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이번주 시사IN을 손에 들었다. '6월의 책꽂이' 가운데 인문사회과학쪽의 서평을 맡았기 때문이다. 대상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 '시민 양성' 혹은 '시민 교육'에 대한 제안에 특별히 주목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시민'에서 조만간 '난민'의 지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난민은 어쩌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인민의 유일한 형상이다"라고 조르조 아감벤은 말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대우받고 있는 것인지도... 

시사IN(10. 06. 05)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이것은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모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가 던지는 화두다. 민주주의의 안부에 대한 관심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이후에 줄곧 제기돼온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거칠 것 없는 ‘역주행’은 이러한 관심에 실감을 부여한다. 도정일 교수가 여는 글에서 묻고 있듯이,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성과에도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그토록 빠르게, 쉽게, 어이없이 후퇴와 퇴행과 반전을 강요받게 되었는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도 교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 암시를 얻어 아예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알고도 대처하지 않거나 못할 때, 틀린 방식으로 대처했을 때, 너무 늦게 대처했을 때 그 사회는 망한다. 그렇다면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사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너무 늦지 않은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과 대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시민의 양성’이라고 도 교수는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더한 정권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제대로 된 시민교육은 공백 상태다. 6월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형식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시민 양성이라는 사회민주화의 과제를 소홀히 한 탓에 우리는 여전히 선거철마다 ‘북풍’에 시달리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란 냉소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런 냉소에 대응하자면, 한홍규 교수의 주장대로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1987년 민주항쟁에 뒤이은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만 아니라 나라의 살림도 좋아졌다는 것이 그 사례다.  

이것은 우리만의 사례가 아니다. 한 사람이 가입한 시민단체 숫자가 10개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원순 변호사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티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때 그 앞에 청중 100만명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분명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그 주인이란 자리는 우리가 주인다운 역할을 해야만, 주인다운 의무를 다해야만 얻을 수 있다. 교훈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면 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보다 더한 정권도 나오고, 더한 민주주의의 후퇴도 경험하게 될 겁니다”라고 한 교수는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자각을 갖고서 각자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극단적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라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도 긴급한 공부거리다. 원래 사적 이익의 공적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다. 공공성의 실종과 사사화(私事化), 그리고 권력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과두화와 함께 사회적 특권과 신분이 세습되는 역근대화, 각자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의 자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박명림 교수가 진단한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인데도 사회의 민주화 혹은 공동체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착각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착각의 대가가 너무 크다. 하지만 망연자실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민교육은 시민의 삶에 가해지는 고통의 양을 줄이기 위한 교육이고 삶의 의미와 가치와 품위를 드높이기 위한 교육이다”(도정일)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10. 05. 30.  

P.S. '시민'의 주권을 방기할 때 우리는 '난민'으로 전락할 거라고 적었는데, 그 '난민'의 보다 친숙한 표현은 '노예'일 것이다(대부분 놓치곤 하지만 선거는 '합법적' 반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김종철 선생의 칼럼도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6. 01) 노예를 위한 변명

요즘 내 주변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호소한다. 인간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저 조건인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나도 이제 늙었는데, 흉한 꼴 아예 외면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역사책을 보면 문명이 시작된 뒤 인간의 삶이란 강자의 약자에 대한 끝없는 괴롭힘, 착취와 약탈의 연속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민초들의 단결된 저항으로 지배자들이 조금 양보하는 척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순간일 뿐, 또다시 무자비한 침탈과 억압과 속임수가 한층 더 교활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대체로 강자들의 시각으로 작성된 기록이다. 그럼에도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면 인간사를 관통하는 원리가 ‘악마의 정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뭣 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어떤 젊은 기자한테서, 한때 민주화에 헌신했던 몇몇 원로작가에게 4대강 문제에 대해 발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절 이유는 한마디로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이해할 만했다. 수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고, 그 결과 얼마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는 듯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기분 속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그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얼마나 서글퍼지고 기운이 빠지겠는가.

