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갈매기> 공연으로 호평을 얻은 러시아의 연출가 지차트콥스키의 <벚꽃동산>이 지난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내주에는 나도 시간을 내보려고 하는데, 일단은 공연 소개기사와 관람평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05. 28) 희극적이고 비극적인 그 집안

예술의전당이 올해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탄생 150돌을 맞아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51) 연출의 <벚꽃동산>을 28일~6월13일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지차트콥스키는 러시아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한 연출가이다. 이달 초 러시아 말리극장을 이끌고 엘지아트센터에서 <바냐 아저씨>를 선보였던 레프 도진(66)과 더불어 러시아의 최고 현역 연출가로 손꼽히는 인물. 그는 2004년에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갈매기>를 올려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올해의 연극상’, ‘동아연극상 특별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을 수상하기도 했다.

체호프는 연극이란 ‘인생 그 자체’이며 인생을 탐구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는다. 그의 4대 희곡 <갈매기>와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에는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내적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특히 체호프가 죽기 한해 전인 1903년에 쓴 <벚꽃동산>은 19세기 말 러시아 봉건 귀족의 붕괴와 그 과정에서 떠오른 계층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과거의 습관과 낭비벽으로 벚꽃동산을 잃는 여지주 라넵스카야 부인과 자립심 없는 그의 오빠 가예프, 농노의 자식으로 부를 일군 로파힌, 가정교사 샤를로타와 수양딸 바랴, 늙은 하인 피르스 등 주변 인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친다.

체호프의 작품은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동시대성과 해석의 다양함을 제공한다. 실제로 체호프는 <벚꽃동산>을 코미디(희극)라고 생각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한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으로 해석했다. 두 사람의 이견은 이 작품의 양면적 성격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대해 후대의 연출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두었다. 따라서 이번 토월극장 무대에서는 사실적이고도 서사적인 무대와 텍스트 자체를 깊이 있게 해석해내는 지차트콥스키의 연출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지차트콥스키는 최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몰락한 귀족 여성 라넵스카야를 기존의 노부인으로 표현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40대 여성으로 그릴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체호프 작품을 할 때마다 강하고 깊이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인물이라서 고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을수록, 이해할수록 다양한 표정과 특징을 가진 인물들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리는 들려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며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객마다 그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는 2004년 <갈매기> 공연에서 강렬한 시청각적인 무대효과로 극찬을 받았던 무대디자이너 에밀 카펠류시가 30m에 이르는 토월극장을 깊이있게 입체적으로 사용할 독특한 감각의 무대미술도 기대된다. 또한 원로 연기자 신구씨를 비롯해 지차트콥스키가 까다롭게 뽑은 이혜정, 장재호, 이찬영, 이지혜, 박성민, 안순동, 이춘남, 이안나, 김태균, 이종무, 지니 등 한국 배우들의 연기 또한 관심거리. 한국 공연을 마친 뒤 11월 러시아 볼코프 국제 연극 페스티벌에도 초청돼 본고장인 러시아 관객과도 만난다.(정상영 기자)

경향신문(10. 06. 04) [객석에서]연극 ‘벚꽃동산’ 

막이 오르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매혹적인 무대였다. 30m가 넘는 깊이를 그대로 살려낸 갈색 톤의 질감 있는 무대. 전면은 널찍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새를 취했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의 오래된 영지 ‘벚꽃동산’에 자리한 대저택의 실내다. 오랜 세월 간직해온 풍요로움과 당당함, 그 저택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숱한 가솔들, 하지만 러시아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면서 점점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벚꽃동산의 슬픈 운명을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였다. 삐걱대는 나무 틈새로 간신히 스며 들어오는 햇살. 그것은 마치 앓아 누운 노인의 팔목처럼 앙상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체호프의 <벚꽃동산>(사진). 에밀 카펠류쉬가 디자인한 무대는 기대한 대로 미학적 완성도가 높았다. 그는 6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공연한 체호프의 <갈매기>에서도 그렇게 근사한 무대를 펼쳐보인 적이 있다. 무대의 폭과 깊이를 남김없이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실과 상징을 적절히 배합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번 무대도 역시 그의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연극은 첫인상의 강렬함을 뒷받침할 만한 뒷심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 배우들의 덜 익은 연기 탓이었다. 그것이 캐스팅의 실패이거나 연습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연출자 그레고리 지차트콥스키와 한국 출연진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연 첫날인 28일, 가예프 역을 맡은 배우 이찬영을 비롯한 몇몇 외에는 어설프게 겉도는 연기를 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연히 앙상블은 무너졌다.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내는 앙상블이야말로 체호프 연극의 관건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체호프 연극은 산만하고 시끄러운 소동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체호프는 언제나, 힘주어 말하지 않지만 은근히 뭔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치밀한 연기와 앙상블이야말로 체호프의 내밀한 속내를 푸는 열쇠다.

