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이경민의 <제국의 렌즈>(산책자, 2010)에 대한 것이다. 저자의 전작인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이 사진으로 보는 '근대 문화사'라면, 이번에 나온 신작은 사진으로 보는 '탈식민주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하다. 이미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책이어서 따로 리뷰거리를 골라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겨레21(10. 04. 19) 그들이 편집한 한국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이미지는 어쩌면 사진이 만들어낸 표상 효과일지도 모른다.” 근대 사진에 투영된 ‘재현의 정치학’을 살피는 <제국의 렌즈>(산책자 펴냄)의 문제의식이다.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식 체계 또는 표상 방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정의한다면, 근대적 학문체계가 수립되는 시기에 발명된 사진술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유력한 수단일 것이다. 독일어로 ‘앞에 세움’(Vorstellung)이란 뜻을 가진 ‘표상’ 혹은 ‘재현’의 가장 대표적인 매체가 사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의 사진 아카이브가 근대 학문과 마찬가지로 지배 권력의 통제 기술로 활용돼왔다고 지적한다. 누가 사진기 앞에 세워지며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가란 문제에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근대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일은 우리 스스로 재현의 주체가 되지 못한 시대였다는 점이다. 일본과 서양이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 가지 사례를 따라가 본다.   

먼저, 사진술에 늦게 접한 탓에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을 촉탁사진사로 고용해야 했던 조선은 황실의 이미지메이킹을 조선 통감으로 부임해온 이토 히로부미에게 내맡긴 형국이었다. 사진의 표상 효과에 일찍 눈뜬 이토는 조선 책략의 의도를 담아낼 수 있는 표상을 무라카미에게 주문했다. 1907년 일본 황태자의 한국 방문 기념사진은 그러한 표상의 일례다. 화면의 중심에 팔을 허리에 올리고 발뒤꿈치를 약간 벌린 황태자 요시히토를 세워놓음으로써 부동자세로 찍은 순종과 영친왕보다 그가 더 당당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1909년 조선에서는 전례가 없던 순종 황제의 남도(南道) 순행도 모두 이토에 의해서 기획된 시각적 스펙터클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적 표상화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 하에 대한제국의 재현 체계가 일제의 재현체계 안에 포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일본 인류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도리이 류조의 조선조사 사진들은 사진이라는 ‘재현의 창’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도리이가 형질인류학적 맥락에서 촬영한 신체 측정 사진들은 조선인을 ‘조선 인종’으로 호명하고 조선반도의 ‘원주민’으로 표상했다. 그의 인류학적 사진 속에서 조선인의 ‘몸’은 일본민족의 인종적 우월성과 대비되는 한 원시성과 야만성, 전근대성과 반문명성의 몸이었다. 그는 함경북도에서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조선인 모습을 사진에 담았지만 그가 본 조선은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이었다. 비록 일본 학계가 최근에 와서 근대를 표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하고는 있지만 제국주의시대에 식민지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 숨긴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는 데는 인색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조선을 대상화한 타자의 시선은 물론 일본만의 것이 아니었다. 1892-94년까지 부임했던 프랑스의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댕은 사진 150점이 부착된 두 권의 사진첩을 남겼는데, 그가 보기에 한국은 무엇보다도 ‘진흙과 새끼줄의 나라’였다. 한국의 ‘원시적’ 건축술을 프랑스와 비교한 그는 인종과 풍속, 문화 모든 방면에서 문명과 야만의 잣대를 가지고 한국을 폄하했다. 한국의 의식주에서 불결함은 고질적이고, 남녀의 복식은 야만스러움과 기괴스러움 자체라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최고선으로서 문명화를 위한 서구의 지배는 불가피한 숙명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렇듯 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담론과 이미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으로 ‘재표상’된다는 점이다. 곧 우리가 보는 한국은 ‘그들’이 ‘편집’하고 ‘마사지’한 한국인 셈이다. 한일병합 100년을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재현의 정치학을 음미해야 하는 이유다. 

10. 04. 12.   

