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궁금하다.
다산多産이 애국'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족 계획'을 하지 않고 애'만 낳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윽박지르던 때가 엇그제인데 말이다. 출생률 저하와 가파른 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노동인구가 부족한 탓'이다. 순혈과 혈연주의가 강한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그닥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한국 노동자만큼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이도 드물다. 더군다나 자본가(정치가)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형식으로 얼마든지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노동자가 노동자를 지지하는 계급투표 성향이 낮으니(오히려 노동자가 노동자 파업을 비난한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 노동자가 감소한다는 사실은 악몽 그 자체'다. " 입병 함익병 선생 " 은 월간 조선 인터뷰에서 한국 여성'을 결핍의 존재로 설정한 후,
그 대안으로 출산 능력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달라는 주문을 했다. 당연히 항의가 8월 우기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대부분은 <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 라는 비난이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 사위'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 자기야 - 백년손님 ] 에서 함익병은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성관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장모를 여성으로써 존중한다기보다는 단순히 계도할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가 보기에는 여성은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가전제품'이었다. 그에게 의견 조율은 없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의견 조율을 통해서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결정을 정하고 나서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반발이 있을 시에는 상금이라는 미끼로 유혹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상금을 주겠다는 식이다.
그는 장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극구 냉장고 속 음식을 털어내거나 장롱 속에 묵혀 있는 옷을 버린다. 그에게 여성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존재'다. 함익병이 보여주는 태도를 확장하면 제국이 식민 국가를 다룰 때와 매우 흡사하다. 제국은 스스로 결정하고 식민지에 통보한다. 반발은 당근으로 잠재운다. 제국은 당근 하나를 주고 많은 당근을 얻는다. 그가 티븨에서 보여준 태도를 감안하면 독재 옹호와 여성 폄하 발언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함익병은 적어도 뒤로 호박씨를 깐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함익병이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이다. 장모와 사위가 허물없이 지내는 것은 좋지만 사위가 장모 위에 군림해서 계도를 하는 모습에 대하여 평소 깔깔거리며 좋아했다면 당신은 함익병에게 뻗은 손가락'을 치워야 한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자본가/정치가'들은 인구 증가'가 중요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주장할까 ? 사실, 대한민국 인구는 과포화 상태'다. 오히려 인구를 줄여야 한다. 골목 상권을 보면 체감하게 된다. 면적 당 인구수가 많다 보니 과열 경쟁이 이루어진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만 통닭집이 열 군데'다. 한 군데만 살아남고 나머지 아홉 군데는 망하는 구조다. PC방, 편의점, 커피숍은 수명이 1년을 버티지 못한다. 망한 커피숍을 다른 사람이 다시 그 자리에 커피숍을 여는 형국이다. 내가 가는 닭집은 1년에 주인이 두 번 바뀌었다. 이 치열한 골목 상권에서 특정 가게'가 된다 싶으면 그 주위에 우후죽순처럼 동일 업종 가게가 생겨난다. 그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현상은 인구가 많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니라
노동인구가 급격하게 자영업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제도적 개선을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구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고 해도 노동 시장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지금의 비정규직 제도와 자유로운 구조 조정 환경은 오히려 자영업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인구 증가'가 대안이라고 ?! 웃기는 소리'다. 여자가 애를 낳으면 노동 문제가 해결될 거란 자본가의 주장은 뻔뻔하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노동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노동자는 곧 잠재적 소비자이니 그만큼 더 많이 팔 수 있으며, 보다 싼 가격에 노동을 살 수 있고, 더군다나 치열한 경쟁 구도는 노동자를 순한 노예로 만들기에 좋기 때문이다. 입만 뻥긋 거리면 가차없이 자른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인구가 증가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하나 없다. 그들은 자영업자가 아니니 말이다. 얼마 전 < 다큐 3일 > 이라는 방송에서 택배 노동자의 일상을 다룬 적이 있다. 노동 강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그들은 회사로부터 고정된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한 만큼 벌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면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택배 하나 당 주어진 시간은 1분 30초'다. 그래야 일을 끝마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무조건 뛰어야 했다. 생수통을 들고 무조건 뛰는 것이다. 택배 사업은 상상 그 이상으로 돈을 버는데 택배 기사에게 할당되는 택배 개당 품값은 날마다 떨어진다. 그래서 받는 돈이 300만 원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개월만에 30kg이 빠진 사람도 있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 그들을 뛰게 했을까 ?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헝거 게임처럼 보였다. 이 고된 노동에서도 밀려나면 그들은 남은 돈으로 망해서 떠난 닭집을 인수해서 다시 닭집을 차릴 것이다.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어서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분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한 가지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대기업 순이익은 항상 ○○ 조 단위를 기록한다. 노동자가 억, 소리를 내면 삼성은 조 단위로 돈을 쓸어모은다. 좋단다. 이런 불평등 사회에서 애를 많이 낳는 것은 애국이 아니라 무모한 짓이다. 애 많이 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60년대 문구는 고스란히 21세기를 관통한다. 대한민국 여성이여, 애를 많이 낳지 마라. 거지꼴을 못 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