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자료로 쓰기 위해 정리한 내용을 옮겨둔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서 '아버지'의 의미에 대한 교양강의인데, 내가 텍스트로 고른 건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이다. 오래전에 읽고서 정리한 적이 있지만 파일을 찾지 못해서 이번에 다시 정리했다. 아주 얇은 분량임에도 책은 네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후반부는 내용이 만만찮다.

내가 정리한 건 1장 ‘3중의 몰락’과 2장 ‘세 가지 차원’이다. 2장은 주로 라캉 정신분석학에서의 아버지를 다루는데, 세 가지 차원이란 간단히 말하면, 상징적 아버지, 상상적 아버지, 실재적 아버지이다. 실재적 아버지에 대한 설명은 읽기에 명쾌하지 않은데(사실 ‘실재적’이란 말의 정의 자체가 그렇지만) 그렇다고 대조해볼 수도 없어서 그냥 다른 책들을 참조해야겠다. 정리는 발췌/축약에 간단한 췌사들을 덧붙여놓은 형식이며 따로 코멘트를 달지는 않는다. 제목이 되어준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재의 아버지는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상상적일 때, 노아의 외투야말로 (더) 좋은 분석의 대상이다.”(89쪽)   

1. 아버지란 무엇인가?

(1)아이에 대한 권리

 

서양에서 ‘아버지임’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원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란 처음에는 정치적․종교적 아버지였으며,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는 파생된 개념이다(아버지, 그는 법이며 신이다). 아버지는 다름아닌 정치적․종교적 지배자이므로 그는 가정과 집을 대표하는 지배자, 즉 도미누스(dominus)이다. 그는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사람이다.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라는 법률적 지위, 즉 마트리모니움(matrimonium)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지배자는 자신을 특정한 어린아이의 아버지로 만든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아들을 낳는 것은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 것이다. ‘아버지임’을 정의하는 것은 혈연관계, 즉 피가 아니라 ‘나는 아버지이다’라고 공적으로 선언하고 아이를 자신에게로 받아들이는 정치적․종교적 지배자의 행위였다.  

 

‘아버지임’에 대한 이러한 순환적 정의로부터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 즉 자녀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고 벌하거나 가둘 수 있는 권리, 그리고 특히 보존해야 할 재산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아들 혹은 딸의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아버지의 권리가 도출된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커다란 전환이 일어난 후, ‘아버지임’의 이 정의는 2세기에 걸쳐 꾸준히 쇠퇴했다.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가 아니라 형제애에 근거한다. 프랑스에서 행해진 루이 16세의 처형은 이에 대한 사회적 증상이다. 즉 그것은 부친살해가 아니었겠는가?

그 변화는 다음의 두 결과를 낳았다. 첫째, 정치․종교․가족의 영역 모두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되던 아버지의 권위는 이제 오로지 19세기 부르주아의 이상에 따라 운영되는 가족에 대한 권리로 축소되었다. 이제 아버지의 권리는 한 여자를 데려와 그녀를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자의 권리일 뿐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영역은 축소되고 세분되었다. 그것은 공적-사회적 존재에서 사적-사회적 존재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창립자이며 지배자였던 아버지는 이제 특정한 여자의 남자로 위축되었다.

둘째, 절대왕정이 쇠퇴하면서 정치적 절대주의 및 ‘가정의 왕권’이 배척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가정 내부에서조차 아버지 권력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임’의 이러한 쇠퇴는 18세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국가가 점차적 교회를 대체하게 되는 시대 이전에 이미 교회의 영향하에서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어쨌든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만을 말하던 시기는 지나갔고, 교회를 통해서건 국가를 통해서건 아버지이 권력이 제한되고 아이의 권리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2)아이의 권리

 

‘아버지임’에 대한 두 번째 권리는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특히 19세기 이후부터 아이의 권리를 많이 고려하게 됨으로써 나타났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이 행복과 이익, 안락함을 위해 점점 더 많은, 그리고 세분화된 권리를 갖는다. 이로부터 ‘아버지임’의 새로운 정의, 즉 수행해야 할 역할과 이행해야 할 과제의 측면을 중시하는 ‘아버지임’의 정의가 생겨난다. 아버지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 즉 단지 삶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문화세계로 편입시킴으로써 어른들의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사람이 되었다.

이 이미지는 19세기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 핵가족 속에 뿌리를 내린다. 20세기 들어 사람들이 ‘새로운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 즉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며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어린아이의 언어로 대화하는 아버지와 더불어 이 이미지는 전성기에 도달한다. 그는 어린아이가 직접 말을 걸고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몰락하기 쉬운 아버지이다. 왜냐하면 이때의 아버지란 어린아이에게 이익과 행복, 안락함을 제공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아버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역할은 점점 약화되었는데, 다음 두 요인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시민사회가 어린아이의 복지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든다. 둘째, 민법적으로 어머니의 권리가 강화되었다. 국가가 점점 더 가정 속으로 개입하고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대체될 수 없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아버지의 사회적인 몰락은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3)아이에 대해 친권을 소유할 권리

아버지임을 생물학적 ‘진리’에 근거시키려 하는 것은 아버지임의 기초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아버지를 출산자로 정의하려 할 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오히려 아버지는 더욱 몰락하게 되었다.

2. 아버지의 세 차원


(1)이름으로서의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와 아이 사이에 제3의 자리를 설치한다. 어린아이에 대해 그녀는 글자가 새겨질 자리에, 즉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 불렀고, 라캉은 대타자, 혹은 상징적 질서라 일컬었던 구조에 제3의 자리를 설치한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어머니를 위한 아이의 욕망이 아니라, 어머니 자체에 대한 아이의 욕망이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아이는 어머니 자체를 욕망하는가? 아이의 욕망의 원인은 무엇인가? 아이에게 처음으로 생기는 질문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어머니는 끊임없이 왔다갔다한다. 왜? 대답은 어머니로부터 온다.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를 통해 어머니 속에, 대타자 속에 있는 결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체에게 해답이 주어진다.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가 어머니의 욕망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기표를 대체한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에 대해 의미, 즉 팔루스(phallus)의 의미가 생겨난다. 여기서 팔루스란 어머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육체적) 기관이 아니며, 남자의 이미지도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욕망 그 자체, 즉 결핍의 기표이다. 어린아이는 팔루스가 되고 싶어한다.


