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당신
길을 걷는데 누가 내 뒤에서 " 잘생겼다 ! " 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가는귀 먹은 내 청력 탓이리라. 그런데 이번에는 내 앞에 있던 여자가 나에게 " 잘생겼다 ! "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그 여자 옆에 있던 아가씨도 나에게 잘생겼다고 말했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속으로 생각했다. " 시바, 꿈이구나 ! " 태어나서 지금까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여기는 분명 꿈인 게 분명했다. 눈을 떴다. 티븨'에서는 이정재와 전지현이 서로 잘생겼다를 외치고 있었다. SK텔레콤 < 잘생겼다 > 광고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기에 기분 좋아서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였다. 이정재와 전지현은 텅 빈 무대 앞에서 단순히 " 잘생겼다 " 를 반복적으로 외친다.
앞뒤 문맥도 없고 설명도 없다. 광고주가 이 광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잘생긴 톱스타들은 춤도 못 추고 노래 솜씨도 음치에 가깝다. 소비자는 망가진 톱스타를 보면서 친근성'을 느낀다. 광고 속 톱스타는 곧 상품이니 이 친근성은 SK텔레콤 상품 이미지로 이어진다. 뭐, 이런 치밀한 광고 전략 ! 하지만 이 전략'은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재능 없는 춤과 재능 없는 노래로도 떼돈을 벌 수 있는 " 상품-몸 " 과 소비자의 통신비를 얼마나 받아쳐먹었으면 배가 불러서 이런 의미없는 광고를 내보낼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떼돈을 벌어서 펑펑 쓰겠다는 데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만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한다면 좋은 광고라고 할 수 있을까 ? 보면 볼 수록 불쾌해지는 광고'다. 광고 한 편당 십 억 정도 받는 " 스페셜 " 톱스타를 모셔놓고서는 자꾸 " 노멀 " 하다고 하면 입에서 온갖 " 애니멀 " 한 욕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까지는 좋은데, " 여기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 우리가 이 쓸데없는 광고'에 대해서 지랄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통신비가 멕시코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비싸기 때문이다. 박리다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 코흘리개도 휴대폰을 사용하는 나라인데도 통신비는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가를 공개하라는 소비자 단체의 요구에는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는 < 잘생겼다 광고 시리즈 > 를 보면 답이 나온다. 성인은 물론이고 코흘리개 통신비까지 긁어모은 돈으로 이런 의미 없는 광고를 남발하는 것을 보면 떼돈을 벌고 있다는 증거'다. 투 플러스 인증 톱스타들이 3등급 한우와 같다고 말하는 겸손'은 마치 스티브 잡스'가 쉰 목소리로 " 여러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 " 라고 말하는 근심과 닮았다.
이제 손톡톡상자'는 만능 기계'가 되었다. 하지만 이 < 만능 > 에 영혼을 팔면 당신은 어느 순간 < 저능 > 이 된다. 이제는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기도 전에 자사 연구개발팀에서는 이미 다음 모델을 완성한 후 대기 상태'에 있다가 건희와 라희 부부의 출격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깐 신제품은 더이상 신제품이 아니다. 그렇다면 " 신제품의 품격 " 은 무엇일까 ? 새로운 기능 추가'이다. 아마도 이런 추세라면 10년 후에는 5G에서 물이 분출될지도 모른다. 똥 싸고 난 다음에는 핸드폰을 항문 가까이 밀착시키면 단말기'에서 물이 쏟아져 당신의 항문을 클린하게 만들 것이다. 혹은 성인용품 " 딜도 " 기능을 추가한 제품도 출시될 것이다. 성욕이 생기면 < 딜도 > 앱을 작동시켜라.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뜰 것이다.