P.S.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리보다 한발 앞선 일본의 '재현의 정치학'이다. 메이지 천황의 어진영부터가 활용대상이 되는데, 이에 대한 책들이 번역돼 있다. 타키 고지의 <천황의 초상>(소명출판, 2007)은 <제국의 렌즈>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그밖에 와카쿠와 미도리의 <황후의 초상>(소명출판, 2007)과 가와무라 구니미쓰의 <성전의 아이코노그래피 - 천황과 병사, 그리고 전사자의 초상과 표상>(제이앤씨, 2009)도 이 분야의 참고할 만한 책이다. 여기서도 '일본이라는 방법', 곧 '편집공학'을 떠올리게 된다. 요컨대 '문화학'을 '표상문화론'으로, '역사학'을 '역사정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본식이고 일본이라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방법이야 요즘에서는 PR과 광고마케팅의 '기본'이 돼 있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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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모드에 빠져 있다가 조금 기운을 내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을 펼쳤다. 화급한 일이 너무 많다 보면 자포자기가 돼 오히려 여유가 생긴다. 저자는 서장에서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추리소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 얘기를 꺼내는데, 기억엔 초등학교 때 읽은 듯하다(그러니 30년 여년 전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펭귄클래식으로 새로 나온 <바스커빌 가문의 개>(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해설에 따르면, "여러 측면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진정한 네오고딕 양식의 탐정소설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공포영화로 만든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모든 홈즈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흠,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군.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 겸 독서부장을 하면서 학급문고로 읽은, 나폴레옹 솔로 주인공의 첩보소설들도 잠시 떠올렸다. 원작자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읽으면 얼추 상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JP 모건이 미국 남북전쟁 때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읽다가(북군에게 총을 사들였다가 6배의 가격으로 되팔았다. "한마디로 영약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 일당"이었다)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2010)에는 어떻게 나오나 살펴봤다. 3권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에 잠깐 이름이 비치는데, 론 처너의 책 <모건가>(1990)을 인용하고 있다(참고문헌에 서지가 빠져 있다. <금융제국 JP 모건>(플래닛, 2007)으로 번역된 책이다).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3)에 대한 얘기다.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은, 그는 남북전쟁을 봉사의 기회가 아닌 돈벌이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여느 유복한 집안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이 피어폰트도 게티즈버그전투 이후 징집되었으나 300달러를 주고 자신의 대역을 고용했다. 불공정한 이 일상적 관행은 1853년 7월에 일어난 징집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징집폭동이란 링컨의 징집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 항의시위가 일부 지역에서 폭동으로 전화된 걸 말한다. 또 한 대목은 허버트 스펜서와 윌리엄 섬너의 사회진화론의 유행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187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국에서는 스펜서의 학설이 내리막길에 서게 됐지만 미국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1860년에서 1900년까지 50만권 가량이 팔려나갔는데, 요즘 기준으론 수백만 권에 해당한다고. 이유는 짐작대로, 부자들이나 부자 지망생들에게 어필했기 때문("부자 되세요!"가 인사말인 사회에서 스펜서나 섬너의 책이 소개되지 않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이미 체화하고 있기 때문일까?). 

"존 D. 록펠러나 J.P. 모건 등과 같은 거대 부자들이 '가난에서 부유함으로(from rags to riches)'의 본보기로 부각되면서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의 결함 때문이라는 사상이 풍미했다."

'미국의 스펜서'라고도 불렸다는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1840-1910)는 어떤 인물인가?  

엄격한 청교도인 섬너는 2년간 미국 성공회의 목사로 목회를 한 뒤 1872년 예일대 정치학 및 사회과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대표작으로는 <사회계급들이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1883), <사회적 관행>(1906) 등이 있다.

당면한 사회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거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보를 이룩할 수 없다고 믿었다는 섬너의 주장을 강준만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특별한 창조라고 하는 종교적 교리를 포기하면서 확신에 찬 진화론자가 된 섬너는 노골적인 '부자옹호론'을 폈다. 그는 "백만장자는 자연도태의 산물"이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선정된 사회의  대행자로 보는 것이 마땅하며, 그들의 존재는 사회적으로도 이로운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로도 분류되는 섬너에게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걸로 간주된다.  

"인간의 삶에 따르는 고통은 자연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과의 투쟁을 통해서 생존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고통을 받는다 해서 그것을 이웃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누구도 남에게 도움을 청할 권리가 없고 또 어느 누구도 타인을 도와야 할 부담을 지지 않는다."

몰인정한가? 하지만 더 나쁜 사회는 자연적인 경쟁을 독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강자' 혹은 '부자'를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사회다. <미국인의 역사>(비봉출판사, 1998)의 저자 앤디 브링클리의 지적이다.  

