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학술저널 담비(http://www.dambee.net/)에 '로쟈의 종횡書해'가 연재된다(나도 오늘 알았다!) 사실 이번달부터 담비에 격주로 리뷰성 글을 기고하기로 했었는데(알라딘 페이퍼성으로) 이번주말쯤에나 첫번째 글을 보내려고 했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풍경'에 관한 글이었는데, 며칠전에 올려놓은 '선비철학 vs 사무라이사상'(http://blog.aladin.co.kr/mramor/1376328)이 구미에 맞은 것인지 연재의 첫꼭지가 되었다(인용문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이다). 편집자가 밝힌 연재의 변은 이렇다.  

담비에서는 7월부터 격주로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리뷰어로 활동중인 '로쟈'의 글을 연재합니다. 연재의 제목은 <로쟈의 종횡書해>입니다. 동서양 철학과 역사, 과학과 인류학 등 방대한 독서를 통해 폭넓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로쟈의 리뷰는 담비와 알라딘 독자들을 전제로 씌어지고 두곳에 동시에 실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통칭 '리뷰어'라고 하지만 알라딘의 분류로는 주로 '마이페이퍼'만 잔뜩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내게 붙여진 타이틀로는 약간 어색한 감이 있다(리뷰들을 읽어주는 '리리뷰어'라면 말이 될는지). 하지만 '종횡서해'란 연재의 타이틀은 맘에 든다(아마도 비평고원의 '로쟈의 책의 바다'란 카테고리를 고려한 듯하다). 나는 편집진에 일임했었는데, 애당초 나에게 제시됐던 제목은 '로쟈의 깊이 읽기' 같은 거였다(그 또한 아이러니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종횡서해'는 물론 주윤발과 장국영, 그리고 종초홍이 주연했던 추억의 홍콩영화 <종횡사해(縱橫四海)>(1990)에서 따온 것이겠다. 오래전 지방 소도시에서 본 듯한 이 영화는 이제 보니 오우삼 감독의 영화이다. DVD 타이틀 소개기사를 옮겨온다.

씨네21(06. 04. 07) 한편의 프랑스영화 같은 오우삼의 낭만 로맨스, <종횡사해>

바바리코트, 쌍권총,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비장미는 오우삼 영화의 일관된 색깔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뜻밖이겠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허관영, 허관걸 형제를 앞세운 <발전한>과 같은 코미디영화도 존재한다. <종횡사해>는 오우삼의 숨은 코미디 재능과 자신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하드액션 장르의 유연한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영화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명화를 훔치는 세 남녀의 모험과 우정, 그리고 로맨스를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명의 주인공 아해와 제임스, 그리고 홍두는 고아 출신으로, 어린시절 악독한 악당에게서 도둑으로 길러진다. 이들의 어두운 성장과정 때문에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한 마당이 벌어질 것 같지만, 영화는 관객의 그런 기대를 저버린다.

<종횡사해>는 음침한 홍콩의 뒷골목을 벗어난 화창한 날씨의 유럽이 배경이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고독한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병상에 있다가 복귀한 주윤발은 시종일관 여유와 쾌활함을 잃지 않는 아해를 연기하며, 장국영은 로맨티스트 제임스를, <종횡사해>를 끝으로 은퇴한 종초홍은 이들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홍두를 연기한다. 이 세명의 캐릭터에게서는 오우삼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단순히 비극의 무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오우삼은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영화를 흠모하며 동경했다. <종횡사해>는 그 애정의 부산물 같은 영화다. 제목부터 로베르 앙리코 감독이 연출하고 알랭 들롱이 주연했던 <대모험>(Les Aventuriers)의 중국식 제목에서 따왔고,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라는 삼각관계 또한 영향을 받았다. <종횡사해>는 누아르 액션에서 조금 외도는 했지만, 기존 팬들을 위한 총격전은 라스트에서 일부 선보이고 있다. 하나 비장미 넘치는 폭력과 심금을 울리는 신파를 기대한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오우삼의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여유와 낭만, 충만한 로맨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휄체어를 탄 주윤발과 종초홍, 장국영의 댄스장면(사진)은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명장면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영웅본색>에서 마음 좋은 택시회사 사장으로 영웅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증강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악역으로 나와 주윤발과 장국영을 괴롭히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영상으로는 독특하게 악역을 맡은 증강의 인터뷰, 포토 갤러리, 예고편을 수록했다.(김종철)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Once a Thief'라는 것. '전직 도둑'쯤 될까? "동서양 철학과 역사, 과학과 인류학 등 방대한 독서를 통해 폭넓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로쟈의 리뷰"란 표현에서 내가 상기하게 되는 것은 '전직 도둑'과 '종횡사해' 사이의 간극이고 아이러니이다(음, 첫번째 글부터가 인용문으로 도배돼 있는 걸 보라!). 

