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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수평의 힘.
내 독서 취향을 고백하자면 다치바나 다카시 인간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실용적 정보'를 얻는 용도로 사용했다. 주로 자연과학서나 사회과학서 그리고 인문학과 르포 위주였다. 그러다 보니 소설이나 시'는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편식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소설은 주로 장르 소설을 읽었다. 사실 세계 문학 전집 따위는 중고교 때 이미 다 읽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통이었다. 이렇게 따분한 것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문학에 대한 열정은 지나가는 민들레에게 줬다. 문학 중에서도 더욱 골치 아픈 것은 < 시 > 였다. 정보력 위주로 독서를 하다 보니 시는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지고 내뱉는 헛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시에 대한 호기심은 지나가는 둥굴레'에게 줬다. 세월이 흘렀다.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때는 몰랐으나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외투를 입기에는 덥지만 그렇다고 스웨터만 입기에는 추운 11월 늦가을이었다. 첫눈이 내렸다. 내가 일했던 가게 창문으로 첫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 풍경 속으로 들어온 그녀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낡은 스웨터 때문이었을까 ? 나는 그 여자의 낡은 어깨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첫눈 오는 날,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내가 처음 그녀의 손을 잡았던 날을 기억한다. 남산 아래 후암동 길을 걷다고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남산을 오른다고 했다. 당시 그녀는 임용 고시'를 위해서 내가 사는 동네의 고시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그녀 주위를 맴돌았고, 알음알음 알게 되어 가끔 술을 마시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내가 호기롭게 길 안내를 하겠다고 나섰다.
남산을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안내한 지름길은 사실 가장 먼 길이었다. 그녀와 걷는 산책이 좋아서 지름길은커녕 가장 먼 길을 택해서 가이드 역할을 한 것이다. 20분이면 오를 거리를 40분 넘게 걸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랑에 빠진 자에게 있어서 < 지름길 > 과 같은말은 < 빠른 길 > 이 아니라 < 에둘러 걷는 길 >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전적 의미는 뒤죽박죽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것은 시의 언어'였다.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에둘러 걷기 시작할 때, 이 남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가 안내한 지름길이 가장 먼 길'이었다는 그 사실도 ! 왜냐하면 그녀는 평소에도 남산을 자주 올랐기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 또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암묵적 동의, 그 지지. 평소에 말이 없던 그녀는 앙다문 입술처럼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뚜껑을 열면 용수철 삐에로가 튀어나오는 장난감처럼 내 심장이 뛰었고,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사랑을 하고부터 나는 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문학은 사랑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 사랑도 끝이 보였다.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견디기 힘들어서 파란 실정맥을 풀었다. 붉게 물들었다. 주저흔만 남긴 채 여자는 떠나갔다. 그녀와 이별한 후, 나는 다시 시를 읽기 시작했다. 모 시인은 내게 시를 쓰라고 권했다.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공모전이 있을 때마다 알려주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 오래 보십시오. 감상하지 말고 관찰하십시오. 감상은 기행문에 필요한 감성이지 시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잠자리의 겹눈이 되어서 세밀히 관찰하십시오. "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시를 쓸 자격이 없었다. 천박한 놈은 시를 쓰면 안 된다. 그래서 시를 접었다. 시인이 국어사전에 나열된 단어로 시를 쓰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시인은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뒤죽박죽 국어사전'으로 시를 써야 한다. 문태준 시집 『 가재미 』 는 오래 보고 깊게 본 결과이다. 그가 이 시집에서 획득한 깊은 서정은 감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깊고 오랜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종호 평론가의 지적처럼 시집 < 가재미 > 를 관통하는 것은 " 수평의 힘 " 이다. 시 < 수련 > 에서 시인은 "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 " 이라고 고백한다. 문장 부호에 인색한 사람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 힘주어 " 평면의 힘 " 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평면'에 대한 믿음은 < 수평 > 이라는 제목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 내 생각이 좌우로 두리번거려 흔들리는 동안에도 / 잠자리는 여전히 고요한 수평이다 / 한 마리 잠자리가 만들어놓은 이 수평 앞에 / 내가 세워놓았던 수많은 좌우의 병풍들이 쓰러진다 / 하늘은 이렇게 무서운 수평을 길러내신다 " 시인은 좌우로 기울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여전히 고요한 수평을 통해 모성을 본다. 잠자리가 수평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 그맘때에는 > 이라는 시는 "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 로 시작한다. 그곳은 수평이 사라진 공간이다. 그리고는 이내 "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는 그들은 " 으로 시는 끝난다. 수평이 고요하다면 수평이 사라진 공간은 부산스럽고 시끄럽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가재미, 전문
이러한 생각은 < 가재미 > 라는 시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시인은 병실에 누운 그녀를 통해 "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 " 를 본다. 그리고 중심을 잃어서 "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 " 를 통해 수평이 무너져서 한쪽으로 쏠린 죽음을 바라본다. 시인에게 있어서 " 바깥 " 은 균형을 잡지 못해서 중심에서 멀어진 적소(謫所)다. 그래서 " 다시 생각해도 / 나는 / 너무 먼 / 바깥까지 왔다 ( 바깥, 부분 ) " 고 쓸쓸하게 고백한다. " 죽음 바깥의 세상 (가재미, 부분) " 은 " 캄캄하게 쏠 " 린 세상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수평을 낳는 힘은 균형을 잃지 않은 중심이다. 그리고 그 수평을 잃을 때 소란과 죽음이 찾아온다. 그는 높고 낮음도 없는 수평을 통해서 겨우의 삶'을 본다. 그것은 불교적 세계'이다. 시집 < 가재미 > 는 소박한 절밥 같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수평의 근원은 어디일까 ? 바닥이다. 문태준 시인은 바닥에서 수평을 본다. 이 바닥은 낮고 극빈한 자가 머무는 처소'다. 다음은 시 < 바닥 > 전문이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 바닥, 전문
< 바닥 > 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가을 공중에서 바닥'을 본다. 그리고 소리를 듣는다. 이 소리는 바닥이 낙엽을 받아주어서 생기는 소리이다. 불현듯 " 그대가 나를 받아주 " 었던 밤들을 떠올리게 한다. 저 소리(들)을 사랑한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 나도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숨결소리, 가슴을 혓바닥으로 핥는 소리, 나의 긴 혓바닥이 당신 한숨의 근원인 심장을 핥는 소리. 땀방울이 이슬처럼 어깨 등골을 타고 또르르륵 내려와 엉덩이에 고인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시인은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것을 듣고 있다. 이처럼 바닥의 세계는 눈을 감고 귀를 열 때 비로소 들리는 세계이다. 나는 2000년 이후 가장 탁월한 서정 미학이라는 평론가의 말에 동의한다. 읽고, 읽고, 아쉬워서 다시 읽은 시집'이다.
문태준 시집 < 가재미 > 를 읽다가 문득 첫눈 내리던 그날을 떠올렸다. 어쩌면 내가 그날 본 것은 그녀의 어깨가 아니라 수평이었는지도 모른다. 극빈한 바닥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시장 상인의 딸로 태어난 여자. 성정 고와서 말이 없었던 여자. 그 여자 생각을 하면 나는 자꾸 균형을 잃고 기울어져서 후두둑 후두둑 우레 우는 바깥으로 내몰리고는 했다. 몸의 중심은 < 가운데 > 가 아니라 < 아픈 곳 > 이라는 명징한 사실을 알려준 여자.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으면 자주 그녀 생각을 한다. 여자는 수평이다.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을 가진 아름다운 존재.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