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생긴 일




                                              다양성을 존중하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형 멀티플렉스는 유해 어종으로 지정된 " 배스 " 와 같다. 식성이 좋아 닥치는 대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다 보니 토종 어류가 사라졌듯이 대기업 자본이 독점한 멀티플렉스는 동네마다 랜드마크로 우뚝 솟았던 개인 극장-들(3류 극장)을 잡아먹었다. 한때, 사랑방 구실을 했던 극장 건물은 방치되어 < 깨진 창문 이론 > 에 적용될 만한 폐허가 되거나 땡처리 마트로 바뀌었다. 지금 이 이야기는 그 당시, 영화관에서 생긴 일'이다. 그때 보았던 영화 제목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형편없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몸이 서로 엉키는 에로 영화였다는 사실 뿐. 마지막 회, 텅 빈 극장 안에 뜨문뜨문 앉은 관객 앞에 한 여자가 외쳤다. " 너희들, 그렇게 섹스하고 싶니 ? " 여자의 얼굴에 영사된 영화의 편린들이 겹쳤다. 뒤엉킨 몸과 신음소리가 여자의 몸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당황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몰랐다. 그 사이, 여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해프닝이라고 생각할 즈음 여자는 다시 나타나서 스크린 앞에 서성거리며 어두컴컴한 극장 속을 서성거렸다. 나는 영화보다 그 여자가 흥미로웠다. 영화보다 그 여자가 더 영화 같았으니까. 그때였다. 그 여자와 내 눈이 서로 마주쳤다. 여자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극장 안으로 영사된 희미한 빛만으로도 그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여자는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영화관 밖으로 사라졌다. 다시 영화관은 평온을 되찾았다. 긴장감 넘치는 해프닝에 비하면 영화 같지 않은 영화는 재미가 없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영화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회 상영이었기에 사람들이 모두 영화관 밖으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옷을 추스리고 몸을 뒤로 돌리자 바로 뒷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영화를 상영 중일 때는 몰랐었는데 극장 딤머(조명등)가 켜지고 나니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마치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이 연출한 <<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에 나오는 늙은 베티 데이비스를 닮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남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은 있어서 차마 내뱉지 못했다. 여자는 허리를 굽혀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 빙신아, 영화...... 끝났어 ! " 나는 허겁지겁 영화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극장은 문을 닫은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극장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깨진 창문 사이로 그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영화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이 1962년에 연출한 이상 심리극 <<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생겼나 ? 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 ?  >> 이다.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심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는 마스터피스'다. 위의 에피소드는 폐쇄된 극장이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픽션이라고 지레짐작했다면 틀렸다. 논픽션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예측은 틀렸다. 내가 경험했던, 내가 극장에서 경험했던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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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0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끝났어!~~이 맨트 잊혀지지 않을듯 하네요..ㄷㄷㄷ (하여간 주장은 하되 강요는 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죠 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2:27   좋아요 1 | URL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영화 끝났어,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내 뒤에 와서 내 목덜미를잡더니 이런저런 말을 속삭여서 기절할 뻔한 적은 있었습니다.. 극장 관계자가 끌고 나갔는데 원래 자주 오는 사람이라고...

yureka01 2016-09-05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뜩했을 거 같은데요..우허..ㄷ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2:39   좋아요 1 | URL
어마어마하게 깜짝 놀랐죠..ㅎㅎㅎㅎ 그때 극장 앞쪽에서 영화를 봐서 그녀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내 뒤로 왔더군요. 기절 기절..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티플렉스의 시장 독점으로 인해 영세하게 극장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도산을 했다. 내가 아는 극장 사장은 멀티플렉스와 경쟁하기 위해 사채를 끌여들여 단관을 4개관으로 확장했는데, 결국은 경쟁에서 도태되어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사장은 극장에 목을 매 자살했던 사건이 있었다.

stella.K 2016-09-05 13:41   좋아요 0 | URL
그럼 거기서 영화를 봤다는 말인가요?
오늘 페이퍼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곰발님 어느 날의 꿈을 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결국 그 여자가 사장의 원혼이 되어 나타난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진짜 영화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3:45   좋아요 0 | URL
두 개 사실이 모두 사실인데 따로 따로 입니다..
글 쓰다 보니 재미를 위해서 약간 조미료를 치기는 했습니다..


stella.K 2016-09-05 14:41   좋아요 0 | URL
그러면 그렇지...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이비 제인`이라는 영화에서 실제 배우인 조안폰테인과 베티 데이비스는 실제로 어마어마한 앙숙이었다. 말은 물론 얼굴도 쳐다보기 싫어했을 정도였다고... 그러니까. 불꽃튀는 연기는 어느정도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stella.K 2016-09-05 13:37   좋아요 0 | URL
이런데서 명화가 나오는 거겠군요.
하긴 배우와 연출이 너무 좋다거나,
작가와 연출이 좋으면 발전이 없죠.