우리는 그것을 한 달 전 LG아트센터에서 확인한 바 있다. 러시아의 거장 레프 도진이 연출한 <바냐아저씨>에서였다. 당시 이 연극은 러시아어로 공연됐음에도 관객에게 체호프 연극의 짙은 울림을 전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어로 공연됐음에도 울림이 짧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체호프 탄생 150주년. 상반기에 이미 여러 편의 체호프 연극이 공연됐고 관객의 눈높이는 당연히 올라갔다. 이 정도의 <벚꽃동산>으로는 현재의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힘들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마지막 장면. 늙은 하인 피르스 역을 맡은 관록의 배우 신구가 휘청거리던 연극의 중심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벚꽃동산>의 마지막 방점이라 할 수 있는 그 적막감을, 배우 신구가 ‘홀몸’으로 보여준다. “인생이 다 지나갔어. 그런데도 도무지 산 것 같지가 않아….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문학수 선임기자) 

10.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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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2010-06-0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현대철학 종강타임때 추천해주신 덕분에 지차트콥스키의 벚꽃동산 잘 보고왔습니다. 로쟈님이 프로그램에 쓰신 글을 읽고나니 왜 체홉을 코미디로 읽게되는지 공감이 가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로쟈 2010-06-07 19:4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수요일에 볼 예정인데요. 제가 그런 얘기도 했던가요?^^;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천안함과 선거 정국으로 인해 뉴스가 '묻혔지만' 지난주 25일에 대학의 한 시간강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이튿날인 26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쪽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다. 이후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메일을 몇 차례 더 받았다. 개인적으론 엊그제가 시간강사를 하다가 2003년 자살한 친구의 기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더 착잡했다. 대학사회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한다. 나 또한 대학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는 있지만 이런 현실을 대할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진다(그래서 요즘 나대로의 '자립'과 '안식'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대학사회의 '암흑의 카르텔'을 다시 한번 질타하는 이광수 교수의 기고문을 스크랩해놓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교수신문(10. 05. 31) [긴급기고] ‘암흑의 카르텔’ 누가 외면하나  

또 한 분의 비정규 교수‘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부모를 앞에 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식을 곁에 두고 조선대 시간강사 서 아무개 박사(45세, 영어영문학)가 지난 5월 25일 밤 11시 광주 금호동 자신의 아파트에 연탄불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건국대 시간강사 한경선 박사가 임용비리와 강사 제도를 비판하며 피 끓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지 2년 만의 일이고, 1998년 이래 벌써 여덟 번째의 비극이다. 여덟 번째이지만 이번 서 박사의 비극은 엄청난 충격을 우리에게 뱉어냈다. 그것은 그가 그 동안 빠져나오지 못 한 채 유린당하고 겁탈당한 대학의 임용 구조 속에서 정규직 교수가 저지른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함을 만 천하에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최근 2~3개 대학의 전임교수 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목숨을 걸면서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라 파장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B’라고 밝힌 그의 은사에 관한 내용이다. 서 박사에 의하면 그가 B 교수와 공동저자의 명의로 쓴 논문이 대략 54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논문은 모두 서 박사 자신이 쓴 것이라 했고, 심지어는 B의 제자를 위해 쓴 박사학위 논문도 있고, 석사학위 논문도 있다고 했다. 숫자로 표현된 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고, B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와 같이 그 업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대개 맞을 것임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교수와 제자 =종속관계=교수=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라고 울부짖은 그 말의 피맺힘을 익히 안다.

