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박근혜 대신 이순신 리더십'을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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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도 아니다. 극장 상영작 목록만 확인하고 서둘러 극장을 찾았다. 특정 영화를 몰아주기 위해서 교차 상영 따위로 꼼수를 부린다는 말은 듣긴 했으나 내가 상영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은 이유는 그 극장 상영관 수가 11개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영관 수가 많으니 다양성 차원에서 소수 영화 하나 정도는 " 풀 타임 " 으로 배치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작동한 까닭이었다. 아,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겠다 !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교차 상영으로 일요일 저녁 11시 45분 마지막 상영 1회가 전부였다. ( 영화가 극장에 걸릴 때 최소 상영일수를 보장해야 한다. 저녁 11시 45분, 단 1회 상영된 영화지만 상영일수 1일이 적용된다. 극장이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 황금 시간대를 차지한 영화는 그 잘나가는 한국 영화'였다.
11개 스크린 중 7개를 차지했다. 이왕 극장 나들이를 했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고 해서 10분 후면 볼 수 있는 잘나가는 한국 영화'를 봤다. 기대하지 않은 영화'여서 흥미도 없었고, 역시나 재미도 없었다. << 명량 >> 관객수 가운데 몇 %는 나와 같은 상황 때문에 " 명량 " 을 억지로 보았을 것이다. 대중 영화 관객을 배려한 몰아주기 상영은 거꾸로 소수 영화를 찾는 관객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는다. 복합상영관 전성시대가 도래하기 전, 흥행 영화는 " 길고 가늘게 " 상영했다. 단관 개봉이다 보니 관객이 몰리는 한 계속 상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영 전략을 " 짧고 굵게 " 짠다. < 짧고굵게 - 개봉 전략 > 은 흥행 대박 영화에만 국한한 전략은 아니다. 많은 제작비가 투자되었는데 결과가 형편없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그럴 경우 영화사는 나쁜 입소문을 우려해서 시사회 없이 바로 짧고굵게- 개봉 전략을 내세운다. 물량 공세로 기똥찬 광고를 때린 후 나쁜 입소문이 나기 전에 치고 빠지겠다는 전략이다. 입소문이 퍼지면 영화는 이미 끝난 상태다. 본전은 건지자는 속셈이다. 가끔 이 전략이 먹히고는 한다. 영화 << 명랑 >> 은 개봉한 지 12일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추세라면 넘사벽이라는 1500만도 돌파할 것처럼 보인다. ( 여기저기에서 이순신에 대한 재해석이 쏟아진다. 벌써부터 이순신 리더십을 말하는 방송이 많다. ) 나들이가 불편한 노약자나 문화 불모지에 사는 인구를 빼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12일 동안 우르르 극장으로 몰려가 " 명량 " 을 본 것이다.
박근혜도 1000만 관객 동원에 동참했다. 울부짖는 유가족 앞에서 " 부모의 마음 " 이라며 눈물을 흘리더니, 부모의 마음으로 시원한 극장에 가서 영화나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 명량 >> 을 보았다는 기사에 뚜껑이 열렸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는 대통령이라는 감투를 쓴 사람이 << 명량 >> 을 감상했다는 것은 대중이 이 영화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잿빛 감도는 물살을 보며 그녀는 맹골수로의 비극을 떠올렸을까 ? 대통령이 본 마당에 백성이 안 볼 리가 없다. 이순신은 진영노리에서 자유로운 영웅이 아니었던가. 1000만 관객 영화를 만드는 주요 소비자층은 10대와 20대이지만 50대 이상이 지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치'다.
결국 << 명량 >> 은 박근혜와 지지자'가 만든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 명량 >> 인기에 대한 분석 기사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 기자가 << 명량 >> 인기를 해부한다고 내놓은 것이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이순신 신드롬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낡은 정치에 대한 염증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 광해 >> 와 << 변호인 >> 으로 이어졌다는 논리와 똑같았다. 아, 이 빈곤한 분석 앞에서 눈물이 났다. 그 기사 내용에 따르면 관객은 노무현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 당신은 노무현이 그리워서 이순신을 호명했나 ?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껴서 광해라는 새로운 인물에 끌렸나 ? 자기 논에 물 대는 것'도 정도껏 하자.
재미있으니깐 생각없이 본 것이요, 더우니깐 극장 안으로 스며든 것에 불과하다. 영화 << 명랑 >>의 인기는 현실 정치에 지쳐서 이순신을 호명한 결과가 아니다. 대중은 박근혜를 대체할 인물로 이순신 리더십에 열광한다 ?! 웃기고 자빠지다가 똥 싸는 소리하고 있다. 대중 영화란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그 어떤 메시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