(2)이상형으로서의 아버지

이름으로서의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온다. 그렇다면 이상형으로서의 아버지는? 그는 어린아이로부터 온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가 지나고 초자아가 내면화되는 나이, 즉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될 때 어린아이는 실재의 아버지를 지워버린다. 아이는 대신 은밀히 아버지 상을 생각해내는데, 이것은 모든 면에서 보통이 넘는 모습이다. 아이가 이러한 아버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능력 있는 아버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욕망에 걸맞는 아버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를 충족시켜줄 능력이 없다. 그리하여 그의 나르시시즘이 깨진다.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려고 하지만 아이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달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소원을 충족시켜주는 이상형으로서의 아버지를 찾는다. 아이는 이 아버지를 사랑하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가 끝나면 아이는 자기를 그 아버지와 동일시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바 있듯이 아버지의 입법자적 음성, 양심의 음성을 몸속으로 받아들인다. 프로이트는 아버지가 남겨준 이 유산에 초자아라는 이름을 주었다(초자아는 오이디푸스의 유산이다).

 

(3)한 여자의 남자

 

프로이트는 법률 격언을 인용하여 어머니는 확실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불확실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임’의 진리는 다른 질서에 속한다. ‘아버지임’의 진리를 증명하려 할 때 생물학적 지식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에 대하여 실재의 아버지는 한 여자의 남자이다. 실재의 아버지는 어린아이에게 거세, 즉 ‘아니라고 말함’을 도입하는 아버지이다. 너는 네 어머니의 팔루스가 아니다, 너는 네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재적 아버지는 이러한 거세의 대행자이다. 그는 결코 복수심에 불타는 경쟁자로 아이를 거세하지는 않는다. 실재적 아버지가 거세의 대행자라는 말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어린아이를 위해 베일을 드리운다는 의미이다. 그는 어떤 특정한 여자를 자신의 욕망의 원인으로 만들고 어린아이를 위해 베일을 드리운다. 달리 표현하면 실재적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그 여자에 관한 자신의 향유를 알지 못하게 한다.


 

실재적 아버지는 아들 함이 나체로 보았던, 취해서 침대에 누워 잠든 아버지이다. 그 아들은 자기의 지식을 다른 형제들이 나누어 가질 것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의 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다가와 아버지에게 외투를 덮어주었다. 노아는 나중에 잠이 깨어 이들에게 감사하고 함을 저주했다.


창세기 9:18-29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 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29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07.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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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강의자료라구요?
만약 제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이 말들을 듣는 즉시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7-08-28 18:24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용은 아니구요. 2장은 좀 어렵지만 1장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비로그인 2007-08-2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강의 들어보고 싶어요 :)

로쟈 2007-08-28 20:56   좋아요 0 | URL
그냥 뒷얘기로만 들으시는 게 좋으실 듯한데요.^^;

허영 2007-09-0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노아는 왜 함이 아닌 가나안에게 저주를 한 걸까요?ㅡㅡ;

로쟈 2007-09-07 15:51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목사님께 물어봐야겠는데요.^^;

지혜 2007-09-14 13:32   좋아요 0 | URL
가나안은 직접적으로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아비 함과의 혈통적 유대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저주의 내용 자체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혈통에 대한 저주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자식에 대한 아비의 권리와 책임 때문에 이런 결과가 가능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큰성경,편찬대표 김의환 박사,성서교재간행사>에 해설 부분에 이렇게 씌여 있네요.
 

지난주부터 문화일보에 매주 월요일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이란 기획기사가 연재된다. 어제까지 2회분을 옮겨놓는다. '사회적 독서'로 분류한 것은 인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확산이란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 비단 '인문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들을 위한 인문학'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사이의 틈새시장이 말하자면 '직장인 인문학'이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사회적 의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일보(07. 08. 20)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 ①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문화일보 16일자)가 있었다. 직장인 1254명을 대상으로 강박증에 대해 설문한 결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증’이 59.6%로 가장 높았다. 샐러던트’(직장인과 학생의 합성어)라는 말이 당연시될 만큼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에 쫓기고 있다. 하지만 절반을 훌쩍 넘는 직장인들이 자기계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지금까지의 자기계발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어떤 한계에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되돌아볼 때가 된 것이다. ‘업그레이드 미’가 앞으로 10회에 걸친 시리즈로 인문학을 비롯, 영화·음악·미술·연극 등 문화예술로 자기계발을 도모하는 직장인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참을 수 없이 공허한 자기계발
경영학과 인문학의 결합을 모색하는 변화경영연구소(소장 구본형)의 홍승완 연구원은 현재 직장인 자기계발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경쟁중심적이다. 다카하시 순스케(게이오대 정책미디어 연구과)교수의 말대로 “직장인들이 지나치게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선택에 내몰리며, ‘이 세상은 경쟁 사회며 서두르지 않으면 패배자가 될 것이다’라는 가정 위에서 살고 있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 그렇다보니 자신의 기질과 장점, 꿈 등 내적동기와는 무관하게 자기계발을 한다. 이 분야 저 분야의 자기계발이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외적동기에 쫓기다보면 ‘자기’는 없고 공허감만 남는다. 세째, 자기계발의 양상이 파편화돼 종합적인 자아실현과 동떨어지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하고 만다. 예컨대, 처세술과 인맥관리 방법을 배웠다고 인간관계가 좋아지는가? 사실은 그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정확히 알아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자기계발서 중에 ‘우화형 자기계발서’가 적지 않다. 자기계발서에 스토리를 부여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책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몇 줄이면 가능하다고 비판한다. 이 책들이 사이버교육장에선 한달간의 강좌로 둔갑한다. 직장인들의 ‘자기계발 강박증’을 이용한 상술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 인문학이 블루오션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는 사람이 경쟁력이라고 한다. 좀 다른 얘기지만, 직장인 10명 중 7명(73%)은 직장에서 업무보다 인간관계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도 있다. 결국은 인간이다.

