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분석론'이란 부제를 가진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는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의 '처녀작'이다. 1969년에 책이 나왔으니까 1965년 그녀가 불가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지 4년만이며 그녀의 나이 28살 때의 일이다. 자신의 소설 제목대로 파리 지성계의 기라성 같은 '사무라이들' 틈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돋보이는데, 그걸 가능하게 했던 '필살기'가 바로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이었다(올해는 바흐친 탄생 110주년이자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토록 조용히 지나갈 수가!). 

<세미오티케>에는 바로 그녀가 바흐친을 서구 지식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유명한 논문 '말, 대화, 소설(Le mot, le dialogue, et le roman)'(1966-7)이 실려 있다.(이 텍스트의 우리말 번역은 2종이며 각각 <세미오티케>와 <바흐친과 문학이론>에 실려 있다. 전자는 불어 번역이고, 후자는 영역본의 중역이다. 나열된 이미지 중 세번째는 불어본이고, 네번째는 이 논문이 실려 있는 영어본 크리스테바 선집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이며, 마지막은 작년에 나온 러시아어본 크리스테바 선집이다. 이 다섯 가지 버전의 텍스트에 근거하여 이 글을 쓴다). 해서, 그것은 바흐친 입문 텍스트이지만 크리스테바 입문 텍스트이기도 하다. 젊은 날에 씌어진 탓에 패기만만하며 제법 난삽하다는 예비지식을 갖고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무엇을?

 

 

 

 

대부분의 우리말 크리스테바는 요령부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대개 불어본이나 영어본 등과 대조하지 않고서는 읽어나가기 힘들다). 그건 전문가의 번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데,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 <여성과 성스러움> 정도가 독해가능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세미오티케>에 실린 '말, 대화, 소설'도 마찬가지인데, 나로선 국내에서 이 텍스트를 완독한 이가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라고 짐작해본다. 사실, 내가 읽은 것도 얼마전 이 텍스트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기회'라기보단 내가 자발적으로 '강제'한 것이지만).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거지만, 출간소식에 반가움보다는 의혹을 더 많이 갖게 했던 <세미오티케> 역시 출간되지 않은 것만 못한 오역서이다. 이런 책을 내 돈 주고 산 이상 뒤늦게나마 그에 대한 대가를 두고두고 지불하도록 하겠다(돈주고 또 지불한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각주1)(국역본의 각주2)의 내용을 읽어본다(영역본은 이 각주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 영어권 독자들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 텍스트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텍스트는 미하일 바흐친의 저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적 문제>(모스크바, 1963)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모스크바, 1965)을 출발점으로 씌어졌다."(<세미오티케>, 105쪽) 여기서는 바흐친의 저작명부터가 오역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적 문제>는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문제>가 원제이며 우리말로는 같은 번역본이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정음사, 1989), <도스또예프스끼 창작론>(중앙대출판부, 2003)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품절된 상태(읽어야 할 책을 구할 수 없는 나라는 문명에 가까운가, 야만에 가까운가?). 해서, 이미지는 영역본을 띄워놓았다. 참고로 이 영역본 <도스토예프스키> 1984년판에 나왔다. 영어권에서 바흐친학을 선도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1968년에 나온 <라블레>이며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불역본 <도스토예프스키>는 크리스테바의 주도하에 1965년에 처음 소개됐다. 

그나마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 정도이다(불역본의 제목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이고, 영역본의 제목은 <라블레와 그의 세계>이다). 여하튼, <도스토예프스키>와 <라블레>가 바흐친의 주저이며 각각 20년대말과 30년대에 씌어졌지만, 1960년대 중반에서야 모스크바의 세계문학연구소(고리키연구소) 젊은 연구자들에게 '재발견'되어 (다시) 출간되기에 이른다. 그 젊은 연구자들이란 S. 보차로프와 V. 코쥐노프 등을 말하는데, 바흐친 사후에 두 사람이 갖고 있던 바흐친 저작권은 코쥐노프의 사망으로 현재는 보차로프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세르게이 보차로프가 러시아 바흐친학의 좌장이며 전집의 책임 편집자이다(바흐친 전집은 아직도 두어 권이 더 출간되어야 한다). 이 전집의 한국어판이 출간기획중인 것으로 알며, 초기 문학론 모음집인 <말의 미학>(길)은 근간 예정으로 돼 있다.