"사회적 진화론은 대기업 중심 경제현실과 많은 관련이 있는 이념은 아니었다. 동시에 기업가들은 경쟁과 자유시장의 덕목을 찬양하면서, 자신들을 경쟁에서 보호하고 시장의 자연적 기능을 자신들의 거대한 기업연합의 통제로 대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스펜서와 섬너가 찬양하고 건전한 진보의 근원이라 불렸던 사악할 정도로 투쟁적인 경쟁은 사실 미국 기업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면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권용립 교수에 따르면, 섬너의 사회진화론은 '개인 책임주의'를 역설한 것으로 그는 '자연적 독점'에는 찬성했지만 보호관세나 제국주의 정책 같은 '인위적 독점'에는 반대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인 그가 '반제국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사회진화론의 양면성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사회진화론은 쇠퇴했는가? 경제학자 갤브레이스의 대답은 다르다. "아무도 스펜서나 섬너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아직도 부자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거지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를 억제시키고 있다."(<불확실성의 시대>)  

이런 정도까지 읽고 윌리엄 섬너를 검색해보다가 관련 신간이 나온 걸 알게 됐다. 미국 대공황기의 역사를 다시 짚어본 애미티 슐래스의 <잊혀진 사람>(리더스북, 2010)이다. 뉴딜 정책의 허와 실을 분석하고 있는 책으로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당시 뉴딜 추진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유익한 손'을 옹호했다는게 저자의 시각이다. 자유주의 경제를 비도덕적으로 여기며 유권자를 중요시하는 경제정책을 펼쳤다는 것. 소련의 집산주의 모델에서 영향을 받은 전국부흥청이나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 등 규제·원조·구호 기관을 통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미국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했다고 본다.

일부 정책들은 경제에 활력을 넣으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거기에 투입된 정부 지출을 감안할 때 완벽하게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민간 부문의 활동을 억누르는 다양한 제도와 계속되는 세금신설로 기업을 압박했고 기업 활동은 더 위축됐다. 결국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더 깊고 오래 유지시키는 데 일조한 셈이라는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뉴딜 시대의 희생양은 누구인가. 저자는 당시 앨런 그린스펀 격인 앤드루 멜런을 거론한다. 그는 하딩과 쿨리지 및 후버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며 시장주의를 고수했지만 정부는 그를 기소했다. 또 뉴딜 담당자들이 대폭락의 책임을 전가한 유틸리티 업계의 거물 새뮤얼 인설, TVA의 전력산업 국유화에 대항했던 민간회사 커먼웰스앤드서던의 웬델 윌키 등도 희생양으로 거론한다.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던 시기에 정부정책으로 어린 가축까지 죽여야 했던 농민, 양계업자 등 유명무명의 사람들도 예로 든다. 저자는 이들을 '잊혀진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거시경제적 집단들 틈에 끼여 잊혀져 버린 미시경제적 주체'라고 설명한다.

대공황이 시작되기 50여년 전인 1883년.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예일대 교수는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이라는 논문을 통해 정부정책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사회적 프로젝트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책의 제목 '잊혀진 사람'은 여기서 나왔다.(한국일보, 오미환기자)

 

하여, 예기치 않게도 오늘의 인물은 윌리엄 섬너, 오늘의 상식용어는 '잊혀진 사람'이 됐다. 다시 <제1권력>으로 돌아가거나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다시 읽거나, 바우만의 <액체근대>를 읽어야겠다. 아니 그보다 더 급한 일들을 빨리 처리해야 할 텐데... 

10. 04. 11.  

P.S. '잊혀진 사람' 대신에 '잊혀진 여인(The Forgotten Woman)'을 따로 고르자면, 히로세 다카시가 헐리우드 영화사의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언급한 '잇걸It Girl' 클라라 보우(1905-1965)다.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적인 육체파 배우였다고. 어쩐지 이미지는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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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1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인가 2008년 무렵 이상돈(중앙대 법대 교수)이 월간조선에 연재한 글 중에 잊혀진 사람을 꽤 길게 언급하면서 뉴딜을 비판하더군요.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는 측에서 보는 뉴딜관입니다.물론 좌파들이 뉴딜을 비판하는 것은 각도가 또 다르지요.

로쟈 2010-04-12 17:29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정상적인 보수라면 '4대강'에도 반대해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입니다. 좌파와는 다른 이유에서요...
 

이번 학기 강의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읽을 분량이 점입가경이다. <오블로모프>, <무엇을 할 것인가>, <악령>같이 평소에 잘 다루지 않거나 오래전에 다룬 작품들을 집어넣은 탓에 독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강의를 위해선 2차 자료도 읽어야 한다). 원고 때문에 <제1권력>과 <금융제국 J.P 모건>, <부의 제국 록펠러> 같이 '과다한' 분량의 책들도 읽어야 하고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도 정독해야 한다. 거기에 미시마 유키오가 얹어진다. <가면의 고백>을 강의에서 다루지만,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를 이번에 읽어야 하고, 어제는 <가면의 고백> 영역본과 함께 영어판 전기까지 대출해왔다(예전에 서재소개로 썼던 문구이지만, '책읽는 로쟈'도 어디 가서 구해와야 할 판이다). 기한을 넘긴 시급한 번역들을 제외하고도 일이 그 모양이니 '젠틀'하게 미칠 지경이다. 책을 너무 읽어야 해서 자살하는 경우는 없나 모르겠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6년 3월
19,500원 → 17,550원(10%할인) / 마일리지 9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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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고백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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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6,900원 → 6,210원(10%할인) / 마일리지 3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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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틀거리는 여인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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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9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9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토벤 2010-04-09 13:16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었나에 미시마의 '우국'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할복장면이 리얼하게 묘사되었었는데 동기는 조금 다르지만 황군 장교의 자살이라는 측면에서 미시마의 죽음이 오버랩되어서 미묘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수년전에 단편영화로도 상영되었지요.

