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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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과 키스하기에는 너무 어려요 :


 

죽음과 소녀 

- 죽음과 소녀, 에곤 실레

 

 

 

 

                                                                                          1 인칭 소설은 화자인 < 나 > 의 수준과 < 문장 > 의 수준이 일치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소설 속 " 나 " 가 무지렁이'라면 그 수준에 맞는 문장으로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는 소리'다. 글 깨나 쓴다는 작가 입장에서 보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종종 1인칭 화자'보다 작가의 < 미문에 대한 욕망 > 이 앞서는 경우가 있다. 하층 노동자인 1인칭 화자'가 상류층 문화 살롱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백이면 백, 졸작이 될 수밖에 없다. 신경숙은 종종 1인칭 화자의 교양 수준은 생각하지 않고 고급 문장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1인칭 화자와 문체(소설가의 욕망)가 엇박자를 내는 경우'다. 남해 깡촌 여자(1인칭 화자)가 강남 여자 말투를 쓴다고나 할까 ?

그러다 보니, 신경숙의 미문은 진실성을 훼손하고는 한다. 소설가가 갖춰야 할 미덕은 미문(美文)이 아니다. 지나친 기교는 종종 작품 전체'를 망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좋은 문장이란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확한 문장이다. 제임스 케인의 <<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 와 조이스 캐롤 오츠의 << 좀비 >> 란 소설이 좋은 예'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억누른 채 주인공의 욕망을 철저히 반영한다. 양아치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 시바... > 와 < 존나... > 이니까 !   공선옥 소설은 신경숙의 탐미적 문장에 비해 촌스럽고 투박'하다.  세련된 문장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또한 조경란이나 은희경 소설 속 도시 여성처럼 까칠하거나 쿨하지 못해서, 독자들이 보기에는 답답해 보이는 구석도 있다.

공선옥 작가에 대한 내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촌스럽고 답답하다는 느낌 ?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신경숙이나 조경란 혹은 은희경 문장 속에 " 작가적 허세 " 가 내포되어 있다면, 공선옥 소설은 배부른 낭만보다는 절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녀의 소설이 촌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촌스러운 여성 주인공이 답답한 현실과 맞서 싸운다는 데 있다.  촌스러우니깐 촌스러운 문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답답하니 답답한 현실을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많은 독자들이 입센의 << 인형의 집 >> 에 나오는 로라 같은 독립적 여성 주인공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 지점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공선옥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은 현실과 맞서 " 싸운다 " 기보다는 " 견딘다 "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창비 진영과 문지 진영, 양 진영에서 비판을 받고는 했다. (미래에 대한) " 전망 " 을 보여주지 못한다거나, (부당한 현실과 깨부술) " 대안 " 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그런데 이 비판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문학은 정치학도 아니고 사회학도 아니다.  전망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공선옥 장편소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는 80년 광주사태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 광주 - 이후 " 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광주의 상흔을 생략한 후  해금과 친구들의 삶을 병렬로 나열한다.  하지만  < 광주 - 이후 > 의 시간'은  사건의 단절'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친구들은 하나둘 별이 되어 해금이 곁'을 떠나간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되는 해금이가 보기에 이 순차적 죽음(들)은 아이러니컬하다. 내(해금)가 가장 예뻤을 때가 가장 슬펐다는 역설.  꽃 피는 봄에서 시작해서 다시 꽃 피는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가라앉은 자에 대한 구조된 자의 부채 의식'을 다룬다. 지금에 와서 이 소설을 읽어 보니 세월호의 비극'과 겹쳐지게 된다.  세월호 - 이후'는 없다. " 이후 " 가 과거와의 단절 그 후를 지시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세월호 이후'는 없다. 세월호는 항상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슈베르트의 << 죽음과 소녀 >> 와 에곤 쉴레의 그림이었다. 공교롭게도 죽음과 소녀'라는 가곡은 슈베르트가 스무 살에 작곡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을 집요하게 유혹하는 죽음'에게 소녀가 말한다.