사람에 대해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한 인류의 성과가 인문학(humanities)이다. 그 속에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든 사회, 문화, 예술이 모두 포괄돼 있다. 지식기반 사회의 경쟁력으로 일컬어지는 상상력과 창의력은 인문학의 바탕 없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인문학을 ‘모든 학문과 사회, 기술, 경제, 정치분야의 수원지(水源地)’라고 부른다. 또 인문학은 요즘 주목받는 ‘창조경영’의 기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문학이 블루오션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직장인들, 아니 현재 대학생들조차 시장(市場)이 원하는 ‘인문적 감수성’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하고 있다. 취업률을 우선시하는 우리 대학의 풍토에서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자격증과 처세술 등 기능개발에만 집중되는 자기계발에 대해 직장인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거기에는 삶의 깊이나 질이 없다. 또 가장 중요한 창의성의 여지와 재미도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 30~40대 직장인들 사이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직장인 자기계발 지면인 ‘업그레이드 미’는 앞으로 8회에 걸쳐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시리즈를 싣는다.(엄주엽기자)

문화일보(07. 08. 20) 국내 최대 인문학 학습사이트 ‘아트앤스터디’ 현준만 대표

직장인이 인문학을 손쉽게 공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국내 최대 인문학 학습사이트인 ‘아트앤스터디’(www.artnstudy.com)다.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이 사이트의 현준만(49·문학평론가) 대표에게 ‘직장인에게 인문학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들어보았다.

―아트앤스터디는 언제, 어떻게, 무얼 지향하며 만들었나.

현재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계발 서적과 교육은 자격증, 어학, 처세, 화술 등 주로 ‘기능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 요구되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집약된 인문학의 몫이다. 실용 교육에 비해 인문 교육은 그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주로 오프라인 교육장에서만 이뤄진다. 디지털 시대에 ‘시공간의 제약 없이 내 방에서 편하게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해서 지난 2001년 뜻을 같이 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함께 온라인 교육 전문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



―주로 어떤 강의들이 이뤄지나.

“현재 시인 신경림, 김지하, 소설가 조정래, 박범신, 철학자 이정우, 진중권, 인문 사회학자 이진경, 고병권, 고미숙 등의 교수진이 문학, 철학, 미학, 영화, 건축, 미술, 음악, 전통문화 등 인문학과 문화예술 전 장르에 걸쳐 300여개의 동영상 강의를 하고 있다. 그 중 이정우, 진중권, 박정하 등 유명 강사진의 철학 강좌가 특히 직장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일상에 묻힌 월급쟁이들에게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역설적으로, 직장인들의 일상이 바쁘고 팍팍하기 때문에 인문학 공부가 더욱 필요하다. 힘겨운 일상 속에서 누구나 “왜 사는가”, “이렇게 사는 게 과연 행복인가”와 같은 질문과 맞닥뜨린다. 이때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과 사색의 힘이 자아를 건강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지식기반사회’의 원동력과 핵심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이것은 공식을 외우고 지름길을 찾아가는 ‘기능 교육’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인문학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다.”

―직장인에게 진짜 필요한 건 창의성과 세상 흐름을 읽는 폭넓은 시야다. 인문학 공부가 여기에 도움이 될까?

인문학은 사람 인(人)자가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문화를 철학, 역사, 문학의 눈으로 각각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기 위해 인문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처세술 학습으로 될 일이 아니다. 사유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철학 공부를 통해 자아를 더 성숙하게 키워나갈 수 있고,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고전 공부를 통해 현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또 메마른 정서를 적셔줄 문학, 미술, 음악 공부도 유용할 것이다.”

―철학공부가 인기가 있다는 것도 의외다.

고무적이라고 본다. 그 배경은 첫째, 직장인이 철학을 공부할 곳이 없다. 혹 철학책을 읽는다 해도 비전공자가 혼자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다. 둘째, 철학을 가르치는 오프라인 교육기관이 있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더구나 수도권 거주자가 아니면 오프라인에서의 공부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아트앤스터디의 경우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어느 때나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어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오프라인 교육에 비해 비용도 저렴하다.”

―아트앤스터디의 직장인 수강생은 어느 정도인가.

아트앤스터디의 주 이용층은 20대 후반에서 40~50대의 직장인이다. 직장인들의 퇴근 후 자기계발 열풍을 반증하듯,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사이트 접속률이 가장 높다.”(엄주엽기자)

문화일보(07. 08. 27)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 ②

인문학을 통한 직장인 자기계발의 핵심은 인문학 책 읽기다. 인문학 독서야말로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인간 능력 향상의 첩경이자, 지식기반 사회로 불리는 21세기 경쟁력의 근원을 다지는 일이다. 2000년대 이후 인문학책 출판에 매진해온 그린비 출판사의 유재건 대표는 “철학이 만학의 왕이듯이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실용서의 왕”이라며 “요즘처럼 속도가 빠르고, 변화무쌍한 시대일수록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역량을 길러주는 인문학 독서의 필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유 대표는 이와 함께 자기 성찰, 자기 수양으로서의 인문학 책읽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에서의 성취와 나락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공존하다시피하는 시대, 평소에 인문학 책을 읽으며 삶의 뿌리를 든든하게 받쳐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직장인들이 인문학 책을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전 번역을 중역(重譯)한 사상서, 전집류 등을 들여놓고,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끙끙대던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책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없진 않다. 몇몇 출판사들이 이 시대의 문제의식에 맞춰 새로 쓴 고전을 읽거나 인문학 관련 잡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런 책들로 기초적인 이해를 쌓은 뒤 원전을 완역한 책을 읽으면 고전을 읽는 맛이 확 달라진다.

쉽게 읽히는 인문학 책도 있다 = 인문학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난해하고 골치 아픈 책은 아니다. 특히 소장·중견학자들이 인문·사회학 고전을 이 시대에 맞게 곱씹으며 풀어쓴 책들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과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시리즈다.