로쟈 2010-04-11 23: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어보려고 해요. 영화도 찾아봐야겠네요...

easybird 2010-04-09 14:26   좋아요 0 | URL
정작 원작은 읽어보지 못하고 이치가와 곤 감독의 영화 '금각사'와 '아주까리 신풍'이라는 김지하의 시만 생각나네요.. 왠지 거부감이 들어 손이 잘 안 가더라구요

로쟈 2010-04-11 23:40   좋아요 0 | URL
<금각사>는 저도 오래전에 영화로 잠깐 본 기억이 있습니다. 국내에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 듯싶지만, 영어권에선 일본의 대표작가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09 16:35   좋아요 0 | URL
미시마의 저 삼두근! 그리고 이글이글 타는 듯한 저 눈! 우익 천황주의 작가와 좌익학생들 간에 저런 불꽃 튀는 논쟁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20세기 지상사의 대사건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로쟈 2010-04-11 23:40   좋아요 0 | URL
두께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강의 때문에 좀 읽어보게 됐습니다...

카스피 2010-04-09 21:39   좋아요 0 | URL
이 작가 할복한 사람이지요.멋지게 할복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안됬다는 후문이지요.사실 할복은 배를 갈라서 죽기 보다는 뒤에 서있는 사람이 배를 그은면 단칼에 목을 베어서 죽인다고 하더군요.
배를 갈르면 고통만 있을뿐 단번에 죽질않아서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면 고통을 참을수 없기에 상당히 많이 괴로워해서 할복으로서 의미가 없어지기에 일부러 뒤에서 목을 베다고 합니다.

로쟈 2010-04-11 23:42   좋아요 0 | URL
네, 미시마의 경우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몇년 전 영화에서 사무라이 할복 장면이 나올 때에야 그게 어떤 건지 알았습니다...

반딧불이 2010-04-09 23:17   좋아요 0 | URL
ㅎㅎ..로쟈님의 이런 즐거운 엄살(?) 저는 처음봐요.독서량도 놀랍지만 독서능력도 부러우면서도 '젠틀하게 미칠지경에'공감할 수 있습니다. 책을 너무 읽어야해서 자살한 경우, 소식 접하면 바로 알려드립죠. 저보다 로쟈님이 더 빠르시겠지만요.^.*

로쟈 2010-04-11 23:42   좋아요 0 | URL
엄살로 끝나면 좋겠는데, '민폐'를 수반해서요.--;

픽션들 2010-04-10 08:01   좋아요 0 | URL
특히 눈을 혹사하게 되는데, 로쟈님의 특별관리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20년 전, 일본어를 공부할 때 일본어 선생에게,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으니, "일본에서는 오히려 인기가 없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게 저는 이상하게 생갑됩니다."


로쟈 2010-04-11 23:44   좋아요 0 | URL
관리 잘 안됩니다. 환절기나 피로할 때마다 결막염에 시달리니까요.--; 한국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진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해요. 별로 나온 책이 없으니까요. 영어본이나 러시아어본에 비교해서 그렇습니다...

푸른바다 2010-04-12 10:29   좋아요 0 | URL
금각사는 제가 처음 읽은 일본 소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였던 듯 싶은데 상당히 짜임새 있고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시마가 할복했다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뒤에 붙은 책 해설에서 셋푸쿠를 강행해서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말이 씌여 있었는데도 셋푸쿠가 할복인지 몰랐었던거죠...^^ 섬세한 작가정신과 극렬한 국가주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깊이 생각해 보지는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전 이런 사람들 무섭습니다^^

로쟈 2010-04-12 12:23   좋아요 0 | URL
유튜브에서 영화 <우국>을 봤는데, 여하튼 독특한 작가입니다. 이미 정신분석들도 나와 있지만...

dalileo 2010-04-15 10:48   좋아요 0 | URL
Yasumasa Morimura라는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로 변장해 퍼포먼스를 해 비디오와 사진으로 만든 작품이 있습니다. 미시마에 대한 오마쥬로 만들었고, 전후 일본이 미국의 지배아래 점점 여성화(특히 맥아더 장군과 히로히토 천왕의 사진이 상징하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미국과 수동적이고 여성화되어가는 일본이라고 주장)되어가는 일본을 다시 강한 남성성으로 끌고 나온 인물이라는 설명을 Columbia 대학 Donald Keene Center of Japanse Culture에서
했습니다. 참석한 많은 일본인들이 박수를 치는데 전 좀 무섭더라구요.

