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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 - 가상의 시대, 셀피가 말해주는 새로운 정체성
엘자 고다르 지음, 선영아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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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복고가 하나의 트랜드로 유행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디지털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찍어대는 우리의 셀피는 우리의 존재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맞이하게 된 현 시기를 이 책의 저자 엘자 고다르는 셀피단계라 명명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이 말은 셀카(셀프카메라)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에고의 초상화로 번역되기도 하는 셀피현상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삶의 변화를 8가지 혁명으로 설명하고 가상의 시대에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 체득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언제 어디서나 연락 가능한 상태가 된 우리는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연결 방식에 환호한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시·공간에 접속하여 지금-여기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인내하며 기대하거나 예측할 필요가 없어졌다. 연애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한 남자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자신을 촬영하고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자아는 항상 자기 동일적인 것(이것이 정체성이다)으로 체험되고 자기 성찰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제는 좋아요개수를 세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기다린다.'  저자는 이것을 주체 없는 주체성, 즉 자기 확신에 어려움을 느끼는 주체성이라 말한다. 셀피는 우리가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것 같은 전능함의 표현이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전송되고 게시되기 때문에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 지속적인 노출/관음의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게다가 매번 사진을 찍기 위해 무언가를 연출하거나 삶을 중단하는 것은 우리를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틀어진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간 음식점에서 연인을 앞에 두고 실내장식과 매번 나오는 요리를 찍어대는 여자를 상상해 보라. 저자는 인생을 꿈꾸는 데 시간을 쏟을수록 실제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을 줄어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말한다. 자신의 주체성을 향한 강렬한 방식인 이 셀피는 얼굴도 실체도 없는 소셜 네트워크상의 타인을 향한 것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좋아요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가중되는 고독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린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들이 아직 시작단계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은 디지털 자아(가상의 자아)를 실재의 자아와 함께 주체의 기능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타자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현실에서 인간관계의 깊이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줄 새로운 공동 가치의 원칙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애타주의, 시민정신, 가상 세계의 윤리를 구축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하면서 가능한 지점들을 설명한다. 이것이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 우리가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준비하면서 무기력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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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재미 탐구 - 재미없는 영국 남자의 재미 고찰
마이클 폴리 지음, 김잔디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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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이클 폴리는 그의 전작 행복할 권리에서 행복은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고 견뎌나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우연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어진 것에서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단서와 방법을 찾아내는 삶의 태도와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이번 책 본격재미탐구는 현대인들이 열광적으로 찾아다니는 재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즐기는지에 관하여 문화사적, 현상적으로 살펴 본 만만치 않은 책이다.

 

근대 이전에는 영혼 구원이, 현대에는 돈벌이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포스트모던 세대에는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심지어 전쟁마저도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재미는 의미가 모호하고 의식적으로 추구하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행복과 비슷하다. 특이한 점은 재미가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개인적이기보다는 공동체적 성격을 띠고 있고 현재는 종교까지도 대체하는 양상이다. 사실 재미의 개념은 완전히 현대적이지만 좀 더 조사해 보면 선사시대부터 치러 온 의식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에서 복잡하고 역설적이다.

 

저자는 의식, 초월, 집단, 권태, 불안, 진자, 놀이, 일탈, 쾌락주의를 통해 재미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이교도에서 시작된 핼러원 의식은 기독교를 거쳐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놀이가 되었다. 최근 문신이 인기를 얻는 것은 고대 예술의 부활을 의미하는데 어린이 행사장에서 페인트 페인팅을 자주 접하게 된다. 키에르 케고르는 신은 지루했기 때문에 인류를 창조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러한 권태가 현대에 와서 극심해졌기 때문에 재미를 추구하는 현상이 심화된 부분이 있다. 저자는 현실에 대해서 비관주의자들이 더 잘 이해한다해도 독자들은 낙관주의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독려한다. 놀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불안과 권태를 잠재우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느니 성인용 컬러링북과 점 잇기 책이라도 사러 나가는 것이 낫다고.