최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강신주 지음)을 냄으로써 모두 7권이 나온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은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시리즈. 첫 권으로 나온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지음)이 인문학 베스트셀러에 든 것을 비롯,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병권 지음),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지음),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 지음) 등 하나 하나가 모두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성은 신화다…’는 ‘열하일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나 난해한 텍스트로 유명한 ‘계몽의 변증법’을 1인칭 시점으로 풀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제의식에 다가가게 하는 솜씨가 매우 빼어나다. 출판사 측이 시리즈를 시작한 지 3년이 훨씬 지나도록 7권밖에 내지 못한 것도 ‘리라이팅’의 야심에 걸맞은 내공 깊은 저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

그린비의 ‘리라이팅클래식’이 본격 저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면, 살림출판사의 ‘e 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는 고전이 탄생할 수 있었던 시대 배경과 작가의 환경, 그리고 고전의 핵심 등을 이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 출간하는 다이제스트 형식의 총서다. 시리즈 제목의 ‘e시대’는 ‘첨단 정보통신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시대에 맞는 현대적 감각의 고전을 목표로 한다. 고전을 읽으려 해도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용어 앞에서 기가 죽는 독자들에게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는 저자 개인이 해당 원전을 읽으며 느꼈던 감상과 문제의식들이 핵심내용과 잘 어우러져 있어 ‘상군서-난세의 부국강병론’(장현근 지음), ‘리바이어던-국가라는 이름의 괴물’(김용환 지음), ‘사기-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이인호 지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동서양 고전 28권이 ‘e시대의 절대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인문학 잡지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 서점과 인터넷에서 차고도 넘치는 인문·사회학 관련 책들, 무엇을 집어야 할지 모를 때는 잡지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잡지야말로 홍수처럼 넘치는 정보의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골라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평있는 잡지들에는 인문학 사회학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편집위원과 집필진으로 참여, 당대의 주요한 문제를 수준 높은 감식안으로 심도있게 분석한다. 정평있는 잡지의 글들은 웬만한 단행본을 능가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면서 한때 줄지어 문을 닫았던 잡지들도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제반 문제와 남북문제, 변화한 미디어 환경과 대중문화, 생태, 대안적 공동체 운동 등등을 제대로 진단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상반기 봄호를 끝으로 휴간됐던 인문학 전문지 ‘비평’이 지난해 복간됐고, 98년부터 2005년까지 계간지로 발행됐던 ‘당대비평’이 부정기 단행본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를 가지고 돌아왔다.



87년 창간해 2003년 봄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을 중단했던 중도진보 성향의 계간지 ‘사회비평’도 이번 여름호로 복간됐다. 이 밖에 도서출판 그린비는 최근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함께, 인문사회학 책과 잡지의 성격을 섞은 부커진‘R’의 창간호를 냈고, 1949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창간한 미국의 좌파 성향 월간지 ‘먼슬리 리뷰’ 한국판도 최근 첫선을 보였다.

암울하던 시절 저항과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계간 ‘창작과비평’을 비롯, ‘문학과사회’, ‘세계의문학’, ‘문학수첩’ 등의 문학 계간지들도 어려운 출판사정에도 불구, 인간과 이 시대의 핵심 이슈에 대한 성찰을 중단 없이 계속해 온 잡지들. 기독교나 불교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를 기대하는 이들은 ‘기독교사상’이나 ‘불교평론’을 보면 좋다. 또 ‘녹색평론’이나 ‘환경과생명’은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생태와 공동체운동, 대안의 삶 등을 꾸준히 모색하며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김종락기자)

문화일보(07. 08. 27) '인문학이 나의 힘’ 이동환씨

“학자나 문인뿐 아니라 직장인에게도 인문학 책 읽기는 필요합니다. 경제·경영이나 자기 계발서들이 직장인들의 실무역량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실용서라면 인문학 책들은 이의 배경이나 근본이 되는 것이지요. 축구나 야구, 농구 등 운동 선수들에게 테크닉 못지 않게 기초체력이 중요하듯, 직장인에게도 인문학의 굳건한 배경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IT컨설팅 기업인 이씨마이너 이사 이동환(49·사진)씨는 인문학 책읽기 예찬론자다. 치열한 생존경쟁 시대, 직장인들의 삶이 각박하고 힘겨워질수록 인문학 책읽기는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흔히 인문학은 실용성과 거리가 먼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향후 경쟁력의 관건인 창의와 상상력의 에 관건이 되는 분야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원천이라는 것이다. 특히 직장 업무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소통과 가로지르기가 필요한 때, 인문학의 효용은 더욱 커진다고 강조한다.

 

이씨의 이 같은 주장은 말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가 지난해 읽은 책은 모두 180여권. 이 중 절반 이상은 묵직한 인문학과 과학 분야 책이다. 지난 6월 읽은 15권의 책 중에서 ‘버자이너 문화사’(앨토 드랜스 지음, 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컬처 코드’(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 김상철·김정수 옮김, 리더스북) 등 6권이 인문학 책, ‘리처드 도킨스’(앨런 그래펀 지음,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 등 4권이 과학 책이었다.

이씨가 처음부터 실용성을 위한 인문학 책읽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벗어난 지 20여년, 직장 생활을 할수록 공허해졌고, 인간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대학에서 행정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인문학 책읽기에 빠져든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생기기 시작한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재미와 지적 만족을 위해 시작한 인문학 독서가 직장 생활에도 효용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하는 IT기업의 컨설팅 업무에서 일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던 인문학이 만만찮은 저력이 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얻은 지식들은 우선 고객과의 대화에서 신뢰를 담보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컨설트 대상 기업의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할 때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도 인문학 책을 읽으며 수없이 경험했던 지적인 과정과 다를 게 없었어요.비록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한 단계만 더 나아가면 인문학 책은 수준 높은 실용서였습니다.”

인문학 책은 또한 빼어난 자기계발서이기도 했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들이 몇 줄이면 요약가능한 자기계발서에 적힌 이야기와 비교할 바 아니었다. 그가 주로 책을 읽는 때는 출퇴근 시간,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너무 어려운 책을 대할 땐, 이와 비슷한 분야의 책 중에서 좀 쉬운 것을 골라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참고도서 서너권을 읽는 때도 많았어요. 그 책이 좋으면 관련 저술을 모조리 찾아 읽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지요.”

이씨는 3년 전부터 YES24 블로그에 둥지를 마련, 서평을 올리고 있다. 읽은 책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가 지난해 올린 서평은 모두 90여편, 독자도 많이 생겨 지금까지 방문자가 6만명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월요일엔 야학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토요일마다 자원봉사를 한단다.

