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앨피의 '루틀리지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로 세 명의 여성 철학자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 세 명의 여성이고 이 시리즈를 긁어모으는 나로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또 모두 주문을 했다(버틀러는 배송일이 달라서 조금 미뤄두었다). 

 

그래서 어제 받아본 책이 노엘 맥아피의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이다. 맥아피의 원서를 구할 수 있어서 <크리스테바>를 먼저 손에 들었고 서론격인 '왜 크리스테바인가?"를 읽었다. 예전에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787972)란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관심이 있으신 분은 먼저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름대로는 크리스테바 컬렉션을 갖추고 있을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라 바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가는 걸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건 나의 타협안은 일단 이 서론만 읽어두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는 우리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가로 꼽힌다. 크리스테바는 '말하는 존재'가 구술문학과 기록문학, 정치와 국가적 정체성, 섹슈얼리티, 문화와 자연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별자리가 된다고 보는 극히 드믄 철학자이다."(19쪽)

'가장 주목할 만한'은 'most original'의 번역이다. 그리고 '말하는 존재'는 'speaking being'을 가리키는데, 원문에는 강조표시가 돼 있지 않지만 크리스테바의 키워드이다. 그녀의 관심대상은 '말하는 존재(speaking being)',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크리스테바는 문학과 정치, 섹슈얼리티, 정신분석 등 종횡무진이다. '말하는 존재'는 그 모든 것에 두루 걸치는 '불가사의한 접면(strange fold)'이어서이다.

"크리스테바의 통찰 속에서는 경계의 어느 쪽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힘들의 포위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정통 정신분석학자가 치료하는 '경계성'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경계성은 불가리아 출신의 이민자/망명자인 크리스테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국역본에는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란 타이틀이 붙여졌을 터이다). 그녀는 그러한 경계성을 일반화하며 그리하여 "크리스테바의 작업은 소위 주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늘 빈약한 성취에 불과한지, 그것이 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역동적 과정인지를 보여준다."(20쪽)

이때 '주체성(subjectivity)'은 '자아(self)'와 구별되어야 한다. "'자아'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흔히 '내가 말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킨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이다.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같은 주체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 철학적 전통의 한 갈래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에 크리스테바는 철학계와 문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탈구조주의' 운동을 예고한 선도적 사상가들 중 한 명이다."(21쪽) 이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평가와도 일치한다. "나는 탈구조주의의 한 유형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 중 한 명이다."(29쪽) 그 중에서도 크리스테바를 도드라지게 하는 점은, 곧 '왜 크리스테바인가?'란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녀가 언어와 문화 사이의 접면에서 나타나는 '말하는 존재'를 언어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이해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로 제안했다는 점"이다.

해서, "누군가 정신분석 이론과 종교학, 아방가르드 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널리 펼쳐져 있는 분야의 통찰을 통합하고자 한다면, 크리스테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힐 것이다."(23쪽)

 

 

 

 

이러하 평가에 이어지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간략한 전기이다. 알려진 대로 그녀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의대를 나오고서 교회의 회계사로 일한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린 줄리아는 공산당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게 된다(그러니까 크리스테바는 수녀들로부터 불어를 마스터하게 된다). 이때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는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당시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사회/문학 철학자인 동유럽의 미하일 바흐친의 작업도 접했다."(러시아 사상가 바흐친을 '동유럽의 사상가'라고 한 것은 특이하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프랑스 누보로망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에 크리스테바는 프랑스 정부초청 장학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 공산주의자 학장이 모스크바에 가 있던 1965년 겨울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지도교수가 그녀를 프랑스 대사관으로 데려다 주고 거기서 그녀는 장학금 수혜를 위한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는 막바로 불가리아를 떠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장학금은 1월부터 받게 돼 있었지만 학장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올 경우 유학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단돈 5달러만 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 도착한다(그리고 가방에는 달랑 바흐친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크리스테바의 전설이다. 그야말로 '사무라이' 아닌가?

