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르덴셜생명 10억 광고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 실수로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다. 이때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타나서 나무꾼에게 묻는다. 금도끼가 네 것이냐, 은도끼가 네 것이냐,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쇠도끼가 네 것이냐 ? 착한 나무꾼은 세 번째 도끼가 자기 것이라고 말한다. 그 후의 내용은 다들 아실 터 ! 셰익스피어 연극 < 베니스의 상인 > 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구혼자들은 세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는 금 상자이고, 둘째는 은 상자이며, 셋째는 납 상자’이다. 물론 세 번째 상자를 선택한 사람이 청혼에 성공한다. 세 번째 금속을 선택해야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정직과 겸손 그리고 탐욕이 없는 마음 씀씀이를 시험하기 위해서이다. 만약에 당신 앞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백지수표에 액수를 적으라고 한다면, 당신은 얼마를 적겠는가 ?
당신은 금도끼와 은도끼 이야기에서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익히 알고 있다. 곰곰 생각할 것이다. 아파트 한 채 값은 있어야 집 없는 설움을 벗어날 수 있을 테고, 번듯한 가게도 하나 있어야 자유로운 자영업자의 꿈을 이룰 수 있으니 가게 하나 장만할 돈도 있어야 하고, 그리고.... 아니지,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 ! 당신은 조심스럽게 백지 수표에 10억 정도 기재할 것이다. 10억은 집 한 채와 가게 하나를 장만하고도 1,2억 정도 통장에 저축할 수 있는 여윳돈'이다. 로또 평균 당첨금이 세금 공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이 12억 정도라고 하니, 10억은 가난한 서민이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 한탕 " 인 셈이다. 어느 날, 당신 앞에 산신령 대신 회사 임원이 찾아와서 10억을 내놓는다.
" 어르신, 이 돈이면 번듯한 아파트 한 채 사시고, 시내에 자그마한 가게 하나 여십시요. 그리고 남은 돈은 통장에 넣어서 이자 받고 사시면 넉넉한 노후 생활을 하실 겁니다. 허허허... "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이 돈을 받으려면 죽은 딸과 했던 약속을 어겨야 한다. 억울하게 죽은 딸의 목숨값으로 넉넉한 노후를 살 것인가, 아니면 딸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인가 ? 아버지는 쇠도끼를 선택한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은 황유미 노동자와 택시 운전수 황상기 씨의 이야기다. 김수박 만화 < 사람 냄새 > 는 바로 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르포 만화'다. 끊어진 단선들로 이루어진 황상기 씨의 얼굴 스케치는 정직한 노동으로 이루어진, 힘 있는 결기를 느끼게 해준다. 김수박 작가가 그린 그림체는 투박하지만, 울퉁불퉁한 선화가 주는 느낌은 정직하고 따스하다.
얼핏 < 간판스타 > 를 그린 이희재와 < 페르세폴리스 > 의 마르얀 샤트라피'를 떠올리게 만든다. 탁월하다. 그리고 컷 사이사이에 끼어든 황유미 씨의 실제 글씨체'는 김수박의 탁월한 그림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나는 이 만화 속 황유미 씨가 남긴 글씨체'가 그녀가 남긴 흉터처럼 보여서 내내 생강처럼 아렸다. 흉터는 신기한 힘이 있다.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ㅣ 코맥 매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中 ) . 그녀가 남긴 글씨체가 만화 컷 속에 삽입되는 순간 이 만화가 단순히 신파에 빠진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르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렇다, 그녀가 꾹꾹 눌러쓴 글씨체는 그림체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은 자가 남긴 모든 글씨체는 흉터이며 동시에 상처다. 딸은 아빠가 운전하는 택시 뒷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 덥다 " 라는 말과 " 춥다 " 라는 말이었다. 3월 지나 4월이 오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꽃 피는 봄이 오는데 딸은 컴컴한 둔내 터널 지나 싸리재 고개에서 숨을 거둔다. 아버지는 죽은 딸을 꽃가마 대신 택시에 태워 손수 운전을 하며 상여를 메고 달린다. 그 흔한 상엿소리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 장면보다 더 슬픈 장면은 아빠와 함께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찍었다던 사진이 인쇄된 페이지(44-45)에서 울컥하게 만든다. 종이에 인쇄된 12컷의 흑백 사진은 모두 봄날이었다. 꽃들이었다. 진달레꽃, 국화꽃, 철쭉, 아네모네, 벛꽃. 영화 < 또 하나의 가족 > 에서는 " 멍게 "의 비유를 통해서 주제를 요약한다면, 만화 < 사람 냄새 > 는 " 향내 " 를 통해서 주제를 요약한다.