어느샌가 로쟈는 '방대한 독서'를 하는 걸로 가정되는 주체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나의 부인의 제스처는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어느 자리에선가 '2만권을 읽은 사람'으로 오인되기도 했는데, '2만권의 타이틀' 정도를 읽은 걸로 해두자). '폭녋은 시야와 깊이있는 해석'은 담비에서 앞으로 요구하는 바 같은데 나의 전력으로 미루어 보아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그런 '시야/해석'이란 명품을 훔쳐오기 위해 노력은 해봐야겠다. 해서 가끔은 '총격전'을 보여주기도 하겠지만 '로쟈의 종횡書해'의 기본장르는 코미디이고 주된 정조는 책과의 로맨스이다. 로맨스가 될 것이다...

07. 07. 09.

P.S. 기껏 책과의 로맨스인가? 그건 종초홍(1960- ) 같은 파트너가 은퇴해버렸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이 난 김에 그녀의 근황을 다루고 있는 한 기사를 읽어본다.

해럴드경제(06. 08. 08) 周潤發와 호흡 척척… 40代불구 청초한 매력 여전

홍콩영화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그 많던 홍콩스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중추홍(46ㆍ鍾楚紅)이 은퇴한지도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때 왕주셴(王祖賢)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중추홍이지만, 지금은 그런 스타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화려한 스타의 쓸쓸한 뒤안길이라고 할까.

1979년 미스홍콩대회에 출전해 아쉽게 4위에 머물렀지만 중추홍의 매력을 눈여겨 본 광고계 인물들 덕분에 CF 몇 편에 출연한 게 연예계 데뷔 계기가 됐다. 스크린 데뷔작은 '벽수한산탈명금(碧水寒山奪命金ㆍ1980)'. 이듬해 영화 '호월적고사(胡越的故事ㆍ1981)'에 당대 최고 배우인 저우룬파(周潤發)와 출연해 루키 탄생을 알렸다. 사실 다섯 살 연상인 저우룬파와는 인연이 각별한 편이다. '호월적고사'를 비롯해 총 8편의 작품에 함께 출연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영화 '종횡사해'(1991)에서도 저우룬파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에는 저우룬파 외에 장궈롱(張國榮)도 나와 중추홍의 인기를 증명해보였다. 고아 출신 골동품 전문 털이범 남매가 고성에서 고가의 그림을 훔친 뒤 보안 레이저를 피하기 위해 와인잔에 와인을 부어 레이저를 확인하는 장면은 '미션임파서블'이나 '엔트랩먼트' 같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손색없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또, 중추홍이 장궈롱과 휠체어를 탄 저우룬파 사이를 오가며 탱고를 추는 장면은 알 파치노의 '여인의 향기' 탱고신보다 더 감각적이다.

세련된 이미지 때문인지 중추홍은 대체로 똑 떨어지는 도시여성 배역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극의 배경까지 해외인 경우가 많았다. '종횡사해'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중추홍의 대표작인 '가을날의 동화'(1987)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가을날의 동화'에선 실연한 여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처량하거나 청승맞아 보이기는커녕 여자를 버린 남자가 미련해보이는 효과가 컸다. 이 영화는 1988년 제7회 홍콩금상장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홍콩 광고계의 거물 주지아팅(朱家鼎)과 결혼한 후 한동안 쇼비즈니스계를 떠나있었던 중추홍이 지난 6월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적 명품 보석 브랜드 피아제의 중국 1호점 개점식에 전속모델로서 등장한 것.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청초한 매력을 발산하는 중추홍에게 '제2의 전성기'가 올지 기대된다.(유지영 기자)

'제2의 전성기'란 건 기자의 예단인 듯하다. 여하튼 그녀는 20년전 스크린의 연인이었다. 이런 연애고백은 또 어떤가?