대학 교수의 임용을 둘러싸고 저지른 갖은 악행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재단과 대학 당국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비리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 아니고, 그보다 더 더럽고 악질적이고 그래서 그가 ‘개’(犬)라고 표현할 정도의 짓이 정규직 교수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가 개를 셀 때 사용하는 단위인 ‘마리’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까지 질타한 ‘시간강사’에 대한 정규직 교수의 비열함과 잔혹함은 이 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규직 교수들은 그들의 ‘종’(僕)-서 박사는 자신을 B에게 이렇게 불렀다-에게 논문이나 책을 자신이나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의 지인을 위해 대필을 시키는 것은 속칭 ‘관행’에 가까울 정도이고, 그 외에 그들에게 저지른 악행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교수 한 ‘마리’에 1억5천만원, 3억원을呼價 한다고 했다. 서 박사 개인이 그런 ‘오퍼’를 받았다고 했다. 이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다수의 교수는 그런 짓과는 거리가 먼, 일반 사회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돈을 수억이라도 주고, 수 십 편의 논문을 써주고, 몸도 뺏기고 마음도 뺏기면서까지 교수가 되려고 그 많은 시간강사들이 안간힘을 쓰는 것은 그 교수들이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같은 교원에서 위치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교수들은 자신들이 교과부나 사학 재단에 대해 피고용주 신분이면서 동시에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고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성’, ‘대인관계’ 등의 표현으로 그 시간강사들을 매도하고, 평가하는 카르텔을 강하고 질기게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서 한 번이라도 찍히면 그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질기고 모질게 살아 온 인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강사’라는 슬픈 이름을 가진 그 비정규 교수들은 정규직 교수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냥 목숨을 던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 암흑의 카르텔에서 살아나온 자는 아무도 없다. 단언하건데, 비정규 교수 문제에 침묵하고 그 암흑의 카르텔에 저항하지 않은 교수는 지식인이 아니다. 상당수의 교수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4대강’과 MB 정부에 대해서 맞싸우며 ‘진보’를 실천하고 있다. 맞고 옳고 바람직한 일이다. KTX 여승무원들의 억울한 주장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싸운 사람들은 그들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와 여승무원 문제에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그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이 비리와 부정의 틀 안에 짜여 있는 악의 카르텔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도 그 공존공생,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의 말을 빌려 말을 하자면, “지금 이곳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위해 싸우지 않는 진보 지식인은 가짜다.”(이광수 부산외대·역사학) 

10.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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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6-01 12:13   좋아요 0 | URL
뭐 대학의 정규직 직원(정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등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과연 시간 강사 문제가 해결 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6-04 08:55   좋아요 0 | URL
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데, 고등교육법 개정안 매번 발의만 돼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요...

2010-06-0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01 21:14   좋아요 0 | URL
아이고...대학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미미달 2010-06-03 19:59   좋아요 0 | URL
꼭 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원에 가지는 않습니다.
 

오후에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이번주 시사IN을 손에 들었다. '6월의 책꽂이' 가운데 인문사회과학쪽의 서평을 맡았기 때문이다. 대상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 '시민 양성' 혹은 '시민 교육'에 대한 제안에 특별히 주목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시민'에서 조만간 '난민'의 지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난민은 어쩌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인민의 유일한 형상이다"라고 조르조 아감벤은 말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대우받고 있는 것인지도... 

시사IN(10. 06. 05)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이것은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모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가 던지는 화두다. 민주주의의 안부에 대한 관심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이후에 줄곧 제기돼온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거칠 것 없는 ‘역주행’은 이러한 관심에 실감을 부여한다. 도정일 교수가 여는 글에서 묻고 있듯이,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성과에도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그토록 빠르게, 쉽게, 어이없이 후퇴와 퇴행과 반전을 강요받게 되었는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도 교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 암시를 얻어 아예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알고도 대처하지 않거나 못할 때, 틀린 방식으로 대처했을 때, 너무 늦게 대처했을 때 그 사회는 망한다. 그렇다면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사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너무 늦지 않은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과 대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시민의 양성’이라고 도 교수는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더한 정권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제대로 된 시민교육은 공백 상태다. 6월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형식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시민 양성이라는 사회민주화의 과제를 소홀히 한 탓에 우리는 여전히 선거철마다 ‘북풍’에 시달리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란 냉소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런 냉소에 대응하자면, 한홍규 교수의 주장대로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1987년 민주항쟁에 뒤이은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만 아니라 나라의 살림도 좋아졌다는 것이 그 사례다.  

이것은 우리만의 사례가 아니다. 한 사람이 가입한 시민단체 숫자가 10개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원순 변호사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티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때 그 앞에 청중 100만명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분명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그 주인이란 자리는 우리가 주인다운 역할을 해야만, 주인다운 의무를 다해야만 얻을 수 있다. 교훈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면 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보다 더한 정권도 나오고, 더한 민주주의의 후퇴도 경험하게 될 겁니다”라고 한 교수는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자각을 갖고서 각자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극단적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라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도 긴급한 공부거리다. 원래 사적 이익의 공적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다. 공공성의 실종과 사사화(私事化), 그리고 권력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과두화와 함께 사회적 특권과 신분이 세습되는 역근대화, 각자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의 자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박명림 교수가 진단한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인데도 사회의 민주화 혹은 공동체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착각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착각의 대가가 너무 크다. 하지만 망연자실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민교육은 시민의 삶에 가해지는 고통의 양을 줄이기 위한 교육이고 삶의 의미와 가치와 품위를 드높이기 위한 교육이다”(도정일)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10. 05. 30.  

