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학술저널 담비(http://www.dambee.net/)에 '로쟈의 종횡書해'가 연재된다(나도 오늘 알았다!) 사실 이번달부터 담비에 격주로 리뷰성 글을 기고하기로 했었는데(알라딘 페이퍼성으로) 이번주말쯤에나 첫번째 글을 보내려고 했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풍경'에 관한 글이었는데, 며칠전에 올려놓은 '선비철학 vs 사무라이사상'(http://blog.aladin.co.kr/mramor/1376328)이 구미에 맞은 것인지 연재의 첫꼭지가 되었다(인용문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이다). 편집자가 밝힌 연재의 변은 이렇다.  

담비에서는 7월부터 격주로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리뷰어로 활동중인 '로쟈'의 글을 연재합니다. 연재의 제목은 <로쟈의 종횡書해>입니다. 동서양 철학과 역사, 과학과 인류학 등 방대한 독서를 통해 폭넓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로쟈의 리뷰는 담비와 알라딘 독자들을 전제로 씌어지고 두곳에 동시에 실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통칭 '리뷰어'라고 하지만 알라딘의 분류로는 주로 '마이페이퍼'만 잔뜩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내게 붙여진 타이틀로는 약간 어색한 감이 있다(리뷰들을 읽어주는 '리리뷰어'라면 말이 될는지). 하지만 '종횡서해'란 연재의 타이틀은 맘에 든다(아마도 비평고원의 '로쟈의 책의 바다'란 카테고리를 고려한 듯하다). 나는 편집진에 일임했었는데, 애당초 나에게 제시됐던 제목은 '로쟈의 깊이 읽기' 같은 거였다(그 또한 아이러니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종횡서해'는 물론 주윤발과 장국영, 그리고 종초홍이 주연했던 추억의 홍콩영화 <종횡사해(縱橫四海)>(1990)에서 따온 것이겠다. 오래전 지방 소도시에서 본 듯한 이 영화는 이제 보니 오우삼 감독의 영화이다. DVD 타이틀 소개기사를 옮겨온다.

씨네21(06. 04. 07) 한편의 프랑스영화 같은 오우삼의 낭만 로맨스, <종횡사해>

바바리코트, 쌍권총,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비장미는 오우삼 영화의 일관된 색깔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뜻밖이겠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허관영, 허관걸 형제를 앞세운 <발전한>과 같은 코미디영화도 존재한다. <종횡사해>는 오우삼의 숨은 코미디 재능과 자신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하드액션 장르의 유연한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영화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명화를 훔치는 세 남녀의 모험과 우정, 그리고 로맨스를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명의 주인공 아해와 제임스, 그리고 홍두는 고아 출신으로, 어린시절 악독한 악당에게서 도둑으로 길러진다. 이들의 어두운 성장과정 때문에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한 마당이 벌어질 것 같지만, 영화는 관객의 그런 기대를 저버린다.

<종횡사해>는 음침한 홍콩의 뒷골목을 벗어난 화창한 날씨의 유럽이 배경이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고독한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병상에 있다가 복귀한 주윤발은 시종일관 여유와 쾌활함을 잃지 않는 아해를 연기하며, 장국영은 로맨티스트 제임스를, <종횡사해>를 끝으로 은퇴한 종초홍은 이들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홍두를 연기한다. 이 세명의 캐릭터에게서는 오우삼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단순히 비극의 무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오우삼은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영화를 흠모하며 동경했다. <종횡사해>는 그 애정의 부산물 같은 영화다. 제목부터 로베르 앙리코 감독이 연출하고 알랭 들롱이 주연했던 <대모험>(Les Aventuriers)의 중국식 제목에서 따왔고,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라는 삼각관계 또한 영향을 받았다. <종횡사해>는 누아르 액션에서 조금 외도는 했지만, 기존 팬들을 위한 총격전은 라스트에서 일부 선보이고 있다. 하나 비장미 넘치는 폭력과 심금을 울리는 신파를 기대한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오우삼의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여유와 낭만, 충만한 로맨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휄체어를 탄 주윤발과 종초홍, 장국영의 댄스장면(사진)은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명장면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영웅본색>에서 마음 좋은 택시회사 사장으로 영웅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증강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악역으로 나와 주윤발과 장국영을 괴롭히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영상으로는 독특하게 악역을 맡은 증강의 인터뷰, 포토 갤러리, 예고편을 수록했다.(김종철)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Once a Thief'라는 것. '전직 도둑'쯤 될까? "동서양 철학과 역사, 과학과 인류학 등 방대한 독서를 통해 폭넓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로쟈의 리뷰"란 표현에서 내가 상기하게 되는 것은 '전직 도둑'과 '종횡사해' 사이의 간극이고 아이러니이다(음, 첫번째 글부터가 인용문으로 도배돼 있는 걸 보라!). 

어느샌가 로쟈는 '방대한 독서'를 하는 걸로 가정되는 주체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나의 부인의 제스처는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어느 자리에선가 '2만권을 읽은 사람'으로 오인되기도 했는데, '2만권의 타이틀' 정도를 읽은 걸로 해두자). '폭녋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은 담비에서 앞으로 요구하는 바 같은데 나의 전력으로 미루어 보아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그런 '시야/해석'이란 명품을 훔쳐오기 위해 노력은 해봐야겠다. 해서 가끔은 '총격전'을 보여주기도 하겠지만 '로쟈의 종횡書해'의 기본장르는 코미디이고 주된 정조는 책과의 로맨스이다. 로맨스가 될 것이다...

07. 07. 09.

P.S. 기껏 책과의 로맨스인가? 그건 종초홍(1960- ) 같은 파트너가 은퇴해버렸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이 난 김에 그녀의 근황을 다루고 있는 한 기사를 읽어본다.

해럴드경제(06. 08. 08) 周潤發와 호흡 척척… 40代불구 청초한 매력 여전

홍콩영화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그 많던 홍콩스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중추홍(46ㆍ鍾楚紅)이 은퇴한지도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때 왕주셴(王祖賢)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중추홍이지만, 지금은 그런 스타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화려한 스타의 쓸쓸한 뒤안길이라고 할까.

