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문화일보에 매주 월요일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이란 기획기사가 연재된다. 어제까지 2회분을 옮겨놓는다. '사회적 독서'로 분류한 것은 인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확산이란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 비단 '인문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들을 위한 인문학'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사이의 틈새시장이 말하자면 '직장인 인문학'이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사회적 의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일보(07. 08. 20)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 ①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문화일보 16일자)가 있었다. 직장인 1254명을 대상으로 강박증에 대해 설문한 결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증’이 59.6%로 가장 높았다. 샐러던트’(직장인과 학생의 합성어)라는 말이 당연시될 만큼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에 쫓기고 있다. 하지만 절반을 훌쩍 넘는 직장인들이 자기계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지금까지의 자기계발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어떤 한계에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되돌아볼 때가 된 것이다. ‘업그레이드 미’가 앞으로 10회에 걸친 시리즈로 인문학을 비롯, 영화·음악·미술·연극 등 문화예술로 자기계발을 도모하는 직장인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참을 수 없이 공허한 자기계발
경영학과 인문학의 결합을 모색하는 변화경영연구소(소장 구본형)의 홍승완 연구원은 현재 직장인 자기계발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경쟁중심적이다. 다카하시 순스케(게이오대 정책미디어 연구과)교수의 말대로 “직장인들이 지나치게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선택에 내몰리며, ‘이 세상은 경쟁 사회며 서두르지 않으면 패배자가 될 것이다’라는 가정 위에서 살고 있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 그렇다보니 자신의 기질과 장점, 꿈 등 내적동기와는 무관하게 자기계발을 한다. 이 분야 저 분야의 자기계발이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외적동기에 쫓기다보면 ‘자기’는 없고 공허감만 남는다. 세째, 자기계발의 양상이 파편화돼 종합적인 자아실현과 동떨어지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하고 만다. 예컨대, 처세술과 인맥관리 방법을 배웠다고 인간관계가 좋아지는가? 사실은 그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정확히 알아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자기계발서 중에 ‘우화형 자기계발서’가 적지 않다. 자기계발서에 스토리를 부여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책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몇 줄이면 가능하다고 비판한다. 이 책들이 사이버교육장에선 한달간의 강좌로 둔갑한다. 직장인들의 ‘자기계발 강박증’을 이용한 상술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 인문학이 블루오션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는 사람이 경쟁력이라고 한다. 좀 다른 얘기지만, 직장인 10명 중 7명(73%)은 직장에서 업무보다 인간관계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도 있다. 결국은 인간이다.

사람에 대해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한 인류의 성과가 인문학(humanities)이다. 그 속에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든 사회, 문화, 예술이 모두 포괄돼 있다. 지식기반 사회의 경쟁력으로 일컬어지는 상상력과 창의력은 인문학의 바탕 없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인문학을 ‘모든 학문과 사회, 기술, 경제, 정치분야의 수원지(水源地)’라고 부른다. 또 인문학은 요즘 주목받는 ‘창조경영’의 기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문학이 블루오션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직장인들, 아니 현재 대학생들조차 시장(市場)이 원하는 ‘인문적 감수성’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하고 있다. 취업률을 우선시하는 우리 대학의 풍토에서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자격증과 처세술 등 기능개발에만 집중되는 자기계발에 대해 직장인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거기에는 삶의 깊이나 질이 없다. 또 가장 중요한 창의성의 여지와 재미도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 30~40대 직장인들 사이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직장인 자기계발 지면인 ‘업그레이드 미’는 앞으로 8회에 걸쳐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시리즈를 싣는다.(엄주엽기자)

문화일보(07. 08. 20) 국내 최대 인문학 학습사이트 ‘아트앤스터디’ 현준만 대표

직장인이 인문학을 손쉽게 공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국내 최대 인문학 학습사이트인 ‘아트앤스터디’(www.artnstudy.com)다.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이 사이트의 현준만(49·문학평론가) 대표에게 ‘직장인에게 인문학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들어보았다.

―아트앤스터디는 언제, 어떻게, 무얼 지향하며 만들었나.

현재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계발 서적과 교육은 자격증, 어학, 처세, 화술 등 주로 ‘기능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 요구되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집약된 인문학의 몫이다. 실용 교육에 비해 인문 교육은 그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주로 오프라인 교육장에서만 이뤄진다. 디지털 시대에 ‘시공간의 제약 없이 내 방에서 편하게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해서 지난 2001년 뜻을 같이 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함께 온라인 교육 전문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



―주로 어떤 강의들이 이뤄지나.