" 죽음의 그림자여,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죽음과 키스하기에는 너무 어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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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2-1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웬만해서 안 읽으신다더니 이 책은 읽으셨네요.
저도 이 책 읽은 것 같은데 기록이 없네요.ㅠ
작가가 나름 유명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읽고 났더니 생각 보다 별로네 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곰발님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가 되려면 소설에 대해 나름 깊은 경지에 올랐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독자는 그렇게 수준이 높지 않다는 거죠.
문장이 폐부를 찌르거나, 구성이 재밌거나 뭐 이래야 좋다고 느끼죠.
그래서 공선옥 보다 조경란이나 은희경이 먹어주는 거겠죠.
근데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문학은 워낙에 선택지가 넓은데다가
대중이 복잡하고 어려운 거 싫어하는 것처럼 일반 독자도 그런 거잖아요.
문학에 순정을 바친다던지 평론으로 우려 먹을 것 같이 아니라면...

근데요, 한 가지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 있는데요, 혹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 보셨나요?
이 영화 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왜 해리가 책을 목차를 먼저 읽고 다음으론 책의 맨 끝장을 읽잖아요.
그래서 샐리가 왜 그렇게 하냐고 했을 때 해리가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 나세요?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거 확인하자고 영화를 다시 봐야하나 고민이어요. 아시면 좀 알켜 주세요.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8 18:41   좋아요 0 | URL
비문학 에 비해 문학 작품`을 덜 읽는다는 것이지 안 읽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에 1,2권은 읽어요..

킁킁/// 해리샐리는 보긴 봤는데 오르가슴 연기가 워낙 강렬해서 그것만 남고 나머지는 생각이 안 나네요..
그런 장면이 있었습니까 ? 금시초문입니다. 허허..
도움이 안 되서 어쩝니까 ? 곰곰 생각하니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여서 말입니다. 다 까먹었지 뭡니까요..


그냥 통밥을 굴리자면 책은 목차 읽고 마지막 페이지 읽으면 다 읽은 거나 마찬가지여..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요 ?

죄송 -_- ; 긁적글적..

stella.K 2016-02-18 18:57   좋아요 0 | URL
아, 역시 곰발님도 기억이 안 나시는군요.
저의 댓글 보시는 누구라도 답을 주시면 좋겠는데...ㅠ

stella.K 2016-02-18 19:06   좋아요 0 | URL
얼핏 기억하기론, 뒤에 가면 결론이 다 나와 있는데
뭐 때문에 처음부터 읽느냐고 했나...
아니면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다 천재지변을 만나 즉사라도 하면
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먼저 읽는 거라고 했나 그러던 것 같은데...아닌가요?
어쩌면 곰발님의 통밥이 맞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머리가 더 복잡하네요.
그냥 그 한 장면 확인해 보기 위해 봐야할 것 같아요.
혹시 보실 생각은 없나요?ㅋㅋㅋㅋ

표맥(漂麥) 2016-02-18 21:24   좋아요 0 | URL
Harry Burns:
Oh, really? When I buy a new book, I read the last page first. That way, in case I die before I finish, I know how it ends. That, my friend, is a dark side.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8 21:31   좋아요 0 | URL
아니 이 귀한 원문 출처를....
스텔라 님 기억이 맞네요....

stella.K 2016-02-19 11:51   좋아요 0 | URL
아,이런... 표맥님, 귀한 우리 말 자막도 있는데 영어라니요.
제가 영어 울렁증에 마비증세까지 있어서요....ㅠㅋ
뭐 어쨌든 고맙습니다.^^

표맥(漂麥) 2016-02-19 12:47   좋아요 0 | URL
윽~ 그렇군요.
블루레이에 있는 공식(?) 번역 자막을 다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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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난 책을 사면
꼭 마지막 페이지부터 읽어요.
그럼 다 읽기 전에 죽더라도
끝은 알잖아요.

비관적이 되려면
이 정도는 돼야죠...

stella.K 2016-02-19 12:56   좋아요 0 | URL
와우, 그런 뜻이었군요.
완전 감사해요.^^

yamoo 2016-02-1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단에서 재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작가가 손창섭이나 공선옥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저평가 돼서 무안할 지경입니다.

공선옥에 대한 페이퍼는 곰발 님 서재에서 처음 보는 것 같은데(특히 이런 장문은) 적확한 지적에 무릎을 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8 21:36   좋아요 0 | URL
공선옥은 신경숙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은 경우입니다.
나이도 같도 전라도라는 지역도 같고... 그런데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주로 메이저 출판이 신경숙을 밀어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신경숙과 정반대인 공선옥은 평가 절하된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

공선옥에 대한 집중 페이퍼를 쓰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공선옥에 대한 평가는 했습니다.
저평가 우량주라고 말이죠..