로쟈 2010-04-15 22:39   좋아요 0 | URL
일본문학을 몇 작품 읽으면서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특히나 사생관은 우리와 너무 대조적이어서요...
 

엊그제 강의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다시 읽었다. 거의 20년만에 읽은 셈이니 어렴풋한 인상 정도만을 갖고 있었을 따름이고, 세부적인 내용은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교재로 사용한 건 <인간실격/사양>(문예출판사, 2009[2003])인데,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잘못이었어요."
마담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우는 아주 정직하고 영리하고, 술만 그리 마시지 않았다면, 아니, 술을 마셔도, ... 천사같이 착한 아이였어요."(오유리)

이것만 읽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주인공 이름 '요우'는 다른 번역본들과 대조해보건대, '요조'라고 해야 맞다), <인간실격>(민음사, 2009[2004])도 같이 읽은 게 화근이었다. 이렇게 끝난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김춘미)

일어에서는 그런 표현도 쓰는 모양인데, '하느님같이 착하다'란 게 말이 되는지 궁금했다. '천사같이 착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도 같지만, 나의 직관으론 한국어에서는 가능하지 않거나 어색한 말이다. 다자이의 간략한 전기를 포함하고 있는 소개서 <자화상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살림출판사, 2008)에서는 이 대목을 이렇게 옮겼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빠요."
태연스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짱은, 무척 얌전하고 아주 눈치 빠르고, 그냥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나님처럼 착한 아이였습니다."(유숙자) 

짐작에 일어 원문은 '하느님같이'('하나님같이')로 옮겨질 수 있고, '천사같이'라고 옮기는 건 의역이 아닐까 싶다. 다른 번역본들을 조금 더 뒤져봤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빴어요."
그리고 마담은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짱은 온순하고 재치 있는, 거기다가 술만 안 마신다면... 아니, 술을 마셔도 정말 훌륭한 좋은 사람이었지요."(을유문화사판)  

"그 사람의 아버님이 나빠요."
마암이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요조는, 정말로 착하고, 경우가 바르고,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니, 마셨다 하더라도, 하느님같이 착한 사람이었어요."(웅진지식하우스판)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요짱은, 정말 순진하고, 또 남을 생각하고, 정말이지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아니 마셨어요,... 하느님같이 좋은 애였어요."(제이앤씨판) 

작품에서 '인간실격자'로 지목되는 주인공 오바 요조에 대한 마지막 인물평이기도 해서 음미해볼 만한 대목인데(요조는 다자이 자신의 자전적 분신이기도 해서 이 인물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나로선 '천사같은 아이'와 '하느님같은 아이'의 의미가 동일하게 여겨지질 않아서 어떤 해석이 타당한지 궁금하다. 다들 일어라면 자신 있는 분들의 번역일 테지만, 이 번역만 갖고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혹 일어를 아시는 분이라면 댓글로 도움을 주셔도 좋겠다. 참고로, 오늘 팩스로 받아본 영역본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It's his father's fault," she said unemotionally. "The Yozo we knew was so easy-going and amusing. and if only he hadn't drunk - no, even though he did drink - he was a good boy, an angel." 

인용한 건 1958년에 나온 영역본인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의 영역본이 별로 좋지 않았던 걸로 보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건지는 의문이지만, 여하튼 영역본은 "그는 천사와 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정도로 옮겼다. 사소한 문제에 과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학 전공자들은 원래 이런 문제에 예민하기 마련이다... 

10.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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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2234 2010-04-09 00:40   좋아요 0 | URL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저는 전공자도 아니고 일어도 잘 모릅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몇 자 적어봅니다.

1. 오유리 선생님의 '요우'도 틀린 번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문에는 '요짱'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건 다들 아시다시피 요조의 애칭입니다. '요짱'이라고 번역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 '요조'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고, '요'(요우)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러므로 요조, 요(요우), 요짱 모두 가능한 번역이라고 봅니다.


