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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생산의 기술 -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우메사오 다다오 지음, 김욱 옮김 / 북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바로 얼마 전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기에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기만 했던 구판을 집어들었다. 당시 이와 같은 종류의 책을 이것저것 비교해본답시고 구입해놓았지만 순서가 밀렸던 탓이다. 개정판이 나온 덕에 다시금 읽어보자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우메사오 다다오는 문화인류학자이지만 아마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저서가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초판은 1969년에 나왔고 그뒤 정보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개정을 얼마나 거듭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기본적인 얼개는 큰 변형 없이 지금도 팔리고 있는 듯하다. 눈부신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학교는 물론이고 회사와 가정에서 다양한 '정보 처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눈에 띄게 커졌고, 아마 당시 '정리의 신'쯤 되는 위치에 있었을 저자의 정리법이 이와 만나면서 큰 인기를 얻지 않았나 싶다.
책의 얼개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1969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임에도 현재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만한, 변하지 않는 방법이 이 책에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스마트 기기가 없는 사람이 없는 현재, 저자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었더라면 어떤 방법들을 제시했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는 뒤집어보면 이들 기기의 발달로 글쓰기와 자료 정리가 한결 쉬워진 지금 이런 게 없었던 당시, 그런 기술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누구나 글을 쓰고 편집할 줄 알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태그'를 달아 찾기 쉽게 만든다. 하지만 1969년 당시를 비롯해 저자가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그런 게 없었다. 자료를 찾고, 요약 정리하고, 짤막한 논평을 다는 것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찾아보기 좋게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누구나 사용하는 노트는 기록은 쉽지만 나중에 찾아보기가 불편하다. 찾아보기 좋게 만들려면 차라리 노트를 해체하는 게 낫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게 카드에 기록한 다음 항목별로, 요즘으로 말하면 태그별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저자가 실천한 이후 모교인 교토대에 퍼졌다고 하며 심지어 저자가 설계한 '교토대학형 카드'는 지금도 팔리고 있을 정도이다. 이 방법을 시작으로 이렇게 모인 카드들을 다시 정리하는 방법, 스크랩북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 사진 정리법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문서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요즘은 컴퓨터 하나면 끝나고 이를 백업하는 식으로 보관하면 끝이겠지만, 디지털이 아직까지 안정성 면에서는 백퍼센트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시도해볼 만한 방법들이다. 단, 저자가 사용한 카드 같은 건 어릴 적에는 한국에서도 제법 팔았던 것 같은데 요새는 구하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다.
독서법도 재미있다. 내가 가장 감동한 부분은 인류학자인 저자가 책을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밝힌 점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야말로 기술과 요령이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우메사오 다다오의 독서법은 여기에 속한다. 일단 읽기는 전부 읽어야 한다. 단, 단숨에 읽어치우고, 밑줄을 친다. 밑줄 친 부분을 적을 필요는 없다. 그러면 독서의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읽은 책 목록을 만들고, 밑줄 친 부분만 읽는 식으로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리고 감상을 기록하면서 독서가 지적 생산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 글재주가 없어 딱딱하게 요약할 수밖에 없었지만 읽어보면 이렇게 딱딱하지 않고 쉽게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저자의 위트를 만날 수 있다. 카드 사용법을 권장한 교토대 교수가 그 기원은 함구하고 있다든지,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유감스럽게도 '지능은 단순한 편'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라든가, 전혀 의미를 알 수 없고 말만 늘어진 문장을 보면 화를 낸다는 대목은 근엄한 대학교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학문을 하는 고매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술'을 남들에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려는 측면에서 이 책을 썼다. 수도 없는 학문의 방법이 있겠지만 이런 태도를 갖춘 학자의 글을 읽으면 늘 존경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2010년 저자의 사거로 지적 생산의 기술을 생산하는 여정이 멈추게 되었다는 것과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질 수 있는 정리법, 공부법을 위트 있게 풀어낼 줄 알았던 저자의 글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게 크게 아쉽다. 사거 당시 한 신문은 제목들을 이렇게 뽑았다. '생애 내내 계속된 지적 생산' '공부는 눈, 발, 머리를 사용해 하는 것' '권위주의 싫어해.'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들이 우메사오 다다오의 생애를 얼마나 잘 요약하고 있는가를 느끼게 될 것이라 믿는다.
덧) 개정판 제목은 '지적 생산'의 기술이다. 지식 생산도 일리가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지적 생산'이라는 원서 제목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구판과 차례도 많이 다르다. 개정판이 원서 차례를 그대로 따랐으리라 생각한다. 문장도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옮긴이는 같지만 편집 방침과 기술에 따라 부득이 내용이 달라지는 면이 있으리라 본다. 이건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어느 것이 낫고 못하다는 뜻이 아니니 참고할 분은 참고하시길. 다만 인명 표기 등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는데(KJ법을 만든 이는 '가와키타' 지로이고 '가와키다'가 아니다) 개정판에서는 바로잡혔는지 모르겠다.
이와나미신서 같은 시리즈를 많이 내주는 건 상당히 감사한 일이지만 어떤 책이든 좀더 신경을 쓰면 훨씬 나아지는 법이다. 이게 끝도 없는 노동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눈높이와 끝없는 노동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야말로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이다. 그걸 좀더 잘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