스티븐 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를 꿈꾸는 일반인이 습작 소설을 쓰다가 항상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데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우선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얼마 전, 나는 소설 하나를 썼다. 말이 좋아 소설이지 사실은 소설을 빙자한 자서전이어서 내심 부끄러웠다. 스티븐 킹의 충고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K에게 원고 심사를 부탁했다. 며칠 후 K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어이없다는 투로 내 습작 소설이 요즘 잘나간다는 정지돈의 소설 << 고개 숙인 남자 >> 를 노골적으로 표절했다고 지적했다. 감정이 섞인 말투였다. 뻔뻔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깜짝 놀랐다. 내 인생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써내려갔을 뿐인데 표절이라니 ?! 그렇다면 내 인생이 허구적 삶이라는 말인가.
바로 정지돈의 << 고개 숙인 남자 >> 를 사서 읽어 보았다. K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정지돈 소설과 내 습작은 싱크로율이 99%였다. 주인공 이니셜만 바뀌었을 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이야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이 29살 때 찾아온 전립선 장애로 인한 발기부전으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다는 소설 속 설정도 현실 속 내 사정과 똑같았다. 이토록 은밀한 정보를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 그러니까, 정지돈 작가가 만들어낸 가장의 인물은 나였던 것이다. 그는 나를 모델로 소설을 쓴 것이다.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 우여곡절 끝에 작가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 연결음 후에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 정지돈 작가이십니까 ? " " 네에, 제가 정지돈입니다 ! "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당신이 소설 속에서 창조한 주인공이 바로 나'이다. 당신은 내 삶을 표절했다. 그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 혹시....... 치질로 고생하신 적 있으십니까 ? " 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 추임새를 넣어가며 내 하소연을 경청했다. 그가 말했다. " 제가 지금 바쁜데 시간이 되시면 제 집으로 오시겠습니까 ?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 그는 약속 시간을 정한 후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가 알려준 주소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1KM 남았다는 네비게이션의 기계음이 들렸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동네는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였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자동차가 멈춘 곳은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남긴 주소는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주소와 동일했던 것이다. 나는 부르스 윌리스도 아니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면서 정지돈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제가 정지돈입니다 ! 그가 미소를 지었다. 섬찟한 미소였다.
▦
그는 내가 쓴 습작 소설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마음에 쏙 드는걸.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아비보다 근사한 소설을 완성했구나. "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 맞습니다. 제가 상상 속에서 키운 캐릭터죠.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만......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겁니다. 킁킁. 그때부터 일이 묘하게 꼬이겐 된 거죠. 기억상실증에 걸린 피조물은 자신을 실존하는 인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만든 소설가이자 조물주입니다. " 나는 싸우듯이 정지돈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 조까, 오호츠크 시밤바 새끼야 ! 그따위 새빨간 거짓말에 내가 속을 줄 아냐. "
그는 차가운 시선을 내게 던지더니 웃음을 지었다. " 그러는 거 아냐. 밥 주는 주인의 손을 물면 되나. 너에게 명령하노라. 빤스 벗고 엎드려뻗쳐 ! 어서 !!!! " 그때였다. 멱살을 잡은 내 손이 스르르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의 명령대로 빤스 내리고 엎드려뻗쳐를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 어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 정지돈은 내 바지에서 허리띠를 잡아 뺀 후 한 손에 휘감았다. " 너 이놈, 정신 좀 차리자.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자. " 그가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 너의 후장은 내가 한 땀 한 땀 꿰맨 결과'다. 알았느냐 ! "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가상의 캐릭터란 사실을 말이다. 정신을 ! 차리자 ! 정신을 ! 차리자 ! 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