2. '하느님' '하나님' '천사'로 번역된 단어는 한국어로는 주로 '신(神)'으로 많이 번역되는 ’神様(kamisama)'라는 단어입니다. 원문대로라면 'kamisama 같은 착한 아이였어요(神様みたいないい子でした)'라고 번역되는데요. kamisama를 어떻게 번역해줄 것이냐가 여기서 문제가 되네요.

'하느님 같다' '신 같다'라는 말 자체에 이미 완전한 인격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이므로 '마치 하느님 같은 아이였어요'라고 '착한'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번역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아니면 '마치 천사 같은 애였어요'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로쟈 2010-04-09 00:5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위키에는 이렇게 설명해놓았네요.
Kami-sama (神様) is the Japanese word for "deity". The word is used to indicate any sort of god, beings of a higher place or belonging to a different sphere of existence, or the Christian-Judeo God.
문화적 차이 같은데, 저는 '하나님같이 착한 아이' 같은 비유는 한국어 어법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df2234 2010-04-09 01:13   좋아요 0 | URL
하느님 같은 사람, 이라는 말은 어색하게 들리지 않고 천사 같은 사람, 천사 같은 아이, 라는 말도 그닥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하느님'과 '착하다'는 일종의 연어로서 사용하기 영 어색한 것 같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처음 일본어 성경을 봤을 때 꽤 충격적이었는데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대목이 '태초에 '신(神)-kamisama도 아니었습니다-'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되어 있었거든요.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이 '팔백만'이나 된다고 하니 절대자를 그 팔백만 신과 동등한 '글자'로 나타내는 듯해서 매우 재밌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했답니다.^^

로쟈 2010-04-09 09:07   좋아요 0 | URL
영어에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he was like an angel' 정도로밖에는 옮길 수 없을 듯하니까요

조선인 2010-04-09 08:37   좋아요 0 | URL
번역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일본엔 착한 여우신도 있고, 나쁜 여우신도 있잖아요. 카미사마는 그중에서도 착한 쪽... 우리나라로치면...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산신령 느낌이랄까?

로쟈 2010-04-09 09:08   좋아요 0 | URL
'착한 산신령 같은 애였어요'라고 하면 말이 되네요.^^

비로그인 2010-04-09 14:43   좋아요 0 | URL
원문은 이렇네요.
「あのひとのお父さんが悪いのですよ」
 何気なさそうに、そう言った。
「私たちの知っている葉ちゃんは、とても素直で、よく気がきいて、あれでお酒さえ飲まなければ、いいえ、飲んでも、……神様みたいないい子でした」

본문을 안 읽어봐서 맥락에 따라 인물의 성격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이 부분만 보면 성격묘사는 제이앤씨판이 가장 무난해 보여요. 하느님이든 천사든 굉장히 착해 빠진 인물과 호응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리고 역시 본문에 기독교적 편향이 나타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부처님같이 좋은/부처님 같은 애/이였어요"라고 하면 좀더 와닿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작가의 종교 소속과 무관하게 일본인이 쓰는 '신'이란 관념은 현대 한국인만큼 곧바로 기독교적인 뉘앙스를 연상시키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요.

이상은 모두 개인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로쟈 2010-04-11 23:27   좋아요 0 | URL
일어도 잘 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09 16: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일본인이 말하는 카미사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하느님-하나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다신교의 나라인 일본이니까요.

로쟈 2010-04-11 23:27   좋아요 0 | URL
네, 이런 대목에선 문화적 차이가 확연합니다. 생사관에서도 그렇지만...

시고 2010-04-10 05:11   좋아요 0 | URL
제 일어 경험에 따르면, 神(kami)란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신령스런 존재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서라면 원시 무속 신앙에서의 '하늘'쯤 될까요. 보통 '하늘이 지켜본다' 라거나 '하늘이 노하셨다'같은 표현에서의 경외의 대상에 해당하는...
(게다가 일본에서는 이런 류의 신적 존재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많으니까요. 굳이 '인간에게 해가 되는 쪽'이라면 '怪'에 해당하는 '모노노케'나 '아야카시'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둘이 실제 일본에서 거의 항상 '惡'의 영역이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지요. 파고들면 재밌어요. 번역하기는 난감하지만. ^^;)
원문의 뉘앙스를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번역문의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도 있으니 섣불리 단정은 못하겠습니다만, 저 문장만 놓고 봤을 때 제겐 '문예판, 민음판, 웅진판'을 서로 참조하면 좋을 듯 하네요.

저는 윗분들 댓글 보면서 오히려 '마치 하느님같은 아이'라는 표현이 원문의 뉘앙스와는 좀 거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하느님같은 아이'라고 하면 어쩐지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라서, 너무 고귀하달까요.