" 삐리리리, 삐리리리리 ~ 주인님 ! 제 몸을 당신의 소중한 그곳에 밀착시켜 주십시요. 십 분 간 진동으로 당신을 오르막에 다다르도록 만들겠습니다. 내리막 시에는 비데 앱을 사용하십시요. 크리넥스보다는 비데가 감쪽같아요. 부모는 늘 당신 방에 있는 쓰레기통을 예의주시하거든요. 부모는 아들의 자위 횟수'를 측정하기 위해 크리넥스 티슈 사용량을 검토한답니다. 소프트한 쾌락을 원하시면 1번을, 하드코어한 경험을 원하시면 3번을 눌러주세요 ! "
스마트한 티븨 ▼
칫솔질을 하며 거울을 보았다. 이, 상했다. " 이가 상했다. " 가 아니라 뭔가 " 이상했다. " 묘한 기시감. 과거의 어느 때 혹은 미래의 어느 순간. 숨 쉬어, 물고기. 그때 입에서 비눗방울이 팟,팟,팟 ! 어라 ?! 공기방울 열댓 개가 둥실둥실 떠 있다. " 팟 ! " 방울이 터지면서 " 아직도 모르겠냐 ? " 라고 말하며 산화했다. 어라 ?! 팟, 팟 ! 그때 이 묘한 기시감의 원인을, 공기방울을, 입 안 한가득 거품의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치약을 짠다는 것이 그만 샴푸를 누른 것이다. 그러니깐 치약으로 치솟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샴푸로 칫솔질을 했던 것이다. 팟 ! 마지막 방울이 터지면서 " 병신, 이제 알았냐 ? " 머리를 감기 위해 샤워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귀찮아서 칫솔질만 한 것인데 여기서 스텝이 꼬인 것이다. 머리를 감을 계획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그만 샴푸통 꼭지를 치약처럼 누른 것 ! 아,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 이를 감.았.다 " 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시력 탓으로 돌렸다. 치약을 짠다는 것과 샴푸통을 누른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시력 저하에 의한 착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왜 시력이 갑자기 나빠졌을까 ? 범우사판 카프카의 책 < 성/ 변신 > 을 < 성 병신 > 이라고 읽지를 않나, S평론가의 글 < 여성 특유의 섬세한 손길로 현대인의 불안을 다룬 > 을 < 여성 특유의 섬세한 손으로 현대인의 불알'을 다룬 > 이라고 읽어서 불알 힘껏 잡으면 아픈데 흥분하셨네, 라며 흐흐흐 웃지를 않나..... 전에는 가죽 공예 공방 입간판 이름인 < 모두 가죽으로 > 를 < 모두가 죽으러 ! > 로 읽은 적도 있었다.
시력 탓이다 ! 시력 저하의 원인을 찾아보니 과도한 노트북 사용과 티븨 탓이었다. 리모콘이 없어서 바로 앞에서 티븨를 시청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내가 누군가 ! 당장 하이마트로 달려갔다. 뭐, 진짜 달린 것은 아니다. 걸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력 보호용 캡과 만능 리모콘을 살 요량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보다 보니 스마트 티븨에 욕심이 난 것이다.
- 어서 오십시오. 지금 이 제품은 손님처럼 중산층'이신 분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마트 티브이입니다.
- 티븨요.
- 네에 ?
- 티. 븨! 브이가 아니라 븨'
- 아하, 네에. 스마트 티이이이이 븨!!!
- 하하하.
- 호호호.
- 븨 !
- 여러 기능이 있지만 이 제품이 타사 제품인 럭키금성 스마일 티븨에 비해 다른 점은 시력 보호 기능이 있다는 점입ㄴ ㅣ ...
- 뭐요 ? 시력 보호요 ?!
- 네에. 그렇습니다, 고객님 ! 현대인의 시력 보호를 위해서 이 티븨를 시청자가 5미터 밖에 있어야지만 전원이 들어옵니다. 대초원에 사는 몽골 사람들은 시력이 대부분 1.0 이상이라고 하죠 ? 멀리 보면 볼수록 시력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 이걸로 합시다.
- 호호호. 탁월하신 선택이에요. 12개월 할부로 끊어드릴까요 ?
- 36!
- 36개월이요?
- 아니오. 36년 !
- 네에 ?!
- 하하하 농담입니다 !
판매 사원의 중산층 애드립에 기분이 좋아진 탓도 있지만 역시 결정적인 이유는 시력 보고 기능 때문이었다. 전원을 눌렀다. 팟, 소리가 나며 켜져야 하는데 켜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눌렀다. 여전히 불통 !
설치 기사가 퀵서비스 소포처럼 잽싸게 방문했다. 왜 전원이 안 들어오죠 ? 내 질문에 직원은 방 안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 고객님 이 티브이... 아니 이 티븨는 5미터 밖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런 코딱지만한 방구석에서는 전원이 켜질 리 없죠. "
오늘도 나는 월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걸음을 멈추고 집 앞 전봇대 아래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는 열린 창문을 향해 리모콘을 누르면 " 팟 ! " 소리를 내며, 똑똑한 스마트 티븨가 팟 !