“현재 시인 신경림, 김지하, 소설가 조정래, 박범신, 철학자 이정우, 진중권, 인문 사회학자 이진경, 고병권, 고미숙 등의 교수진이 문학, 철학, 미학, 영화, 건축, 미술, 음악, 전통문화 등 인문학과 문화예술 전 장르에 걸쳐 300여개의 동영상 강의를 하고 있다. 그 중 이정우, 진중권, 박정하 등 유명 강사진의 철학 강좌가 특히 직장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일상에 묻힌 월급쟁이들에게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역설적으로, 직장인들의 일상이 바쁘고 팍팍하기 때문에 인문학 공부가 더욱 필요하다. 힘겨운 일상 속에서 누구나 “왜 사는가”, “이렇게 사는 게 과연 행복인가”와 같은 질문과 맞닥뜨린다. 이때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과 사색의 힘이 자아를 건강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지식기반사회’의 원동력과 핵심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이것은 공식을 외우고 지름길을 찾아가는 ‘기능 교육’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인문학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다.”

―직장인에게 진짜 필요한 건 창의성과 세상 흐름을 읽는 폭넓은 시야다. 인문학 공부가 여기에 도움이 될까?

인문학은 사람 인(人)자가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문화를 철학, 역사, 문학의 눈으로 각각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기 위해 인문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처세술 학습으로 될 일이 아니다. 사유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철학 공부를 통해 자아를 더 성숙하게 키워나갈 수 있고,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고전 공부를 통해 현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또 메마른 정서를 적셔줄 문학, 미술, 음악 공부도 유용할 것이다.”

―철학공부가 인기가 있다는 것도 의외다.

고무적이라고 본다. 그 배경은 첫째, 직장인이 철학을 공부할 곳이 없다. 혹 철학책을 읽는다 해도 비전공자가 혼자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다. 둘째, 철학을 가르치는 오프라인 교육기관이 있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더구나 수도권 거주자가 아니면 오프라인에서의 공부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아트앤스터디의 경우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어느 때나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어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오프라인 교육에 비해 비용도 저렴하다.”

―아트앤스터디의 직장인 수강생은 어느 정도인가.

아트앤스터디의 주 이용층은 20대 후반에서 40~50대의 직장인이다. 직장인들의 퇴근 후 자기계발 열풍을 반증하듯,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사이트 접속률이 가장 높다.”(엄주엽기자)

문화일보(07. 08. 27) 직장인의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 ②

인문학을 통한 직장인 자기계발의 핵심은 인문학 책 읽기다. 인문학 독서야말로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인간 능력 향상의 첩경이자, 지식기반 사회로 불리는 21세기 경쟁력의 근원을 다지는 일이다. 2000년대 이후 인문학책 출판에 매진해온 그린비 출판사의 유재건 대표는 “철학이 만학의 왕이듯이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실용서의 왕”이라며 “요즘처럼 속도가 빠르고, 변화무쌍한 시대일수록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역량을 길러주는 인문학 독서의 필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유 대표는 이와 함께 자기 성찰, 자기 수양으로서의 인문학 책읽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에서의 성취와 나락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공존하다시피하는 시대, 평소에 인문학 책을 읽으며 삶의 뿌리를 든든하게 받쳐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직장인들이 인문학 책을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전 번역을 중역(重譯)한 사상서, 전집류 등을 들여놓고,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끙끙대던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책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없진 않다. 몇몇 출판사들이 이 시대의 문제의식에 맞춰 새로 쓴 고전을 읽거나 인문학 관련 잡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런 책들로 기초적인 이해를 쌓은 뒤 원전을 완역한 책을 읽으면 고전을 읽는 맛이 확 달라진다.

쉽게 읽히는 인문학 책도 있다 = 인문학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난해하고 골치 아픈 책은 아니다. 특히 소장·중견학자들이 인문·사회학 고전을 이 시대에 맞게 곱씹으며 풀어쓴 책들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과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시리즈다.

