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보다 곶감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화려한 스펙타클이 난무하지만 막상 그것을 꺼내 글( 혹은 말 )로 표현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검은 도화지에다 검정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꼴이니 그림이 나올 리 없다. 더군다나 요즘은 SNS 같은 " 개인 글쓰기 소통 창구 " 가 있으니 더욱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느낀다. 그럴 때 찾는 책이 << 문장 강화 훈련 >> 이나 << 글쓰기 교본 >> 따위'다. 물론 그들이 글쓰기 요령을 배워서 " 문학 " 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 문학적인 (유려한) 글 " 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가지고 있다. 가계부를 쓰기 위해서 글쓰기 요령을 배우는 이는 없지 않은가 ? "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 라는 표현보다는 " 한겨울에 언 수도가 봄볕에 녹아 느닷없이 녹물을 쏟아내듯, 눈물이 터졌다. " 가 더 근사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도 작문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 문장 강화 훈련 >> 이나 << 글쓰기 교본 >> 따위 책을 꽤 많이 읽었다. 읽을 때마다 무릎 탁, 치며 아, 했다. 읽을 때는 내 작문 실력이 귀여니 소설에서 김훈 소설로 " 점프 컷 " 되리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실력이 향상되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그 자리에서 바로 써보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  실력이 " 점프 컷 " 하기는커녕 문장을 " 전부 cut "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좀 묵혔다가 세월이 흘러야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올까 ?  그럴 가능성도 없었다. 책을 덮고 나면 3초 후에 내용을 잊어버리는 닭대가리형 인간이었으니 먼 훗날을 기약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툭 터놓고 말해서 나에게 글쓰기 관련 책은 글쓰기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론은 귀에 박히도록 듣던 말이 진리'였다.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 " 작문 실력 향상을 위한 길라잡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몸에 축적될 리 없다. 그래도 작문 실력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향상시키고 싶다면 글쓰기 교본'보다는 시집'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만약에 글쓰기 교본이 작문 실력을 1% 향상시킨다면 시집은 실력을 10~ 20% 향상시킬 수 있다. 내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글쓰기 향상을 위해서는 글쓰기 교본보다는 시집 읽기가 효과가 좋다는 소리다. 산문이 원석이라면 운문은 보석'이다. 시는 원석'에 지나지 않는 돌덩어리를 깎고 깎고 깎고 깎은 후에 얻게 되는 작은 결정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 시는 한 페이지를 채 채우지 못한 짧은 분량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쓰고, 찢고, 쓰고, 찢는 과정을 반복한 후 얻게 되는 결정체'다. 이 과정에서 쓸데없는 형용사, 부사, 접속사, 조사 따위는 모두 제거된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은 것이요, 단감이 가을 내내 말라서 곶감이 되는 과정'이다. 부피는 줄어들었지만 단맛은 오히려 강하다. 시를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글쓰기 수업은 없다. 점심밥 한 끼 아껴서 시집 한 권 사서 읽으면 당신의 작문 실력은 향상될 수 있다. 속담에 " 잘 싸우는 장수에게는 내버릴 병사가 없고, 글 잘 쓰는 사람에게는 내버릴 글자가 없다 " 는 말이 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다. 수전 손택이나 황현산 산문을 읽으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글자를 깎고 오랜 시간 가을 볕에 말렸는지를 알 수 있다.

홍시는 맛있다. 하지만 문장은 홍시처럼 물렁물렁한 맛이 나면 안 된다. 문장은 곶감처럼 쫀득쫀득해야 제맛이다. 홍시보다는 아, 곶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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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3-0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바,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ㅋㅋㅋㅋㅋㅋ
격하게 동감합니다!!!
저는 사춘기 때 시를 잠시 좋아하다가 시가 뭐가 좋지...?
뭐 그러고 살았습니다. 시가 아니어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워낙에 많은지라.
그런데 최근 김경주의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어쩌고 하는 희곡집을 읽으면서
시를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그책은 여러모로 저한테 힘이 됐죠.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3-09 19:15   좋아요 0 | URL
가끔 진심이 중요하지 기교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문학을 읽을 때 당연히 문학이 기교 면에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스텔라 님이 그토록 극찬하시니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함 읽어봐야겠네요..
요즘은 도서정가제가 되어서 직접 서점 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2015-03-10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0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5-03-09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발, 넘 웃겨서 눈물이 났엉 ㅜㅜ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09 19:13   좋아요 0 | URL
저는 재미있으면 장땡 ㅡ 주의자`여서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수다맨 2015-03-0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는 게 참 말은 쉬운데 막상 행하기는 어려운 원칙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겨레에서 김훈의 작업실을 영상으로 취재한 적이 있는데, 막상 그의 집 서재에는 문학책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보다는 수기에 가까운 기록문이나 동서양 고전, 기계나 기술에 관련된 서적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김훈은 다양한 서적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문장 쓰는 동력을 얻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자세는 참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23   좋아요 0 | URL
다독은 가능한데 다작 다살양 이거 누가 합니까.. 작가 아니고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읽기를 꾸준히 쓰는 건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닙니다.
김훈은 주로 사전을 가지고 있죠. 사실 글 쓸 때 가장 자주 찾는 게 사전이죠. 사전 보면 장르가 참 많아요.
국어 사전만 해도 유의어 사전도 있고 반의어 사전도 있고... 하여튼 여러 개여서 깜작 놀란 적도 있습니다.