저는 대략...저 원문의 의미가 이렇다고 생각합니다.(어느 정도 의역해서)
"그이 아버지가 나쁜거예요. - 아무렇지 않은 양, 그리 말했다. - 저희가 알고 있는 요우는, 무척 솔직하지, 똑부러지게 야무지지, 거기에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죠, 마신다고 해도, ... 정말이지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애였답니다."

'카미사마같이 착한 애'였다는 건 실제로 그가 어떤 완벽함(도덕성 혹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일부러 깍아내릴 필요가 없는 그라는 존재 자체로 있는 것이 허용된다는 류의 (상대적)절대성을 품고 있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뉘앙스로 치자면 말이죠. (이런 얘기엔 늘 조심스러워져서;;) 일본의 '카미'란 108신이라는 말처럼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서 '절대성'보다는 '일상성'을 근저로 하고 있으니까요.(그렇기에 '카미'는 언제든 선과 악을 오갈 수 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지요.)

마담에게 있어 요우짱은 똘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미지가 강한 거겠죠, 분명. 그러니 남들이 뭐라든 그에겐 늘 좋은 아이로 남는 걸테구요.

비로그인 2010-04-11 09:42   좋아요 0 | URL
끼어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번역본에 대한 평가가 달라서 굳이 말씀을 붙이겠습니다. 마지막 문장의 의역이 그렇게까지 필요한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지만 위 번역본들보다는 성격해석에서 원 단어의 뉘앙스를 살리신 것 같아서 자연스럽네요.

다만 다른 분들을 위해 단어의 원 의미와 뉘앙스에 대해서 조금 보충하고 싶습니다.

素直는 양심에 따른 말과 행동을 한다는 일종의 윤리적 덕목을 내포할 수 있는 '정직'(일어에 '정직하다'란 단어도 따로 있고요)보다는 더 직접적인 성질을 가리키는 편이죠. 아이들의 성격을 가리키는 데도 잘 쓰이듯이. '솔직'(이것 역시 '솔직하다'란 단어가 따로 있긴 합니다)은 '정직'보다는 더 나아 보이지만 저는 솔직하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당돌함이나 당당함 따위의 느낌을 素直에서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일어 단어는 '고분고분하다', '부드럽다' 등과 연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온순하다', '얌전하다'가 가까워 보이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 싶고 '순수하다'도 그에 직접 상응하는 일본어가 있는데 본문 캐릭터 묘사에 따라 가능하겠지만 단어만을 놓고 보면 조금 튀는 감이 없지 않네요(素直를 일본사람들이 자주 쓰듯이, 인간에게 순수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이들에겐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気がきいて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야무지다'도 충분히 어울리지만 '야무지다'는 뭔가 자기 앞가름을 잘하는 식의 근면함(일종의 덕목)을 떠올리게 하는데, 과연 주인공이 그런 성격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거니와, 気が利く는 '눈썰미가 있다', '세심하다' 따위가 더 어울려 보입니다. 특히 '세심하다'의 의미일 때는 대개 자신의 일에 대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에 그렇게 할 때 술어로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위 번역들 중 '영리하다'는 利口だ와 혼동한 게 아닌가 싶고 '눈치 빠르다'는 약삭빠르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보태어지고(인물이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단어만으로는 그런 뉘앙스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마담의 언어생활이 홍상수적이면 몰라도), '재치있다'는 영어도 amusing으로 번역된 걸로 봐서는 본문의 캐릭터 묘사를 통해 조금 의역한 듯하고, '경우가 바르고' '남을 생각하고'는 (본문을 읽지 않고 단어에 대해서 느끼는)제 생각과 가장 가깝지만 조금 순화된 번역어인 듯 싶습니다.

아무튼 본문을 직접 읽고 주인공의 행적을 좇아봐야겠습니다. 아울러 마담의 너그러운 연민에 대해서도 공감을 해야겠고요. 그럼 인간을 더 사랑할 마음이 생길라나요? 로쟈님은 어떻든가요? ^^

로쟈 2010-04-11 23:27   좋아요 0 | URL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시고 2010-04-13 13:12   좋아요 0 | URL
제레카폴님의 뉘앙스에 대한 설명에 동의합니다.
저도 저 문장에서 그 두가지 용어가 맘에 걸렸거든요. 참, 저는 '하느님같이'라는 표현이 일본 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려고 하다보니 의역이 과해졌습니다.
(그나저나 다시 읽어보니 기존 번역본 전부 나름 고심한 흔적이 보여 한 두가지로 꼽는 게 잘못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단지 저는 '솔직하다'는 표현이 한국에서 당돌한 이미지로 굳혀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선택했는데...이 부분은 개인에 따라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군요.