1979년 미스홍콩대회에 출전해 아쉽게 4위에 머물렀지만 중추홍의 매력을 눈여겨 본 광고계 인물들 덕분에 CF 몇 편에 출연한 게 연예계 데뷔 계기가 됐다. 스크린 데뷔작은 '벽수한산탈명금(碧水寒山奪命金ㆍ1980)'. 이듬해 영화 '호월적고사(胡越的故事ㆍ1981)'에 당대 최고 배우인 저우룬파(周潤發)와 출연해 루키 탄생을 알렸다. 사실 다섯 살 연상인 저우룬파와는 인연이 각별한 편이다. '호월적고사'를 비롯해 총 8편의 작품에 함께 출연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영화 '종횡사해'(1991)에서도 저우룬파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에는 저우룬파 외에 장궈롱(張國榮)도 나와 중추홍의 인기를 증명해보였다. 고아 출신 골동품 전문 털이범 남매가 고성에서 고가의 그림을 훔친 뒤 보안 레이저를 피하기 위해 와인잔에 와인을 부어 레이저를 확인하는 장면은 '미션임파서블'이나 '엔트랩먼트' 같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손색없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또, 중추홍이 장궈롱과 휠체어를 탄 저우룬파 사이를 오가며 탱고를 추는 장면은 알 파치노의 '여인의 향기' 탱고신보다 더 감각적이다.

세련된 이미지 때문인지 중추홍은 대체로 똑 떨어지는 도시여성 배역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극의 배경까지 해외인 경우가 많았다. '종횡사해'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중추홍의 대표작인 '가을날의 동화'(1987)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가을날의 동화'에선 실연한 여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처량하거나 청승맞아 보이기는커녕 여자를 버린 남자가 미련해보이는 효과가 컸다. 이 영화는 1988년 제7회 홍콩금상장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홍콩 광고계의 거물 주지아팅(朱家鼎)과 결혼한 후 한동안 쇼비즈니스계를 떠나있었던 중추홍이 지난 6월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적 명품 보석 브랜드 피아제의 중국 1호점 개점식에 전속모델로서 등장한 것.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청초한 매력을 발산하는 중추홍에게 '제2의 전성기'가 올지 기대된다.(유지영 기자)

'제2의 전성기'란 건 기자의 예단인 듯하다. 여하튼 그녀는 20년전 스크린의 연인이었다. 이런 연애고백은 또 어떤가?

씨네21(05. 11. 03) [스크린 속 나의 연인] <가을날의 동화> 종초홍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쓸쓸한 냉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퍼진다. 늦가을. 나는 이 때가 가장 좋다. 계절의 변화란 ‘매직’과도 같아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기억은 쓰디쓸수록 짜릿하다. 그 쓴맛이 선명하게 남긴 흉터가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에 내려앉은 늦가을 이 즈음.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학교 앞 동시상영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내 도피행각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3년간 놓고 지내던 ‘보캐뷸러리(Vocabulary)’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도 갑갑했지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함께 통과했던 한 여자를 먼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극장의 간판엔 저우룬파(주윤발)과 중추훙(종초홍)이 있었다. 어줍은 솜씨로 그린 것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엔 쓸쓸한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답답했던 시절. <가을날의 동화>는 내 가슴을 절절히 파고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찾아 뉴욕으로 날아온 제니퍼(중추훙). 그에게 뉴욕의 가을은 잔인했다. 애인에겐 다른 여자가 생겼고 낯선 뉴욕은 그의 생채기를 자꾸만 건드린다. 어딘지 촌스러웠지만 인공적인 매력에 때 묻지 않은 중추훙의 얼굴은 참 예뻤다. 그 얼굴에서 내가 본 것은 바로 상실감이었다. 낯선 도시, 뉴욕의 빈민가. 별다른 희망 없이 ‘이민의 땅’을 부유하던 삼판(저우룬파)은 제니퍼의 상실감, 그 상실감의 ‘표정’과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니퍼를 향해 서서히 피어오른 그의 애정은, 그러니까 동질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무작정 미국 이민 길에 오른 홍콩의 청춘들과 내가 공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초반.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의 홍역을 치르고 난 대학 캠퍼스는 거대한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소련의 해체, 독일의 통일, 동구의 몰락…. 그 격변이 가져온 정신적 공황. 이제 곧 내가 편입돼야 할 사회에 대한 불안감. 그 희뿌연 시계(視界)가 자아내는 정체불명의 공포와 상실감을, 나는 제니퍼의 얼굴에서 봤다.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아니면 스치듯 내 마음을 긁어대는 낙엽 소리에 센티멘털했던 것일까?

그 날, 마치 ‘삼판’이 된 듯 제니퍼와의 엇갈린 사랑에 가슴을 치던 나는 <가을날의 동화>를 세 번이나 보고서야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친구를 불러냈다. 쓸쓸한데 소주 한 잔 하자고. 결국 소주잔에 쓸어 담은 건, 황량한 서울 거리와 숙취로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뿐이었지만….(정기영/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나는 영화를 연거푸 세번씩이나 보진 않았고 특별한 인상을 받지도 못했지만 종초홍이란 배우의 매력은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이미지 때문인지 중추홍은 대체로 똑 떨어지는 도시여성 배역을 맡았다"고 했지만 그런 이미지를 따라서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떠나지 못했고, 우리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이젠 휠체어 댄스나 꿈꿀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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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7-0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국영은 떠나고 종초홍도 없고...
괜히 짠하네요.
연재하시는건 축하드려도 되는일이지요? ㅎㅎ

로쟈 2007-07-09 15:47   좋아요 0 | URL
타이틀 때문에 종초홍은 갑자기 떠올리게 됐습니다.^^

yoonta 2007-07-0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종횡書해>라..멋진 타이틀이네요. 로쟈님 따라서 담론비평도 자주 드나들게 되겠네요.

로쟈 2007-07-09 15:48   좋아요 0 | URL
제가 보탬이 되면 다행일 텐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2007-07-09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9 15:48   좋아요 0 | URL
담비에서 표절했나 봅니다!..

Joule 2007-07-0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이 아주 종횡서해스럽습니다. 하하

로쟈 2007-07-09 16:26   좋아요 0 | URL
장르가 코미디다 보니까요.^^;

마늘빵 2007-07-0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담비도 들어가봐야겠군요. :)

로쟈 2007-07-09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축하(?)를 받아야 할지 어쩔지...

햇빛비둘기 2007-07-1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드립니다. 근데 제목이 '종횡書해'라... 괜히 표정훈씨만 생각나고.
오랜만에 궁리나 들어가봐야겠네요.
꾸벅.

로쟈 2007-07-09 23:07   좋아요 0 | URL
맞삽니다. '종횡서해'란 카테고리가 궁리에 있었지요. 본의아니게 표절하게 됐습니다...

