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천안함과 선거 정국으로 인해 뉴스가 '묻혔지만' 지난주 25일에 대학의 한 시간강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이튿날인 26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쪽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다. 이후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메일을 몇 차례 더 받았다. 개인적으론 엊그제가 시간강사를 하다가 2003년 자살한 친구의 기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더 착잡했다. 대학사회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한다. 나 또한 대학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는 있지만 이런 현실을 대할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진다(그래서 요즘 나대로의 '자립'과 '안식'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대학사회의 '암흑의 카르텔'을 다시 한번 질타하는 이광수 교수의 기고문을 스크랩해놓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교수신문(10. 05. 31) [긴급기고] ‘암흑의 카르텔’ 누가 외면하나  

또 한 분의 비정규 교수‘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부모를 앞에 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식을 곁에 두고 조선대 시간강사 서 아무개 박사(45세, 영어영문학)가 지난 5월 25일 밤 11시 광주 금호동 자신의 아파트에 연탄불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건국대 시간강사 한경선 박사가 임용비리와 강사 제도를 비판하며 피 끓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지 2년 만의 일이고, 1998년 이래 벌써 여덟 번째의 비극이다. 여덟 번째이지만 이번 서 박사의 비극은 엄청난 충격을 우리에게 뱉어냈다. 그것은 그가 그 동안 빠져나오지 못 한 채 유린당하고 겁탈당한 대학의 임용 구조 속에서 정규직 교수가 저지른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함을 만 천하에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최근 2~3개 대학의 전임교수 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목숨을 걸면서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라 파장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B’라고 밝힌 그의 은사에 관한 내용이다. 서 박사에 의하면 그가 B 교수와 공동저자의 명의로 쓴 논문이 대략 54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논문은 모두 서 박사 자신이 쓴 것이라 했고, 심지어는 B의 제자를 위해 쓴 박사학위 논문도 있고, 석사학위 논문도 있다고 했다. 숫자로 표현된 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고, B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와 같이 그 업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대개 맞을 것임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교수와 제자 =종속관계=교수=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라고 울부짖은 그 말의 피맺힘을 익히 안다.

대학 교수의 임용을 둘러싸고 저지른 갖은 악행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재단과 대학 당국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비리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 아니고, 그보다 더 더럽고 악질적이고 그래서 그가 ‘개’(犬)라고 표현할 정도의 짓이 정규직 교수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가 개를 셀 때 사용하는 단위인 ‘마리’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까지 질타한 ‘시간강사’에 대한 정규직 교수의 비열함과 잔혹함은 이 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규직 교수들은 그들의 ‘종’(僕)-서 박사는 자신을 B에게 이렇게 불렀다-에게 논문이나 책을 자신이나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의 지인을 위해 대필을 시키는 것은 속칭 ‘관행’에 가까울 정도이고, 그 외에 그들에게 저지른 악행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교수 한 ‘마리’에 1억5천만원, 3억원을呼價 한다고 했다. 서 박사 개인이 그런 ‘오퍼’를 받았다고 했다. 이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다수의 교수는 그런 짓과는 거리가 먼, 일반 사회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돈을 수억이라도 주고, 수 십 편의 논문을 써주고, 몸도 뺏기고 마음도 뺏기면서까지 교수가 되려고 그 많은 시간강사들이 안간힘을 쓰는 것은 그 교수들이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같은 교원에서 위치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교수들은 자신들이 교과부나 사학 재단에 대해 피고용주 신분이면서 동시에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고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성’, ‘대인관계’ 등의 표현으로 그 시간강사들을 매도하고, 평가하는 카르텔을 강하고 질기게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서 한 번이라도 찍히면 그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질기고 모질게 살아 온 인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강사’라는 슬픈 이름을 가진 그 비정규 교수들은 정규직 교수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냥 목숨을 던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 암흑의 카르텔에서 살아나온 자는 아무도 없다. 단언하건데, 비정규 교수 문제에 침묵하고 그 암흑의 카르텔에 저항하지 않은 교수는 지식인이 아니다. 상당수의 교수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4대강’과 MB 정부에 대해서 맞싸우며 ‘진보’를 실천하고 있다. 맞고 옳고 바람직한 일이다. KTX 여승무원들의 억울한 주장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싸운 사람들은 그들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와 여승무원 문제에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그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이 비리와 부정의 틀 안에 짜여 있는 악의 카르텔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도 그 공존공생,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의 말을 빌려 말을 하자면, “지금 이곳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위해 싸우지 않는 진보 지식인은 가짜다.”(이광수 부산외대·역사학) 

10.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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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6-01 12:13   좋아요 0 | URL
뭐 대학의 정규직 직원(정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등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과연 시간 강사 문제가 해결 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6-04 08:55   좋아요 0 | URL
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데, 고등교육법 개정안 매번 발의만 돼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요...

2010-06-0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01 21:14   좋아요 0 | URL
아이고...대학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미미달 2010-06-03 19:59   좋아요 0 | URL
꼭 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원에 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