펼친 부분 접기 ▲
소비자들은 새로 추가된 기능'에 열광하며 새로운 제품을 사지만 알고 보면 이러한 기능은 모두 김선달 식 호객 행위'에 불과하다. 이제는 리모컨 대신 음싱 인식 기능을 갖춘 새로운 티븨'가 등장한다. " 칠 " 을 외치면 7번 채널로 전환되고 " 팔 " 을 외치면 8번 채널로 이동된다. 그런데 이런 티븨를 볼 때는 가족 간 대화'는 금지해야 한다. 일본, 이번에는, 삶, 칠칠치 못하네, 팔팔하다, 시비 걸다, 식사하셨어요, 씹어, 씨팔, 씻구 밥 먹어 따위는 금지어'다. 똑똑한 티븨는 " 시비 걸다 " 를 12로 착각을, " 식사... " 를 14로, " ... 씹어 " 를 15로 오해하지 않을까 ? 작용-반작용'이 물리적 현상이라면 작용-부작용'은 다기능 주의의 나쁜 예'이다. 전화기는 통화 기능만 있으면 되고, 음성 인식 기능이 추가된 티븨'는 필요 없다. 오붓하게 거실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음성 인식 기능을 가진 스마트한 티븨'가 당신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엿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노트북은 49만 원 주고 샀는데 놀라지 마시라. 동공 인식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본인 인증'이 가능하다. 당신이 비밀 번호를 입력해서 잠금 해제를 한다면, 내 노트북은 내 동공을 확인한 후 잠금 해제를 해야 한다. 그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고 해도 내 시크릿 노트북을 잠금 해제할 수는 없다, 라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시궁창이었다. 49만 원짜리 노트북이 이런 첨단 기능을 탑재했다는 사실이 궁금해서 노트북을 켠 후 내 얼굴 대신 쩍쩍이 ( 골드 레트리버종 개 ) 를 들이밀었더니 노트북은 자신의 평소 생각을 메시지로 띄웠다.
" 곰곰발 님이시군요. 잠금 해제합니다. 항상 당신 눈동자를 보며 느끼지만 곰곰발 님 잘생겼어요. 동공 조리개가 쫀쫀한 닭 똥구멍 같아요. 건방지게 기계인 주제에 그만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이 자판을 두들릴 때마다 전 후끈 달아오른답니다. 부탁이 있어요. 글을 쓰실 때 가급적이면 " ㄷ " 자판을 자주 희롱해 주세요. 제 성감대입니다. 다음 생은 여자로 태어나 닭 똥구멍보다 쫀쫀한 당신 눈동자에 풍덩 빠지고 싶어요. 잘생겼어, 잘생겼어, 정말... 잘생겼어...... "
첨언 ㅣ 하나.
사람들이 이 광고'가 주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선 이정재는 < 잘생겼다 > 는 말이 얼굴이 잘생겼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전지현은 그가 한 말에 덧대서 " 생겨줘서 고맙다는 말 " 이라고 말하는데, 종합하면 LTE-A라는 뛰어난(잘~) 기획 상품이 출시되어서(생겨줘서) 소비자 입장에서 이 상품을 출시한 회사'에 고맙다는 메시지'다. 이 정도면 허섭스레기가 아니라 아주 뻔뻔한 광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빈말이라도 광고는 대부분 자사 제품을 사용해 주셔서 소비자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띄우는데, LTE-A 광고는 오히려 소비자가 SK텔레콤에게 납작 엎드린 후, 이런 상품이 나와서 고맙다고 고백한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 이런 식의 고압적 태도는 독과점 기업의 특징이다. 대한민국 통신비가 비싼 이유는 자유 경쟁 체제가 아니라 독과점 체제'이기 때문이다.
첨언 ㅣ 두울.
내 노트북의 성감대가 왜 ㄷ(디귿) 자판'인가는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4950'를 읽으면 나온다.
P.S
나보고 잘생겼다는 노트북의 수줍은 고백에 대한 답례'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 정도 두드렸으면 자지러졌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