최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강신주 지음)을 냄으로써 모두 7권이 나온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은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시리즈. 첫 권으로 나온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지음)이 인문학 베스트셀러에 든 것을 비롯,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병권 지음),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지음),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 지음) 등 하나 하나가 모두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성은 신화다…’는 ‘열하일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나 난해한 텍스트로 유명한 ‘계몽의 변증법’을 1인칭 시점으로 풀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제의식에 다가가게 하는 솜씨가 매우 빼어나다. 출판사 측이 시리즈를 시작한 지 3년이 훨씬 지나도록 7권밖에 내지 못한 것도 ‘리라이팅’의 야심에 걸맞은 내공 깊은 저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

그린비의 ‘리라이팅클래식’이 본격 저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면, 살림출판사의 ‘e 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는 고전이 탄생할 수 있었던 시대 배경과 작가의 환경, 그리고 고전의 핵심 등을 이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 출간하는 다이제스트 형식의 총서다. 시리즈 제목의 ‘e시대’는 ‘첨단 정보통신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시대에 맞는 현대적 감각의 고전을 목표로 한다. 고전을 읽으려 해도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용어 앞에서 기가 죽는 독자들에게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는 저자 개인이 해당 원전을 읽으며 느꼈던 감상과 문제의식들이 핵심내용과 잘 어우러져 있어 ‘상군서-난세의 부국강병론’(장현근 지음), ‘리바이어던-국가라는 이름의 괴물’(김용환 지음), ‘사기-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이인호 지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동서양 고전 28권이 ‘e시대의 절대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인문학 잡지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 서점과 인터넷에서 차고도 넘치는 인문·사회학 관련 책들, 무엇을 집어야 할지 모를 때는 잡지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잡지야말로 홍수처럼 넘치는 정보의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골라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평있는 잡지들에는 인문학 사회학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편집위원과 집필진으로 참여, 당대의 주요한 문제를 수준 높은 감식안으로 심도있게 분석한다. 정평있는 잡지의 글들은 웬만한 단행본을 능가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면서 한때 줄지어 문을 닫았던 잡지들도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제반 문제와 남북문제, 변화한 미디어 환경과 대중문화, 생태, 대안적 공동체 운동 등등을 제대로 진단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상반기 봄호를 끝으로 휴간됐던 인문학 전문지 ‘비평’이 지난해 복간됐고, 98년부터 2005년까지 계간지로 발행됐던 ‘당대비평’이 부정기 단행본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를 가지고 돌아왔다.



87년 창간해 2003년 봄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을 중단했던 중도진보 성향의 계간지 ‘사회비평’도 이번 여름호로 복간됐다. 이 밖에 도서출판 그린비는 최근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함께, 인문사회학 책과 잡지의 성격을 섞은 부커진‘R’의 창간호를 냈고, 1949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창간한 미국의 좌파 성향 월간지 ‘먼슬리 리뷰’ 한국판도 최근 첫선을 보였다.

암울하던 시절 저항과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계간 ‘창작과비평’을 비롯, ‘문학과사회’, ‘세계의문학’, ‘문학수첩’ 등의 문학 계간지들도 어려운 출판사정에도 불구, 인간과 이 시대의 핵심 이슈에 대한 성찰을 중단 없이 계속해 온 잡지들. 기독교나 불교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를 기대하는 이들은 ‘기독교사상’이나 ‘불교평론’을 보면 좋다. 또 ‘녹색평론’이나 ‘환경과생명’은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생태와 공동체운동, 대안의 삶 등을 꾸준히 모색하며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김종락기자)

문화일보(07. 08. 27) '인문학이 나의 힘’ 이동환씨

“학자나 문인뿐 아니라 직장인에게도 인문학 책 읽기는 필요합니다. 경제·경영이나 자기 계발서들이 직장인들의 실무역량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실용서라면 인문학 책들은 이의 배경이나 근본이 되는 것이지요. 축구나 야구, 농구 등 운동 선수들에게 테크닉 못지 않게 기초체력이 중요하듯, 직장인에게도 인문학의 굳건한 배경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IT컨설팅 기업인 이씨마이너 이사 이동환(49·사진)씨는 인문학 책읽기 예찬론자다. 치열한 생존경쟁 시대, 직장인들의 삶이 각박하고 힘겨워질수록 인문학 책읽기는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흔히 인문학은 실용성과 거리가 먼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향후 경쟁력의 관건인 창의와 상상력의 에 관건이 되는 분야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원천이라는 것이다. 특히 직장 업무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소통과 가로지르기가 필요한 때, 인문학의 효용은 더욱 커진다고 강조한다.

 

이씨의 이 같은 주장은 말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가 지난해 읽은 책은 모두 180여권. 이 중 절반 이상은 묵직한 인문학과 과학 분야 책이다. 지난 6월 읽은 15권의 책 중에서 ‘버자이너 문화사’(앨토 드랜스 지음, 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컬처 코드’(클로테르 라파이유 지음, 김상철·김정수 옮김, 리더스북) 등 6권이 인문학 책, ‘리처드 도킨스’(앨런 그래펀 지음,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 등 4권이 과학 책이었다.

