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과 키스하기에는 너무 어려요 :
죽음과 소녀
- 죽음과 소녀, 에곤 실레
1 인칭 소설은 화자인 < 나 > 의 수준과 < 문장 > 의 수준이 일치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소설 속 " 나 " 가 무지렁이'라면 그 수준에 맞는 문장으로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는 소리'다. 글 깨나 쓴다는 작가 입장에서 보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종종 1인칭 화자'보다 작가의 < 미문에 대한 욕망 > 이 앞서는 경우가 있다. 하층 노동자인 1인칭 화자'가 상류층 문화 살롱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백이면 백, 졸작이 될 수밖에 없다. 신경숙은 종종 1인칭 화자의 교양 수준은 생각하지 않고 고급 문장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1인칭 화자와 문체(소설가의 욕망)가 엇박자를 내는 경우'다. 남해 깡촌 여자(1인칭 화자)가 강남 여자 말투를 쓴다고나 할까 ?
그러다 보니, 신경숙의 미문은 진실성을 훼손하고는 한다. 소설가가 갖춰야 할 미덕은 미문(美文)이 아니다. 지나친 기교는 종종 작품 전체'를 망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좋은 문장이란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확한 문장이다. 제임스 케인의 <<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 와 조이스 캐롤 오츠의 << 좀비 >> 란 소설이 좋은 예'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억누른 채 주인공의 욕망을 철저히 반영한다. 양아치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 시바... > 와 < 존나... > 이니까 ! 공선옥 소설은 신경숙의 탐미적 문장에 비해 촌스럽고 투박'하다. 세련된 문장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또한 조경란이나 은희경 소설 속 도시 여성처럼 까칠하거나 쿨하지 못해서, 독자들이 보기에는 답답해 보이는 구석도 있다.
공선옥 작가에 대한 내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촌스럽고 답답하다는 느낌 ?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신경숙이나 조경란 혹은 은희경 문장 속에 " 작가적 허세 " 가 내포되어 있다면, 공선옥 소설은 배부른 낭만보다는 절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녀의 소설이 촌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촌스러운 여성 주인공이 답답한 현실과 맞서 싸운다는 데 있다. 촌스러우니깐 촌스러운 문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답답하니 답답한 현실을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많은 독자들이 입센의 << 인형의 집 >> 에 나오는 로라 같은 독립적 여성 주인공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 지점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공선옥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은 현실과 맞서 " 싸운다 " 기보다는 " 견딘다 "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창비 진영과 문지 진영, 양 진영에서 비판을 받고는 했다. (미래에 대한) " 전망 " 을 보여주지 못한다거나, (부당한 현실과 깨부술) " 대안 " 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그런데 이 비판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문학은 정치학도 아니고 사회학도 아니다. 전망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공선옥 장편소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는 80년 광주사태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 광주 - 이후 " 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광주의 상흔을 생략한 후 해금과 친구들의 삶을 병렬로 나열한다. 하지만 < 광주 - 이후 > 의 시간'은 사건의 단절'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친구들은 하나둘 별이 되어 해금이 곁'을 떠나간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되는 해금이가 보기에 이 순차적 죽음(들)은 아이러니컬하다. 내(해금)가 가장 예뻤을 때가 가장 슬펐다는 역설. 꽃 피는 봄에서 시작해서 다시 꽃 피는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가라앉은 자에 대한 구조된 자의 부채 의식'을 다룬다. 지금에 와서 이 소설을 읽어 보니 세월호의 비극'과 겹쳐지게 된다. 세월호 - 이후'는 없다. " 이후 " 가 과거와의 단절 그 후를 지시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세월호 이후'는 없다. 세월호는 항상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슈베르트의 << 죽음과 소녀 >> 와 에곤 쉴레의 그림이었다. 공교롭게도 죽음과 소녀'라는 가곡은 슈베르트가 스무 살에 작곡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을 집요하게 유혹하는 죽음'에게 소녀가 말한다.
" 죽음의 그림자여,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죽음과 키스하기에는 너무 어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