P.S. '시민'의 주권을 방기할 때 우리는 '난민'으로 전락할 거라고 적었는데, 그 '난민'의 보다 친숙한 표현은 '노예'일 것이다(대부분 놓치곤 하지만 선거는 '합법적' 반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김종철 선생의 칼럼도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6. 01) 노예를 위한 변명

요즘 내 주변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호소한다. 인간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저 조건인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나도 이제 늙었는데, 흉한 꼴 아예 외면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역사책을 보면 문명이 시작된 뒤 인간의 삶이란 강자의 약자에 대한 끝없는 괴롭힘, 착취와 약탈의 연속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민초들의 단결된 저항으로 지배자들이 조금 양보하는 척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순간일 뿐, 또다시 무자비한 침탈과 억압과 속임수가 한층 더 교활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대체로 강자들의 시각으로 작성된 기록이다. 그럼에도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면 인간사를 관통하는 원리가 ‘악마의 정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뭣 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어떤 젊은 기자한테서, 한때 민주화에 헌신했던 몇몇 원로작가에게 4대강 문제에 대해 발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절 이유는 한마디로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이해할 만했다. 수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고, 그 결과 얼마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는 듯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기분 속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그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얼마나 서글퍼지고 기운이 빠지겠는가.

게다가 국가권력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민초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깨어 있느냐에 달렸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게 올바른 ‘정치교육’이 아닌가. 흔히 ‘욕망의 정치’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런 정치교육의 결핍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즉, 안락과 안전에 대한 헛된 꿈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우리들 중 다수는 지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끔찍한 무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내가 거리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어째서 물 부족 국가라고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 터무니없는 말은 그냥 웃고 넘길 게 아니다. 그 택시운전사를 포함하여 생계유지에 급급한 많은 우리 이웃들은 지금 어용언론 이외에 독립적인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 내포돼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나자면 가령 <한겨레>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야 하지만, 문제는 한겨레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대개 고립되어 있거나 한겨레 독자들하고만 주로 소통하고 지낸다는 점이다. 사실 나 자신도 저 택시운전사의 터무니없는 얘기를 듣고도 더는 응대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아마도 나와 같은 승객만 계속해서 만나는 한, 그 택시운전사는 점점 더 자신의 신념을 굳혀갈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의 맹목적인 지지자, 즉 ‘노예’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노예는 원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다. 고통을 느낀다면 그는 자유인이다. 그러나 노예더러 자유인이 되자고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신의 안락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는 노예에게 자유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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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5-3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 암기 과목이라고 무시하면 망해요 'ㅅ'

로쟈 2010-06-01 00:46   좋아요 0 | URL
^^

무해한모리군 2010-05-3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보면서 몰라서도 아닌거 같고, 이유를 모르겠어요 =.= (땅... 값일까요?)

로쟈 2010-06-01 00:48   좋아요 0 | URL
냉소주의자들은 투표를 안 할테니, 나머진 실제 기득권자를 빼면 자신이 기득권자라고 '착각하는' 이들이죠...

글샘 2010-05-3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 교육의 중요함을 알고있는 넘들은... 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죠. 그래서 언론과 교육을 그렇게 목숨걸고 휘두르려 하는 거구요.

로쟈 2010-06-01 00:49   좋아요 0 | URL
ㅎㅎ '반시민교옥'의 중요성이라고 안다고 해야할 거 같아요. 조중동이 줄기차게 해대는...

mirror 2010-06-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교육 운운하면서, 태백시의 한나라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한 박원순씨가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할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이군요. 시민운동해서 누구의 떡을 더 키우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원순씨는 시민운동이나 하면서 아름다운 인생 산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박원순씨는 다른 지역에서 각각 무소속도 민주당 후보도 지원했었습니다. 아름다운 공평무사죠.