특정 분야의 책을 20권 정도 읽으니까 체계를 갖춰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50권 정도 읽으니까 강의를 할 수 있게 되더군요. 100권 정도 읽으면 책도 쓸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 역사와 고고학, 인류학, 지리학, 기후학, 생물학 등등을 크로스오버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김종락기자)

07.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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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8-28 11: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런 고비를 넘겨야하는데, 일터 일상에서 동화같은 실용서도 읽지못하거나, 읽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그 경계선을 넘어서거나 넘도록 만드는 이런 기사가 고맙네요. 인문학 책을 읽으라는 빌미가 마땅하지 않았는데, 이 참에 빌미를 만들어가네요. 이번주 회식때나 한번 써 먹어 봐야겠군요. ㅎㅎ

로쟈 2007-08-28 18:17   좋아요 0 | URL
맘만 먹으면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07-08-28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28 18:18   좋아요 0 | URL
이건 뭐 신문기사 옮겨온 것뿐인데요...

라주미힌 2007-08-28 16:48   좋아요 0 | URL
아니.. 대학교에서도 멀리하는 인문학을, 인문학의 실용성을 직장인들이 찾다니(저도 그러고 싶은 ^^).. 재밌는 기사네요.

로쟈 2007-08-28 18:19   좋아요 0 | URL
인문학도 꽤 재미있잖아요.^^

비로그인 2007-08-28 19: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로쟈님.
저도 인문학 마냥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는데요,
왠지 희망이 보이는 페이퍼라고나 할까요? ㅎㅎ

로쟈 2007-08-28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대단한 일을 한 건가요?^^;

마늘빵 2007-08-28 21:10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하고 있는 것만 끝내고, 이런데 다니면서 취미로(?) 공부하고 싶어요. 찾아다니면 요새는 정말 갈 곳 많더라고요. 철학아카데미, 아트앤스터디, 한겨레문화센터 등등.

로쟈 2007-08-28 23:49   좋아요 0 | URL
너무 많아도 탈이죠.^^;

심술 2007-08-28 22:3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동환 님은 저 많은 넥타이 부대 가운데 누구예요?

로쟈 2007-08-28 23:49   좋아요 0 | URL
전혀 무관한 사진입니다.^^;

섬나무 2007-08-29 12:26   좋아요 0 | URL
주변의 아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문학 읽기를 합니다. 일하는 주부들이 주류입니다.
인문학자들이 말한 인문학의 위기는 이제 상아탑이 아닌 저자거리에서 출구를 찾을듯합니다.
이 세상에서 흔적이 사라지는 일은 온전히 살아남기보다 불가능한 일일테니까요.
위기론들은 변주를 위한 서주 같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07-08-29 19:38   좋아요 0 | URL
저도 일반인 대상 강의를 하는데, 오히려 대학생들보다 열심히들 들으시더군요...
 

이탈리아 정국에 관한 한 기사를 읽고 문득 테어도르 데일림플의 한 에세이가 생각이 나서 페이퍼를 만들어둔다. 기사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자신이 새로 만든 당의 간판으로 30대의 젊은 여성 사업가를 내세웠다는 것이고 이러한 '미인계'가 과연 통할까, 라는 설왕설래를 낳고 있다는 것. 데일림플의 에세이는 <브레이크 없는 문화>(이카루스미디어, 2007)에 수록된 '정직한 관료주의보다 부패한 관료주의가 낳은 이유'이다. 여기서 물론 '낳은'은 '나은'의 오기이다(이런 오기가 어떻게 역자와 편집자 라인을 두루 통과할 수 있었을지 미스테리하다).

데일림플의 책을 '상반기 베스트' 중의 한 권으로 꼽아두기도 했지만 사실 혼자서 몰래 읽어도 좋을 책이다(양서는 혼자서만 읽어라, 도 독서의 한 원칙이다!). 정신과의사 출신의 칼럼리스트인지라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취미는 가끔씩 온라인에서 그의 글을 찾아 번역본과 대조해가며 읽는 것인데, '정직한 관료주의보다 부패한 관료주의가 나은 이유'의 원 칼럼 제목은 'The Uses of Corruption'(http://www.city-journal.org/html/11_3_oh_to_be.html) 이다. '부패의 효용'쯤 될까? 영국과 이탈리아를 비교하면서 50년 전만 해도 가난한 나라였던 이탈리아가 오늘날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히려 더 활력있는 나라로 변신하게 된 원인으로 이탈리아 관료주의의 부패를 들고 있는 독특한 시각의 에세이이다. 나는 베를루스코니 같이 '부패한' 정치인/기업인(그는 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하다)의 집권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문을 가지면서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수준을 낮춰봤었는데 데일림플의 칼럼을 읽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이탈리아 공직자들의 부패는 국민에게 국가는 자신들의 후원자나 보호자가 아니라 적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국민은 국가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세금을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탈세를 하게 된다.(...) 이탈리아 '암거래' 경제는 다른 어떤 유럽 국가들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는 사실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시장의 규모가 공식적으로 1인당 GNP가 영국과 비슷한 이탈리아가 영국보다 훨씬 더 부유해 보이는 이유다."(295쪽)

"거대하고 정직하지만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국가 관료제도는 의존과 반감이라는 서로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대를 주게 된다. 이탈리아에선 이 같은 기대감이 존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선 누구도 정직한 체하지 않으며 따라서 공적 행정의 자선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대하고 표면적으로 호의적인 국가는 한때 방문객들이 주목했던 영국 국민의 자부심과 강인한 독립심을 완전히 부식시키고 있다. 현재 영국인들의 40%는 수입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직접 국고에서 지급받는 정부보조에 의존하고 있다."(297쪽)

"어쨌든 이탈리아인들은 자기 나라에 정직한 정부가 들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을 만큼 자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당선되기 전 벨루스코니(*베를루스코니) 수상에게 퍼부어진 부정직에 대한 주장이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했던 이유다. 벨루스코니 수상에 대한 비난이 사실이었다 해도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이 소규모로 하고 있는 것을 신임수상은 대규모로 한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거대국가는 그것이 부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대하기 때문에 해롭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사실 부패하지 않은 거대국가는 부패한 거대국가보다 더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302쪽) 

나는 이러한 이탈리아인들의 정치의식이 냉소주의인지, 현실주의인지, 혹은 낙천주의인지 헷갈리지만 여하튼 베를루스코니가 한번 더 집권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또 그런 부패한 정부와 무관하게 이탈리아 사회가 굴러가는 일이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걸. 우리의 현 정부도 지속적으로 공무원의 숫자를 늘려왔는데, 이탈리아 모델을 따르자면 문제는 우리의 관료들이 도덕적인 체한다는 데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데일림플의 탁견을 빌자면, "공무원들이 정직한 곳에선 오히려 누구도 관료주의의 폐해를 막을 수 없게 된다." 혹은 거꾸로 도덕적 권위주의를 앞세운 현 정부에서도 이 정도나마 국가가 굴러가는 건 관료주의의 '숨은 부패'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고. 아래는 서두에서 언급한 외신기사이다.