가을산 2007-07-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좋은 리뷰 및 리리뷰 잘 부탁해요.... ^^;;

로쟈 2007-07-09 23:07   좋아요 0 | URL
네,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향기로운 2007-07-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축하합니다^^*

로쟈 2007-07-11 00: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07-07-1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온라인으로는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기사들을 지면으로 읽으면 챙기게 되곤 한다. 지난 주말 신문을 읽다가 '발견'한 건 '세계 최고의 소총'이라고 할 만한 AK-47과 그 발명자 칼라시니코프에 관한 것이다. 내용이야 옮겨놓은 두 건의 기사를 죽 훑어보시면 된다. 기사에도 적혀 있지만, AK-47이 '47년산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이란 뜻이니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애용된다는 이 '대량살상무기'가 계속 애용되는 한 칼라시니코프의 이름도 길이 남을 만하다. 푸틴의 언급대로 '러시의 자랑'인지는 좀 헷갈리지만('칼라시니코프'는 철자대로 표기하자면 '칼라슈니코프'나 '칼라쉬니코프'가 더 자연스러운데, 개정된 외국어 표기안에 따라 '칼라시니코프'라고 통일된 듯하다).

 

경향신문(07. 07. 07) [여적]칼라시니코프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소련군 탱크부대 하사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독일과의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병상에서 그는 자동화기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소련군이 독일에 밀린 것은 자동화기가 열악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47년 그는 마침내 뛰어난 성능의 소총을 개발했다. 모델명은 AK47이었다.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 개발한 아프토마트(자동소총)’란 뜻이다.

이 때부터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숱한 전쟁과 분쟁·내전지역을 누비며 전설을 만들어 나간다. AK47의 최대 강점은 단순과 견고다. 따라서 고장이 적고 분해 조립과 조작이 쉬웠다. 제작비도 쌌다. 미국이 1957년 개발한 M16에 비해 길이가 짧아 휴대도 간편했다. 물에 젖거나 모래가 들어가도 큰 문제가 없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늪 속에 파묻혀 있는 녹슨 AK47을 발사해 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베트콩한테서 노획한 AK47이 미군들에게 M16보다 인기가 높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장점 덕분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전세계로 팔려 나갔다. 지금까지 1억정 이상이 유통된 것으로 추산된다. AK47에 이어 1974년 개발한 AK74, AK101∼AK105 시리즈 등 자매모델들이 속속 나왔다. 아프리카 내전 지역 10대 초반 소년병의 어깨에 걸린 총도 십중팔구 칼라시니코프 모델이다. 이렇게 AK가 널리 유통되는 이유는 싼 가격이다. 제3세계에서 유통되는 중고 AK47은 ‘닭 한마리 가격’이란 말도 있다.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어떤 무기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상하고 있다. 매년 이 총으로 죽는 사람은 25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진짜 대량살상무기(WMD)로 불릴 만도 하다. 작년 말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에서 미국이 애타게 찾던 WMD가 나왔다. 바로 낡은 AK47이다”는 칼럼을 실었다. 상당수 미군이 AK47에 희생되는 현실을 비꼰 것이다.

AK47이 5일로 개발 60주년을 맞았다. 푸틴 대통령은 AK47이 러시아의 창조적 천재성의 상징이라고 치하했다. 하지만 올해 87살인 칼라시니코프 자신은 어떤 감회일까. 필시 침략군을 물리치겠다는 애국심에서 개발한 무기가 강도와 테러리스트, 소년병의 손에 들려진 현실을 보고 후회막급일 것 같다.(김철웅 논설위원)

AK-47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6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러시아 공군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소총 발명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총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

한겨레(07. 07. 07) 옛소련 자동소총 ‘AK-47’ 개발 60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옛 소련군 탱크부대 하사관으로 나치 독일과 싸우다 부상당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21)는 요양중 자동소총 개발에 몰두했다. ‘나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불탄 칼라시니코프는 마침내 자동소총 개발에 성공했고, 이 소총은 소련군 개인화기로 채택됐다. 이 소총이 AK-47이다. AK-47의 A는 자동소총, K는 개발자 칼라시니코프, 47은 소총 개발이 완료돼 소련군 개인화기로 채택된 해를 뜻한다.

AK-47는 전세계 소총 시장의 80%를 차지하며 전세계에 1억정이 넘게 돌아다닌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메시지를 담은 비디오를 녹화할 때 옆에 AK-47을 세워둔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국기에는 국방을 상징하는 AK-47이 들어 있다.

AK-47이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기가 된 비결은 단순함과 튼튼함, 높은 명중률이다. 구조가 단순해서 사용하기 쉽고 싼값에 대량생산할 수 있다. 분쟁지에서 중고 AK-47은 ‘닭 한마리 값’에 유통되며, 미국돈 20~30달러에 암거래된다. 워낙 튼튼해서 정글, 사막, 눈, 비 등 악조건에도 좀체로 고장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1월26일 “이라크에서 미국이 그토록 찾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나왔다. 미군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WMD는 낡은 AK-47 소총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총에 맞아 전세계에서 해마다 25만명이 숨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칼라시니코프는 야전병원에 후송된 소련군 병사들이 “우리도 독일군 기관단총 MP40처럼 좋은 총이 있었으면…”하는 한탄을 듣고 소총 개발에 나섰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6월 국제 총기확산방지회의를 앞두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내 총을 갱과 테러리스트가 쥐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가슴 아프다”며 테러의 상징처럼 된 AK-47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5일로 AK-47 완제품이 세상에 나온지 60년이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열린 AK-47 개발 60주년 기념식에서 “유명한 칼라시니코프 소총은 대담한 발명 정신 뿐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재능, 창조적 천재성의 상징이 됐다”고 치하했다. AK-47이 식민지해방전쟁에도, 민간인에 대한 테러에도 사용되긴 했지만, 세계에서 으뜸가는 소총이며 러시아의 힘과 안보의 상징이란 점은 분명하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권혁철 기자)

07. 07. 08 - 09.



P.S. 칼라시니코프란 이름과 관련된 건 '소총' 외에 '보드카'도 있다(알콜 도수가 41%란다). 러시아에서 여러 주종을 섭렵해본 건 아니어서 보드카 칼라시니코프가 얼마나 고급인지, 또 얼마나 애음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러시아의 영웅'과 보드카는 이미지가 잘 들어맞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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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7-0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통력과 살상력은 뛰어난 반면 반동과 소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총이라고
하더군요.이 총과 반대개념에 있는 소총은 M16보다는 H&K사에서 나온 자동소총
들이라고 생각됩니다..테러리스트들의 피를 먹고 자랐다라고 하더군요..

로쟈 2007-07-09 17:44   좋아요 0 | URL
그런 반동과 소음에도 가장 애용된다고 하니까 '명품'이긴 한가 봅니다...

잉크냄새 2007-07-0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노벨과 비슷한 심정인가 봅니다.