어쨌든 이어지는 문장: "그의 작업은 1930년대 소련의 언어와 문학 이론가들의 저작에 명백한 영향을 미쳤다(볼로쉬노프, 메드베제프). 그들은 담론의 여러 장르를 논한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전자는 <도스토예프스키론>, 후자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여기까지가 각주의 내용인데, 첫번째 문장은 맞는 번역이지만 크리스테바의 원문 자체가 약간 부정확하다. 아마도 글이 씌어진 1960년대 중반에 바흐친과 그의 저작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볼로쉬노프의 이름으로 나온 책 두 권 <프로이트주의>(1927)과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1929), 그리고 메드베제프의 책 <문예학의 형식적 방법>(1928)은 모두 1920년대의 저작이기 때문이다(이 시기에 출간된 바흐친의 저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 초판뿐이다). 하니 1930년대 언어학/문학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언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언급한 책들은 모두 국역본이 나와 있다).

사실 이 저작들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관한 논쟁은 바흐친학의 한 파트를 차지할 정도로 분분하지만 최근엔 바흐친의 저작으로 간주하거나 바흐친/볼로쉬노프, 바흐친/메드베제프 하는 식으로 병기해주는 게 보다 일반적이다. 바흐친은 보차로프와의 대담에서 이 책들의 저작권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다(그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단 바흐친의 저작으로 간주할 경우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흐친이 볼로쉬노프나 메드베제프의 이념적 입장(마르크스주의)를 감안하여 책을 썼다는 것. 해서 러시아에서는 '가면을 쓴 바흐친'이란 표제로 책이 나와 있으며 바흐친 전집과는 별권이다.   

그런데, 내가 굵은 글씨로 처리한 "그들은 담론의 여러 장르를 논한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는 괄호안의 부연설명과 함께 전혀 뜬금없다. 불어본의 문장은 "Il travaille actuellement a un nouveau livre traitant des genres du discours."(강세부호 생략)이 전부이다. '그'(=바흐친)는 현재 담화(담론) 장르에 관한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으며, 언제 '내놓았다'는 말인가? 번역에도 '조작'이 있다면 이런 경우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여기서부터 역자는 이미 이 번역의 수준에 대해서 충분한 암시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본문의 첫 문장을 읽어보자: "'여러 인문과학'의 연구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과학적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를 밝혀줄 연구 구조의 층위 자체에서, 그러니까 인문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105쪽) 한마디로 '놀라운', 놀랍도록 뻔뻔한 문장이다. 요컨대, 인문과학의 연구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인문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경우엔 차라리 영역본에 중역한 번역문이 상대적으로 정확한데, 옮겨보면 이렇다: "'인문'과학에서 과학적 접근의 실효성이 항상 도전을 받아왔다면, 그러한 도전이 연구 대상의 구조들, 즉 과학적인 것과는 다른 논리에 상응한다고 생각되는 구조들의 차원에서 최초로 제기되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바흐친과 문학이론>, 234쪽) 여기서 '도전하다'란 동사는 영역본의 'challenge'를 옮긴 것인데, 불어본에서는 영어 'contest'에 해당하는 'contester'란 동사이다. 즉, '이의를 제기하다', '반대하다'란 뜻의 동사가 쓰이고 있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인정하다'란 정반대의 뜻으로 옮겨질 수 있는지?(이 정도는 이제 '놀라운' 오역이 아니라 '익숙한' 오역인 것인가?)  

크리스테바가 여기서 과학과는 '다른 논리'로 지시하는 것은 시적 언어(=시어)의 논리이고 '역동적 그람(gramme dynamique)'의 논리이다. '그람'은 '글자들'을 생각하면 된다(기호로 다 환원되지 않고 남아있는 어떤 물질성이 그람이고 글자들이다). 이건 전문적인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어서 넘어가기로 한다. 얼마 안 넘어가서 나오는 문장을 보라. 두 가지 국역본을 영역본과 함께 제시한다(사실 이 대목은 영역본만으로는 모호했고 러시아어본을 참조하면서야 비로소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1)"구조분석이 그 대안으로 삼고 있는 러시아 형식주의가 쇠퇴할 때도 그 연구에 있어 문학이나 과학을 벗어난 문제 때문에 양자택일의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계속되었고, 최근 미하일 바흐친의 분석을 통해 그 연구가 결실을 보았다."(<세미오티케>, 106쪽)

(2)"현대 구조주의적 분석이 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형식주의도 문학과 과학을 넘어서서 추론이 노력을 멈추었을 때 그 자신 동일한 선택에 당면했다. 그래도 연구는 계속되었고, 최근에 그것은 미하일 바흐친의 업적에서 드러나고 있다."(<바흐친과 문학이론>, 235쪽)

(3)"Russian Formalism, in which contemporary structural analysis claims to have its source, was itself faced with identical alternatives when reasons beyond literature and science halted its endevors. Research was nonetheless carried on, recently coming to light in the work of Mikhail Bakhtin."(64쪽)

