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이경민의 <제국의 렌즈>(산책자, 2010)에 대한 것이다. 저자의 전작인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이 사진으로 보는 '근대 문화사'라면, 이번에 나온 신작은 사진으로 보는 '탈식민주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하다. 이미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책이어서 따로 리뷰거리를 골라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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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10. 04. 19) 그들이 편집한 한국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이미지는 어쩌면 사진이 만들어낸 표상 효과일지도 모른다.” 근대 사진에 투영된 ‘재현의 정치학’을 살피는 <제국의 렌즈>(산책자 펴냄)의 문제의식이다.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식 체계 또는 표상 방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정의한다면, 근대적 학문체계가 수립되는 시기에 발명된 사진술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유력한 수단일 것이다. 독일어로 ‘앞에 세움’(Vorstellung)이란 뜻을 가진 ‘표상’ 혹은 ‘재현’의 가장 대표적인 매체가 사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의 사진 아카이브가 근대 학문과 마찬가지로 지배 권력의 통제 기술로 활용돼왔다고 지적한다. 누가 사진기 앞에 세워지며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가란 문제에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근대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일은 우리 스스로 재현의 주체가 되지 못한 시대였다는 점이다. 일본과 서양이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 가지 사례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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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진술에 늦게 접한 탓에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을 촉탁사진사로 고용해야 했던 조선은 황실의 이미지메이킹을 조선 통감으로 부임해온 이토 히로부미에게 내맡긴 형국이었다. 사진의 표상 효과에 일찍 눈뜬 이토는 조선 책략의 의도를 담아낼 수 있는 표상을 무라카미에게 주문했다. 1907년 일본 황태자의 한국 방문 기념사진은 그러한 표상의 일례다. 화면의 중심에 팔을 허리에 올리고 발뒤꿈치를 약간 벌린 황태자 요시히토를 세워놓음으로써 부동자세로 찍은 순종과 영친왕보다 그가 더 당당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1909년 조선에서는 전례가 없던 순종 황제의 남도(南道) 순행도 모두 이토에 의해서 기획된 시각적 스펙터클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적 표상화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 하에 대한제국의 재현 체계가 일제의 재현체계 안에 포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일본 인류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도리이 류조의 조선조사 사진들은 사진이라는 ‘재현의 창’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도리이가 형질인류학적 맥락에서 촬영한 신체 측정 사진들은 조선인을 ‘조선 인종’으로 호명하고 조선반도의 ‘원주민’으로 표상했다. 그의 인류학적 사진 속에서 조선인의 ‘몸’은 일본민족의 인종적 우월성과 대비되는 한 원시성과 야만성, 전근대성과 반문명성의 몸이었다. 그는 함경북도에서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조선인 모습을 사진에 담았지만 그가 본 조선은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이었다. 비록 일본 학계가 최근에 와서 근대를 표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하고는 있지만 제국주의시대에 식민지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 숨긴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는 데는 인색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조선을 대상화한 타자의 시선은 물론 일본만의 것이 아니었다. 1892-94년까지 부임했던 프랑스의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댕은 사진 150점이 부착된 두 권의 사진첩을 남겼는데, 그가 보기에 한국은 무엇보다도 ‘진흙과 새끼줄의 나라’였다. 한국의 ‘원시적’ 건축술을 프랑스와 비교한 그는 인종과 풍속, 문화 모든 방면에서 문명과 야만의 잣대를 가지고 한국을 폄하했다. 한국의 의식주에서 불결함은 고질적이고, 남녀의 복식은 야만스러움과 기괴스러움 자체라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최고선으로서 문명화를 위한 서구의 지배는 불가피한 숙명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렇듯 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담론과 이미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으로 ‘재표상’된다는 점이다. 곧 우리가 보는 한국은 ‘그들’이 ‘편집’하고 ‘마사지’한 한국인 셈이다. 한일병합 100년을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재현의 정치학을 음미해야 하는 이유다.
10.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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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리보다 한발 앞선 일본의 '재현의 정치학'이다. 메이지 천황의 어진영부터가 활용대상이 되는데, 이에 대한 책들이 번역돼 있다. 타키 고지의 <천황의 초상>(소명출판, 2007)은 <제국의 렌즈>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그밖에 와카쿠와 미도리의 <황후의 초상>(소명출판, 2007)과 가와무라 구니미쓰의 <성전의 아이코노그래피 - 천황과 병사, 그리고 전사자의 초상과 표상>(제이앤씨, 2009)도 이 분야의 참고할 만한 책이다. 여기서도 '일본이라는 방법', 곧 '편집공학'을 떠올리게 된다. 요컨대 '문화학'을 '표상문화론'으로, '역사학'을 '역사정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본식이고 일본이라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방법이야 요즘에서는 PR과 광고마케팅의 '기본'이 돼 있는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