로쟈 2007-07-09 17:45   좋아요 0 | URL
보드카를 마실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지난 6월에 소개되었어야 하는 전시회 소개와 그 리뷰(http://www.culturenews.net/read.asp?article_num=8036)를 컬처뉴스에서 옮겨놓는다. 리뷰 자체가 며칠 전에 올라온 것인데, 이 리뷰를 읽고 알게 된 것이지만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 전시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고 그 사진집은 지난 5월에 출간됐다. 타이틀 대로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인 만큼 이 정도 '뒷북'이 대수이겠는가. 기사에서 저자주는 생략했다.

컬처뉴스(07. 07. 03)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2007. 5. 18. ~ 2007. 8. 18, 서울대학교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두 영국인 장교 안소니 영거(Anthony Younger)와 키스 글래니-스미스(Keith Glennie-Smith)의 개인 사진 기록들을 발굴해 소개한 전시이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서울대학교 엮음, 눈빛, 2007) 가 발간됐다.

전방위적 한국전쟁 기록 수집하기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박도 엮음, 눈빛)가* 보여주는 전쟁에 대한 기록의 규모 면에서나, 기록사진으로써 구성과 형식의 완성도에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상대적 평가의 측면에서 그렇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의 기록 사진들 역시 정확한 지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가 모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 사진들은, 미국의 시각과 필요에 의한 것들이란 점을 감안하고 봐야하며, 이것이 한국전쟁의 온전한 총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를 보면, 미국의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인데도, 미국의 기록, 수집, 보관에 대한 인식과 능력의 우수함과 선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그 셋째 권은 지난달에 출간됐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된 기록 문화에서도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에 우리와 관련한 타인들의 기록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집단과 특정 국가의 시선은 그 자체만으로 제3자의 시선이 있지만, 그 집단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편향되는 한계 역시 따른다. 때문에 다각적으로 세계 속의 시각들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얼마만큼 기록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런 자료들을 비교해 본다면 국가라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전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그 안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의 접합점은 무엇인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대중이 관련 사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으로『그들이 본 한국 전쟁』시리즈(2005, 눈빛)가 있다. 그 중『그들이 본 한국 전쟁 1』은 1959년 중국 해방군화보사에서 참전기념 화보집 형식으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한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공군의 실체와 한국전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목적과 그들의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그들이 본 한국 전쟁 2』는 미 해외참전용사협회에서 참전 기념호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 한 것이고,『그들이 본 한국 전쟁 3』은 미군 사진병과 군속 사진가가 찍은 전쟁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들 사진집에는 사진 자료 이외에도 국제관계, 한국현대사, 정치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한국전쟁에 대한 글들(『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2』),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재임했던 리지웨이와 클라크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3』)는 물론, 미국에서 수집한 북한 측의 삐라와 포스터와 서류는 물론 중공군․북한군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과 편지 등(『지울 수 없는 이미지3』)이 함께 실려 있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한국전쟁,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크다.  

 

 

 

 

 

 

 

 

 

전체가 간과한 기억을 되짚는 특별한 통로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서, 영거와 스미스는 비교적 전문적인 사진 촬영 기술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 사진의 완성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거와 스미스의 사진 기록물들은 사진의 예술성이나 한 컷의 사진이 갖는 구성적 완결성 면에서가 아닌, 기록의 희소성으로부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한국전쟁과 전쟁 직후의 사진 기록들은, 종군 사진 기자들의 취재나 일종의 첩보 활동에 의한 그것들과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전해준다. 한국의 생활상을 담은 외국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 부대 안팎에서 참전 중 군인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들이 참전 군인이기는 했지만, 전투 외의 여가 시간에 개인 취미 생활의 측면에서 사진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 격전 현장과 전투 상황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휴식과 휴가 중 전투 이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휴전 직후의 상황에 대한 여유로운 기록들이다.

그 전쟁중의 여유로운 풍경은 그들이 1950, 51년의 긴박한 상황보다는, 남북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이익과 관련해 전쟁을 지지부진 끌어가던 1952, 53년 사이에 참전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이들의 사진 속에는 휴전이 발표된 직후 전선에서 방금 전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사투를 벌이던 유엔군과 중공군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으로 화폐에 사인을 해 주고 받는 모습마저 담겨 있다.  

 

 

 

 

 

 

 

 

 

또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안에는 영거가 쓴 한국참전 경험과 전란 속의 한국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있어, 한국전쟁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서문에서 안소니 영거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순전히 개인의 시각과 기억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과 감성이 결합한 개인의 기억이란, 때로 전체의 기억이 간과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통로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공적 기억에서 배제된 기억을 상기해내거나 그 감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탄피로 만든 와인잔으로부터

그 중 인상적인 기억의 몇 가지는 이렇다. 전쟁 중 원화 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화폐로서 쓸모가 없게 되자 시장에서 맥주병이 돈으로 사용됐다든가 탄피(탄환이나 포탄의 껍데기)나 통신선 등 그릇이나 장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들을 구체적 사진 기록들로 충분히 담겨있지는 않지만, 기억에 대한 기록과 수집 물품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전시장 중앙에는 안소니 영거가 간직하고 있던 탄피와 당시 한국의 시장에서 사서 아직도 즐겨 쓰고 있다는 탄피로 만든 와인잔이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었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3』에서 탄피의 다양한 재활용의 실체를 증명하는 탄피로 만든 교회의 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놋그릇과 철재들이 모아져 전쟁물자로 조달되고 난 후, 그 전쟁의 폐품들이 일상용품들로 재활용되는 전쟁의 궁핍상과 전쟁의 생산성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이런 교차는, 새삼 전쟁의 경험이 상품화되어 경제적 가치를 갖고 정치적 목적으로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있는 모습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재현돼 오고 있다. 더구나 파괴적인 전쟁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은 물론 경제 같이 많은 것을 잉태하고 발전시켜낸 생산적인 면모들조차 함축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전쟁의 상품화와 재활용' 자체에 무턱 대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선만이 선을 악만이 악을 잉태하지 않으며, 선이 악을 잉태하기도 하고 악이 선을 잉태하기도 하는, 인간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이라 가르치지 말고, 좋게 쓰면 좋은 것 나쁘게 쓰면 나쁜 것이라 가르치자는 것이다. 가령 ‘거짓말은 나쁘다. 칼은 나쁘다’는 틀렸다는 것이다. 선배의 이야기는 섣부른 가치판단으로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가두지 말자는 뜻에서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하고 귀담아 들었다. 하지만 모호해지는 면도 있었다. ‘전쟁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틀린가 하는 것과 ‘전쟁과 도둑질과 살인도 좋게 쓰면 좋은 것이다’가 맞는 말일까 하는 것이었다. 답은, 특히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둑질인 적군․적국의 첩보 활동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조국․아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설 틈이 없으며, 우리 집단 전체를 위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의롭고 사명감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살인 역시 그렇다. 국가를 위한 경우는, 적․악에 대한 응징으로써, 우리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희생으로 추앙되고, 감히 ‘살인’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낱말을 갖다 부치는 것이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전쟁 역시, 적의 전쟁 도발은 나쁜 것이고, 이 나쁜 것에 대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대응으로, 또는 우리 집단의 영역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쟁은 정의로운 힘으로 추앙된다.칭기즈칸의 영토 확장이 서구에서는 폄하되고 아시아에서 미화되듯 말이다.