이씨가 처음부터 실용성을 위한 인문학 책읽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벗어난 지 20여년, 직장 생활을 할수록 공허해졌고, 인간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대학에서 행정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인문학 책읽기에 빠져든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생기기 시작한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재미와 지적 만족을 위해 시작한 인문학 독서가 직장 생활에도 효용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하는 IT기업의 컨설팅 업무에서 일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던 인문학이 만만찮은 저력이 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얻은 지식들은 우선 고객과의 대화에서 신뢰를 담보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컨설트 대상 기업의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할 때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도 인문학 책을 읽으며 수없이 경험했던 지적인 과정과 다를 게 없었어요.비록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한 단계만 더 나아가면 인문학 책은 수준 높은 실용서였습니다.”

인문학 책은 또한 빼어난 자기계발서이기도 했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들이 몇 줄이면 요약가능한 자기계발서에 적힌 이야기와 비교할 바 아니었다. 그가 주로 책을 읽는 때는 출퇴근 시간,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너무 어려운 책을 대할 땐, 이와 비슷한 분야의 책 중에서 좀 쉬운 것을 골라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참고도서 서너권을 읽는 때도 많았어요. 그 책이 좋으면 관련 저술을 모조리 찾아 읽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지요.”

이씨는 3년 전부터 YES24 블로그에 둥지를 마련, 서평을 올리고 있다. 읽은 책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가 지난해 올린 서평은 모두 90여편, 독자도 많이 생겨 지금까지 방문자가 6만명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월요일엔 야학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토요일마다 자원봉사를 한단다.

특정 분야의 책을 20권 정도 읽으니까 체계를 갖춰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50권 정도 읽으니까 강의를 할 수 있게 되더군요. 100권 정도 읽으면 책도 쓸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 역사와 고고학, 인류학, 지리학, 기후학, 생물학 등등을 크로스오버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김종락기자)

07.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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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8-28 11: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런 고비를 넘겨야하는데, 일터 일상에서 동화같은 실용서도 읽지못하거나, 읽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그 경계선을 넘어서거나 넘도록 만드는 이런 기사가 고맙네요. 인문학 책을 읽으라는 빌미가 마땅하지 않았는데, 이 참에 빌미를 만들어가네요. 이번주 회식때나 한번 써 먹어 봐야겠군요. ㅎㅎ

로쟈 2007-08-28 18:17   좋아요 0 | URL
맘만 먹으면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07-08-28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28 18:18   좋아요 0 | URL
이건 뭐 신문기사 옮겨온 것뿐인데요...

라주미힌 2007-08-28 16:48   좋아요 0 | URL
아니.. 대학교에서도 멀리하는 인문학을, 인문학의 실용성을 직장인들이 찾다니(저도 그러고 싶은 ^^).. 재밌는 기사네요.

로쟈 2007-08-28 18:19   좋아요 0 | URL
인문학도 꽤 재미있잖아요.^^

비로그인 2007-08-28 19: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로쟈님.
저도 인문학 마냥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는데요,
왠지 희망이 보이는 페이퍼라고나 할까요? ㅎㅎ

로쟈 2007-08-28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대단한 일을 한 건가요?^^;

마늘빵 2007-08-28 21:10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하고 있는 것만 끝내고, 이런데 다니면서 취미로(?) 공부하고 싶어요. 찾아다니면 요새는 정말 갈 곳 많더라고요. 철학아카데미, 아트앤스터디, 한겨레문화센터 등등.

로쟈 2007-08-28 23:49   좋아요 0 | URL
너무 많아도 탈이죠.^^;

심술 2007-08-28 22:38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동환 님은 저 많은 넥타이 부대 가운데 누구예요?

로쟈 2007-08-28 23:49   좋아요 0 | URL
전혀 무관한 사진입니다.^^;

섬나무 2007-08-29 12:26   좋아요 0 | URL
주변의 아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문학 읽기를 합니다. 일하는 주부들이 주류입니다.
인문학자들이 말한 인문학의 위기는 이제 상아탑이 아닌 저자거리에서 출구를 찾을듯합니다.
이 세상에서 흔적이 사라지는 일은 온전히 살아남기보다 불가능한 일일테니까요.
위기론들은 변주를 위한 서주 같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07-08-29 19:38   좋아요 0 | URL
저도 일반인 대상 강의를 하는데, 오히려 대학생들보다 열심히들 들으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