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생긴 일
필리버스터 : 주먹이 운다
록키 발보아, 그는 무명 복서'다. 경기 전적(前績)이라고 내세울 만한 기록조차 변변치 않다. 대전료로 근근히 먹고 사는 4회전 복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운 게 주먹질이어서 용돈을 벌기 위해 뒷골목 건달 노릇을 하는 권투 선수.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 무명 복서'에게 기회를 >> 이라는 이벤트'에 록키 발보아가 발탁된 것이다.
무명 복서였던 그에게 헤비급 현역 세계 챔피언인 아폴리 크리드와 권투 경기를 치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필라델피아 변두리 출신인 복서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누가 이길까 ? 록키 발보아가 이길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현역 챔피언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관전 포인트는 도전자가 얼마나 버티느냐에 달렸다. 이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 통쾌한 승리 > 에 방점을 찍지 않고 < 아름다운 패배 > 에 방점을 찍었다는 데 있다. 록키는 현역 챔피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15회를 버틴다. 결과는 패배'다. 하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승자인 아폴리 크리드가 아니라 록키 발보아를 향한다. 록키 발보아가 갖춘 미덕은 패배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회의사당에서 펼쳐진 무제한 경기가 " 사실상 " 끝났다(최종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더민주는 8회에 기권을 뜻하는 손수건을 링 위에 던졌다. 그만합시다 ! 이 결정은 김종인과 박영선이 주도했다는 후문이다. 더민주 비대위'인 박영선은 불 보듯 뻔한 패배를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손수건을 던졌다고, 울면서 말했다. 처절한 울음이지만 감동은 없다. 지지 않기 위해서 잠시 후퇴한다는 설명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 지기 전에 미리 포기 했기에 아직 진 것은 아니라는 논리'이다. 정말 그럴까 ? < 필리버스터 > 는 승리를 위한 단계가 아니라 실패를 전제로 한 싸움이다. 질 것 뻔히 알면서도 싸우는 행위가 필리버스터'다. 과연, 이 사실을 필리버스터 지지자들이 몰랐을까 ?
지지자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상대 선수를 링 위에 눕히는 것이 아니라 비극으로 치닫는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무모하게 돌진하는 장엄한 파토스'를 목격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더라도 포기를 모르는 록키 발보아처럼 말이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8일 만에 중단된 필리버스터 경기는 그리스적 비극으로 끝났어야 했다. 실패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고, 휘청거렸으나 무릎 꿇지는 않았다고, 비극이 때로는 아름다운 결과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버티다 버티다, 봄 끝에 지는, 혹은 끝물에 지는 마지막 봄꽃처럼 버텼다고 말이다. 김종인과 박영선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경기는 끝났다. 8회 기권패로 기록될 것이다. 감동은 잠시, 당신을 향한 혐오는 오래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