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와 소설의 지혜'란 주제로 읽을 대목은 쿤데라가 지난 85년 봄(그러니까 22년 전이군)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면서 한 연설 '예루살렘 연설: 소설과 유럽'의 한 대목이다. 이 연설은 그의 에세이집 <소설의 기술>(책세상, 1990/2004)에 제 7부로 들어가 있다(나는 국역본을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데, 지금 곁에 있는 건 1994년판이다). 그 중에서도 주로 맨 마지막 문단에 초점을 맞출 예정인데, 그건 이 대목이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민음사, 1996)의 에피그라프(제사)로도 쓰였기 때문이다(이하 <우연성>으로 약칭).

확인해보니 <소설의 기술>은 현재 품절상태이고 로티의 <우연성>은 아예 목록에서도 빠져 있다. 불과 10년전에 나온 책이(1996년 12월에 초판이 나왔다) 그렇듯 완벽하게 '망각'된다는 사실은 유감스럽다(게다가 로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철학자였는데 말이다. 비록 그에 대한 관심은 지젝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됐지만). 재판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당분간은 간간이 로티의 책들을 페이퍼에서 자주 언급할 예정이다. 

내가 읽고자 하는 대목은 <소설의 기술>의 176-7쪽에 나오며 <우연성>의 5쪽에서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우연성>에서는 출처를 <소설의 예술>로 적어놓았는데, 영역본의 원제 'The Art of the Novel'를 그렇게 옮긴 것이다. 이것이 부가적으로는 알려주는 바는 역자들이 이 책의 국역본을 참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루어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두 번역문이 좀 다르다.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은 지난 90년에 나온 'faber and faber'판인데 재작년에 새로 판이 나오면서 표지가 아래 이미지처럼 바뀌었다(나는 이전판이 더 맘에 든다). 그 영역본의 페이지로는 164-5쪽이다.

Cover of Kundera, Milan: The Art of the Novel

오랜만에 쿤데라의 소설론을 다시 읽으며 되새기게 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우아하게 소설을 변호하며 또 얼마나 곡진하게 소설의 지혜를 설파하고 있는가이다. 그의 소설들이 '에세이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런 갈래는 그는 최강의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흔히 쿤데라와 자주 비교되는 하루키를 내가 안 읽는 것은 어쩌면 그의 소설론을 접해보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설가의 재즈론이 아니라 소설론을 읽고 싶다)...

각설하고, 진도를 나가도록 한다. <우연성>에는 약간 발췌돼 있는 이 문단을 <소설의 기술>을 중심으로 인용하도록 하겠다.

아젤라스트들, 꾸어온 생각의 공허함, 키취, 이 셋은 신의 웃음의 메아리로 탄생되었고 어느 누구도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면서도 모두가 이해될 수 있는 매력적인 상상의 공간을 만들 줄 알았던 예술에 대한, 한 몸에 머리가 셋 달린 단 하나의 적인 것입니다.(176쪽)

이 첫 대목에서 쿤데라가 말하는 예술은 물론 소실을 가리킨다. 여기서 그는 그 예술(=소설)의 적을 지목하고 있는데, 이 적은 하나이다. 단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셋이다. 그리고 그 머리들이 '아젤라스트들'과 '꾸어온 생각의 공허함'과 '키치(키취)'이다. '아젤라스트'에 대한 설명은 조금 앞부분에 나오는데, 프랑수아 라블레의 신조어로서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웃지 않는 사람,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쿤데라의 설명이 재미있다.

