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1908-1961)의 <행동의 구조>(동문선, 2008)가 번역됐다. <지각의 현상학>(문학과지성사, 2002)과 함께 주저로 꼽히는 책이다. <기호들>을 포함해서 몇 권이 더 번역되어야 하지만 현재 소개된 책들만으로도 읽을 거리는 충분히 꾸려볼 수 있다. 올해는 레비스트로스와 동갑내기인 메를로퐁티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고... 덧붙여, <눈과 마음>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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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마음- 메를로-퐁티의 회화론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정아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04월 12일에 저장
품절
의미와 무의미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 서광사 / 1990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08년 03월 21일에 저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메를로 퐁티 지음, 남수인 옮김 / 동문선 / 2004년 6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2008년 03월 21일에 저장
절판
행동의 구조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8년 3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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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꾼 2008-03-21 21:15   좋아요 0 | URL
제발 누군가가 김모교수님 좀 말려줬음 좋겠군요 메를로 퐁티, 데리다,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 안 건드리는 게 없군요...........열정은 인정하지만 독자도 좀 생각해 주셨음.............-_-;

로쟈 2008-03-21 21:22   좋아요 0 | URL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역마살꾼 2008-03-21 21:21   좋아요 0 | URL
도대체 얼마나 했나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바슐라르, 리쾨르, 부르디외, 셰르, 뒤비까지
있네요 9년동안 30권~~!!!

로쟈 2008-03-21 21:28   좋아요 0 | URL
사실 그런 고전들은 10권만 옮겼어도 번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인데요...
 

어제 일부러 대형서점에 가서 구입한 책은 김철의 <복화술사들>(문학과지성사, 2008). 문지스펙트럼으로 나온 책인데(이 시리즈는 정말 뜸하게 나온다!) 어지간한 서점엔 들어오지도 않기에 제발로 찾아갔던 것. 사실 출간 소식을 처음 접한 건 지난주 한겨레21 기사를 통해서였다. 생각난 김에 그 기사와 저자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한겨레21(08. 03. 14) 일본어로 쓰인 조선문학의 정체

“(전선으로 물건을 왕복한다는 이야기를 죽을 때까지 믿은 어머니는) 내가 경성에 가 있던 5년 동안 수도 없이 전선을 바라보며… 아들 물건이 전선에 매달려 있지나 않을까 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1942년 한설야의 <피>라는 소설은 전선을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나를 잘 보여준다. 염상섭의 소설 <전화>에서는 ‘덕률풍’(telephone)이 갈등을 조장하고 해결하는 중요한 물품으로 등장한다. “네모반듯한 나무 갑 위에 나란히 얹힌 백통 빛 쇠종 두 개”는 웬 건지 삼백원이나 하더니 기생이 전화해 남편을 불러내는 “난장 맞을” 것이다가 나중에 뜻밖의 횡재의 물건이 된다. 소설에서 식민지 시대의 풍경을 찾아 읽은 <복화술사들-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문학과지성사 펴냄, 문지스펙트럼 5-019)이 건져올린 이야기들이다.

책에는 국문학자이면서 ‘국어의 순수성과 단일성’을 공격해온 저자의 주장이 알기 쉽게 녹아 있다. 골치 아픈 역사 해석 문제는 거둬두고(저자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편집진이다), 저자가 국문학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솔깃하다. 일제시대에 식민지 작가에 의해 일본어로 쓰인 소설은 한국 문학인가 일본 문학인가. 그 어떤 문학도 아닌가. 지금도 ‘성역’으로 지켜지고 있는, 한국문학이 한국인에 의해 한글로 쓰인 문학이라는 상식은 1936년에도 있었다. 잡지 <삼천리>는 ‘조선 문학의 정의’라는 특집 기사에서 ‘조선 문학은 조선글로 조선 사람에게 읽히기 위하여 쓴 것’이라는 일반적인 정의를 대표 문인 12명에게 묻는다.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암흑기에 꿋꿋이 지켜진 신념이 아니라 통념과 달리 이 시기 ‘제국’의 필요에 의한 ‘위계화’ 덕에 조선어 착취가 심하지 않았다는 논의와 함께) 그는 위의 이 질문에 뭐라고 정확히 답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정의에 따르면 “일본어로 쓴 수많은 작품들은 암흑 속으로 잠기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로 연구하는 자의 ‘순박함’에서 연유하는 듯하다. 그는 더불어 이 시기가 ‘암흑기’ ‘공백기’가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 문학의 다른 가능성들이 모색되는 역동적인 시기라고 말한다. “오늘날 그것들은 민족과 모국어에 대한 비겁한 배신 행위로밖에는 기억되지 않지만, 그 기록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뜻밖에도 전혀 다른 모습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글의 맨 앞에 인용한 한설야의 <피> 역시 일본어로 쓰인 작품이다.

