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사랑의 폭력 혹은 폭력적 사랑

9년전에 올렸던 글이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자음과모음)에 들어가 있지만 그 책도 현재로선 품절 상태다(하이브리드 시리즈가 절판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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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9-1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와 함께~ 지젝>은 절판되서 아쉬운 책 중 하나에요. <문학이론>에 등장하는 철학자들 개괄해서 지젝포함 <로쟈와 함께~ 철학자들> 내시면 안될까요??? 소수만 듣기 참 아까운 강의에요~
그나저나 샘의 옛날 글은 훨씬 생기있고 재기발랄하고 영화도 자주 다루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로쟈 2019-09-17 13:15   좋아요 0 | URL
어제 강의를 들으셨나요?!

wingles 2019-09-1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이론강의가 이렇게 재밌다니요! 혼자 읽을때는 안개속같은데..ㅋ

로쟈 2019-09-17 14:48   좋아요 0 | URL
적성의 발견일수도.^^

모맘 2019-09-1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년전 선생님의 댓글, 한참 웃었습니다 ㅋㅋ 미모가 폭력인거였네요!
하지만 역시 사랑 자체는 폭력!
그 무엇에 대한 사랑일지라도!

모맘 2019-09-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이론! 강의! 맘을 뺏을줄 알았어요 적성문제는 쪼금 개입돼일을거예요
문학이론 강의 듣기 강력 추진~ㅎㅎ
 

제목을 적고 보니 ‘페이퍼‘보다는 ‘마이리스트‘에 적합해 보인다. 평전 시리즈인데 이번에 데리다 평전이 나왔다. 브누아 페터스의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그린비). 헤아려보니 이번 가을에 15주기가 된다. 번역본으로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아마도 프랑스에서도 이 이상의 평전은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인종, 출신, 기질 등과 같은 이유로, 또 지나치게 총명하다는 이유로 프랑스 대학가는 물론, 지성계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데리다의 삶의 모든 편린들이 저자 브누아 페터스의 기념비적인 노력으로 이 책에서 오롯이 재현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데리다의 사상에 중점을 둔 ‘지적 평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자 그대로의 ‘평전’, 즉 그의 ‘삶의 기록’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프랑스 지성계의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데리다의 비장하고도 처절한 투쟁의 숨결과 흔적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자연스레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도 눈길이 가게 하는데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가 첫 권이었다. <데리다>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일곱 권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역시 압권은 <마르셀 모스>와 <데리다>이지 않을까 싶다. <모스>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데리다>는 바로 손에 들고 싶다. 강의가 가능한 데리다의 책(혹은 비평)이 어떤 게 있을지도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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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최고 기온인 것 같은데(바깥이 36도, 실내가 30도였다) 하는 수 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카페로 나왔다. 욕심을 부렸더니 묵직한데 원인은 막판에 매켄지 와크의 <21세기 지성>(문학사상사)까지 넣었기 때문. 지난달초에 나왔지만 강의들 때문에 손에 들 여유가 없었다. 그 사이에 원서까지 구해서 독서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책장을 열고 나서야 나는 이 책이 엔솔로지가아니라 단독저작이라는 걸 알았다. 부제가 ‘현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 21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21명의 글모음일 줄 알았다. 실제로는 미국 뉴스쿨의 문화연구학과 교수인 저자가 21명의 동시대 사상가들(그들을 ‘일반지성‘이라고 부른다)을 다룬 책이다. 나는 지식인과 석학 15인이 참여한 <거대한 후퇴>(살림) 같은 책으로 어림짐작했던 것.

아무려나 현재의 파국적 상황(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궁극적 파국)을 어떻게 분석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적/이론적 탐색의 조감도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론서 번역이 대개 그렇지만 번역은 아쉬운 대목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가라타니 고진이나 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라면 지적인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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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차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리시올)을 읽었다. 피셔는 영국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주목받은 비평가였다는데 ‘K-punk‘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블로그 지식인이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2009)이 그가 펴낸 첫 책이고 이후 <내 삶의 유령들>(2014)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2016) 등을 펴냈다. 2017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유작으로 <K-PUNK>가 나왔다. 이 책들을 모두 주문했으니 나로선 ‘전작 작가‘의 한 명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피셔는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상상마저 봉쇄한 자본주의의 위세를 인정한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그렇지만 19세기에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그는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한 체제라고 보지 않는다. 포스트자본주의에 대한 상상과 모색은 그래서 필연적인 과제가 되지만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슬라보예 지젝과 마찬가지로 먼저 요구되는 것은 현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피셔는 이 인식을 문화비평의 형태로 제시한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좋은 문화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그의 작업 전반을 따라가 보려고 나머지 책들도 주문한 것인데 마침 지난주에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도 출간되었다.

원저에는 들어있지 않은데 한국어판 <자본주의 리얼리즘>에는 부록으로 조디 딘과의 대담이 실려있다. <지젝의 정치학>이란 책의 저자로 접했는데 여러 권의 흥미로운 책을 더 썼고 최근에 <공산주의의 지평>(현실문화)이 번역돼 나왔다. 피셔는 ‘포스트자본주의‘라고 부르지만 딘은 전통적인 용어로 공산주의란 말을 계속 쓴다. 그렇지만 슬라보예 지젝에게서도 그렇듯이 이 공산주의는 새롭게 발명되어야 할 공산주의다. 딘의 책도 이번에 몇 권 주문했다. 지젝 이후 좌파이론의 향방에 대해서 두 저자를 참고해보려 한다...

PS. <자본주의 리얼리즘> 80쪽에서 ˝이것이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소비에트 국가의 실패를 ‘인정했던‘ 1965년 연설이 그토록 중대했던 이유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연도 표기가 잘못되었다. 확인해보니 원저에서부터 1965라고 잘못 표기되었다. 흐루쇼프(요즘 표기)의 유명한 연설은 1956년 제20차 전당대회에서의 비밀연설을 가리킨다. 1964년에 실각한 그가 1965년에 무슨 연설을 했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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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에크리> 완역본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지만, 사실 <에크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라캉 읽기의 과제이고 난제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에크리>는 <세미나> 읽기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는데, 현재 불어핀으로도 완간돼 있지 않은 <세미나>가 한국어로 다 번역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읽을 수 있는 번역이냐라는 문제와는 별개로 무망한 일이다(<세미나> 전체는 27권 정도의 규모이고 한국어판은 두 권 나와있다). 그럼에도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라캉의 사랑론을 담고 있는 <세미나 20: 앙코르>가 번역되는 것이다. 라캉의 사랑 개념을 다룬 두 권의 책이 이번에 나와서 든 생각이다.

<라캉, 사랑, 바디우>(에디투스)가 먼저 나왔는데 라캉과 바디우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는 저자의 첫 책이다(바디우의 책들은 번역한 바 있다). 희소성 때문에라도 관심을 가질 만한데, 저자의 번역서가 이번에 나란히 나왔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장 알루슈의 <라캉의 사랑>(세창출판사)이 그것이다. 장 알루슈는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이 주제의 책들은 보통 라캉의 <세미나 20>에 대한 해설이나 해석을 포함하기 마련인데 그에 관해서는 지젝이 편집한 <성화>(인간사랑)을 포함하여 몇권의 책이 나와있다. 요는 라캉의 사랑론(내지 여성론)에 관해서 어느 정도 규모의 독서가 가능해졌다는 것.

물론 그 규모가 감당할 만한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경험상 라캉 읽기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읽었는지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그래도 <라캉, 사랑, 바디우>와 <라캉의 사랑>이 얼마간 길잡이가 되어줄지 모른다. <세미나 20>도 근간 목록에 들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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