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을 거쳐 <1장- 여왕의 거울> 편까지 읽었다.
긴 서문에서도 좋은 글귀들이 많아 밑줄도 긋고, 또 어김없이 고무되었었다.(늘 여성주의 책을 딱 펼쳐 서문만 읽으면 조금 흥분하고, 가슴 두근거리며, 고무된다. 커피를 마셔서 그런 것인가? 의심도 든다만, 다른 책들 서문에선 그렇지 않은 적 더 많았다는 걸 상기해 볼 적엔, 카페인 영향이 아니었다고 치자.)
그런데 제때 기록을 하지 않으니, 서문의 내용도 가물가물.
그래서 1장을 읽자마자 일단, 여전히 두서없지만 기록해야겠다 싶어 또 쓴다.^^
1장에서 딱 눈에 띄는 ‘펜은 음경이다‘ 이 문장으로 처음엔 좀 웃었다. 왜냐하면 너무 비약적이고, 얼토당토 않은, 그래서 살짝 자격지심으로 비춰지는 문장으로 비유된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왜 굳이 그렇게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펜이 왜???
펜을 왜???
어이없어 하며 읽었는데,
읽다 보니 웃음기는 곧 사라지게 되고,
좁은 이마엔 가로 주름, 양미간엔 세로 주름골이 깊어졌다.
충분히 설득 될 수 있고, 일리있어 보이는 문장들이 차례 차례 기다리고 있었다.
펜은 음경이어 그 펜이 적어 나가는 글과 문장들이 모여 한 권의 창조물(시나 소설등)이 생산되면 그것은 곧 자식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예술가들이 본인의 머리에서 고통스럽게 짜내어 다듬어진 창조물과 예술품들을 모두 다 자신들이 잉태시킨 자식같다고들 공공연하게 지금도 쓰이고 있는 말들이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헌데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그 시절 남성 작가들이 피력했던 것은 펜은 음경이기에 남성들만이 자식을 잉태할 수 있는 영역(소설이든 작품을 쓸 수 있는 영역)이라고 규정짓고, 여성들은 아둔하여 글을 쓰면서 창조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속박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그 음경이란 펜은 여성은 쥘 수 없는 물건이었으며, 남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한 물건으로 간주한 것이다.
아둔하고 불결하고, 괴물같은 존재의 여성들은 그 흔한 펜을 쥐며 본인의 생각들을 드러내 쓴 글은 일부러 폄하시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 생산은 여성은 할 수 없고, 남성만이 자식 생산을 할 수 있다는 말인데....자궁이 없는 남성들의 젠체하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가 정석으로 통했던 그 시기를 상상하면 명치 끝이 답답해 오는데, 그 시절 똑똑한 여성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런 말 하는 것도 이젠 입이 아플 뿐이다.
작품의 통일성이나 완전성의 계보의 연결은 저자-작품, 처음-중간-끝 또는 텍스트-의미, 독자-해석 등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는데,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이 계승, 부권, 위계질서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교육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교육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사고를 하며, 그 사고가 확장되어 인격이 형성된다.
가부장적 부권으로 점철된 위계질서로 똘똘 뭉친 문학적 부권 은유를 통한 글들을 읽고, 세뇌된 사람들의 눈과 머리는 절로 여성은 ‘건방지고‘, ‘주제넘고‘, ‘구제불능이고‘, ‘결함‘으로 가득 찬 사람의 종 그러니까 절로 괴물적인 신화로 인식되어 버렸다.
그렇게 옷에 스며들 듯, 사람들의 뇌속으로, 무비판적으로 스며들어, 여성의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 버린, 그래서 무의식중으로 받아들이는 인격으로 갖춰진 것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갖춰지지 않은 ‘0 (제로)‘이 여성이란다.
신화 속 여성의 이미지와 백설공주 이야기도 좀 흥미로웠다.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고 읽어 온 이야기들이어 뭔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도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었는데 책에선 속 시원하게 비평하며 풀어주어 이해가 잘 간다.
릴리스(아담의 첫 부인) 신화 이야기에서는 아담과 동등하다고 판단한 릴리스는 복종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달아나버렸다. 신의 사자인 천사가 너의 악마 자식 100 명을 죽여버리겠노라~ 협박했으나, 릴리스는 징벌을 선택할지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걸 두고 릴리스의 저항은 가부장적 문화에서 있을 수 없는 행위, 아주 건방진 위험한 행위로 간주하여 자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무정한 여성으로 무시무시한 틀에 가두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여성 혁명가일 수 있었던 릴리스는 큰 죄악을 저지른 그저 자기 주장만 강했던 여성으로 남성의 펜으로 묘사되어 기록으로 남겨졌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릴리스, 이브가 있었다면 릴리스는 그 중 최초의 여성 혁명가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백설공주 편에서도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이 많아 신선했다.
백설공주는 젊은 여성이고, 새엄마는 나이 든 여성으로 등장시켜 두 여성을 대립시킨다. 거울 속 목소리는 왕 즉, 가부장 아버지(남성)인 것이다. 아버지는 순수하고 어리고 예쁜 백설공주를 이뻐한다. 이유는 순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엄마는 시기심 많고, 탐욕스럽고, 자기 불만으로 똘똘 뭉친 욕망 덩어리로 묘사하는데 실은 자기 주장이 강하여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여성이어 거울의 목소리로 새엄마를 계속 이간질하고 조종하여 둘을 대립시켜 새엄마를 파멸시켜 버린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깐 졸도한 백설공주는 유리관 속에 눕히게 되는데, 그 형상을 하나의 전시품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독이 든 사과를 뱉어내어 목숨을 건진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하녀 역할을 줄곧 했었던 상황을 벗어나 왕비가 되어 성으로 들어가게 되어 해피엔딩의 서사로 대미를 장식하지만, 백설공주는 자기 목소리가 없는 순종적인 여성이기에 가부장 성으로 끌려 들어가 결국 죽을 때까지...ㅜㅜ
아!! 그렇게 슬프게 끝나는 동화가 백설공주 이야기였던 것이다.ㅜㅜ
이렇게까지 가학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만들어 내고, 고통을 주려는 행위들을 보다 보면,
어쩌면 보부아르의 말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보아진다.
