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기 힘든 책은 귀한 책이다
내 짧은 영화 감상의 변천사는 " 대중 오락 영화 → 예술 영화 → 컬트 영화 → B무비 → 다큐 → 영화에 관심이 없음 " 순으로 취향이 변했다. 주류 대중 오락 영화'가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없었다면, 예술 영화는 깊이는 있지만 재미가 없었다. 둘 다 내 취향은 아니었기에 내가 선택한 장르는 컬트 영화와 B무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괴함, 숭배, 키치 그리고 전복적 상상 따위가 마음에 들었다. 나사가 하나 정도는 풀린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컬트와 B무비는 " 마이너 뽕끼 - 스러운 " < 아우라 > 를 가진 장르였다. 체제 전복적인 상상력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속물(俗物)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이들 영화가 변두리ㅡ비주류ㅡ마이너 정서'이다 보니 대중적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극장에 걸릴 턱이 있나. 그만큼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게 구하기 힘들면 더욱 구하고 싶은 마음. 나는 < 주먹 쥐고 소림사 > 의 구하라가 되어서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녔다. 구하라, 구하라, 구하라 ! VHS 테이프'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어렵사리 구하다 보면, 이 지난한 과정 때문에 영화를 보기도 전에 애정이 생기곤 했다. 영화를 구할 수 있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디든 갔다. 어떻게 구한 기회'인데 내가 실망할쏘냐, 이런 태도. 어렵사리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영화가 내 기대보다 못 미치더라도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구하기 힘든 영화를 보았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구하기 힘든 영화는 귀한 영화였다. 돌이켜보면, 이 소비 행위'는 " 아날로그 감성 " 과 연결이 된다. 먹물처럼 잰 체하며 말하자면 " 레트로 지향적 소비 취향 " 와 맞닿아 있다. 내가 소비한 것은 구매 비용'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보기 위한 불편한 과정'에서 오는 체험'이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불편을 주고 영화를 산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 불편 > 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소비 상품(혹은 시스템)이 < 불편 > 을 제거하는 이유는 < 편리 > 를 위해서이다. 좋은 예가 디지털 카메라'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 기계식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불편을 제거'했다.
필름 끼우기는 물론이요, 인화와 현상 과정도 생략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정 작업도 간단해졌다. 여러모로 편리한 것이다. 디지털 음원도 마찬가지다. 듣고 싶은 곡만 들을 수 있다. 듣고 싶은 곡을 듣기 위해 앨범 전체를 들어야 했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상품은 불편을 제거하면서 아우라도 제거되었다. 결과만 남고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추억이 사라졌다. 내가 컬트 영화와 B 무비에 매료되었던 까닭은 만듦새가 훌륭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악하기 그지없는 영화도 많아서 속으로 " 참... 그지같은 영화네. " 라는 혼잣말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애타게 찾아헤매던 날들에 대한 추억'에 있다. 왜 그랬을까 ? 니미,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알라딘에서 배출한 몇몇 스타'가 있다. 알라디너 마태우스, 그도 알라딘이 배출한 걸죽한 스타'다. 그는 단국대 기생충학 교수이자 인기 방송인이며 동시에 < 서민의 어쩌면 > 이라는 경향일보 칼럼을 쓴 칼럼리스트'이기도 하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한 번 보면 모두 아, 한다. 아, 그 사람 ! 속된 말로 그는 " 떴다. "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 << 마태우스 >> , 눈 감고 읽으면 아, 하게 되지만 눈 뜨고 읽으면 우, 하게 된다는 소설. 바로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마태우스(서민)이다. 본인은 정작 이 소설에 대한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모양새'다(그는 자신이 쓴 책을 사들여서 스스로 절판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유령처럼 살아남아서 종종 헌책방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자신을 부정하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화신'으로 말이다. 궈, 궈궈궈궈궈궈궈궈궈 ~ 보소보소, 내 말 좀 들어보소. 내가 서민 박사의 사생아'라오.
복수(複數)의 목격자에 의하면 << 소설 마태우스 >> 는 헌책방 책장에 갇혀서 그렇게 울부짖고 있었다고 한다. 구하기 힘든 영화일수록 기어코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컬트 마니아처럼, 이 책이 눈에 띄지 않을수록 나는 애타게 이 소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cyrus 님에게 무한 감사. 다음에는 제가 < 닳지 않는 칫솔 > 을 구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자 ~ ).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애정 표현'을 담아 " 괴랄 " 한 소설이라고 하자. but, 앞말과 다르다고 뒷말이 무성할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구하기 힘든 책은 모두 귀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