로쟈 2010-06-01 07:19   좋아요 0 | URL
"이번에 저가 방문하고 지지의 의사표시를 한 지역은 모두 40여군데에 이르고 그 중에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한 곳은 두군데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무소속, 풀뿌리 후보들입니다. 사실 한나라당 후보는 아주 소수입니다. 어찌보면 너무 편파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약 제가 민주당 후보만 지지하고 돌아다녔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일까요? 제가 민주당 대표나 민주당 산하의 부설기관이 아닐진대 그것이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까요? 한나라당 후보는 모두 악이고 민주당 후보 또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모두 선인가요?"라고 하셨네요. 그분의 방식일 텐데, 저도 공감하진 않습니다...

자꾸때리다 2010-06-0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절감합니다. '국민개X끼'론은 한국 네티즌이 만들어 낸 최고의 사회 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닉네임 옛날 것으로 바꿨습니다.)

픽션들 2010-06-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하는 보수지식인.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하는 난민.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할 수도 없는 난민.

여기서 마지막 부류의 난민이 어째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인지는,
시민(난민)교육(부재)의 문제겠지요. 자유주의의 칼날을 휘두르는 보수지식인 재의식화 과정, 그런 교양강좌도 있으면 좋겠어요~

미지 2010-06-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김종철 선생 글 절실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 자유주의라는 게 참 자기함정인 것 같아요, 박원순씨 보면... 수량적 평등주의에 그렇게 무력하게 넘어가다니요 -- 근본적 사유를 안 하니까 피상적으로 되나봐요... 저도 조심해야죠^^
 

이번주에 나온 중량감 있는 책 두 권은 중국공산당의 전 총서기 자오쯔양의 비밀 회고록 <국가의 죄수>(에버리치홀딩스, 2010)와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 2010)이다. 욕심은 굴뚝 같지만 당분간은 읽을 시간을 못 낼 것 같다. 일단은 리뷰기사를 챙겨놓고 '길게' 봐야겠다...  

 

한겨레(10. 05. 29) 노정치가의 ‘천안문’ 회억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탱크 앞을 가로막는 동영상, 그리고 청년들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연설하는 자오쯔양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빛바랜 사진 한장. 1989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그 사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다. 그 사건은 중국 한쪽에선 여전히 천안문(톈안먼) 폭동으로 또 한쪽에선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홍콩과 미국 등에서 출간된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순식간에 매진이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중국군의 탱크와 총칼이 광장을 휩쓴 1989년 6월4일 이후 2005년 숨질 때까지 가택에서 연금생활을 했던 노 정치가는 2000년 무렵 30개의 테이프에 몰래 육성을 녹음해 미국으로 반출했고, 자신의 비서 바오퉁의 아들 바오푸 등이 이를 글로 옮겼다.

자오쯔양의 회고에 따르면 89년 ‘혼란’의 전환점은 4월26일 <인민일보>에 게재된 사설이다. ‘반드시 기치를 선명하게 하고 동란에 반대해야 한다’는 제목의 이 사설은 4월15일 후야오방 서거를 계기로 추도식에 모여 부패 해결 등을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을 순식간에 반동분자와 체제전복세력으로 낙인찍어 버렸고, 인민들의 분노를 들쑤셨다. 자오쯔양은 북한 방문에서 돌아온 뒤 이 사설을 수정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몇 번이나 그의 개별 면담 요청을 거부하던 덩샤오핑은 5월17일 상임위원들을 소집해 계엄선포를 결정해 버린다. 3 대 2로 계엄이 결정됐다던 당시 회의가 사실은 어떤 투표도 없었다는 것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이 회고록엔 낱낱이 증언돼 있다.

리펑 등으로부터 학생 시위 확산의 책임자로 몰렸던 그는 19일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시위를 벌이고 있던 학생들을 찾아간다. “내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너무 늦게…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아무 상관없어요.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큰일이지…여러분들의 요구는 언젠가 받아들여질 겁니다.” 이 연설은 그의 마지막 공개 연설이었다. 반역과 영웅, 극단적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정작 자오쯔양은 자신이 공산당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당을 진정으로 위하는 시각이 달랐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한 듯하다.

