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적이다
국 가 는 적 이 다
- 마루야마 겐지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로 장르 문학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던 피에르 르메트르가 쓴 장편소설 << 오 르부아르 >> 는 내가 기대했던 예상치를 모두 뛰어넘었다. 분량이 700페이지에 육박(678쪽)하다 보니, 요즘 힘 깨나 쓴다는 진박, 친박, 정박과 비교해도 중량감에서 뒤지지 않을 뿐더러 읽다 보면 지루할 것이란 선입견은 내가 이 책을 하룻밤 만에 읽었다는 사실로 초전에 박살이 났다. 또한 장르 문학 작가가 본격 문학에 대한 욕심 때문에 < 흥 > 대신 < 도(道) > 에 집중했으리라는 예상 또한 사실을 빗나갔다. 쉽게 말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꼴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보면 때론 서사가 오래 입은 백양 메리야스 빤스 고무줄처럼 늘어지기 마련(멜빌의 << 백경 >> 을 보라)인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쫀득쫀득한 젤리 같다. 박력이 넘친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박력이 서사의 논리적 비약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액션 전문 배우에게 메소드 연기를 부탁하는 것은 감독의 과한 욕심에 해당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맙소사, 본격 메소드 연기를 하는 장르 액션 전문 배우라니 ! 소설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라 전체가 살아남은 자들은 혐오했지만,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맹렬한 추모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 358 쪽
전사자 국립 묘지 공공 사업 및 추모 기념비를 둘러싼 사기극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국가 권력과 결탁한 자본(가)의 추악한 시체 장사‘다. 겉으로는 국가를 위해 죽은 군인의 위대한 희생 정신을 추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파면 장삿속이다.
공동묘지를 만든다는 도의적이고도 애국적인 대사업은 돈이 되는 온갖 종류의 일거리들을 낳았다. 예를 들어 수십만 개의 관을 제조해야 했으니,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냥 군복으로만 감싸인 맨몸으로 흙 속에 묻혔기 때문이다.
- 179 쪽
이 대규모 공공사업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관의 제조 단가를 줄이는 방법이다(그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하겠다). 또 다른 하나는 전장에서 생매장 될 뻔한 알베르와 에두아르가 국가 사업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극이다. 전후 사회는 전사자에 대해서는 국민 영웅 취급을 하지만 막상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 대해서는 벌레 취급을 한다. 보자 보자 하니깐 보자기로 보는군 ! 에두아르는 이 기만과 위선 앞에서 주먹 쥐고 일어선다. 무릎 꿇고 일어설 수는 없으니까. 이제 국가와 사회를 향한 두 남자의 화려한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국가의 사기극 위에 개인의 사기극이 겹치는 꼴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근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의문이 들었던 대목은 과연 < 국가 > 란 무엇인가, 이다.
<< 오르부아르 >> 라는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이 소설 제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소설 제목의 뜻도 모른 채 읽은 것이다. 원제는 << AU REVOIR LA-HAUT >> 다. 번역하자면 “ 천국에서 다시 봐요 ”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