'気がきいて'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확실히 일본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 좀 더 가까운 세심함과 꼼꼼함을 일컫는 말이지요. 저는 마담이 요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아줌마들이 아이들의 꼼꼼함을 칭찬할 때 쓰는 말로 '야무지다'를 골라봤습니다. 하지만 사실...불충분한 표현이죠. ^^; 제레카폴님 의견대로 '세심하다'가 사전적 의미로 걸맞으니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겠네요.

비로그인 2010-04-13 15:07   좋아요 0 | URL
리린님 댓글 위에 있는 제 댓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어디까지나 본문을 안 읽고 주관적으로 느낀 판단이니까요, 아마 '솔직하다'를 비롯해 기존 번역본들의 술어가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하다에 당돌함 따위를 연관시키는(항상은 아니지만) 건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편견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서재 주인께서 번역과 관련해서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 말을 꺼내볼 수 있는 판을 가끔 열어주시는 바람에 제가 좀 오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양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픽션들 2010-04-10 07:54   좋아요 0 | URL
리린님의 번역 제일 마음에 듭니다^^
 
인디고의 유쾌한 문화혁명

강의가 있어서 저녁을 일찍 먹었더니 끝나고 나서 허기가 졌다. 자정이 다 돼 귀가해 라면을 끓여먹고 또 내일 강의 준비를 하기 전에(아직 책도 다 안 읽었다) 잠시 숨을 돌린다. 어제, 아니 그제 저녁 다지원 강의가 끝나고 인디고 유스 북페어 프로젝트팀이 만든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를 뜻밖의 선물로 받았는데, 다시금 무릎에 놓는다. '새로운 시대의 가치혁명을 위하여'는 그 부제다.

 

그제 버스 안에서 서서 오면서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영국 리즈 자택에서의 대담을 읽고 부듯해한 기억이 떠오른다(강의와도 연관이 있어서 하워드 진보다 바우만을 먼저 읽었다). 바우만 교수로선 한국인과의 만남이 아마도 임지현 교수와의 대담 이후에 처음이 아닐까.    



한국의 청소년들이 세계적인 석학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질문을 던지고 성실한 답변을 받아오는 일련의 과정이 아름답고도 대견하게 그려져 있다. 인디고의 유스 북페어는 격년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지난 2008년에 펴낸 책은 <꿈을 살다>(궁리, 2008)이다. 인디고에 관한 기사를 두어 차례 옮겨놓은 적은 있지만 직접 '인디고 아이들'이 펴낸 책을 보니 기대 이상이다. 나머지 대담들을 마저 읽게 되면 소감을 적기로 하고 일단은 간단한 소개를 옮겨본다.  

이 책은 전세계 6대륙에 하나의 가치쌍을 연결하여 살펴보고 있다. 북아메리카-정의와 희망, 아시아-평등과 다양성, 유럽-자유와 자기실현, 아프리카-공동체와 민주주의, 오세아니아-생명과 자연, 남아메리카-사랑과 아름다움이다. 그 대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 그 대륙과 연결한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며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학자,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사회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 또는 단체들 특히 청소년, 청년팀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다. 

그 '실천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노엄 촘스키나 마서 누스바움, 그리고 올해 초에 타계한 하워드 진이 포함돼 있다. 몇 번 써먹은 사진을 한번 더 우려먹는다. 정말로 보기 좋지 아니한가. 그들이 꿈꾸는 '가치혁명'이 꼭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아니 이런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이다...  

10. 04. 07.  

P.S. '인디고 아이들'이 펴낸 책을 몇 권 더 꼽아본다. 그들의 '행복한 책읽기'와 '꿈꾸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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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manities Magazine for Young People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5-01 09:12 
    어제 중앙게르마니아 강연이 끝나고 뜻밖에도 인디고 팀원들에게 이번에 나온 국제판 <인디고>(2010년 봄호)를 선물로 받았다. 안 그래도 어제 오전에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다. 지난번에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도 나를 놀라게 한 책이었는데, 깔끔한 장정의 국제판은 한번 더 놀라게 한다. 다음 세대 인문학에 대한 걱정은 내 몫이 아닌 듯하다. 하긴 지젝의 <시차적 관점>을 읽는 중학
 
 
2010-04-07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7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07 22:56   좋아요 0 | URL
저런 책을 읽는 청소년들의 부모나 교사가 모두 이해를 해줄까요...시험공부는 안 하고 쓸 데 없는 책 읽는다고 핀잔은 안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4-07 22:58   좋아요 0 | URL
부모나 교사도 여러 수준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