1989년 이후 죽의 장막 뒤에 다시 숨었던 중국은 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개혁개방의 속도에 불을 붙여 이제 미국과 함께 G2로 등장했다. 그사이 빈부 및 도농 격차는 끊임없이 벌어졌고, 관료와 상류층의 부패는 극심해졌다. 자오쯔양은 80년대의 회고에서 자신이 덩의 경제노선에 전적으로 찬성했지만 ‘속도’를 강조하는 그의 방향에 우려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21년 전 자오쯔양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개방의 속도조절과 정치개혁이 이뤄졌다면 지금의 중국이 달라졌을까. 누구도 단언할 순 없다. 89년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외세의 개입 등에 대해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간에 군대를 동원해 학생을 진압한 당 총서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울림은 여전히 크다. 광주민주화운동 30년을 맞은 우리에겐 더욱. 그 어느것도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다.(김영희 기자)  

   

한겨레(10. 05. 29) 근현대사 거목이 몸으로 쓴 ‘당대사’ 

강만길(77)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을 읽고 한홍구 교수가 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역사학자들이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군국소년’ 세대인 강 교수가 이 땅의 대다수 군국소년들과는 판이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가의 시간>은 역사학자로서 자서전을 썼다는 사실 그 자체와 군국소년 세대이면서 그것을 거부한 삶의 궤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다.

강 교수 얘기에 따르더라도 “국내 역사학자가 남긴 것(자서전)은 어느 특정 시기만을 다룬 것 외에는 없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왜 한국 역사학자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 걸까?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는 군국소년 세대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서전 목차에 올라온 강 교수 삶의 궤적을 약간만 훑어보면 짐작이 간다. 1933년에 태어난 그는 1940년에 마산의 ‘심상소학교’에 입학해 창씨개명과 우리말 금지 수난 속에 소년기를 보내다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라가 해방을 맞았다. 그러곤 바로 사생결단의 신탁통치 찬반 탁류에 휩쓸렸다. 중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고 학도의용군이 됐다. 대학에서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겪었고 고려대 전임교원이 된 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시작됐다. 더불어 중앙정보부 남산분실 지하 취조실에서 그 자신의 수난도 시작됐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 두 차례나 해직당했다. 서대문 교도소까지 갔다. 자서전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렵고 위험한 세대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그 (군국)소년들이 어려서 입은 마음속의 일본 군복을 벗지 못한 채, 반공청년이 되어 병영국가를 만들고, 이제는 군국노인이 되어 전쟁불사를 외치는 그런 나라”다. 광기에 가까운 그 기이한 행태는 최근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강 교수는 군국소년 대다수가 간 그 길을 왜 거부했나? 그리고 어떻게 철저한 평화주의자, 남북 대등통일론자, 민주주의자가 됐을까? 바로 그런 얘기를 매우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게 <역사가의 시간>이다. ‘분단시대’라는 말을 재창조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통일고문에다 남북 역사학자 교류를 이끌었으며 잡지 <민족21> 발행인을 지낸 그에게 ‘역사학계의 이단아’ ‘좌파 민족주의자’라 손가락질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아니라 오히려 고대·중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순수 실증주의’에 파묻혀 당대 민족의 현실을 외면한 한국 역사학계야말로 이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가 좌파인 것이 아니라 실은 그를 좌파라 한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게 문제라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강 교수가 “한 사람의 역사학도 및 역사선생이 평생을 통해 겪은 민족분단시대로서의 우리 현대사 경험담” 정도라고 한 자서전 형식의 이 책은 그런 중대한 사실들을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전혀 딱딱하지 않게 부드럽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격식을 갖춘 시대사류보다 오히려 더 심층적으로” 풀어가는 대단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끊임없이 강조해온, 우리 역사학계에는 결핍된 대중성과 현재성을 획득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학부 졸업논문으로 조선시대 상업기관인 시전(市廛), 석사논문으로 조선시대 수공업자들인 장인(匠人), 박사논문으로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에 대해 쓰는 등 자본주의 맹아론에 그가 주목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조선사의 정체후진성론과 타율성론을 논박하려는 그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과 빈민생활사 등 사회경제사 연구에 몰두한 것도 마찬가지. 그는 실증주의를 신봉하면서 탈식민 민족해방이라는, 가장 절박했던 당대사적 현실과제를 외면했던 주류 조선역사학계를 비판한다. 식민사학에 대항했던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 중 민족주의사학의 일부는 광복 뒤 남쪽에선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일제시대 실증주의가 결과적으로 식민사학과 식민통치에 기여했듯이 군사독재정권 추수라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강 교수는 6·25전쟁과 4·19, 5·16을 거치면서 그런 모순을 감지했고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후 바로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하면서 다수 대중이 겪어내야 했던 자기 시대의 고통스런 현실과 그 근원이라고 할 분단문제·통일문제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역사학에 회의를 품었다. 그가 연구분야를 점점 현대사와 민족통일문제 쪽으로 옮기고 현실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논객’으로서의 활동을 강화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강 교수는 박정희 시대 평가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평가도 골고루 포함된 “종합적·역사적” 평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그 시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고, 생산성만이 아니라 분배정의까지 고려한 경제적 민주주의도 바닥이었다. 경제성장도 박정희 체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도 진행됐던 일반적 전후복구 과정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또한 희생당한 노동자·농민의 역할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치·경제력을 특정 세력이 독점한 상태하의 사회적 민주주의,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은 문화적 민주주의 모두 낙제점이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평가기준인 평화통일 진척도 또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종합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박정희 시대 평가는 과도하고 또 잘못된 것이다. 그는 역사학 연구자는 모름지기 “현실적 상황에만 얽매이고 싶지 않은 미래지향주의자, 어떤 이념적 조건에도 구애되지 않으려는 철저한 평화주의자, 분단된 민족의 다른 한쪽을 세상 사람 모두가 적으로 간주해도 홀로나마 기어이 동족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평화통일론자”가 돼야 한다며 그런 사람을 좌경 또는 좌파 민족주의자라 부른다면 자신은 주저없이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 책 내용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게 지은이와 개인적 인연을 맺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인데, 한때 유명한 민주투사였다가 뉴라이트의 핵심이 된 사람, 말년이 씁쓸했던 천관우씨, <사슬이 풀린 뒤>란 책을 남기고 월북한, 좌도 우도 아니었던 오기영, 교토제국대 교수였던 비날론을 만든 화학자 이승기와 이태규의 대조적인 삶, 일본인 학자들과 20여 차례 방북하면서 만난 북쪽 인사들과의 기연과 인물평이 흥미롭다.(한승동 선임기자) 