거짓말도 그렇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곤 하는데, 사람은 거짓말도 정의롭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예로 일제로부터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쁜 것이다.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는 중에 효과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일제를 속이는 거짓말을 아주 잘해야 하고, 못하는 것이 못난 것이다. 고작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훌륭하고 숭고한 거짓말조차 존재하는 것이다. 독립군의 거짓말 이야기가 너무 먼 이야기일까.

반공 교육과 ‘한국전쟁’교육의 차이

물론 겨우 탄피 와인잔의 일화에서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흘러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은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은 해이다. 전쟁 발발로부터 어느새 환갑이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후 세대들의 집단적 경험들 중 많은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반공 교육이 차지하고 있다.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고 표어를 짓 듯, 매년 6월에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반공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해왔고, 돼지와 늑대의 모습을 한 북한 공산당에 대항해 불쌍한 북한 주민을 구하는 똘이 장군의 활약상을 담은 만화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그러면서 그들 중 많은 경우 비슷한 형태의 반공 의식과 관련한 꿈까지 공유하는 독특한 경험조차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가끔 가다 한 번씩 태권브이를 타고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는 꿈을 꾼다고 하자, 한 친구는 무장공비들이 침투했거나 전쟁 중이었거나 하는 상황에서 북한 공산군을 피해 마을과 산 속으로 숨어 다니는 꿈을 간혹 꾼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삶의 형태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듯 대한민국 전후세대들의 집단적 삶과 의식 안에도 한국전쟁은 어김없이 어떤 양상으로든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무의식의 공포로만 작용해서, 우리를 갇혀 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북한과 미국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친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어이 없어할 만큼 어리석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우리의 역사, 정치는 물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의 교육이 반공 교육에만 치우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가장 굵직한 사건인 한국전쟁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은 외면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한 전쟁의 역사, 우리가 가진 전쟁의 상처를 우리의 미래에 좋고 이롭게 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할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록들을 발굴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들이기 때문이다.(한영신/ 자유기고가)

07.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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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북리뷰들을 둘러보았는데 지갑을 열 만한(아니 카드를 그을 만한) 책들이 다행히 눈에 띄지 않았다. 소장도서로 분류할 책이 없지는 않지만 당장에 구매할 필요는 없는 책들이다(도서관련 지출이 많아진 즈음이라 다행스럽다). 막간에 민족주의에 대한 책 두 권의 리뷰나 챙겨둔다. 그 두 권이란, 하나는 최근 출간된 장문석의 <민족주의 길들이기>(지식의풍경, 2007)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4월에 출간된 한스 울리히 벨러의 <허구의 민족주의>(푸른역사, 2007)이다(특이하게도 조선일보의 리뷰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벨러의 책은 얇은 분량이지만 (서구)민족주의 입문서로 적절해 보인다(한국 민족주의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들을 고려하자면. 가령 http://blog.aladin.co.kr/mramor/839351). 벨러의 책은 어제 구내서점에서 손에 들었다가 약간 파손된 상태여서 다시 내려놓았던 책이다.

경향신문(07. 07. 07) '두 얼굴’의 민족주의와 공존하기

“억눌린 것이 돌아왔다. 그 이름은 민족주의다.” 캐나다의 역사가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1993년 이같이 선언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집을 나갔던 ‘탕아’인 민족주의가 귀환했다. 냉전이 끝나면 세계화 물결이 지구촌을 뒤덮을 것이라는 석학들의 예언은 빗나갔다. 인종과 종교, 문화를 구심점으로 한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유럽을 휘감고 있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민족주의’는 불길한 이름이다. 민족주의는,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폭탄 테러와 피의 보복을 일삼는 분리주의자들의 이념이며, 끔찍한 전쟁과 국지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나 과연 민족주의는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민족주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저자는 “민족주의는 팽창과 정복에 따른 억압, 나치즘과 파시즘에 의한 대량학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는 같은 구성원이라는 민족의 정의와 삶을 일치시키려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평등과 민주주의의 폭을 넓혀왔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민족주의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강하게 비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합리적이고 시민적인 데 반해 ‘서양 속의 동양’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감정적이고 종족적이라는 이분법은 서유럽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틀에서 이해한 민족주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종족적 민족주의의 요소는 존재했다. 영국의 한 총리는 “신께서 어려운 일을 행하고자 하실 때는 영국인이 아니라 잉글랜드인을 부르신다”고 말해 뿌리 깊은 잉글랜드 중심주의를 드러냈다. 이와는 달리 감정적이고 후진적인 민족주의 국가로 지목된 독일의 사회민주당 정권은 프랑스의 이민정책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통합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다. 이 것은 종족적이지 않은 민족주의이다.

또 민족주의는 특정 국가의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국제관계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근대 초기 영국에서는 에스파니아, 프랑스 등과의 대립을 통해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한제국의 위기와 식민지 경험을 거치면서 또렷해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의 종족적 뿌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자생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종족과 민족의 근원적 차이를 지적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난 근대적인 현상이다. 민족에는 전 근대 시대의 종족에 담긴 문화적 논리와 근대국가 시민에 담긴 정치적 논리가 공존하는 셈이다.