한국일보(07. 08, 27) 伊 "미인계 이용해 정권 탈환" 과연 통할까?

1년6개월 전 총선에 패배한 이탈리아 중도우파 연합이 ‘미인계’를 통한 정권 탈환을 선언, 눈길을 끌고 있다. 이색 정략의 중심에 선 인물은 돌출 행위와 부패 스캔들로 이름을 떨쳐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0) 전 총리. 그는 최근 선관위에 신당 ‘자유당’과 휘장을 등록했다.

자유당의 대표는 올해 39세의 비즈니스 우먼 미켈라 비토리아 브람빌라. 20여년 전 미인대회에 출전해 ‘포토제닉’상을 받은 미녀이다. 사업가로 변신한 브람빌라는 철학을 전공한데다가 정치경력이 거의 없어 이탈리아 정계에서도 그 돌연한 등장을 놓고 논란이 불붙고 있다. 현지 정가에선 자유당이 베를루스코니의 지휘 아래 로마노 프로디 중도좌파 정권에 맞서는 선봉으로 나설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아직 브람빌라가 자신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진 않으나 차기 정권에선 여성이 총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에둘러 말해, 그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언론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자유당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자임하면서 브람빌라를 당사무총장으로 지명했으며 이로 인해 중도우파 안에서 반발이 고조되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중도우파 내부에선 브람빌라에 대해 “야심이 없는데다가 대중적인 인기도 전무하다”며 반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를루스코니가 정권을 되찾기 위한 카드로 내세운 브람빌라는 철강회사 집안 출신으로 18살 때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에 나가 결선까지 진출하며 입상했다. 대학에 들어가선 가업을 잇기 위한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고 철학을 배워 아버지의 노여움을 샀다. 그러나 학교 졸업 후 사업에 뛰어 들어 어류수입회사를 경영, 수완을 발휘했고 지금은 이탈리아 청소년벤처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전도 유망한 기업인으로 꼽히고 있다.

미인대회 출신의 아름다운 외모와는 걸맞지 않게 “내 말을 누구든 막을 수 없다”고 스스로 호언할 정도로 직설적인 성격을 가진 브람빌라는 상당한 추진력도 갖춘 여장부 스타일로 전해졌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함께 사는 남자친구 에로스 마지오니도 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그와의 사이에 두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브람빌라는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서 2005년 그의 눈에 처음 띄었다. 베를루스코니가 지난해 총리에서 퇴진한 뒤 브람빌라는 전국에 5,000개의 자유클럽을 만들어 지지자를 결집, 중도좌파로부터 정권을 탈환한다는 선거전략안을 건의해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정치 분석가들은 베를루스코니의 밀어 붙이는 성향에서 브람빌라가 중도우파 연합 내부의 반발을 극복하고 오는 10월 ‘민주당’으로 통합되는 중도좌파의 왈테르 벨트로니 로마 시장의 대항마로서 옹립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벨트로니 로마 시장은 프로디 총리의 후계자로서 일찍부터 중도좌파 연합의 ‘황태자’로 불려 왔다.(한성숙 기자)

07. 08.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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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8-2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보니 공감이 가는데.
경제학자가 아니니 그냥 살면서 느낀것이라면 지금 한국경제의 활력을 빼앗은것도 공무원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자영업자들 카드 수수료 문제가 신문에 오르내리는데 아마 이런것 신경쓴 먹물들은 없는것으로 봅니다. 점심 짜장면 먹고 주인장한테 여기 카드 수수료 얼마요 물어보면 대략 4.5%전후, 이건 주로 중소 자영업자들의 카드 수수료인데요. 매출이 2천이면 90만원이 수수료 나가는것이죠. 이게 수수료만이 아니라 소득액 노출이 되어서 세금도 더내고 부가가치세도 내게 되면 대충 계산하면 2천이라면 달에 다른것 빼고 150-200정도를 나라에 더 받치게 되는것인데요. 이런부분이 자영업자의 탈세와 연관이 되지만 역으로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의 나름대로의 자생력을 확보해온 부분이라고도 볼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되거든요.
열심히 일하면 세금 내는대신 자신의 종자돈을 모을수 있는것이 이런 자영업자들이었는데
투명화가 되면서 자신이 설수있는 기반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도덕적으로 버는만큼 세금내라라는 애기는 좋지만. 벌곳이 없어지면, 그리고 그 낸 세금이 간판정리나 기타 시장님이나 나랏님 관심분야에 주로 투자되고 공무원들 퇴직후 자리보전하는 사업에 우선적으로 이용된다면(이건 공약사업이라 법적인 하자도 없고, 서류꾸면 투명하게 처리하면 아예 하소연도 못하는 짓이 주변을 살짝만 봐도 보이는데)
과연 소득을 투명하게 한다는것이 누구 좋은일이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거든요.
소득투명화를 내걸고 전국민 카드사용(공제를 위해)하게 만들었는데 재테크의 기본은 카드사용하지 말라인데요.800만인가 신용불량자을 만들어버린 카드의 위력은 공무원들의 협잡에 놀아난 꼴 같기도 하고요.
소득이 적어지면 택시운전사가 술집삐끼가 되고 아줌마들은 전화방 노래방으로.
밑바닥이 붕괴된다는 느낌과 거기에서 돈을 모을수 있는 방법이 원천봉쇄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데 쩝.

로쟈 2007-08-27 12:18   좋아요 0 | URL
데일림플의 논점은 작은 국가의 경우엔 정직한 관료주의가 미덕이지만(예컨대 싱가폴 같은 경우를 들 수 있을까요) 거대국가(리바이던)의 경우 정직한 관료주의라는 건 부패한 관료주의보다도 유해하다는 것인데, 말씀대로 우리의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을 듯하네요. 최선의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도, 의도로 모든 걸 변명할 수는 없겠죠...