장혁주가 있다. 그는 식민지 시기 최초로 일본어로 소설을 써서 일본 문단에 데뷔한 작가다. 데뷔작은 좌익 문예지 <가이조> 현상 공모에 당선된 <아귀도>. 그의 등장은 일본 프롤레타리아트 문단에서 ‘지주 계급과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에 시달리는 조선 농민의 비참한 삶을 고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후의 문제작은 양쪽 문단에서 외면당하고 지금은 ‘친일문학론’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저자는 “제국의 지배 아래서 제국의 언어로 발언하는 피식민지인은 일종의 복화술사(複話術師)”라고 말한다. (장혁주에 뒤이어 일본 문단에 데뷔한) 김사량이 쓴 <향수>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이 소설들의 상황을 은유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현’은 (망명한) 누이의 안내로 북경의 북해공원을 관광하던 중이었는데 누이는 저쪽 일본 군인이 나타나자 공포에 사로잡힌다. 가까이 가보니 일본 군인은 현의 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군인과 일본어로 이야기하다가 놀라 도망가는 누이를 발견하고는 ‘기다려’라고 말한다. 일본어였고 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 일본어로 창작한 동기를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널리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장혁주)라고 한 작가들의 비극적인 운명인 셈이다.

“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하려니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한 김동인, 최초의 한글소설 <혈의 누>를 연재하기 전 한자에 조선말 음을 단 기이한 소설을 쓴 이인직. 이런 고뇌를 거쳐 근대 한국어가 만들어졌다. 한국어는 낯설고 ‘외래적’인 것이었다. 한국말이 수용한 근대화가 아니라 한국말이 근대화의 산물이었다.(구둘래기자)

부산일보(08. 03. 15) '복화술사들' 김철 연세대 국문과 교수

나는 '국어의 순수성' '국어의 단일성' 따위의 말을 결코 믿지 않으며, 더구나 '국어의 우수성'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 보기를 '돌같이' 합니다."

'복화술사들-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문학과 지성사/6천원)을 쓴 연세대 국문과 김철 교수의 말은 거침이 없다. 그의 책을 읽어내려가면 초창기 근대소설에서 한글이 차지한 위상이 너무도 초라했음에 놀랄 수밖에 없다. 한글이 세종대왕 이래로 쭈욱~ 지금과 같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왔음을 믿는 사람들이나,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한다는 세종대왕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왔던 백성들에겐 상실감마저 안겨준다. 그의 언변은 상대방이 입게 될 마음의 상처는 고려하지 않은 듯 매몰차다.

"한국어가 뭔데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되레 머쓱했다. '구상은 일본말로 하되 쓰기는 조선글로 썼다'는 김동인의 고백과 순한문에서 순한글을 거쳐 영어로 일기를 쓴 윤치호의 고백이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여기서 설명이 조금 필요하겠다. 윤치호는 4년 남짓 순한글 문체로 일기를 쓰다 1889년 12월 돌연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한글이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더랬다).

이어지는 그의 말. "한문이 제1 언어였던 윤치호 같은 조선 사대부에게 한글은 되레 어려웠을 겁니다. 윤치호는 한문으로 표기하는 게 더 쉬웠을 거고, 일본어를 통해서 소설을 접했을 김동인도 일본어로 구상하는 게 더 쉬웠겠죠. 근대 한국어와 한글은, 근대와 처음 대면했던 모든 한국인들에게 근대가 그러했듯이 낯설고 외래적인 것이었죠. 근대문학초창기 작가들의 한국어 글쓰기는 실상 외국어로 글쓰기와 다를바 없었지요."

그래도 한글이 어려운 외국어처럼 다가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모든 언어는 배우기 어렵습니다. 쉽다 어렵다의 문제를 떠나서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한문의 언어적 지배력이 붕괴됐고, 그 틈에 새로운 언어들이 그 권력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경합했다는 게 중요하죠. 어떤 표기체계들이 우위권을 잡느냐의 문젭니다."

한글도 영어 일본어 등과 함께 한자의 독점적 지위가 붕괴된 틈에 경쟁하는 '새로운' 여러 언어 중의 하나였다는 말로 들렸다. 허망하긴 하지만 결국 권력과 언어의 문제였다. "언어가 권력입니다. 언어 자체의 내적인 원리가 아니라 권력 자체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거죠. 서울말이 표준어인 것은 서울이 가진 권력 때문이고, 영어가 세계공용어인 것도 권력 때문입니다."