저자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형성된 민족주의는 국적과 상관없이 종족적인 성격과 공민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만성질환이 돼 버린 민족주의를 당장 버릴 수도 껴안을 수도 없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달래며 살아가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를 길들여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민족주의의 민주적 속성을 최대한 발화시켜 스스로 연소하게끔 하자’는 것이 이 책에 담겨있는 실천적 문제의식이다.(예진수기자)

조선일보(07. 04. 28) "민족주의는 근대 서양의 잘못된 발명품”

근대세계사의 주역은 민족과 민족국가다. 산업화와 국가간 교섭의 확대가 특징인 근대사에서 민족과 민족국가는 내적인 근대화와 외적인 국가간 경쟁의 주체였다. 그리고 민족이 역사의 기본단위라는 민족주의는 민족과 민족국가를 이끌고 가는 기관차였다. 이는 민족국가가 먼저 태동한 유럽과 북미는 물론 그들의 침략을 받으며 뒤를 따른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민족간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간의 극심한 충돌로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더하다. 지난 50년 유럽연합을 건설하며 초(超)민족국가를 실험해온 유럽에서 민족주의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다. 세계대전들의 도발자였던 독일은 이런 경향이 특히 심하다.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한스-울리히 벨러(Hans-Ulrich Wehler)가 쓴 이 책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저자는 민족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 민족주의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안된 질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이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종족(種族)에 기반한 통치체제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강조한다. 이는 민족을 불변의 실재로 보는 1980년대 이전의 민족주의 연구와 가변적인 것으로 보는 그 이후의 민족주의 연구를 결합한 것이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871년 1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빌헬름 1세의‘독일 황제 즉위식’은 독일 민족국가 수립의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은 비스마르크다. 푸른역사 제공

민족주의는 서구문화권의 발명품이다. 근대초기 구미(歐美)가 당면한 정치적 혁명, 종교적 갈등, 위계질서의 동요 등 구조적 위기들에 대한 해법으로 민족주의가 등장했다. 민족과 민족국가를 통해 통치질서를 재확립하고 대중을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일으킨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런 움직임은 영국·미국·프랑스에서 모범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세 나라의 근대화는 19세기 중반 이후 다른 나라들의 모방을 가져왔다.

이렇게 시작된 민족주의는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영국·미국·프랑스의 ‘통합민족주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민족주의’, 동유럽·러시아·오스만제국의 ‘분리민족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의 ‘전이(轉移)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뒤의 세가지는 상대적인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적 근대화의 이념이었다. 이런 고통스런 근대화의 경험은 민족주의의 극단화를 낳았다. 민족과 민족국가를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내·외부의 적(敵)과 이방인에 대한 적대를 가져왔다. 더구나 민족주의에 내재한 소명의식과 형제애는 타자(他者)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때로 ‘원수’에 대한 폭력의 행사를 정당화했다.

독일근대사에 대한 분석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일에서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179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프로이센의 팽창 정책으로 독일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독일 민족주의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 “프랑스를 때려 죽여라”는 선동이 지식인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1차 대전의 패배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 결과는 히틀러라는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집권이었다. 2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이 민족주의의 주술로부터 풀려나서야 독일의 번영은 찾아왔다.

저자는 근대세계의 성공, 즉 경제성장·입헌-법치국가·사회복지 등을 민족국가와 연결시키는 분석을 거부한다. 그것은 우연에 불과하며, 민족국가에 부당한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 평화로운 시민공동체와 외부적으로 민족국가들끼리 협력하는 평화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주의 개념을 걷어내고 대신 헌법국가, 법치국가, 사회복지국가라는 보편적인 토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비(非)서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 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종족적 전통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정치지배 시스템이 불안정하게 됐고, 그 결과 개발도상국은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안정된 민족국가는 서양에만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비서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은 종족적 전통에서 출발한 민족주의를 토대로 근대국가 건설에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독일과 같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이제 중국과 인도 등 다른 비서구 국가들도 한국이 걸은 길을 뒤따르고 있다. 이들의 역사적 경험까지 포괄하는 더 폭넓은 민족주의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제 Nationalismus.(이선민 논설위원)


 
더 읽을 만한 책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책 중에서 시기적으로 앞서고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신행선 옮김)이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한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1882년 ‘이성(理性)의 사도(使徒)’ 르낭이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민족을 종족적·언어적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 귀속의식을 토대로 한 정치적 실재로 파악했다. “민족의 존재는 매일매일의 국민투표”라는 유명한 구절은 이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창비, 백낙청 엮음)는 민족주의에 대한 세계 학계의 학문 연구 중 주요 성과들을 한데 담았다. 한스 콘, E H 카 등 민족주의 연구의 선구자로부터 어네스트 겔너, 앤터니 스미스, 톰 네언 등 현재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 그리고 제3세계의 민족주의론까지 망라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단행본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강명세 옮김)와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나남출판, 윤형숙 옮김)다. 홉스봄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프랑스대혁명에 의해 처음 등장한 민족주의를 발전단계에 따라 태동기(1780~1870), 발전기(1870~1918), 극성기(1918~1950), 쇠퇴기(1950~)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앤더슨의 책은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조형물로 본다. 그는 민족주의가 중남미의 지배층이었던 크리올(유럽 이민자의 후예)에서 기원하여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07. 07. 07.

О русском национализме

P.S. 개인적으로 민족주의 일반론 이상으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러시아에서는 종교철학자 이반 일리인(1883-1954)의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하여>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뜬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만큼이나 고려되어야 할 것은 '종교로서의 민족주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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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7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한겨레 보면서 윗 책 찜해놨어요. 두번째 책은 조선일보에만 소개된거군요. 민족주의에 관련된 몇몇 책들을 사놨었는데 아직 필을 못받아 못보고 있습니다. 아직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외에는 살펴본게 없네요. -_-

로쟈 2007-07-07 11:25   좋아요 0 | URL
논란이 되는 주제이지만 저로서도 당장 흥미를 갖는 주제는 아닙니다.^^;

yoonta 2007-07-07 13:33   좋아요 0 | URL
rss로 로쟈님글을 바로 확인해서 보니 너무 편리하네요 ^^

비로그인 2007-07-07 14:35   좋아요 0 | URL
제국이 쓰러져간 자리에 미친 민족주의만 죽순처럼 나부껴! 제게는 가장 와닿는 말이군요. 근데 FTA적 전횡으로 치닿는 또 다른 제국의 형상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떤 평화의 제국을 꿈꿔야할런지, 꿈꿀수나 있을지 암담합니다.

로쟈 2007-07-07 22:41   좋아요 0 | URL
yoonta님/ 그게 뭔가요?^^;
쏠다님/ 꿈과 악몽은 때로 구별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그 '제국'과 '민족주의' 바깥에 놓여 있지 않다는 인식이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보고요...

드팀전 2007-07-08 12:26   좋아요 0 | URL
장벽이 무너진 자리엔 모든 것이 장벽이다...라는 시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yoonta 2007-07-08 13:03   좋아요 0 | URL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dir_id=10801&eid=PwlZ4j4c2aKivflHiSlZl/iQyeHxRu5g&qb=cnNz

이글 읽어보시면 될듯합니다. 저는 설치형으로 했는데 컴퓨터 부팅하자마자 바로 로쟈님글 업데이트를 확인할수있네요.
 