 

저자는 춤, 익살, , 휴가, 게임, 종교, 정치의 분야에서 재미 즐기기를 문화사적이고 역사적이며 현상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춤을 배우고 유람선을 타고 크루즈 여행을 하며 신앙이 없는 종교를 원하며 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최근의 재미를 추구하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재미는 자아도취와는 거리가 멀고 개인주의를 거부하며 집단 소속감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재미를 단순히 쾌락주의로 무시하기 보다는 현대의 결핍과 필요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지나면 전근대의 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확실히 먹고 움직이고 자고 노는 방식이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주위에 부부가 함께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거나 드럼, 합창, 악기연주 등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바쁜 시간을 쪼개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으며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하면서 뭘 그런 걸 묻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사실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였던 독서가 소집단 모임으로 바뀌는 현재의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성경책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들었던 근대 이전의 문화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건 확실히 우리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 능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과 사람의 본능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영국 남자인 마이클 폴리의 약간은 보수적이며 시니컬한 태도가 오히려 책을 읽는 재미와 믿음을 더해 준다. 소확행은 첫발은 자신만의 재미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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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의 비밀 - 뇌, 마음, 관계를 바꾸는 대화
루이스 코졸리노 지음, 하혜숙 외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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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의 비밀이란 책 제목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주목을 끈다. 원제목(Why Therapy Works)에 붙인 우리의 뇌를 바꾸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기이라는 말답게 이 책은 신경과학, 유전학, 생화학 등의 다양한 개념과 저자인 루이스 코졸리노의 어린 시절 기억, 환자와의 상담사례 등을 통해 뇌와 마음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심리 치료자들만이 알고 있음직한 심리치료가 어떤 원리로 작용하고 어떻게 효과를 나타나는지’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뇌의 진화에 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복잡해진 인간의 뇌는 오히려 정신적인 취약성을 갖게 되는데 우리에게 있는 파충류 뇌의 작용과 출생 후 초기 경험으로 형성된 핵심 수치심은 정서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진화 과정은 치유의 도구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데 학습에 필요한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은 문제를 일으키는 뇌구조를 재연결하여 뇌를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뇌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작용을 알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저자가 붓다의 마음 챙김 기법을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심리치료의 목표는 의식적 자각을 확장하고 다양한 신경망들의 통합성을 증진 하는 것으로 치료자는 우선 내담자의 원시적 실행의 뇌인 편도체를 조절해 줄 필요가 있다. 편도체라는 뇌의 영역에 대한 지식은 자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알다시피 어린 시절의 양육 방식이 이후 두뇌가 복잡한 체제를 갖추어 발달하고 통합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에 건강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면 전전두피질이 최적의 상태로 발달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타인을 신뢰하며, 감정을 잘 조절하고, 지능을 활용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추방당한 채 살아가게 된다.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의 새로운 안정 애착의 형성은 치료의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다.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다. 저자는 심리치료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사회적 지휘 도식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어떤 자질을 갖추고 싶다면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저자는 용기를 북돋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특별히 분노와 격분의 감정을 이용하는 에너지 활용법을 이야기한다.


심리치료의 핵심은 신경가소성의 이용과 만성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신경을 재통합하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EMDR 기법과 안구운동은 저자의 사례가 담겨 있어 흥미로워 시도해볼만하다. 심리 치료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문제를 다루는 문제는 여러번 강조된다. 엄마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양육자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거나 도움을 청했는데 응답을 받지 못한 아이가 느끼는 고통은 이후 심리학적, 신경학적 무감각과 해리를 초래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신경망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뇌의 활성화를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에 대해 숙지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야기를 활용한 심리치료의 효과를 소개하면서 치료 과정을 통해 현재의 내러티브를 검토하고 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존재로 진화했을 때, 내담자는 삶을 편집하고 수정할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너를 내동댕이친 말에 다시 올라타라는 인용구가 인상적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와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책이 일정부분 그 역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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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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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무엇을 잃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영경과 수환은 부부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초라한 모습으로 만난 두 사람은 쪼개진 반쪽을 만난 사람처럼 한 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남녀 간의 만남에 있어서 상대의 외모나 능력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사랑은 그런 것에 깃들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는 지 모르겠다. 모든 겉치레를 걷어내고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객관적이고 이해 가능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남는 그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그 전에도 아마도 그런 사람이었겠지. 그러니까 타인의 횡포에 그렇게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간성이 훼손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 놀랍다. 알콜 중독자인 영경은 술 마시는 일만 아니면 참 괜찮게 살만한 사람이겠다 싶으면서도 그렇게 술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왜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방기했냐고 그들을 다그친들 나와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될까.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십대의 사랑과 권여선의 봄날에 나오는 중년의 사랑을 사랑의 불가해함과 인생의 비극적 허무함이라 요약한다면 이런 사랑, 무섭다.

모든 것을 걷어내고 그 한 사람만 본다는 거. 어떻게 볼 때 가장 잘 보는 걸까. 가장 제대로 본 걸까. 그 본다는 행위에 감정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하나. 걱정과 기대는 버리고 봐야 하나. 욕구와 미래는 제외해버려야 하나. 그럼 아무 이유와 목적 없이 그냥 본다는 행위만이 남는다. 보기 위해서 본다.