이광수의 소설 '재생'에서 여주인공 순영이 백만장자인 백윤희의 초대를 받고 별장에 간 날 거기 모인 남자들을 보고 혼자 속으로 하는 품평이 그랬다. '윤은 못난 듯하고 음흉해 보이고, 최는 남자다우나 더퍼리다. 그런데 백은 라운드(둥글고) 스무우스(미끈하다). 진실로 애리스토크래틱(귀족적)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한국어 단어로, 긍정적인 부분은 영어 단어로 사용한 이광수의 작품에서 영어의 우월적 지위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가.

도대체 그는 뭘 말하려고 한 걸까? "'한국어는 순수하지 않은데, 다른 언어는 순수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만의 순수함과 단일함에 대한 집착이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낳고 남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과도한 자기동일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진보적인 바탕입니다."

책 제목이 '복화술사(複話術師)'다. 일본어로 글을 쓴 조선 작가들에게 그가 붙여준 이름이다. 조선어와 일본어, 두 개의 혀를 가진 자들이다. 국어와 국문학의 정체가 실로 의심스럽다는 그의 일관된 주장과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는 그의 위치도 아마 복화술사의 비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지 모른다. '아슬아슬한 게임에서는 그들 스스로도 분열되고 파멸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모어의 자연성, 국어의 정체성, 국민 문학의 경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가 된다.' 그런 칼날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이상헌기자)

08.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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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8-03-22 01:0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요즘 "'국어의 순수성' '국어의 단일성' ... '국어의 우수성'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며, 또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까요? "국어와 국문학의 정체가 실로 의심스럽다"는 문제의식이야 한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많이들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오히려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 톤만 높여서 되풀이하는 모양새가 수상해 보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필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들도 조금 유난을 떤다는 느낌.-_-;

로쟈 2008-03-22 01:08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건 책에 묶인 글들이 국립국어원이 발행하는 <새국어생활>에 연재됐었다는 사실인데요, 저자도 좀 의외였던 것 같습니다. 책은 주장보다는 '팩트'들이 나열돼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언젠가 고종석의 책에 발문을 쓰기도 했는데, <감염된 언어>와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량 2008-03-22 01:18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제망매]에 발문을 썼을 겁니다. 지금의 김철 교수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랑말랑하고 센치한 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로쟈 2008-03-22 21: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로쟈의 인문학서재'를 옮겨놓는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를 읽은 소감을 간략하게 적은 것이다.

한겨레21(08. 03. 20) 이 사회에도 이분법만 존재하는가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은 ‘나’는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한때 유행처럼 읽히기도 했던 브레히트의 짤막한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얘기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펴냄)를 읽다가 자연스레 떠올린 시. 하지만 레비는 자기가 미워졌다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운 좋게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가 모든 이들에게 불길한 경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가지고.

이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에 대한 레비식 명명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이다. 그것이 애초에 그가 책 제목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이면서 실제로 그가 쓴 마지막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른바 ‘절멸수용소’에서 누가 익사하고 누가 구조되는가. 레비가 보기에 수용소의 철조망 안에 감금되는 순간 그 어떤 욕구도 충족되지 않는 삶에 종속되며, “이 삶은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실험장”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뚜렷한 범주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이다. 물론 대다수는 수용소에 적응하기도 전에 학살당했던 ‘무슬림’들이다. 무슬림이란 죽음을 이해하기에도 너무 지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고 곧 ‘선발’되어 가스실로 향하게 될 수감자들을 부르는 수용소의 은어다. 대개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한 채 곧 쓰러질 듯한 상태다. 죽음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들이 대부분 ‘익사한 자’들이다.

그럼 ‘구조된 자’들은 어떠한가? 레비는 여러 사례를 들고 있는데, 그중에서 앙리는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 그에 따르면, 조직을 꾸리는 것과 동정을 얻는 것, 그리고 도둑질, 이 세 가지가 학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가 하면 엘리아스는 아예 수용소 체질인 경우. 나이가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일 것 같은 그는 죽을 6리터, 8리터, 10리터나 먹고도 토하거나 설사하지 않고 소화시킨다. 심지어 그러고 나서 즉시 다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런 엘리아스의 모습에서 레비가 끌어내는 결론은 이런 것이다. “엘리아스는 육체적으로 파괴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공격에서 살아남는다.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내부로부터 절멸에 저항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생존자가 된다. 그는 이런 식의 생존 방식에 가장 적합하고 표본적인 인간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갇혀 살았을 법하지만 수용소에는 범죄자도 정신병자도 없기에 엘리아스는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된다. “수용소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변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인 것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수용소야말로 근대적 정치 공간의 숨겨진 모형(母型)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통찰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란 이분법적 존재 방식만이 허락되는 사회라면 ‘수용소’와의 구별이 불가능하다. 곧 수용소다. 우리 또한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놓여 있으며 우리 사회를 가르는 이분법이 ‘낙오된 자’와 ‘성공한 자’밖에 없다면 이 또한 ‘절멸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시대의 ‘앙리’와 ‘엘리아스’가 득세하는 수용소 말이다. 과연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가? 아주 운 좋게 살아남은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떠올린 <신곡>의 한 구절이다. “그대는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도다”

08. 03. 20.