곰발님 이 댓글 읽으니까 예전에 연출가하고 더 싸울 걸 그랬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데요?ㅋㅋ
하긴, 작가는 연출가의 쨉이 안 되더요. 배우쯤 되야 쨉이되지.
우리나라는 아직도 작가를 봉으로 알고 있는 연출가들이 많지요.
오태석 정도는 되야 누가 건드리는 사람 없으려나...?
그래서 작가가 연출하겠다고 그러는 거고.
우리나라 이 바닥은 정말... ㅉ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3:47   좋아요 1 | URL
한국에서 대본작가는 힘이 0%입니다.. 대들지 못하죠.
미국처럼 노조가 있어야 힘을 발휘하지
노조가 없는 한국에서는 쫒겨나기 일쑤죠..

하튼.. 이 영화에서 두 배우는 서로 앙숙이었다고 합니다. 서로 안 볼 때 욕하고 그랬다더군요.
내가 최고지... 이 자신감이 불꽃튀는 연기 대결로 이어진 경우.

yureka01 2016-09-05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동성아트홀이라는 단관 극장이 있습니다.
여기는 예술인전용극장으로 탈바꿈해서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일반적으로 멀티플렉스랑 똑같이 경쟁하면 자본력 앞에서 버텨내기 불가능하더군요...

동성아트홀에서 밥말리 다큐멘터리 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는 일반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영을 아예 하지 않거든요....
돈벌이용 영화만 틀어주니 그만큼 영화 보는 사람들의 선택권 자체가 없는 셈이죠....
또 광고는 얼마나 길게 하던지..게다가 밥콘장사는 아주 그냥 노났더군요..
제벌 4세들이 팝콘장사하는 거 보니..ㄷ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3:03   좋아요 1 | URL
한국영화판의 큰 문제는 배급과 극장을 대기업이 독점한다는 거죠..
이거 미국에서는 불법입니다. 배금과 극장 하나만 해야 합니다.
두 개 다 독접하면 자신이만든 영화를 극장에 독과점할 수가 있거든요.
이게 기형적인데..
한국이 워낙 친기업 정책을 펼치다 보니..
보면 2000개 스크린에 한 영화가 1800개까지 독점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습니까.
매우 심각한 문제죠..

clavis 2016-09-06 05:41   좋아요 0 | URL
밥 말리..넘넘넘 보고잡네용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6 12:23   좋아요 0 | URL
말리 형 좋죠..ㅎㅎㅎ. 레게 머리 한번 하고 싶은데 머리를 감을 수 없다고 하니.....

시이소오 2016-09-0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영화 끝났어, 완전 무섭네요.

글래머러스한 팜므파탈과의 에로스적인 경험을 기대했습니다만
반전이네요 ㅋ

배급과 극장을 독점하는건 산업자본이 은행을 독점하는것과 마찬가지 아닐런지요?

ㅋ 알드리치 영화 보고싶네요. 저도 참 영화 본다고 봤는데 곰발님한테 게임이 안될듯. 박찬욱이나 오승욱 감독님에비견할 덕후십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5:37   좋아요 0 | URL
알드리치의 이 영화 < 선셋대로 > 와 함께 죽여주는 이상 심리 스릴러`입니다.

제가 주로 현대 영화보다는 고전을 보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많이 보는 것 같지
사실은 허당입니다.. 허허..

푸른희망 2016-09-0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긴장하며 읽어내리다가 영화포스턴가요?
저 얼굴에 기함했습니다 ㅜㅜ
이야기가 매럭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6 12:22   좋아요 0 | URL
정식 포스터(영화 개봉 당신 포스터)는 아니고 아마도 DVD나 이런 쪽 포스터일 것입니다..
함 보세요. 무척 재미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9-0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도 작은 극장들은 고전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AMC, Regal, Kirkorian 등의 대형극장이 독식하고 있는 추세에요. 다만 저의 경우 근처에 있는 작은 극장을 종종 가는데, 오후 5시 전에는 할인가격으로 $6이면 신간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ㅎ 회사 근처라는 이점도 있구요. 옛날엔 학교 앞이나 지하상가도로에 가끔 미친 여성이 옷벗고 전도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약간 맛이 간 아저씨가 역시 전도하면서 이상한 얘기하는 걸 종종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제정신으로 그런 분들이 꽤 있다죠??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8 11:04   좋아요 1 | URL
제정신이 아니신 분들이 그러는 것은 100% 이해하는데, 제정신인 분들이 종종 대형 사고를 치죠. 자기만 벗고 돌아다니면 상관이 없는데 남들을 벗기려고 하는 목사가 꽤 많은 편이라........ ㅎㅎ.. 작은 극장들이 선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전 멀티플렉스 생기고 나서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급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