무사들

다행히도 그녀는 우연히 불가리아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장학금이 올 때까지 같이 지내게 된다. 그리곤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지식인들의 세대에 합류하게 된다. 파리 고등실업연구원(파리 고등 사회과학연구원의 전신인데, Pratique를 '실업'이라고 옮기나?)에서 뤼시앵 골드만(1913-1970)과 만나게 되는바 "루마니아 출신의 망명 동료이자 문학이론가인 뤼시앵 골드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크리스테바를 도와주었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그것은 조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정류의 도움이었다."(26쪽) 이런 자전적인 내용은 크리스테바의 소설 <사무라이들>에서도 자세히 그려진다(한때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골드만의 책은 현재 한권도 구할 수 없는 듯하다). 골드만은 소설의 기원에 관한 그녀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게 되며 또한 그녀를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세미나에 소개한다. 그녀는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롤랑 바르트의 가르침은, 내가 환원적이고 호소력 있다고 느낀 형식주의를 이해하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이 대목은 오역이다. 원문은 "the teaching of Roland Barthes attracted me because of its capacity to make formalism, which I had found reductive, extreamly appealing."(5쪽)이다. "내가 형식주의를 호소력 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바르트가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extreamly appealing)'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다시 옮기면, "롤랑 바르트의 강의는 내가 환원적이라고 생각했던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1960년대 중반의 바르트라면 구조주의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이다.

이어서 크리스테바는 파리 지성계의 모든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부터 에밀 방브니스트, 자크 라캉, 미셀 푸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구조주의자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현재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 즉 미하일 바흐친과 상호텍스트성, 대화, 소설의 카니발화 등과 같은 개념들을 소개"하며 이것이 곧바로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다(그녀의 이 소논문에 대해서는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에서 다루었다). <세미오티케>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바흐친은 정태적인 텍스트 분석을 문학적 구조가 단지 '존재하는' 모델이 아닌, 또 다른 구조와 관련하여 생성되는 모델로 대체한 최초의 사람이다. 구조주의에 역동적인 차원을 부여한 것은 '초점'(고정된 의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텍스트 표층들의 교차', 말하자면 저자와 수신자(또는 인물) 그리고 동시대이거나 이전의 문화적 맥락의 여러 저술들 사이의 대화를 의미하는 '문학적 언어'라는 개념이다."(27쪽)

영역본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1980)으로부터 인용된 이 대목은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와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 각각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한데, <세미오티케>를 당장 갖고 있지 않아서(연구실 공동서가에 꽂아놓았다가 잠정 분실했다) 어떻게 번역돼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point'를 '초점'이라고 한 것은 오역이다. 그건 말 그대로 '점'이란 뜻이다. 바흐친은 '문학적 언어(literary word)'를 고정된 의미를 갖는 '점'이 아니라 복수적 텍스트의 '교차면'으로 본다는 것이다('이 '문학적 언어'는 아마도 러시아어 'slovo'의 번역어이며, 우리말로는 '말', '담론' 등으로도 번역돼 있다).

여하튼 크리스테바는 바흐친을 서구 이론/지성계에 최초로 소개한 공로가 있다. 그리고 "바흐친에 대한 그녀의 설명과 확장이 널리 인정받게 되면서, 크리스테바는 바로 미국에서 강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28쪽) 이 대목은 처음 알게 된 것인데, 그녀는 그 제안을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을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전위적 문학그룹이었던 <텔켈>지 편집위원으로 가세하게 되며 그 멤버 중의 하나였던 필립 솔레르(솔레르스; 1936- )와 1975년에 결혼한다(작가이기도 한 솔레르스의 작품들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다. <여자들>과 <모차르트 평전>을 포함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래 사진은 만리장성에서의 솔레르스와 크리스테바.  

어쨌든 1960년대 중반의 파리는 지적으로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고 크리스테바에게도 '황홀한 시기'였다. 그녀는 그 시대를 호흡하며 성장하며 당시의 유행사조이던 구조주의를 탈구조주의로 변형시킨다. "탈구조주의는 그것이 역사, 시간, 과정, 변화, 사건 등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새로웠다."(29쪽)고 지적되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구조주의에 시간성/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와 다른 탈구조주의자들은 앞서 소개한 '자아' 개념을 버리고 역사, 언어, 기타 결정력의 변화에 종속된 '말하는 존재' 개념을 제안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저서'(이면서 가장 어려운 저서)는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이다.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 등과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시인들을 다룬 그녀의 국가박사 학위논문이기도 한데, 영역본과 국역본 이 방대한 저작의 모두 부분 번역이다. 이 책에서 크리스테바는 언어적 혁명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모색한다.