" 꽃이 있잖아요.이게 피어나면 보기는 이쁜데 향이 없어요. 향이..... 이 꽃이 질 때쯤 되면 최고의 향이 나거든. 사람도 똑같애. 애들 때는, 한창 클 때는 인가미가없거든.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댈 행동할 때는 인간미가 좀 없지.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늙을수록 사람 냄새가 나는 거야. 그 나이 때가 되면 향이 아주 한창 날 때 아니겠어 ? 인간으로서 향이 아주 한창 나는 나이라고. 근데 (삼성은) 사람 냄새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 113 ) "
아버지에게는 딸이 찍은 이 사진 또한 흉터로 남아 있을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진 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영화 < 또 하나의 약속 > 을 보거나 < 사람 냄새 > 를 읽고 나서 분하고 슬퍼서 늦은 저녁에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그리고는 이마트'에 가서 주전부리와 술을 사 가지고 와서 삼성을 신랄하게 욕할 것이다. 하지만 바뀌는 게 무엇일까 ? 이마트'보다 비싸고 더럽고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이웃의 구멍가게를 외면하고 이마트 가서 장을 보는 당신은 정말 떳떳하게 삼성을 욕할 수 있을까 ? 황유미 씨의 사진을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술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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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aladin.co.kr/719469195/6891433 ㅣ 수다맨 님이 < 또 하나의 약속 > 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 내 판단에 의하면 이 분의 분석력은 신형철 평론가를 압도한다. 그가 이 영화에 대한 단상을 적으면서 " 한상구는 사투리라는 구부러진 언어로, 경직된 표준어가 오갔던 법정이라는 공간을 겨눈다. 감정에 북받친 조리 없는 언어가, 차가운 논리로 무장된
텅 빈 언어들을 질타하는 모습에서 나는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민'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 라고 했을 때는 살짝 놀랐다. 문득 생각난 것인데 서울 말씨를 표준어라고 하고 지방 방언을 사투리'라고 구분하는 것은 차별적이다. 마치 문학을 순문학과 장르문학 따위로 구분짓는 문단의 꼴사나운 짓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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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무노조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당당하게 무노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말방귀 같은 자세를 취하는 기업은 삼성이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무노조 경영'이라는 낯 뜨거운 문장 뒤에 신화'라는 단어를 덧대는 천박한 기업 윤리도 세계 최강일 것이다. " 무노조 경영 신화 " 라니, 맙소사 ! 여기에 더해서 무노조 삼성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해야 하는 노동자가 되레 무노조 삼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민족성 또한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이 삼 박자가 만나서 삼성을 괴물로 키운다. 삼성이 망하나 나라가 망할까 ? 도요타가 망했다고 일본이 침몰했던가 ? 파산이라는 이름의 돌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해 이빨 하나 흔들렸다고 해서 고기를 씹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빨 하나 빠지면 고기를 씹지 못할 것라며 징징거린다.
삼성은 수많은 이빨 가운데 하나'다. 좋은 점수를 줘봤자 어금니'다. 어금니 없어도 고기 씹을 수 있다. 하지만 잇몸이 망가지면 고기를 씹을 수 없다. 그 잇몸을 지탱하는 주체는 노동자다. 삼성 하나 망해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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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포데기 신파극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준 < 수상한 그녀 > 를 보며 펑펑 운다. 관객들은 칠순 노모가 스무살 꽃띠 처녀로 바뀐다는 서사가 판타지(가짜) 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겨울 내내 얼었던 수도가 봄볕에 펑 터져서 녹물을 쏟아내듯 눈물을 쏟는다. 그것은 판타지(가짜)를 뇌하수체가 리얼(진짜)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짜가 가짜인지 뻔히 알면서도 판타지를 리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가짜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의 감정을 가짜에게 소비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리얼리티(진짜) 앞에서 눈물을 쏟으면 창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짜를 싫어하고 진짜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말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간은 진짜를 싫어하고 가짜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면 당신은 불같이 화를 내지만
누군가가 당신에게 달콤한 거짓말로 당신 비위를 맞추면 당신은 그 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웃는다. 진실은 사실 아름답다기보다는 쑥스럽고 불편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며 집을 나와 극장을 찾은 당신은 영화 속 가짜 엄마 앞에서 펑펑 울며 불효자는 웁니다를 연출한다. 그리고는 집에 오자마자 다시 온갖 짜증을 부린다. "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 ! 짜증나 죽겠어, 증말.... " 모성은 가짜와 접속하고 진짜와는 절연하게 된다. 사람들은 < 또 하나의 약속 > 에 나오는 리얼리티가 불편하다. 리얼리티 앞에서는 쪽팔리고 불편하고 불편하고 불편해서 외면하게 된다. 이처럼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모순적 관계는 곰인형과 곰의 관계와 비슷하다. 당신은 잠자리에 들 때 항상 귀여운 곰인형을 끼고 자지만 실제로 숲에서 곰을 만나면 자지러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성은 곰인형이다. 일류 배우가 나와서 삼성을 광고하고 김연아와 박태환이 삼성의 이름으로 달콤하게 속삭인다. 당신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귀여운 곰인형에 불과하다. 삼성의 날것을 보는 순간 당신을 자지러진다. 진짜'란 늘 그런 것이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