자꾸때리다 2007-08-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눈에는 별로 안 예쁘군요. 적어도 손예진, 한지민, 엘렌 그뤼모 정도는 되어야 미인이라 할 수 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쟈 2007-08-28 08:36   좋아요 0 | URL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마스크이긴 합니다.^^;

웅아 2007-08-2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부이탈리아만 놓고 보면 아마 유럽에서 가장 잘 살 겁니다. 권력도 장악하고 있고 모가 아쉽겠습니까? 부패가 더 좋죠. 남부이태리가서 저런 소리하면 글쎄....

이태리의 행운은 미국과 멀다는거... 미국의 전가의 보도 기업투명성에 걸리지 않으니 ...

로쟈 2007-08-28 08:38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는 2차 대전 이후 60차례 이상 정권이 교체되었다는군요. 애당초 정치적 안정 같은 건 (남부로서도) 기대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섬나무 2007-08-2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한 원칙을 깨신 로쟈님의 아량 추천!^^

로쟈 2007-08-29 19:36   좋아요 0 | URL
^^
 

전통적인 한국학 분야는 나로선 (조금 과장하자면) 기계공학만큼이나 덜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인데 이 분야에서 한꺼번에 네 권의 학술서가 출간돼 눈길을 끈다. '네 권'이란 수치는 대단한 게 아니지만 이 네 권을 한 사람이 집필했다고 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한국학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 아닐까?(얼핏 조동일 교수가 한꺼번에 몇 권의 책을 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긴 한다.) 저자는 강명관 교수이고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2007) 등으로 이미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얻은 학자이다. 최근 몇년 동안 한국학쪽에서는 유독 18세기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시대가 특별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로) 이 시대 전공자들이 모두 뛰어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정민, 안대회, 강명관 교수 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아무려나 성실한 학인의 자세는 동료-후학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맨날 서재질이나 하고 있으면 언제 책을 쓰나?). 내일자 조간에 실릴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8. 27) '민족문학·근대·국가’ 환상을 벗기다…김명관교수 학술서 출간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일상생활을 복원했던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최근 묵직한 학술서 4권(소명출판)을 내놓았다. 웬만한 학자가 한 권도 아닌 4권을 한꺼번에 출간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강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책들이 함께 출간된 것뿐입니다.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은 16년 전부터 써오던 논문을 모은 것이고 ‘농암잡지평석’도 10년 걸렸죠.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는 재작년에 정리했고 ‘안쪽과 바깥쪽’이 최근에 쓴 책입니다. 성격은 각각 다르지만 서로 연관성이 있어요. 제일 얄팍한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가 세 권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책이고 나머지 세 권은 각론이에요.”

이들 책은 모두 조선 후기 한국학연구의 주요한 이론인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자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은 조선 후기에 이미 근대화의 싹이 자생적으로 텄다는 이론으로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배격하기 위해 1970년대 출현했다.

“이 책들은 근대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91년에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중인문학을 주제로 택했습니다. 양반문학과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려고 연구를 진행시켰는데 막상 중인문학과 양반문학 사이에 크게 다른 특징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곤혹스러웠지요. ‘내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왜 조선후기 문학사에서 근대를 찾으려고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죠.”



내재적 발전론이 서양사의 보편성을 한국사에서 뽑아내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이 같은 깨달음은 책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에서 조목조목 민족문학과 근대, 국가 등에 덧입혀진 환상을 벗겨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 강교수는 국문학사가 기본적으로 민족과 근대라는 두 어휘를 통해 구성됐음을 지적한다.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에 고안된 개념인 만큼, 한 민족의 문학적 특질을 찾으려는 국문학 역시도 실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연구가 심화할수록 국문학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 역시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국 문학사 연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강교수는 국문학사에서 민족과 근대라는 내피를 제거하고 타자를 통해 조선후기 문학사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타자란 중국문학이다. 한국사가 중국 및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문학계는 조선후기 문학의 자생성에 힘을 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는 중국의 의고문체와 공안파의 문예이론 등이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문단에 수용된 의고문체는 중국 진한대의 산문을 본받아 예술적 성취를 이루자는 명대의 복고적인 창작론. 신흠, 김상헌, 유몽인 등 당대 일류 문인들이 진한대의 고문을 숭앙했다. 조선 후기 문학의 대가였던 농암 김창협은 이 같은 의고문체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짧은 언설로 구성된 ‘농암집’ 권 31 잡지 외편에는 중국의 고전에 대한 농암의 사유와 비판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농암문학 연구의 필독서였으나 그간 제대로 번역된 적이 없다. 때문에 강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단 ‘농암잡지평석’은 앞으로 많은 국문학사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기초자료로 쓰일 듯 싶다. 원문을 번역하고 자료를 찾으며 준비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모든 것이 농암에게로 흘러들어가서, 그로부터 다시 나왔습니다. 한데 기존의 한문학 연구를 살펴보면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논리를 구축해놓고 필요한 자료만 뽑아 쓰곤 했어요. 그렇게 해서는 전모를 살필 수 없습니다. 농암이 중국의 고전을 읽고 비판했다 하면, 원전이 뭔지 찾아 읽어야 어떤 맥락에서 비판을 했는지를 알 수 있죠. 이잡듯이 읽어보자고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시간을 끌 줄은 몰랐네요.”



‘안쪽과 바깥쪽’은 그간 민족적 주체를 강조하면서 외부의 영향을 무시했던 연구풍토를 비판하고 있다. 한문학이 전근대 동아시아에 보편적으로 출현한 문학 양식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를 중국의 동시대 문학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폐증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은 좀더 상세한 분석을 담고 있다. 구상에서 집필완료까지 16년이 걸렸으니 네 권의 책 중 가장 공력을 들인 책이다. 강교수는 사람들이 연암 박지원을 조선 후기의 독창적인 지식인, 이단아로 알고 있지만 그를 비롯한 이덕무, 이옥, 이언진 등의 비평론과 창작론은 중국 명대 공안파(公安派)의 문예론에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안파는 봉건적 권위와 도덕을 무시한 탁오 이지(李贄)의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자아 표현을 중시하고 옛사람들의 낡은 사고를 배격한 문예집단이다. 강교수는 책을 통해 조선의 근대적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박지원 일파의 성취가 실은 공안파의 문예론에 기댔다고 강조한다. 연암일파는 기본적으로 한문학을 기반으로, 공안파의 비평을 수용해 조선어의 어휘와 속담을 받아들여 창작했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민족문학적 성격’을 찾으려는 노력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0년이 넘게 아침 일찍 출근해 하루 종일 한적을 뒤적이고 컴컴한 밤이 돼서야 퇴근을 했다는 강교수는 안식년 중에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읽고 썼다. 이번 책들은 그 특유의 연구열과 성실함이 만들어낸 성과다.