게다가 국가권력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민초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깨어 있느냐에 달렸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게 올바른 ‘정치교육’이 아닌가. 흔히 ‘욕망의 정치’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런 정치교육의 결핍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즉, 안락과 안전에 대한 헛된 꿈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우리들 중 다수는 지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끔찍한 무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내가 거리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어째서 물 부족 국가라고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 터무니없는 말은 그냥 웃고 넘길 게 아니다. 그 택시운전사를 포함하여 생계유지에 급급한 많은 우리 이웃들은 지금 어용언론 이외에 독립적인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 내포돼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나자면 가령 <한겨레>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야 하지만, 문제는 한겨레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대개 고립되어 있거나 한겨레 독자들하고만 주로 소통하고 지낸다는 점이다. 사실 나 자신도 저 택시운전사의 터무니없는 얘기를 듣고도 더는 응대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아마도 나와 같은 승객만 계속해서 만나는 한, 그 택시운전사는 점점 더 자신의 신념을 굳혀갈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의 맹목적인 지지자, 즉 ‘노예’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노예는 원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다. 고통을 느낀다면 그는 자유인이다. 그러나 노예더러 자유인이 되자고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신의 안락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는 노예에게 자유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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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5-3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 암기 과목이라고 무시하면 망해요 'ㅅ'

로쟈 2010-06-01 00:46   좋아요 0 | URL
^^

무해한모리군 2010-05-3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보면서 몰라서도 아닌거 같고, 이유를 모르겠어요 =.= (땅... 값일까요?)

로쟈 2010-06-01 00:48   좋아요 0 | URL
냉소주의자들은 투표를 안 할테니, 나머진 실제 기득권자를 빼면 자신이 기득권자라고 '착각하는' 이들이죠...

글샘 2010-05-3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 교육의 중요함을 알고있는 넘들은... 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죠. 그래서 언론과 교육을 그렇게 목숨걸고 휘두르려 하는 거구요.

로쟈 2010-06-01 00:49   좋아요 0 | URL
ㅎㅎ '반시민교옥'의 중요성이라고 안다고 해야할 거 같아요. 조중동이 줄기차게 해대는...

mirror 2010-06-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교육 운운하면서, 태백시의 한나라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한 박원순씨가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할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이군요. 시민운동해서 누구의 떡을 더 키우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원순씨는 시민운동이나 하면서 아름다운 인생 산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박원순씨는 다른 지역에서 각각 무소속도 민주당 후보도 지원했었습니다. 아름다운 공평무사죠.

로쟈 2010-06-01 07:19   좋아요 0 | URL
"이번에 저가 방문하고 지지의 의사표시를 한 지역은 모두 40여군데에 이르고 그 중에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한 곳은 두군데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무소속, 풀뿌리 후보들입니다. 사실 한나라당 후보는 아주 소수입니다. 어찌보면 너무 편파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약 제가 민주당 후보만 지지하고 돌아다녔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일까요? 제가 민주당 대표나 민주당 산하의 부설기관이 아닐진대 그것이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까요? 한나라당 후보는 모두 악이고 민주당 후보 또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모두 선인가요?"라고 하셨네요. 그분의 방식일 텐데, 저도 공감하진 않습니다...

자꾸때리다 2010-06-0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절감합니다. '국민개X끼'론은 한국 네티즌이 만들어 낸 최고의 사회 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닉네임 옛날 것으로 바꿨습니다.)

픽션들 2010-06-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하는 보수지식인.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하는 난민.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할 수도 없는 난민.

여기서 마지막 부류의 난민이 어째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인지는,
시민(난민)교육(부재)의 문제겠지요. 자유주의의 칼날을 휘두르는 보수지식인 재의식화 과정, 그런 교양강좌도 있으면 좋겠어요~

미지 2010-06-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김종철 선생 글 절실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 자유주의라는 게 참 자기함정인 것 같아요, 박원순씨 보면... 수량적 평등주의에 그렇게 무력하게 넘어가다니요 -- 근본적 사유를 안 하니까 피상적으로 되나봐요... 저도 조심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