소설가와 아젤라스트 사이에 평화란 불가능합니다. 한번도 신의 웃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아젤라스트들은 진리란 명확한 것이며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확신하며, 자신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존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개인이 되는 것은 바로 진리의 명증성을 상실함으로써이고 타인들의 일치된 동의를 잃게 됨으로써인 것입니다. 소설이란 개인들의 상상적인 낙원입니다."(171쪽)

여기서 중요한 건 (남과 같지 않은 존재로서의) 개인에 대한 쿤데라의 정의이며, 소설이란 그러한 개인들의 낙원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맨앞의 인용문에서 '꾸어온 생각의 공허함'이란 건 자기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떠들어대는 걸 가리키겠다. 그리고 '키치' 역시 개성의 상실에 대한 증좌이겠고(키치를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라고 변호하는 건 쿤데라라면 기겁할 일이겠다). 이 모두가 '웃지 않는 자' 아젤라스트와 가족적인 관계에 놓인다. 그들은 한 통속인 것. 이 첫대목에 대한 <우연성>의 번역은 이렇다:

아젤라스트들과, 받아들인 아이디어들에 대해 생각이 없는 자들과, 천박한 자들은 한결같고도 똑같이 신의 웃음의 메아리로 태어난 예술의 적이다. 바꿔 말해서 어느 누구도 진리를 소유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이해되어야 할 권리를 가진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였던 예술에 대한, 머리가 셋이나 달린 적이다.

'받아들인 아이디어들에 대한 생각이 없는 자들'과 '천박한 자들'은 각각 'the unthought of received ideas'와 'kitsch'를 인격화한 번역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자면, 여기서 예술은 소설(예술)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어떤 '상상적 공간'이다.

이 상상적 공간은 근대 유럽과 함께 탄생한, 유럽의 이미지, 혹은 최소한 유럽에 대한 우리가 품고 있는 꿈의 이미지인 것입니다. 이 꿈은 숱하게 배반당해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를 연대감으로 묵어 우리의 조그만 대륙을 멀리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이기도 합니다.(<소설의 기술>)

관용으로 이루어진 그 상상의 세계는 근대 유럽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그것은 바로 유럽의 이미지이다. 혹은, 그것은 적어도 유럽의 꿈이다. 몇 번이고 우리를 배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유럽 대륙보다 훨씬더 멀리 뻗치는 우애 속에 우리를 통합시키기에 충분히 강한, 하나의 꿈이다.(<우연성>) 

 

 

 

 

정리하자면, 소설은 (1)근대 유럽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2)유럽의 이미지 자체이거나 최소한 유럽의 꿈, 유럽에 대한 우리의 꿈이다. 그리고 그것은 (3)유럽을 하나로 묶어준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를 빌자면, 쿤데라는 유럽을 소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라고도 보는 것이다. 적어도 '근대 유럽'이란 표상은 '근대 소설'의 발생과 불가분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4)소설은 개인들의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이 존중받는 세계(소설이라는 상상적 세계와 유럽이라는 현실적 세계)가 허약하며 소멸할 수도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평선 너머로는 우리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 아젤라스트들의 군대가 보입니다. 선전포고 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전쟁의 바로 이 시기에, 그리고 그토록 극적이고 잔혹한 운명의 이 도시에서 저는 소설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시 확인되는 바이지만, 이 연설의 제목 '소설과 유럽'이 가리키는 것은 '소설=유럽'이라는 것이다(그러니까 그에게서 '동아시아 소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의 대전제는 소설이 근대 유럽의 발명품이라는 점이니까). 그리고 이 둘이면서 하나인 세계는 '개인이 존중받는 세계'로 특징지어진다(쿤데라가 로티와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고). 더불어, 이 세계의 적은 '웃지 않는 자들'의 세계이다. 이것이 쿤데라가 예루살렘이란 문제적 공간/도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그리하여 결론.

제가 보기에 오늘날 유럽 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닌 가장 소중한 것, 즉 개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독창적 사고와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 안팎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유럽 정신의 이 소중한 진수는 소설의 역사 속에, 소설의 지혜 속에 마치 금고처럼 보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기 때문입니다.(<소설의 기술>, 강조는 나의 것)

유럽의 문화가 오늘날 위협을 받고 있으며,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유럽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 개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창의적인 생각에 대한 존중 그리고 불가침의 사적인 삶에 대한 개인의 권리 존중 - 에 대한 위협이라고 볼 때, 유럽적 정신의 소중한 본질은 소설의 역사 속에 있는 보석 상자, 즉 소설의 지혜 속에 안전하게 보관중이라고 나는 믿는다.(<우연성>)

 

 

 

 

이 연설에서 오늘날의 시점은 물론 1985년이다. 바로 그 전해인 1984년에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발표했으며(예루살렘상 수상 이후 쿤데라는 한동안 노벨문학상의 단골 후보였다), 이어서 소설로만 치자면 <불멸>(1990), <느림>(1993), <정체성>(1998), <향수>(2005)를 차례로 발표한다. 알다시피 이 작품들은 곧바로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었다.