10.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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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29 22:30   좋아요 0 | URL
투표독려 동영상 주소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zvIZQj-7rGw&feature=player_embedded

로쟈님의 서재를 찾으신 알라디너 여러분, 주변 분들께 투표 독려해 주세요^^!

로쟈 2010-05-30 20:05   좋아요 0 | URL
자기 주권은 자기가 챙겨야지요. 그나마 최소한으로 졸아들고 있는 형편에...

2010-05-31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빌려볼 책들이 있어서 관내 도서관에 갔다가 정간실에서 <인물과사상>(6월호)에 실린 김진석 교수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한 가지 정도만 빼면 그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한국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들을 찾아 옮겨놓으려다가 우연히 이기호 소설가의 지난주 칼럼을 읽게 됐다. 원래 벌어지는 일은 하려던 일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철학자의 칼럼 대신에 소설가의 칼럼을 스크랩해놓기로 한다. 참고로 칼럼에서 언급되는 가라타니 고진의 대의제 비판은 <일본 정신의 기원>(이매진)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일보(10. 05. 22) 과두정이냐, 제비 뽑기냐

6.2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목요일, 천안함 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었다. 전국에 생중계된 발표가 끝난 시각은 점심시간 바로 직전. 그래서인지 식당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화두는 온통 그쪽으로만 쏠렸다.

유능한 엘리트만 뽑는 선거
선거 운동 첫날을 발표 시점으로 삼은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과, 조만간 국지전이라도 발생하지 않겠냐며 우울한 낯빛으로 우울한 예측을 내놓는 사람, 교신기록 미공개를 예로 들며 음모론을 설파하는 사람까지, 오가는 이야기들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래서 식당 안은 아연 알 수 없는 활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식당 안으로 들어와 명함을 돌리며 허리를 숙이는 구의원 입후보자까지, 2010년 5월 하순의 대한민국은 요란스럽고 수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구의원 후보자가 주고 간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명함이어서 그랬겠지만,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후보자 약력만 열 줄 넘게 빼곡히 적혀 있다. 행정학박사라는 입후보자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행정학박사가 만들어가는 명품 구정 실현'으로 큼지막하게 박아 놓았다. 바로 그 문구가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했던 내 마음을 더욱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선출된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유능한 엘리트 집단이다. 예외 없이 일류라고 일컫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각종 고시에 패스했거나, 이른 나이에 공직이나 기업 대표를 역임한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중에는 유독 교수, 변호사, 기업체 사장이 많다.