미움이 왜 생기는 걸까. 인생이 그렇게 시키는 걸까. 장밋빛 인생이 아니어서 실망해서 그걸 그 시간을 같이 했던 사람을 파괴해서라도 복수하고 싶은 파괴적인 욕구. 그건 인생이 시켜서 한 일. 그럼 그 안에서 인간은 무슨 일을 했나. 꼭두각시처럼. 인생이 시켰다는 말은 그 깊은 층위를 다 들여다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건 고통의 문턱만 밟고 그 위에 주저앉아 기왓장으로 피부의 종양을 긁어내는 일과 같다. 욥처럼. 상대를 추악하고 못난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면 나도 추악하고 못난 사람일텐데. 그건 감정이 시킨 일이니 감정은 이성을 이기고 한동안 주인 노릇을 하겠다. 무력하게 그 일을 지켜보면서 남의 인생 보듯 적당히 괴로워하면서 분열적으로 살았으니 그 대가는 본인이 다 받을 일이다. 인생에 거저는 없다! 속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서도 속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많은가. 모든 일이 떨어져서 보거나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좋은 길로 접어들 수 있는데 왜 그 당시 그 사람이 되면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는가. 그걸 집착이라고 말하는가. 인생에 대해서 몰랐었다고 해두자. 그러니 인생이 펼쳐놓은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살았던 게지. 그렇다고 지금 제대로 잘 살고 있는가. 조그만 일에 화내고 미워하고 말을 하는 일상, 상처받고 분열되고 불안정한 내면. 이제는 자신 있다 말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적어도 모른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아는 것과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다. 식은 죽은 먹기는 쉬워도 먹고 싶지는 않다. 며칠을 굶었더라면 그것도 맛있겠지만 다 먹고 나면 심드렁하게 바라보겠지. 내가 현재 어떠한 상태인가가 중요하다. 나의 결핍과 어리석음과 외로움을 매번 확인하고 되뇌인다면 나의 정신적인 결핍을 기억하겠지. 거들먹거리지도 다 알겠다는 포즈도 취하지 말고.

다시 봄밤으로 와보자. 이 소설의 제목이 봄밤인 것은 인생의 한 때, 스치듯 지나가는 어떤 날의 사건을 그렸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게 인생의 봄 같은 거라는 의미도 있겠다. 아무리 병들고 알콜중독에 빠져있더라도 인생은 흐르고 아름다울 수 있다. 다만 밤이라는 거.

 

<이모>

한 사람의 인생을 3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설명하는 방법이 좋았다화자가 시어머니, 남편의 입장을 전달하고 이모의 구술을 전달한다. 중요한 사건이나 감정은 이모가 직접 이야기하고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화자의 렌즈를 통해 진술하는 기법.

이모는 무조건적인 이해와 헌신을 강요하는 어머니와 도박에 빠진 남동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 그리고 오십 세에 그러한 인생의 구도를 변경시킨다. 그 이후의 인생에서 그녀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남은 돈을 다 탕진하고 살다가 죽으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어느 날의 사건이 그녀를 살도록 변화시킨다. 그게 뭘까.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생각이 없는 이웃 부부와 아파트 기사, 노숙자, 도서관 사서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두 손을 내밀며 사랑을 호소한 남학생. 이모는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두 손을 맞잡아 주기를 바라며 벌렸던 손바닥을 담뱃불로 눌러 끈다. 관심 없는 남자가 사랑을 표현하니 죽을 맛이다. 귀찮고 성가셨다는 표현. 이런 정서는 자신의 내부가 망가져 있음을 알려준다. 인생을 망가뜨린 것은 어머니, 남동생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아니 그 원인 제공이 타인에게 있다 하더라도 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그 자신이라는 것. 그래서 이모는 하루하루를 자신이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집중해서 살아간다. 하루 세끼를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네 개비의 담배를 피고 일주일에 하루 저녁은 소주 한 병을 마시는 것. 단순하지만 집중된 인생. 신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랄까를 그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는 바로 자신이니까. 그런 삶도 이 년밖에는 유지하지 못한다. 자신 내부 안에 있는 징글징글한 감정, 타인에 대한 혐오감과 인생이 귀찮아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떻게 그녀의 인생을 변화시켰을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최근에 읽은 한국 단편 소설 중에 단연 1위 소설이다. 권여선의 인간 이해와 인생의 깊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게 하는 불가해한 힘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사람은 어째서 그것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는가. 그 힘을 어떻게 극대화 해서 살아볼 것인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처음 읽을 때 봄밤의 도입부는 산만하게 보였다. 영경의 두 언니들의 대화가 왜 도입에 배치되어야 하나 의아했다. 그러나 두번째 읽었을 때 이 대화는 인생을 바라보는 묘한 층위를 구성한다는 점을 느꼈다. 이제 영경의 내부는 꺼졌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만으로 구성된다. 그렇게 소멸되어가는 인생, 징글징글했던 사랑이