그리고 소설론/에세이집으로는 <소설의 기술>(1985),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란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된) <배반당한 유언>(1992), <커튼>(2005) 등이 있다. 이전에 한번 언급한 대로 이 <커튼>이 국내에는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고 있다(독어본은 바로 나왔으며 영역본은 올해 나오는 걸로 예정돼 있다). 비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넘어서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커튼>의 소개가 지체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이 페이퍼를 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소개/번역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서이다. 

07. 01. 27 - 30.

P.S. 쿤데라는 서문에서 이 연설의 자초지종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1985년 봄, 나는 예루살렘 상을 받았다. 도미니카 인이며 예루살렘 대학의 교수인 마르셀 뒤부아 신부는 영어로 씌어진 치사를 심한 프랑스어 악센트로 읽었다. 나의 수상연설이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즉 소설과 유럽에 대한 내 성찰의 마침표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프랑스어로 된 연설문을 심한 체코어 악센트로 읽었다. 보다 유럽적이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정감어린 분위기에서라면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11쪽)

맨마지막 문장이 좀 튀지 않나? 분명 시상식장에서 쿤데라는 그 연설문을 읽었던 것이니 마지막 문장의 함축은 번역 대로라면 "덜 유럽적이고 덜 따뜻하고 덜 정감어린 분위기"였다는 것이 되겠다. 설사 사실이 그랬더라도 그렇게 적어놓는 건 예의가 아닐 뿐더러 서문에 그렇게 적혀 있는 책도 나는 보지 못했다. 영역본에서 이 문장은 "I could have done it in no setting more throughly European, more cordial or dear to me."라고 돼 있다. 내가 읽기에는 "나는 그보다 더 유럽적이고 더 따뜻하고 더 정감어린 분위기에서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도이다. 적어도 그게 '분위기'에도 더 맞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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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갔다가 문학평론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책을 한권 선물받았다. 리차드 세네트의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가 그것인데, 거의 25년전에 나온 책이니 절판된 건 당연하고 헌책방에서나 가끔 눈에 띄는 책이겠다(그런데 내 기억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걸로 보아 80년대 후반에도 드물었던 책이지 않나 싶다). '헌책다운' 이 책에는 초판을 찍은 날짜만이 박혀 있다.

원서는 1976년에 초판이 나온 듯하고 지난 1992년에 장정을 달리 해서 재출간되었다. 국역본은 그 사이에 나온 것인데, 다소 두툼한 책이지만 재번역돼 나왔으면 싶다. '현대의 침몰'이라고 옮겨졌지만 원제는 '공정 인간의 몰락' 정도가 될 듯하고 원래의 부제는 '현대자본주의의 해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사회심리학에 대하여'이다. 1장인 '공적 영역'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데이비드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지 않나 싶다(1950년대에 나온 리즈먼의 책이 훨씬 먼저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리차드 세네트의 책이 더 출간돼 있는데, '세넷'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현대의 침몰> 외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그리고 <살과 돌: 서구문명에서 육체와 도시>(문화과학사, 1999)가 있는데, 모두 눈에 익은 책들이고 <살과 돌>은 특히 (제목 때문에) 벼르다가 끝내 구입하지는 못했던 책이다(품절됐군!). 겸사겸사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공적 영역/공간과 관련하여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다. 거기에서 암시받을 수 있지만, '공적 인간'이란 '정치적 인간'이며 '호모 폴리티쿠스'를 뜻한다. 최인훈의 통찰을 빌면,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밀실'만 있고 '광장'은 상실했다는 것. 그것이 세네트의 문제의식이 아닐까 넘겨짚어본다.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것 정도로 '공적 인간'의 소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건 그저 알리바이일 뿐이다. 영어표현을 빌면, 우리의 관심은 '정치(politics)'에서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로 확장돼 나가야 하며 우리의 '행위'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바야흐로 대선과 맞물린 '정치의 계절'을 불과 1년 남겨놓고 있다. 우리가 마저 '침몰'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빨리 챙겨두어야겠다...