씨네21(05. 11. 03) [스크린 속 나의 연인] <가을날의 동화> 종초홍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쓸쓸한 냉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퍼진다. 늦가을. 나는 이 때가 가장 좋다. 계절의 변화란 ‘매직’과도 같아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기억은 쓰디쓸수록 짜릿하다. 그 쓴맛이 선명하게 남긴 흉터가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에 내려앉은 늦가을 이 즈음.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학교 앞 동시상영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내 도피행각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3년간 놓고 지내던 ‘보캐뷸러리(Vocabulary)’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도 갑갑했지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함께 통과했던 한 여자를 먼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극장의 간판엔 저우룬파(주윤발)과 중추훙(종초홍)이 있었다. 어줍은 솜씨로 그린 것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엔 쓸쓸한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답답했던 시절. <가을날의 동화>는 내 가슴을 절절히 파고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찾아 뉴욕으로 날아온 제니퍼(중추훙). 그에게 뉴욕의 가을은 잔인했다. 애인에겐 다른 여자가 생겼고 낯선 뉴욕은 그의 생채기를 자꾸만 건드린다. 어딘지 촌스러웠지만 인공적인 매력에 때 묻지 않은 중추훙의 얼굴은 참 예뻤다. 그 얼굴에서 내가 본 것은 바로 상실감이었다. 낯선 도시, 뉴욕의 빈민가. 별다른 희망 없이 ‘이민의 땅’을 부유하던 삼판(저우룬파)은 제니퍼의 상실감, 그 상실감의 ‘표정’과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니퍼를 향해 서서히 피어오른 그의 애정은, 그러니까 동질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무작정 미국 이민 길에 오른 홍콩의 청춘들과 내가 공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초반.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의 홍역을 치르고 난 대학 캠퍼스는 거대한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소련의 해체, 독일의 통일, 동구의 몰락…. 그 격변이 가져온 정신적 공황. 이제 곧 내가 편입돼야 할 사회에 대한 불안감. 그 희뿌연 시계(視界)가 자아내는 정체불명의 공포와 상실감을, 나는 제니퍼의 얼굴에서 봤다.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아니면 스치듯 내 마음을 긁어대는 낙엽 소리에 센티멘털했던 것일까?

그 날, 마치 ‘삼판’이 된 듯 제니퍼와의 엇갈린 사랑에 가슴을 치던 나는 <가을날의 동화>를 세 번이나 보고서야 극장을 나섰다. 그리고 친구를 불러냈다. 쓸쓸한데 소주 한 잔 하자고. 결국 소주잔에 쓸어 담은 건, 황량한 서울 거리와 숙취로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뿐이었지만….(정기영/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나는 영화를 연거푸 세번씩이나 보진 않았고 특별한 인상을 받지도 못했지만 종초홍이란 배우의 매력은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이미지 때문인지 중추홍은 대체로 똑 떨어지는 도시여성 배역을 맡았다"고 했지만 그런 이미지를 따라서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떠나지 못했고, 우리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이젠 휠체어 댄스나 꿈꿀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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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7-0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국영은 떠나고 종초홍도 없고...
괜히 짠하네요.
연재하시는건 축하드려도 되는일이지요? ㅎㅎ

로쟈 2007-07-09 15:47   좋아요 0 | URL
타이틀 때문에 종초홍은 갑자기 떠올리게 됐습니다.^^

yoonta 2007-07-0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종횡書해>라..멋진 타이틀이네요. 로쟈님 따라서 담론비평도 자주 드나들게 되겠네요.

로쟈 2007-07-09 15:48   좋아요 0 | URL
제가 보탬이 되면 다행일 텐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2007-07-09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9 15:48   좋아요 0 | URL
담비에서 표절했나 봅니다!..

Joule 2007-07-0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이 아주 종횡서해스럽습니다. 하하

로쟈 2007-07-09 16:26   좋아요 0 | URL
장르가 코미디다 보니까요.^^;

마늘빵 2007-07-0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담비도 들어가봐야겠군요. :)

로쟈 2007-07-09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축하(?)를 받아야 할지 어쩔지...

햇빛비둘기 2007-07-10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드립니다. 근데 제목이 '종횡書해'라... 괜히 표정훈씨만 생각나고.
오랜만에 궁리나 들어가봐야겠네요.
꾸벅.

로쟈 2007-07-09 23:07   좋아요 0 | URL
맞삽니다. '종횡서해'란 카테고리가 궁리에 있었지요. 본의아니게 표절하게 됐습니다...

가을산 2007-07-0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좋은 리뷰 및 리리뷰 잘 부탁해요.... ^^;;

로쟈 2007-07-09 23:07   좋아요 0 | URL
네,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향기로운 2007-07-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축하합니다^^*

로쟈 2007-07-11 00: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07-07-1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