˝남자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육체적 우발성에 대한 남성 자신의 공포˝
꿰뚫어 본 보부아르의 통찰력에 공감될 수밖에 없다.
꽤 두꺼운 두께의 책이라, 무척 겁을 먹고 읽기 시작한 책이건만,
꽤나 재밌다.
갈 길은 멀지만, 천천히 하지만, 빨리 읽어야 한다.
![](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68/10/cover150/k512838403_3.jpg)
‘시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정의하는 모방 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 필립 시드니, 셰익스피어, 벤 존슨으로 이어진다. 이 정의가 의미하는 바는, 시인이란 작은 신처럼 또 다른 우주, 즉 (실재의 그림자를 실제로 붙잡아두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의 거울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하는 또는 통합하는 힘‘이라는 콜리지 - P76
의 낭만주의적 개념도 ‘무한한 나라는 존재의 영원한 창조 행위‘를 반향하는 남성의 생식력에 대한 것이다. 음경을 연상시키는 러스킨의 ‘관통하는 상상력‘은 ‘소유권 획득을 위한 기능‘이며 새로운 경험의 싹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올릴 요량으로 뿌리를 붙잡아 베어 취하려는 ‘관통하는 […] 마음의 혀‘다. - P77
마지막으로, ‘소유권‘이나 소유 개념이 부권 은유 안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이 복잡한 은유의 또 다른 의미를 밝혀준다. 저자/아버지가 작품과 독자의 관심을 소유한 자라면, 그는 (자기 머리에서 나온 자식들, 종이에 잉크로 구체화시키고 천과 가죽으로 ‘장정한‘) 작품의 백성이라고 할 인물, 장면, 사건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문인‘은 저자이기에, 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이자 주인 또는 지배자이며 소유자다. 서구 사회가 그 용어를이해하는 방식에 따르자면 그는 정신적 유형의 가부장이다. - P79
오스틴식의 새침 떠는 아이러니는 부족하지만 핀치가 보인 격렬한 저항은 홉킨스가 캐넌 딕슨에게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문학적 부권 은유의 핵심을 찌른다. ‘펜을 드는 여자‘는 건방지고 ‘주제넘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구제 불능인 존재다. 어떤 미덕도 그녀의 건방진 ‘결함‘을 메울 수없다. 그녀는 자연이 내리그은 경계선을 괴물처럼 횡단해버렸기 때문이다. - P80
‘문학이란 여성의 일이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는 (사회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불가능하기에) 여성이 문학에 관여할 수 있없음을 암시한다.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문학 권력과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사상가 오토 바이닝어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 문학 권력이 없기에 ‘존재론적 실재를 [남성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부권/창조성 은유가 나타내는 암시는 또 있다. 여성은 문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능의 대상으로서 남성의 행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바이닝어와 사우디의 편지에 공히 드러나는) 생각이다. 앤핀치의 또 다른 시 한 편은 숱한 문학이론들에 숨겨진 가정을 탐색한다. - P81
조앤 디디온이 말했듯이 ‘글쓰기란 공격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하나의 강제이며 [・・・]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탄력성은 문학에 몰입함으로써 촉진된다‘는 리오 베르사니의 주장에 견주어보면 디디온의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여성 문인들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략해온 남성의 구성물을 철저하게 연구하려면 수백 페이지가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뛰어난 책들이 이 연구에 바쳐졌다. - P99
릴리스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의 말과 여성의 ‘주제넘음‘ (남성 지배에 대한분노에 찬 저항)은 불가분하게 뒤엉켜 있으며 필연적으로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물론 심지어 성경의 반半신적인 공동체 연대기에서도 배제당한 릴리스는 여성이 자신을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보여준다. 실로 끔찍한 대가다. ‘달아났기 때문에, 그리고 명명하는 행위에 암시된 문학의 권위를 감히 강탈하려 했기 때문에, 릴리스는 복수(아이 살해)에 갇히고 이로써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고통으로) 더욱더 고통스러워지는 저주를 받았다. 게다가 이 혁명이 오로지 한 여성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무력함과 소외를 강조해준다. 왜냐하면 릴리스의 저항은 거부와 떠남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사탄처럼 적극적이라고 하기에는 고작 도망쳐 달아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 P123
우리는 오로라 리나 메리 엘리자베스 콜리지 같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텍스트의 감옥에서 여성의 펜으로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그 출발점에서 자신을 ‘천사-여자‘와 ‘괴물-여자‘ 로 번갈아가며 정의하는 모습을 목도할 것이다. 우리는 또 백설 공주나 사악한 여왕처럼, 이들의 초기 욕망이 양가적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유리관속에서 숨 막히게 - P136
끼는 코르셋으로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조이거나, 거울밖으로 나와 불같은 죽음의 춤을 추어 스스로를 파괴하라고 유혹받는다. 그러나 천사와 괴물이라는 한 쌍의 이미지가 제시하는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었어도,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불모성에 대한 공포로 고통을 받았어도,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산출했다.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된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는 유리 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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