도서출판 앨피의 '루틀리지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로 세 명의 여성 철학자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 세 명의 여성이고 이 시리즈를 긁어모으는 나로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또 모두 주문을 했다(버틀러는 배송일이 달라서 조금 미뤄두었다). 

 

그래서 어제 받아본 책이 노엘 맥아피의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이다. 맥아피의 원서를 구할 수 있어서 <크리스테바>를 먼저 손에 들었고 서론격인 '왜 크리스테바인가?"를 읽었다. 예전에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787972)란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관심이 있으신 분은 먼저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름대로는 크리스테바 컬렉션을 갖추고 있을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라 바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가는 걸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건 나의 타협안은 일단 이 서론만 읽어두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는 우리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가로 꼽힌다. 크리스테바는 '말하는 존재'가 구술문학과 기록문학, 정치와 국가적 정체성, 섹슈얼리티, 문화와 자연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별자리가 된다고 보는 극히 드믄 철학자이다."(19쪽)

'가장 주목할 만한'은 'most original'의 번역이다. 그리고 '말하는 존재'는 'speaking being'을 가리키는데, 원문에는 강조표시가 돼 있지 않지만 크리스테바의 키워드이다. 그녀의 관심대상은 '말하는 존재(speaking being)',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크리스테바는 문학과 정치, 섹슈얼리티, 정신분석 등 종횡무진이다. '말하는 존재'는 그 모든 것에 두루 걸치는 '불가사의한 접면(strange fold)'이어서이다.

"크리스테바의 통찰 속에서는 경계의 어느 쪽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힘들의 포위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정통 정신분석학자가 치료하는 '경계성'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경계성은 불가리아 출신의 이민자/망명자인 크리스테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국역본에는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란 타이틀이 붙여졌을 터이다). 그녀는 그러한 경계성을 일반화하며 그리하여 "크리스테바의 작업은 소위 주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늘 빈약한 성취에 불과한지, 그것이 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역동적 과정인지를 보여준다."(20쪽)

이때 '주체성(subjectivity)'은 '자아(self)'와 구별되어야 한다. "'자아'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흔히 '내가 말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킨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이다.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같은 주체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 철학적 전통의 한 갈래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에 크리스테바는 철학계와 문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탈구조주의' 운동을 예고한 선도적 사상가들 중 한 명이다."(21쪽) 이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평가와도 일치한다. "나는 탈구조주의의 한 유형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 중 한 명이다."(29쪽) 그 중에서도 크리스테바를 도드라지게 하는 점은, 곧 '왜 크리스테바인가?'란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녀가 언어와 문화 사이의 접면에서 나타나는 '말하는 존재'를 언어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이해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로 제안했다는 점"이다.

해서, "누군가 정신분석 이론과 종교학, 아방가르드 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널리 펼쳐져 있는 분야의 통찰을 통합하고자 한다면, 크리스테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힐 것이다."(23쪽)

 

 

 

 

이러하 평가에 이어지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간략한 전기이다. 알려진 대로 그녀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의대를 나오고서 교회의 회계사로 일한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린 줄리아는 공산당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게 된다(그러니까 크리스테바는 수녀들로부터 불어를 마스터하게 된다). 이때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는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당시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사회/문학 철학자인 동유럽의 미하일 바흐친의 작업도 접했다."(러시아 사상가 바흐친을 '동유럽의 사상가'라고 한 것은 특이하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프랑스 누보로망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에 크리스테바는 프랑스 정부초청 장학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 공산주의자 학장이 모스크바에 가 있던 1965년 겨울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지도교수가 그녀를 프랑스 대사관으로 데려다 주고 거기서 그녀는 장학금 수혜를 위한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는 막바로 불가리아를 떠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장학금은 1월부터 받게 돼 있었지만 학장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올 경우 유학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단돈 5달러만 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 도착한다(그리고 가방에는 달랑 바흐친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크리스테바의 전설이다. 그야말로 '사무라이' 아닌가?

무사들

다행히도 그녀는 우연히 불가리아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장학금이 올 때까지 같이 지내게 된다. 그리곤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지식인들의 세대에 합류하게 된다. 파리 고등실업연구원(파리 고등 사회과학연구원의 전신인데, Pratique를 '실업'이라고 옮기나?)에서 뤼시앵 골드만(1913-1970)과 만나게 되는바 "루마니아 출신의 망명 동료이자 문학이론가인 뤼시앵 골드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크리스테바를 도와주었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그것은 조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정류의 도움이었다."(26쪽) 이런 자전적인 내용은 크리스테바의 소설 <사무라이들>에서도 자세히 그려진다(한때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골드만의 책은 현재 한권도 구할 수 없는 듯하다). 골드만은 소설의 기원에 관한 그녀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게 되며 또한 그녀를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세미나에 소개한다. 그녀는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롤랑 바르트의 가르침은, 내가 환원적이고 호소력 있다고 느낀 형식주의를 이해하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이 대목은 오역이다. 원문은 "the teaching of Roland Barthes attracted me because of its capacity to make formalism, which I had found reductive, extreamly appealing."(5쪽)이다. "내가 형식주의를 호소력 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바르트가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extreamly appealing)'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다시 옮기면, "롤랑 바르트의 강의는 내가 환원적이라고 생각했던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1960년대 중반의 바르트라면 구조주의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이다.

이어서 크리스테바는 파리 지성계의 모든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부터 에밀 방브니스트, 자크 라캉, 미셀 푸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구조주의자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현재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 즉 미하일 바흐친과 상호텍스트성, 대화, 소설의 카니발화 등과 같은 개념들을 소개"하며 이것이 곧바로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다(그녀의 이 소논문에 대해서는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에서 다루었다). <세미오티케>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바흐친은 정태적인 텍스트 분석을 문학적 구조가 단지 '존재하는' 모델이 아닌, 또 다른 구조와 관련하여 생성되는 모델로 대체한 최초의 사람이다. 구조주의에 역동적인 차원을 부여한 것은 '초점'(고정된 의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텍스트 표층들의 교차', 말하자면 저자와 수신자(또는 인물) 그리고 동시대이거나 이전의 문화적 맥락의 여러 저술들 사이의 대화를 의미하는 '문학적 언어'라는 개념이다."(27쪽)

영역본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1980)으로부터 인용된 이 대목은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와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 각각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한데, <세미오티케>를 당장 갖고 있지 않아서(연구실 공동서가에 꽂아놓았다가 잠정 분실했다) 어떻게 번역돼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point'를 '초점'이라고 한 것은 오역이다. 그건 말 그대로 '점'이란 뜻이다. 바흐친은 '문학적 언어(literary word)'를 고정된 의미를 갖는 '점'이 아니라 복수적 텍스트의 '교차면'으로 본다는 것이다('이 '문학적 언어'는 아마도 러시아어 'slovo'의 번역어이며, 우리말로는 '말', '담론' 등으로도 번역돼 있다).