사람들은 국민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우월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선출된 엘리트들은 다시 민의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 애를 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소소하게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출신 성분으로만 따지자면 가히 엘리트들의 과두정(寡頭政)이 실현된 곳이 바로 이 땅의 의회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 본질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어느 글에선가 말했듯, 제비 뽑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 그대로 '누구라도 좋은', '하찮은' 사람들이 통치하는 체제이다. 그 말인즉슨, 민주주의 체제란 그 누구도 그 누구를 계몽하려 들지 않고, 무언가를 독점하려 들지도 않으며,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현상 또한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제비 뽑기와 같은 상태에선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바람은 일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가 정보를 손아귀에 쥔 채 시기를 저울질하는 일 따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 자체를 지금 이 땅에서 바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이 과두정의 체제를 모두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역시 충분히 괴이쩍다.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자꾸 누군가가 만들어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휩쓸린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다 그와 같은 연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찮은'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우리의 투표가 보다 더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선, 바로 그 바람을 배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바람을 만드는 자와, 바람을 가르치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솎아내는 일 역시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 1 번부터 8 번까지, 그 누구를 제비 뽑기 하듯 뽑아도 아무 걱정 없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행정학박사이지만 행정학박사 학위 따위를 자신의 약력에 포함시키지 않는 명함, 나는 그런 명함을 받아보고 싶었다. 출신학교 따위는 더더군다나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막 돼먹은' 명함이 보고 싶어졌다.(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소설가) 

10. 05. 29. 

 

P.S.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에서 과두정과 추첨제(제비뽑기)에 관해 참고할 만한 대목을 뽑아본다. 먼저, 박명림 교수의 지적. 

시민됨의 인정이라는 것은 주권을 이양함으로써 공적 존재(즉 국가)를 형성한 뒤 국가의 역할을 통해 안전과 권리와 형평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별적인 시민의 존재가 전체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칙에 의해서 국가를 구성한 뒤 다시 국가에 의해서 개별적인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구성한 국가가 소수 과두집단에 포함된 시민 외에는 개별적으로 열심히 먹고살라고 한다면 곧 공동체로부터 전혀 시민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90-91쪽)

그리고 그리스 민주정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설명. 우리가 더 '진보한' 민주주의를 갖고 있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제가 아는 한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적어도 남성 시민들 내에서는 고대 아테네였어요. 아테네 시민들의 관심사는 철저히 권력의 평등한 공유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였죠.(...) 오늘날 공직자를 뽑을 때 어떻게 뽑는 게 민주적인 방식입니까? 우리는 선거잖아요. 그런데 아테네 시민들한테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건 '과두정'이에요. 그들은 '추첨'을 민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원래 그게 고전적 구분이에요.
선거로 할 경우 열이면 열, 돈 있는 사람만 선거에 나갈 수 있습니다. 생업을 제쳐놓고 선거에 나갈 사람이 있겠어요? 특히 그 시대에? 그리고 거기 나가면  인물 좋은 사람이 한 표라도 더 얻게 돼요. 집안 좋고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아테네 시민들은 그걸 집요하게 거부한 거예요. 그 다음에는? 추첨해서 아무나 맡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모이는 민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인 평의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 중 하나인 재판정 배심원까지 모두 추첨으로 뽑은 겁니다. 당시에는 판사, 검사가 따로 있지 않았으니까요. 해마다 추첨을 통해 뽑았어요.(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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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29 21:39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지도자의 윤리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지만, 추첨은...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

로쟈 2010-05-30 20:09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자연스런 방식이죠...

구보 2010-05-30 12:32   좋아요 0 | URL
출신대학을 밝히지 않은 명함을 받으면 '명문대가 아닌가보다'란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반성합니다.
가라타니고진에 매혹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네요.
요즘 읽는 책에도 어김없이 인용되고 있는 걸 보면요.

로쟈 2010-05-30 20:08   좋아요 0 | URL
오늘 고진 번역자를 만났는데, 그래도 책은 생각만큼 안 나간다네요. 반가운 소식도 있는데, <트랜스크리틱>에 이은 고진의 또 다른 주저가 조만간 나온다고 합니다...

aleph 2010-05-30 14:01   좋아요 0 | URL
오오. 추첨이라.. 제가 가졌던 선거에대한 통념을 깨는군요.

로쟈 2010-05-30 20:07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이 로테이션으로 반장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아이들은 모두 천재다"는 믿음이 민주주의(평등)에 대한 믿음이고요...

픽션들 2010-06-01 22:49   좋아요 0 | URL
'자유'는 커녕 '평등'이라는 말만 들어도 빨간 불이 깜박깜박하는 현재의 한국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전직 방송작가였다는 사람과 선거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겨우 58년 게띠인 사람이...sbs여서 그런가...저는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과 정치 얘기를 (일부러)많이 하는 편인데 어떤 경우엔 콧김을 쑹쑹뿜는 기사분과 짧은 시간 불편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