iforte 2015-03-0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덮고 나면 3초 후에 내용을 잊어버리는 닭대가리형 인간이었으니˝ 대목에 이르러 ˝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에 급 감정이입했으요. ㅋ

곰발님 글도 이미 곶감이라는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곶감이라니....
제가 곶감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요거 쫀쫀하게 잘 말려야지 맛있지. 그냥 흐물흐물 말리면 맛이 없어요.
요즘 나온 곶감은 다 흐물흐물합니다. 그럴 때는 곶감을 다시 볕에 말려서 먹으면...

아. 혹시 미국에도 곶감 이런 거 있나요 ? 포도나 체리 말리는 거 보면 감도 말릴 것 같은 데 말이죠..

iforte 2015-03-13 13:57   좋아요 0 | URL
ㅎㅎ 네. 곶감 있어요. 국내에서 수입되는건 다 있어요. 요새는 농협, 수협 제품들도 들어오더라고요. 가격이 비싸서 못사먹지요. ㅠㅠ
한국 사람 먹거리로치면 한국이 천국이죠. 어흑.. 갑자기 서러워지네요. 먹고픈것들이 줄지어 생각나고 말이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06:53   좋아요 0 | URL
하긴 과일 말리는 것은 전세계 공통일 겁니다. 생선 절임도 세계 공통이잖아요.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으니 한철에 잔뜩 출하되는 먹거리를 좀더오래 먹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냈을 겁니다. 곶감도결국은 좀더 오래 저장해서 먹을려고 해서 나온 게 곶감이잖아요. 같은이유로 김치 같은 채소 절임`도 전세계 공통입니다. 김치가 한국만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채소절임은 전세계 문화의 공통점 음식 저장 방식이죠. 김치가 틀별히 위대한 문화라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김치 문화는 너무 위대한 것으로 호들갑 떠는 것도 좀 그래요.. ㅎㅎㅎ. 김치도 넓게 보면단순한 채소절임인데 말입니다.

yamoo 2015-03-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 전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시를 싫어하거든요~ 너무나 이상한 시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그래서 그런지 제 글은 대체로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라는 데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시를 읽어야 문장을 잘 쓴다니,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날라고 그러넹~ㅠㅠ`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를 읽기도 싫고 앞으로 읽을 계획도 없으니...그럴수밖에요~ 에휴~

덧.
근데, 전 왤케 시발, 갑자기 눈물이 났엉. ㅠㅠ 라는 표현에 꽂히죠...이런 문장이 시적 표현 아닌감요?? 흠...닭이 더 뭐라 말하겠습니까만은..^^;;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체질적으로 맞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사실 저도 문학과는 거리가 먼 체질입니다. 저도 주로 문학보다는 인문사회학 쪽으로 읽으니 말이죠. 그리고 문학 작품을 읽는다고 해도 전 주로 추리소설을 읽습니다.
인문학 서적 때문에 골치 아픈데 굳이 소설마저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에 감탄한 적은 있습니다.

cyrus 2015-03-0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흔한 착각이 다독, 다작, 다상량은 열심히 하는데 퇴고를 제대로 안 하는 겁니다. 저도 예전에 삼다 원칙만 믿고 글 잘 쓰려고 노력한 적이 있어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어요. 잘 쓴 글이라 믿었는데 저보다 글 잘 쓰는 사람한테 지적을 많이 받으면서 퇴고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글을 쓰는 과정에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 퇴고하는 과정이 귀찮게 여겨져요. 글을 다 쓰고 나면 자신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착각이 망신의 지름길이 되더라고요. 저도 실제로 망신을 당해봤고, 글 쓰기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옆에서 많이 봐서 퇴고의 중요성을 잊지 않습니다.