조만간 일반 독자들을 위한 역사교양서도 출간된다. 조선시대 책과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지식이 조선이라는 사회와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구성해냈는가를 살핀 인문교양서와 어떻게 조선의 유교이념이 열녀사상을 만들어내고 여성들의 성적욕망을 억압했는지를 추적한 책이 올 가을 출간될 예정이다. 조선 후기를 바라보는 강교수의 신선한 사유가 기다려진다.(윤민용기자)

07.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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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읽을 책들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과 포스트휴먼' 정도의 주제를 다룰 때 참조할 만한 책들이 최근에 출간됐다. 라메즈 남의 <인간의 미래>(동아시아, 2007)과 스펜서 웰스의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말글빛냄, 2007)이 그 책들이다. 이 분야 관련서들이 이미 적잖게 나와 있지만 그럼에도 참고문헌의 수를 조금 더 늘려놓는다. 중앙일보의 리뷰기사가 유익하기에 챙겨둔다.  

중앙일보(07. 08. 25) 유전자는 알고있다 인류의 시작과 끝을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고민은 역사와 철학의 과제만은 아니다. 이는 과학의 숙제이기도 하다. 특히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유전학은 인간 기원의 실마리와 함께 그 미래 전망을 동시에 제공하는 핵심 도구다. 미국의 과학전문가 라메즈 남은 인류의 미래를, 인구유전학자인 스펜서 웰스는 기원을 각각 찾아 나선다.

고객: 올여름 해수욕장에 가서 우람한 가슴근육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전문가: 그런 유전자를 담은 바이러스 주사를 두 대 맞고 몇 달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 대화는 농담도, 공상도 아니다. 이미 눈앞에 다가온 유전공학적 현실이다. 상용화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이세진 박사팀이 그 실마리를 찾았다. 이 팀은 근육 생성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테틴이라는 호르몬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생쥐를 교배를 통해 만들었다. 이 쥐는 보통 쥐와 비교해서 근육이 2-3배나 되며, 체지방은 70%에 불과했다. 이제 이렇게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만 보태면 된다. 그런데 런던대의 조프리 골드핑거 팀은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고도 근육량이 20%, 근력은 25%나 증가시키는 MCF유전자를 이미 찾아냈다. 그러니까 유전자만 조작하면 힘든 운동을 하지 않고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기술적으론 이미 우리 앞에 와있는 셈이다.



몸뿐이 아니다. NGF(신경성장인자)는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해 알츠하이머병(치매)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쥐 실험 결과, 학습능력과 기억력도 향상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NGF 생산과 관련한 유전자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이른바 스마트 약(똑똑하게 해주는 약)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선 벌써 10여 개 제약사가 상품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200세 수명 연장도 허풍만은 아니다. 심지어 출산 전에 유전자를 바꿀 수도 있을 정도니까. 더 나아가면 인간의 뇌가 컴퓨터 네트워크와 연결되고, 인간은 무한한 생명을 누릴 수도 있을 게다.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몇 세대만 지나면 우리의 후손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종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부작용도 당연히 있을 게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공학의 도도한 물결을 막을 방법도, 논리도 없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과학발전의 현실은 인정하지만, 인류 미래라는 과제 앞에서 지나치게 자유만 강조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논란을 부를만 하다.



“약 3만 년 전 한 남자에게 P31이라는 유전표지가 나타났다. 이 남자는 동아시아에 거주했으며, 그 후손은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까지 뻗어나갔다.”

2005년 4월 시작한 제노그래픽 프로젝트가 거둔 성과의 하나다. 5년간 4000만 달러를 사용하는 이 거대 사업의 목적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열쇠는 유전학에서 나왔다. 모든 인간은 부모의 세포 핵 속에 있는 게놈이 서로 혼합된 결과물이지만 섞이지 않고 계속 대물림되는 독특한 유전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만 있는 Y염색체는 서로 혼합되지 않고 계속 대물림된다. 그래서 Y염색체를 조사하면 먼 과거까지 부계 혈통을 추적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기관에 있는 mtDNA가 있다. 이는 핵이 아닌 세포질에 있어 유전 형질 혼합을 피할 수 있는데다, 어머니만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어 모계로만 유전된다. 그래서 이를 살피면 모계 혈통을 파악할 수 있다.

Y염색체와 mtDNA는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도구이다. 여기에 고고학·언어학·고인류학을 더해 조사했더니 다양한 인류 집단의 이동 과정이 상당히 드러났다. 앞에 제시한 성과는 그 일부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인류가 6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에 살다 전세계로 퍼졌다는 점이다. 그 뒤 2000여 세대 동안 인류는 피부색은 물론 신체치수·언어·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어지러울 정도로 엄청난 다양성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다양성이 이렇게 최근에 이뤄졌다면 인류가 한 가족에서 비롯했다는 이론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게 인류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따라서 인류는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며 다양성이라는 깃발 아래 공존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유전학이 제시하는 세계 평화의 과학적 배경이다.(채인택 기자)

07. 08. 26.

 

 

 

 

P.S. 기억의 편의를 위해서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책 두 권을 적어둔다. '인류의 조상'과 관련된 책으로 이언 태터솔의 <인간되기>(해나무, 2007)와 '포스트휴먼' 관련서로 도미니크 르쿠르의 <인간복제논쟁>(지식의풍경, 2005)이 그 두 권의 책이다. 나머지는 한 차례 열풍이 지나가기도 했던 '인간복제' 관련서들인데, 이미 서가 한 칸 정도는 채울 만큼 출간돼 있다('인간복제'라고 검색해보시길). 국내 필자가 쓴 책 몇 권의 이미지만을 나열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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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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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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