바로 앞 대목에서 크리스테바는 문학기호학의 두 가지 선택지(침묵하거나 다른 논리, 즉 시적 언어의 논리 모델을 세우거나)를 제시했었는데, 러시아 형식주의도 외압에 의해 이론적 작업이 중단될 때 그러한 동일한 선택지에 직면했었다는 게 대략적인 내용이다. (1)에서 (현대의) 구조분석이 '그 대안으로 삼고 있는'이란 표현은 불어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며 (2)처럼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정도의 뜻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1)'문학이나 과학을 벗어난 문제 때문에' (2)'문학과 과학을 넘어서서(beyond literature and science)'는 불어본의 'extra-literaires et extra-scientifiques'의 번역인데, '문학 외적, 학문(과학) 외적'이란 뜻이다. 1920년대 중후반 러시아 형식주의가 '문학 외적, 학문 외적인 이유들'로 탄압받음으로써 중단된 사태를 가리키는 것. 그러니 (2)에서도 'reasons'를 '추론'으로 옮긴 것은 잘못이며, 'its'가 받는 것은 '추론'이 아니라 '러시아 형식주의'이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러시아 형식주의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예비지식이 필요한 대목이며, 두 가지 국역본은 모두 정확한 이해에 미달하고 있다...

하여간에 이런 식으로 또 '부지하세월'의 읽기를 시도해야 한다. '말, 대화, 소설'의 끝장을 보려면 말이다(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거짓말'에 더 익숙해질 것이다). 대략적으로 보자면, <바흐친과 문학이론>의 중역이 <세미오티케>의 원어역보다는 낫지만 그 또한 꼼꼼한 읽기를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며 줄거리 정도만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정도이다(238쪽 각주8)에서 '러시아 방언의 역사를 위하여'가 '러시아적 변증법의 역사를 위하여'란 식으로 거창하게 오역된 것도 희극적이다). 그러니 과연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05. 12. 21.

 

P.S. 겸사겸사 우리말 바흐친 입문서 두어 권을 적어둔다. 먼저, K. 클라크와 M. 홀퀴스트가 쓴 전기 <바흐친>(문학세계사, 1993). 두 공저자는 부부 학자인 걸로 안다. 알라딘에는 클라크가 미술학자 '케네스 클라크'로 기재돼 있는데 엉뚱한 오류이다. '카테리나 클라크(Katerina Clark)'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 연구자로 유명한데 홀퀴스트와 함께 바흐친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저는 1984년에 하바드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으며 1980년대 영어권 학계의 바흐친 열풍을 대변하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유감스러운 건 국역본이 완역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량 때문인지는 몰라도 몇 개의 장이 누락돼 있다. 책도 이미 품절된 상태인데, 제대로 된 완역본이 다시 나왔으면 싶다(바흐친은 이미 지나간 '유행'인가?).  

두번째 책은 츠베탕 토도로프의 <바흐찐: 문학사회학과 대화이론>(까치, 1987)이다. 불문학자 최현무 교수(소설가 최윤)의 번역이다. 불어본 원저 <미하일 바흐친: 대화주의 원칙>은 1981년에 나왔고 영역본은 <도스토예프스키 시학>, <미하칠 바흐친> 등과 함께 1984년에 나왔다(이미지는 영역본의 것이다. 한편으로 1984년은 영어권 바흐친 수용에 있어서 기념해 둘 만한 해이겠다). 국역본은 번역어 선택 등에서 이견의 여지를 남기지만 읽을 만하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분량이 아주 얆다는 것. 어느 해 여름인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카테리나 클라크의 연구서와 함께 토도로프의 영역본을 동네 독서실에서 읽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아마도 국역본 바흐친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혔을 법한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비, 1988). 영어권의 바흐친 열풍 덕분에 출간되었던 책인데, 1981년에 출간된 M. 홀퀴스트 편역의 바흐친 선집 <대화적 상상력(The dialogic imagination: Four Essays)>를 저본으로 하고 있다(국역본은 4편의 에세이 중에서 3편을 옮겨놓고 있다). 러시아어 원저는 1975년에 출간된 (보다 방대한) <문학과 미학의 문제들>이다. 이 책의 불역본은 <소설의 미학과 이론>이란 제목으로 1994년에 나왔다. <장편소설과 민중언어>는 중역본이지만(중역본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았던 책이었는데, 요즘도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여하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런 정도가 바흐친에 입문하기 위해서라면  읽어두어야 할 책들이다. 러시아의 바흐친학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현재 기획중인 걸로 아는데, 아마도 1-2년쯤 후에 나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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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5-12-2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기대에 미달할 듯하군요. 이 일에만 매달릴 형편이 아니라서...

로쟈 2005-12-2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흐친 관련서들이 두어 권 더 나오면 바흐친 냄비가 다시 끓을까요?..

poiein 2010-10-0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테바에 대해서 알려고(이제사?) 왔는데 오히려 바흐친에 대해서 정보를 더 얻은 셈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