끝나고 그 기억마져 사라질 인생의 종말을 미리 당겨와 경험한 것 같은 도저함은 인생의 허무함 때문이다. 허무함에 대해선 '아픔에 대하여'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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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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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에 나가지 못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책을 쌓아놓고 이것저것 읽으면서도 기록하거나 일기를 쓰지 못했다.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과수원 나무들이 햇살에 뿌옇게 빛나는 걸 보면서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오후엔 산책을 할까 생각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쉽게 나가지 못하는 이상한 증상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사람을 만나면 쓸데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끝도 없이 쏟아냈다. 요즘 들어 나는 중독적 성향이 강하고 자기 조절 능력이 취약하다. 뭔가 시작하면 집중을 하는 게 아니라 그 행위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을 만나면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다-계속해서 지껄이고 있다. 너무 비판적인 이야기나 감정적인 이야기를 필터 없이 다 쏟아내면서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 아니다, 라며 합리화를 하는데 집에 와서 볼일을 보다가 문뜩 내가 뭔가에 쫒기 듯 살고 있구나 싶다. 사십이 넘어서면서부터 이제껏 내가 추구해왔던 건 지식과 삶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나와 내 주변에 대해 바로 알자, 라는 생각이 십년이 지나자 너무 한쪽으로만 편향된 균형을 잃었다는 위기감이 든다.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그간 나를 붙잡아 줄 의미의 중력 같은 게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고 해부하고 비판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그런 행위가 어떤 선을 넘어 의미를 해체하고 현실성을 잃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제목에 몹시 끌린 책이다. 또 책이냐고? 그렇지만 어쩌겠냐? 삶에서 못 배우는 아둔함을 책을 읽으면서 어떡하든 깨어 버려야겠으니. 반세기 가량의 나이차가 나는 노교수와 작가의 서른 두 통의 편지글을 접하면서 나는 사소한 것 같지만 깊이 있는 철학적 종교적 지혜를 기대했다. 그건 책의 제목과 표지 때문에도 그랬다. 그런데 책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적이었다. 젊은 작가인 현진은 불우했던 과거의 상처와 비관적인 현실의 무력함 때문에 상처 입은 영혼처럼 보였다. 현진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위축되고 불행했다. 아마도 그녀는 붙잡을 끈이 필요했으리라. 그것이 책이나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고 교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인 것을 이해한다. 풍요롭고 좋은 것에서 빈곤하고 악한 것이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멘토와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요새 느끼는 거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더 그렇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에서 운동권이었고 기독교 신자이면서 집값 폭락의 희생자이며 인문학에 열광하지만 쇼핑을 좋아하는 다중적인 인간이다. 가장 사회의 영향을 격하게 받은 자가 아닌가. 너무 많은 것들로 인해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복잡다단한 생각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반성은 잠시이고 현실에서는 그 사이클에 푹 빠져 있는 게으름이라니. 책 내용 중에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어떤 문제이건 그것이 발생한 차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언젠가 고미숙의 <호모 에로스>에서 읽었던 ‘변화하고 싶으면 삶의 차서와 배치를 바꾸라’는 말이 생각난다. 문제를 느끼기는 하지만 삶의 차서와 배치를 바꿀 열정이 부족하니 번뇌가 생긴다. 열정이 부족하다는 건 아무래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나의 게으름도 큰 몫 한다. 이제는 아주 많이 가벼워져야 한다. 고질적인 꼰대의 모습, 수다스러운 중년 아줌마, 탐욕스러운 자기만족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나의 심혼은 말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크고 작은 상처, 그 상처의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겠지요.” “저는 우선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거나 반대로 장한 일로 추어올려 앞세우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 자기 탐닉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천한 일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노교수는 내가 지나쳐버린 작은 실수가 삶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성찰을 준다. 아프니까 괜찮다는 생각은 분명 합리화다. 노교수의 정신세계는 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담백하고 섬세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다. 잘 기억하고 잘 보존한다.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에너지를 훼손하지 않고 미래를 열어놓고 바라본다. 감상적인 긍정이나 비난을 삼가면서도 인생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잘 갈무리해서 삶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그간 책으로 읽었던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하면 내면화하여 나를 성장할 토양으로 만들 것인가. 가장 굵직한 주제는 기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자긍심과 타인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이 기반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글 서두에 “글로 쓰인 것들은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감한다.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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