P.S. 얼마전에 적은 관련 페이퍼로는 '윤동주-프리모 레비-빅터 프랭클'(http://blog.aladin.co.kr/mramor/1949436)을 참조. 관련서들 가운데서 레비의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 츠베탕 토도로프의 <극한에 직면하기>, 레비와 같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면서 레비보다 10년 먼저 자살한) 장 아메리의 <자살에 대하여>, 그리고 레비의 전기(가령 이안 톰슨의 <프리모 레비>) 등이 번역/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은 소개될 예정이라고 하니까 제외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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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 2008-03-2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오늘 읽은 부분인데. 이 대목은 제목부터 눈에 끌더군요. 그리고는 '진지','흥미'하게 읽었다는. 간혹 나오는 익살에 섬뜩 놀래면서요.

로쟈 2008-03-21 13:10   좋아요 0 | URL
책의 정중앙이기도 하지요. 서경식 선생도 지적한 거지만 <이것이 인간인가>는 상당히 치밀한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강의준비를 위해 강대진의 <고전은 서사시다>(안티쿠스, 2007)의 몇 장을 읽었다. 희랍(저자는 '그리스'란 말을 싫어한다) 고전 전공자의 유익할 길잡이.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신들의 계보>, <일들과 날들>, <아르고호 이야기>, <아이네이스>, <변신이야기> 등 일곱 편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다(소개는 읽기 전후에 한번씩 참조하면 좋겠다). 내친 김에 번역본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대부분은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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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서사시다- 희랍 로마 서사시를 통해 본 고전 읽기의 해법
강대진 지음 / 안티쿠스 / 2007년 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8년 03월 19일에 저장
구판절판
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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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그리스어 원전 번역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33,000원 → 29,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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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헤시오도스 지음, 천병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4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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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와 돈' 얘기를 꺼낸 김에 러시아의 '졸부' 얘기도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리는 아라즈 아갈라로프가 이 졸부의 이름이다. 찾아보니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와는 사돈간이다. 아래 기사는 돈과 야만이 결합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실을 배제하고는 현재의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다(사진들은 아갈라로프의 영지).

Agalarov2006.jpg

한겨레(08. 03. 18) 러시아 ‘졸부’의 도넘은 오만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인근 보로니노 마을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괴전화에 시달린다. 잦은 방화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주민 알렉산더 모로조프는 마을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위한 의도로 살해된 개 두마리가 발견됐다며, “이곳은 지옥이 됐다”고 말했다.

AgalarovEstatesTrees.jpg

마을에 재앙이 닥친 것은 지난해 러시아 최대 부호 가운데 한명인 아라즈 아갈라로프가 마을 바로 옆에 초호화 주거단지 개발 계획을 발표한 뒤부터다. <포브스> 추정 자산만 12억달러(약 1조2100억원)인 아갈라로프는 ‘세계 최고 부자들을 위한 마을’을 표방하며, 집 150채와 인공 해변, 인공 호수 14개, 18홀 골프장 등을 건설 중이다.

아갈라로프는 개발에 ‘방해’가 되는 보로니노 주민들에게 이사를 종용해 왔다. 그러나 34가구 가운데 11가구만 이사에 합의했다. 갖은 으름장과 노골적 폭력에 맞서 마을 사람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아갈라로프가 건축 허가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도 전과가 있는 아들을 둔 한 집이 ‘아들을 다시 감옥으로 보내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고향을 떠났다.

AgalarovEstatesHouse.jpg

<모스크바타임스>는 18일 빈부 격차가 더욱 심각해지는 러시아에서 부유층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서민들의 땅을 빼앗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보로니노 마을의 사연을 소개했다. 2년 전에도 모스크바 외곽 부토보에서 땅과 집을 몰수당한 마을 사람들의 시위에 전투 경찰이 파견돼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야당 소속 모스크바 시의원인 세르게이 미트로킨은 “우리는 범죄적 사유화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는 2014년 소치 겨울철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의 토지 수용을 더욱 손쉽게 만드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은 앞으로 기업 등의 개발사업에도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서수민 기자)

08. 03. 18.

P.S. 관련 페이퍼로는 '러시아 억망장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1091634), '러시아 백만장자들의 사치'(http://blog.aladin.co.kr/mramor/989306), '모스크바의 계급전쟁'(http://blog.aladin.co.kr/mramor/1023542) 등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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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3-19 17:06   좋아요 0 | URL
좋은 활동을 하시네요. 도움이 되신다면 저로선 다행한 일이지요.^^

고니 2008-03-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