06.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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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하는 손과 장인 예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8-04 14:04 
    리처드 세넷의 <장인>(21세기북스, 2010) 출간 소식의 반가움은 이미 지난주에 포스팅한 바 있는데, 언론리뷰는 이번주에 실리게 되는 듯하다. 가장 빨리 올라온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나는 번역본보다 원서를 미리 구했는데, 내주쯤에는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기사를 보니 저자의 3부작 중 하나라고 하는데, 나머지 책들도 기대된다.   연합뉴스(10. 08. 04)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을 찾아서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축제로서의 언어'란 글이 실려 있다. 글의 출전은 New Left Review 135(1982)에 실린 'Wittgenstein's Friends', 즉 '비트겐슈타인의 친구들'이란 논문인데(이 글은 이글턴의 단행본 비평집 'Against the grain'(1986)에 재수록돼 있다), '축제로서의 언어'는 이 논문의 제2장이다. 제목이 알려주듯이 실제로 논문은 비트겐슈타인의 친구들 이야기로 구성돼 있는데, 제2장에서 거명되고 있는 친구가 바로 바흐친이다. 한데, 이 '바흐친'은 우리가 아는 '미하일' 바흐친이 아니라, 그의 형 '니콜라이' 바흐친을 가리킨다(*이 니콜라이 바흐친이 등장하는 소설이 이글턴의 <성자와 학자>(한울, 2007)이다). 

 

 

 

 

이글턴은 이 장의 서두에서 니콜라이의 생년을 1896년이라고 했는데(그에 따라 국역본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1895년생인 미하일보다 1년 빠른 니콜라이의 생년은 1894년이다. 니콜라이에 대한 정보를 이글턴은 영어권 바흐친 연구의 원조인 마이클 홀퀴스트와의 대화에서 얻었다고 하는바,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카테리나 클라크와의 공저로 홀퀴스트의 바흐친 전기가 출간되는 것은 1984년의 일이다(이 책의 국역본이 <바흐친>(문학세계사, 1993)이다. 몇 개 장이 누락돼 있는데, 완역본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때문에 논문을 쓰면서 이글턴이 다소 부정확한 정보/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이해할 만하다.  

 

 

 

 

홀퀴스트의 전기에 따르면, 니콜라이는 동생 미하일보다 2년 먼저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수학하게 되며 형의 영향으로 미하일 또한 고전문헌학부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대한 미하일 바흐친의 깊은 관심은 형 니콜라이의 영향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18년에 헤어지게 되는데, 니콜라이는 (비록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만) 반혁명군이었던 백군에 가담하게 되며 이후에 이들 형제는 재회하지 못한다. 니콜라이는 프랑스의 외인부대원으로 참전하는 등 갖은 역정 끝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1935년에 사우스햄턴의 유니버시티 대학에서 고전문학 강사가 된다. 이후 1938년에 버밍엄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가 되며 1945년에는 동대학에 언어학과를 창설하고 교수로 재직한다.   