2016-02-1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8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2-1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업에 종사하고 작가들과 친분 있는 분에게 들은건데 독자들이 공지영은 잘 아는데 공선옥은 잘 모른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9 13:10   좋아요 0 | URL
공선옥,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이 전부 다 63년 생 아니었던가요 ?

아니구나.. 은희경이 언니네요..ㅎㅎㅎㅎ. 하튼 제가 알기로는 63동갑네기 작가들이 대거 문단에...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선옥은 빛을 보지 못했을겁니다..

수다맨 2016-02-19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 소설은 사실 편차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생의 알리바이˝나 ˝유랑가족˝과 같은 소설집은 오갈데 없는 삶들과, 약자들의 경제적 곤란에 대한 가장 정밀한 사회학적 보고서로 보아도 손색이 없습니다만, ˝명랑한 밤길˝같은 단편집은 신경숙 호환버전(!)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하자면 공선옥은 (사회학자) 조은과 (너무나 문학적인) 신경숙 사이를 아슬하게 오가는 편인데 전자에 기울때 문학적 성취가 월등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선옥이 재평가 받아야할 작가라는 곰곰발님의 의견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공선옥은 전망의 결여(창비)나 뒤늦게 온 자연주의자(문지)로 비판받는 경우가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양대진영이 너무나 박한 문학적 평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9 13:14   좋아요 0 | URL
글쿤요. 제가 문학을 겉다리로 아는 편이라.. ㅎㅎ. 유량가족, 수수밭으로 오세요 등등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긴 모든 작품이 다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게 힘읻 ㅡㄹ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수준을 뽑아내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는 생각은 드네요. 그런 점에서 킹은 확실히 괴물입니다.



양대진영으로부터 박한 대우를 받는 이유는 확실히 신경숙 때문일 겁니다. 겹치는 부분이 많잖아요. 동갑내기, 같은 지역 출신, 등등... 신을 신으로 모기시 위해서는 공을 공(空) 대접하다 보니...

갑자기 명랑한 밤길 읽어보고 싶네요...

yamoo 2016-02-20 22:23   좋아요 0 | URL
수다맨 님의 댓글은 언제나 봐도 좋네요!~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댓글로 뵛습니다만..내공이 느껴집니다요~^^

수다맨 2016-02-21 17:38   좋아요 0 | URL
아이구, 과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yamoo님. 답글이 많이 늦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21 19:55   좋아요 0 | URL
수다맨 님은 100자평의 지니이시니 과찬을 들으셔도 됩니다..

samadhi(眞我) 2016-02-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기가 먹통이 된 사이에 서평이 올라왔었네요. 흠, 저도 공선옥 책을 읽고 왜 이 작가를 이제야 발견했지? 했었거든요. 제가 이쪽을 잘 모르지만 매체에서 연예인 하나를 띄워주기 하는 식으로 작가도 출판계에서 누구하나 띄워주기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21 19:55   좋아요 0 | URL
아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먹통이 된 답니깡.. 아마도 신경숙의 선전이 공선옥에게 불리하게 작동했을 겁니다. 동갑네기 공지영도 신경숙과 쌍벽을 이뤘으니... 두 명의 슈퍼스타 사이에 끼였다고나 할까요.. 출판사마다 자신이 밀어주는 작가가 있죠.. 스타 작가를 키우는 것은 작가 스스로의역량이 아니라 출판사입니다.. 출판사가 선택한 작가가 스타가 되죠..

samadhi(眞我) 2016-03-05 03:06   좋아요 0 | URL
전화기 메인이 나가서 전압이 안 올라간대요. 수리비가 20만원이래서 수리 포기하고 인터넷으로 전화기 주문하느라구요. 통신두절 문제가아니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21 20:10   좋아요 0 | URL
허컥...수리비 포기하고 새것 사야겠네요.. 옛날에 고장난 라디오 같은 거 전파사 가서 고치고 돌아와서 집에서 틀 때 느끼는 쾌감이 사라졌어요.. 아쉽슴돠..

그건 그렇고.. 전 이 소설 제목을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슴돠..찡하더군요. 내가 가장 예쁠 때 내 친구들은 죽어나갔다는 사실..

samadhi(眞我) 2016-02-21 20:55   좋아요 0 | URL
제목을 처음 보면 전혀 끌리지 않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거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22 13:07   좋아요 0 | URL
제목하고 표지만 보면 10대를 겨냥한 칙릿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하지만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뭔가 뒤통수 맞는 느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