여하튼 크리스테바는 바흐친을 서구 이론/지성계에 최초로 소개한 공로가 있다. 그리고 "바흐친에 대한 그녀의 설명과 확장이 널리 인정받게 되면서, 크리스테바는 바로 미국에서 강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28쪽) 이 대목은 처음 알게 된 것인데, 그녀는 그 제안을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을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전위적 문학그룹이었던 <텔켈>지 편집위원으로 가세하게 되며 그 멤버 중의 하나였던 필립 솔레르(솔레르스; 1936- )와 1975년에 결혼한다(작가이기도 한 솔레르스의 작품들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다. <여자들>과 <모차르트 평전>을 포함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래 사진은 만리장성에서의 솔레르스와 크리스테바.  

어쨌든 1960년대 중반의 파리는 지적으로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고 크리스테바에게도 '황홀한 시기'였다. 그녀는 그 시대를 호흡하며 성장하며 당시의 유행사조이던 구조주의를 탈구조주의로 변형시킨다. "탈구조주의는 그것이 역사, 시간, 과정, 변화, 사건 등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새로웠다."(29쪽)고 지적되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구조주의에 시간성/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와 다른 탈구조주의자들은 앞서 소개한 '자아' 개념을 버리고 역사, 언어, 기타 결정력의 변화에 종속된 '말하는 존재' 개념을 제안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저서'(이면서 가장 어려운 저서)는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이다.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 등과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시인들을 다룬 그녀의 국가박사 학위논문이기도 한데, 영역본과 국역본 이 방대한 저작의 모두 부분 번역이다. 이 책에서 크리스테바는 언어적 혁명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모색한다.

1968년 5월 혁명의 좌절 이후 텔켈 그룹과 크리스테바는 중국의 마오쩌둥에 경도된다.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이 대거 마오이스트가 된 것인데, 이들은 1974년 직접 3주간 중국을 여행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환멸을 느낀다. "크리스테바 일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천상의 사회주의 대신에 크리스테바가 불가리에서 이미 겪은 바 있는 소련식 공산주의의 종말 징후를 발견했다. 중국 여행은 크리스테바가 나중에 말하는 대로 '정치와의 결별'을 예정한다."(32쪽) '불가리'는 '불가리아'의 오타이다.

이 중국 여행의 결과로 나온 것이 "그녀가 나중에 스스로 '서투른 책'이라고 일컬은 <그림자 연극(Des Chinoises)>(1974)"이다. 한데, 이 책은 영어로는 <중국 여성에 대하여(About Chinese Women)>라고 부분 번역된 책이고 또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림자 연극'이라고 옮겨졌는지 모르겠다(그런 중의성을 갖는 것인가?).

아무튼 맥아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이 중국이 크리스테바에게 갖는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중국은 크리스테바에게 그녀가 마주칠 필요가 있었던 내부 영토의 섬광을 제공한다.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우리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유일한 대륙'을 독학하는 길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32쪽) 

 

 

 

 

"1960년대와 70년대 저술이 기호학과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면, 1980년대의 텍스트들은 말하는 주체의 정신분석학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게 크리스테바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인데,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중국(=무의식)이고 중국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크리스테바의 저술은 두 가지의 새로운 전환"을 선보이는데, 일련의 소설들이 그 하나이고 정치학 에세이들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소설들로는 <사무라이>(1992)와 <노인과 늑대들>(1994),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1996) 등이 있고, 이 중 두 권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다만 아직 <국가주의 없는 국가> 등 후자에 속하는 책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크리스테바는 현재 파리 7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정신분석의로도 활동하고 있고, 콜롬비아(컬럼비아)대학과 토론토대학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책은 게르만계(독일계) 미국인 이론가(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저술과 생애를 다룬 삼부작이다.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이 중 클라인을 다룬 책의 국역본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멜라니 클라인>(아난케, 2006)은 근간 예정이다, 가 아니라 작년에 출간됐다. 알라딘에 없을 뿐이다...

07. 07. 07. 

P.S.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소개하고 있는 '크리스테바의 모든 것'이란 장에서 내가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로스 구베르만이 편집한 <줄리아 크리스테바 인터뷰>(1996)이다(언어학에 대한 동영상 인터뷰 http://www.youtube.com/watch?v=IXLUsoEDYPw도 한번 구경해보시길. 영어 자막이 붙어 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24개의 상이한 인터뷰들로 구성된 책"으로서 "크리스테바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대화체 어조와 문답 구성 덕분에 그녀의 저술 이면에 있는 사유를 쉽고 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책의 중심부에는 크리스테바의 유년기부터 1960년대 파리 체류기, 그리고 유럽의 중견 문명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활동하는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20여 장의 크리스테바 사진이 실린 포토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맥아피의 책보다 조금 늦게 나온 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역시나 크리스테바 전문가인 존 레흐트와 마리아 마르가로니 공저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살아있는 이론>(2004).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며 존 레흐트는 <한권으로 보는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의 저자이다...

P.S.2. 한편 오래전에 정리해놓은 데리다와 크리스테바의 대담('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은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0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2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3 참조.


P.S.3. 크리스테바의 신작소설도 오랜만에 번역돼 나왔다. <비잔틴 살인사건>(소담, 2007). "크리스테바의 장편소설 ‘비잔틴 살인사건’은 팩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도시 산타바르바라를 무대로 전개되는 역사추리소설인 것이다. 마피아와 사이비종교단체가 지배하는 도시 산타바르바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음성이 중첩된 형이상학적 탐정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21세기 현대 문명의 잔혹한 이면을 비판하면서 느닷없이 십자군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대입시킨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의 비밀을 연구하는 세바스찬 교수가 핵심적 인물로 등장한다. 1000년 전 비잔틴제국의 역사도 되돌아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모국인 불가리아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이 소설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조선일보)라는 소개기사를 참조해볼 수 있겠다. 크리스테바 자신은 일종의 '안티-다빈치코드'라고 불렀다 한다.

07.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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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되기에 예고만 되고 아직 안 나온 책으로 알았습니다.^^

빌보 2008-01-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낮의 우울 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책을 보고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을 읽어보려고 검색하던 중 님의 글을 보게 됐네요.
크리스테바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의외로 번역된 책들이 많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ㅎㅎ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