사실 퇴고가 귀찮기보다는 타인의 지적으로 인해 퇴고를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해요. 잘 썼다고 믿었던 글인데 타인이 그 글의 부족한 점을 제대로 짚어내면 자존심 상하니까요. 제가 2년 전에 모 일간지 대학생 칼럼을 선정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멘토가 되어서 대학생들이 올리는 글을 첨삭하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멘토가 첨삭하라고 권하는 댓글이 없으면 학생들은 자신의 글을 스스로 고치치 않더군요. 일부 학생들은 제가 퇴고해야 할 사항을 댓글로 남기면 수긍하기는커녕 반박하기도 합니다. 글 잘 쓰고 싶은데 결과물이 신통치 않으니 열등감만 생기고, 타인이 자신의 글을 자꾸 지적하니까 짜증이 날 법하죠. 그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한때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자존심을 버리고 퇴고를 해야만 글의 원석을 갈고 깎아 화려한 보석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저는 퇴고도 창작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17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좋은 책은 반드시 좋은 편집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학도 영화와 같아서 결국은 편집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퇴고 과정이 무지 중요하지요.

제가 말한 다독, 다작, 다상량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3다`가 곧 글솜씨를 말할 수는 없죠. 그런 식이라면 독서왕이 가장 문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잖아요. ㅎㅎㅎ. 결국 기술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글쓰기 같습니다.

2015-03-1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시집 좀 추천해주십사...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어휘로 이뤄진 시집이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저런 시집을 많이 사봤는데 소화할 수 있는 시집은 좀처럼 없더라구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나쁜 소년이 서있다˝ 정도의 문장이면 저도 읽고 이해를 하겠는데... 김경주시집은 말할 필요도 없고, 웬만한 시집은 다 어렵더라구요.

김사인 선생님인가? 가만히 좋아하는 이것도 괜찮더라구요. 아무튼 이정도 수준의 어휘로 읽을 수 있는 시집 좀 추천 부탁드립니다.

p.s. 가재민가? 하는 시로 유명하신 분 있잖습니까? 저는 그 시집도 어렵더라구요. 박태준인가?? 아무튼 저한테 그 시집도 어려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04:15   좋아요 0 | URL
가재미 추천하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가재미가 나와서 당황했습니다. 제가 뭐 시를 알겠습니까.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말고 그냥 이해 못해도 계속 읽다 보면 뭐 얻어가는 게 있지 않겠씁니깡.
함민복 시집이나 윤희상 시인 시집 추천합니다. 쉽습니다. 류근의 상처적 체질도 웃고 넘길 수 있어요.


윤희상 시집이 좋겠네요.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 추천 ! 요것 읽어보시고 나중에 덧글 좀 달아주십셔..

2015-03-11 17: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윤희상 시집을 초큼^^* 읽고 왔는데요. 저한테는 좀 버겁다는 느낌였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힘이 들어간 느낌이랄까? 물론, 제가 시를 이해하는 능력이 극히 떨어지는 관계로 그렇게 느꼈을 공산이 크다 생각합니다. <생각날때마다울었다> 는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는데, 신형철씨란 분의 해석을 듣고 나니 ˝와, 이건 냬 얘기잖아˝싶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찾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p.s. 문정희씨 (응)이란 시집이 전시되어 있어서 잠시 들춰 봤는데, 저는 이 분 시가 더 와 닿는 느낌였습니다. 다루는 이야기는 저랑은 별 상관이 없어 보였으나, 뭔가 시원시원한 느낌였습니다. 맛깔나는 표현들이 심심찮게 보였는데, 이 게 또 별 힘들이지 않고 쓴 듯한 느낌이라 그게 참 좋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21:13   좋아요 0 | URL
어, 이 시집 시집치고는 무척 쉬운 시집입니다. 이 시가 좀 독특한데 이야기하듯 쓰여 있어서 이해하는 데 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냥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한 이야기 시`라고나 할까요.
시라는 분야가 당연히 어렵죠. 형이상학입니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가 흠 님 이야기로군요. 흠....
이 시는 참 좋죠. 근데 시집 자체는 그닥 확 와닿지는 않더군요. 하여튼 자기에게 와 닿는 게 무조건좋은 시입니다.

문정희 시인 시`가 여장부같은 맛이 나죠. 그럼 문정희 시인 시로 시작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