"그는 1945년에 현대 그리스에 대한 개론서 한 권을 개인적으로 출간했으며, 톨스토이, 푸슈킨, 마야코프스키, 희극의 리얼리즘과 러시아 상징주의 등에 관한 별로 괄목할 만하지 못한 그의 논문과 강의록 모음집이 1963년에 오스틴 던컨-존스에 의해 편집되었다."(<바흐친과 문학이론>, 71쪽)는 게 니콜라이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요약이다. 한데, 이 번역문에서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개론서'는 '현대 그리스어 입문서(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odern Greek)'로, '희극의 리얼리즘'은 '사실주의극(realism in theatre)'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특출한 성격의 니콜라이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인바, 니콜라이의 아내 콘스탄스의 회고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바흐친을 사랑했으며" 두 사람은 "끝없는 토론"을 즐겼다(레이 몽크의 전기에 나오는 내용인가?). 비트겐슈타인은 바흐친을 만나면 항상 즐거워했으며 한번도 절교하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에게) 바흐친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의 서문에서 언급하듯이 그에게 <트락타투스>의 사상을 설명했던 그러한 친구였다."(<철학적 탐구>의 서문 어디를 말하는 걸까?)   

"두 사람이 정확하게 무엇을 토론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흐친은 플라톤의 보편성의 독재에 대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구체성의 우월이라고 간주한 것을 열렬히 신봉했으며, 우리는 이러한 생ㅇ각이 일반적으로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언어철학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잘 알 수 있다."(72족) 그러니까 니콜라의 바흐친의 사상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사이에 상당한 친연성이 있다는 것(인용문에서 '보편성'은 '보편자(the universal)' 혹은 '보편적인 것'을 가리키며, '구체성'은 '특수자(the particular)' 혹은 '특수한 것'을 뜻한다).

게다가 니콜라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대 플라톤'이란 논문에서 플라톤적의 단성적인 형이상학에 반대흐는 '도덕적 가치의 살아있는 다수성'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사고틀이 비트겐슈타인의 조망(=관점)과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활자화된 시의 치명적 효과(deadening effect)에 반대하여(시는 활자화되면 죽은 시라는 것) 언어의 에너지 개념과 '열정적인 특수성'을 강조한 음성중심주의적 태도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역시나 니콜라이가 미하일 바흐친의 형이라는 사실이며 두 사람은 1918년 이후에는 만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소식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1930년 파리에서 니콜라이는 동생 미하일의 도스토예프스키론(<도스토예프스키 시학>) 사본을 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매우 동질적인 문학적-지적 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학생시절에 그들은 20세기 러시아 문화 생활에 있어 가장 자극적이고 격렬했던 한 시기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동창생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언어철학에 기초한 경력에 발을 들여놓게 되어 있었고, 니콜라이의 논문과 20세기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에 있어 분명히 가장 훌륭한 글 중 하나인 미하일의 '담론과 소설'에 대한 강의 사이에는 어떤 근친성이 있다."(73쪽)

인용문 마지막 문장에는 오역이 포함돼 있는데, 근친성이 있다고 얘기되는 것은 '니콜라이의 논문'과 '미하일의 강의' 사이가 아니라 '니콜라이의 논문과 강의'와 '미하일의 '담론과 소설'이란 글' 사이이다. 이글턴이 '담론과 소설(Discourse and the Novel)'이라고 적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소설 속의 담론(Discourse in the Novel)'을 뜻한다. 그것이 20세기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에서 가장 훌륭한 문건 중 하나라는 것.

'소설 속의 담론'을 이글턴은 홀퀴스트가 편역한 <대화적 상상력(The Dialogic Imagination)>(1981)에서 인용하고 있는데(책의 목차와 서문은 아래에 자료로 옮겨놓았다), 네 편의 에세이가 영역된 이 책에서 세 편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작과비평사, 1988)이다. 국역본에 빠진 건 '소설 담론의 전사(前史)'란 에세이이다.

다소 에둘러 오긴 했지만, 이글턴이 지적하고자 한 것은 니콜라이 바흐친을 매개로 해서 비트겐슈타인이 미하일 바흐친과 만난다는 얘기이다. "흥미있는 역사적 굴곡에 의거하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주류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73쪽) 그 연관성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이어지는데,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06. 08. 16-17. 

P.S. 아래는 영역본 '대화적 상상력'의 표지와 목차, 그리고 서문이다.