1968년 5월 혁명의 좌절 이후 텔켈 그룹과 크리스테바는 중국의 마오쩌둥에 경도된다.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이 대거 마오이스트가 된 것인데, 이들은 1974년 직접 3주간 중국을 여행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환멸을 느낀다. "크리스테바 일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천상의 사회주의 대신에 크리스테바가 불가리에서 이미 겪은 바 있는 소련식 공산주의의 종말 징후를 발견했다. 중국 여행은 크리스테바가 나중에 말하는 대로 '정치와의 결별'을 예정한다."(32쪽) '불가리'는 '불가리아'의 오타이다.

이 중국 여행의 결과로 나온 것이 "그녀가 나중에 스스로 '서투른 책'이라고 일컬은 <그림자 연극(Des Chinoises)>(1974)"이다. 한데, 이 책은 영어로는 <중국 여성에 대하여(About Chinese Women)>라고 부분 번역된 책이고 또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림자 연극'이라고 옮겨졌는지 모르겠다(그런 중의성을 갖는 것인가?).

아무튼 맥아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이 중국이 크리스테바에게 갖는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중국은 크리스테바에게 그녀가 마주칠 필요가 있었던 내부 영토의 섬광을 제공한다.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우리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유일한 대륙'을 독학하는 길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32쪽) 

 

 

 

 

"1960년대와 70년대 저술이 기호학과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면, 1980년대의 텍스트들은 말하는 주체의 정신분석학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게 크리스테바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인데,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중국(=무의식)이고 중국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크리스테바의 저술은 두 가지의 새로운 전환"을 선보이는데, 일련의 소설들이 그 하나이고 정치학 에세이들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소설들로는 <사무라이>(1992)와 <노인과 늑대들>(1994),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1996) 등이 있고, 이 중 두 권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다만 아직 <국가주의 없는 국가> 등 후자에 속하는 책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크리스테바는 현재 파리 7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정신분석의로도 활동하고 있고, 콜롬비아(컬럼비아)대학과 토론토대학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책은 게르만계(독일계) 미국인 이론가(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저술과 생애를 다룬 삼부작이다.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이 중 클라인을 다룬 책의 국역본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멜라니 클라인>(아난케, 2006)은 근간 예정이다, 가 아니라 작년에 출간됐다. 알라딘에 없을 뿐이다...

07. 07. 07. 

P.S.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소개하고 있는 '크리스테바의 모든 것'이란 장에서 내가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로스 구베르만이 편집한 <줄리아 크리스테바 인터뷰>(1996)이다(언어학에 대한 동영상 인터뷰 http://www.youtube.com/watch?v=IXLUsoEDYPw도 한번 구경해보시길. 영어 자막이 붙어 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24개의 상이한 인터뷰들로 구성된 책"으로서 "크리스테바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대화체 어조와 문답 구성 덕분에 그녀의 저술 이면에 있는 사유를 쉽고 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책의 중심부에는 크리스테바의 유년기부터 1960년대 파리 체류기, 그리고 유럽의 중견 문명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활동하는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20여 장의 크리스테바 사진이 실린 포토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맥아피의 책보다 조금 늦게 나온 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역시나 크리스테바 전문가인 존 레흐트와 마리아 마르가로니 공저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살아있는 이론>(2004).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며 존 레흐트는 <한권으로 보는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의 저자이다...

P.S.2. 한편 오래전에 정리해놓은 데리다와 크리스테바의 대담('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은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0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2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3 참조.


P.S.3. 크리스테바의 신작소설도 오랜만에 번역돼 나왔다. <비잔틴 살인사건>(소담, 2007). "크리스테바의 장편소설 ‘비잔틴 살인사건’은 팩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도시 산타바르바라를 무대로 전개되는 역사추리소설인 것이다. 마피아와 사이비종교단체가 지배하는 도시 산타바르바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음성이 중첩된 형이상학적 탐정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21세기 현대 문명의 잔혹한 이면을 비판하면서 느닷없이 십자군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대입시킨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의 비밀을 연구하는 세바스찬 교수가 핵심적 인물로 등장한다. 1000년 전 비잔틴제국의 역사도 되돌아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모국인 불가리아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이 소설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조선일보)라는 소개기사를 참조해볼 수 있겠다. 크리스테바 자신은 일종의 '안티-다빈치코드'라고 불렀다 한다.

07.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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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되기에 예고만 되고 아직 안 나온 책으로 알았습니다.^^

빌보 2008-01-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낮의 우울 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책을 보고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을 읽어보려고 검색하던 중 님의 글을 보게 됐네요.
크리스테바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의외로 번역된 책들이 많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ㅎㅎ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