 

Table of Contents

  • Acknowledgments
  • A Note on Translation
  • Introduction
  • Epic and Novel
  • From the Prehistory of Novelistic Discourse
  • Forms of Time and of the Chronotope in the Novel
  • Discourse in the Novel
  • Glossary
  • Index

Introduction

I

Mikhail Mikhailovich Bakhtin is gradually emerging as one of the leading thinkers of the twentieth century. This claim will strike many as extravagant, since a number of factors have until recently conspired to obscure his importance. Beyond the difficulties usually attending the careers of powerful but eccentric thinkers, there are, in Bakhtin's case, complications that are unique. Some of these inhere in his times: his two most productive periods occurred during the darkest years of recent Russian history: the decade following 1917, when the country reeled under the combined effects of a lost war, revolution, civil war and famine; and the following decade, the thirties, when Bakhtin was in exile in Kazakhstan, and most of the rest of Russia was huddling through the long Stalinist night. It was in these years that Bakhtin wrote something on the order of nine large books on topics as major and varied as Freud, Marx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Only one of these (the Dostoevsky book) appeared under his own name during these years. Three others were published under different names (see section III of this introduction); some were partially lost during his forced moves; some disappeared when the Nazis burned down the publishing house that had accepted his large manuscript on the Erziehungsroman; some were "delayed'' forty-one years in their publication when journals that had accepted manuscripts were shut down, as happened to the Russian Contemporary in 1924; others, such as the Rabelais book, were considered too aberrant for publication, due to their emphasis on sex and body functions (see section II of this introduction).

Another factor that has clouded perception of the scope of Bakhtin's activity in the anglophone world, at least, is the tradition in which he was working. He was trained as a classicist during a period when the German model of philology dominated Russian universities; thus he inherited a certain heaviness of style and a predilection for abstraction that English or American readers, accustomed to a more essayistic prose, sometimes find heavy going. Bakhtin's style, while recognizably belonging to a Russian tradition of scholarly prose, is, nevertheless, highly idiosyncratic. Language in his texts works somewhat as language does in the novel, the genre that obsessed him all his life: according to Ian Watt (The Rise of the Novel), "the genre itself works by exhaustive presentation rather than by elegant concentration." The more we know about Bakhtin's life, the clearer it becomes that he was a supreme eccentric, of an order the Russians express better than we in their word chudak, which has overtones of such intense strangeness that it borders on chudo, a wonder. And this peculiarity is reflected not only in the strange history of his texts (why, ultimately, did he publish under so many names?), but in his style as well, if one may speak of a single style for one who was so concerned with "other-voicedness." Russians immediately sense this strangeness: again and again when we have gone to native speakers with questions about a peculiar usage of a familiar word or an unfamiliar coinage, the Russians have thrown up their hands or shaken their heads and smiled ruefully.

Another difficulty the reader must confront is the unfamiliar shadings Bakhtin gives to West European cultural history. He tends to ignore the available chapterization into familiar periods and -isms. It is not so much Periclean Athens or Augustan Rome that attracts him as it is the vagaries of the Hellenistic age. He is preoccupied by centuries usually ignored by others; and within these, he has great affection for figures who are even more obscure. A peculiar school of grammarians at Toulouse in the seventh century A.D. may appear to others as an obscure group working in a backwater during the darkest of the Dark Ages; for Bakhtin the work of these otherwise almost forgotten men constitutes an extremely important chapter in the human struggle to accommodate the mysteries of human language. He keeps returning to the Carolingian Revival or the interstitial periods between the Middle Ages and the Renaissance. When he does cite a familiar period, he often tends to isolate an otherwise obscure figure within it—thus his focusing on Pigres of Halicarnassus or Ion of Chios among the Greeks, on Varro among the Romans; when dealing with the nineteenth century, it is the relatively unfamiliar Wezel or Musäus he cites.

Bakhtin throws a weird light on our received models of intellectual history. It is as if he set out to carnivalize—to use a verb that has become modishly transitive due to his own work on Rabelais—the normal periods and figures we use to define the relay of culture. Clearly, one could make such a perverse undertaking pay its way only if possessed of two prerequisites: enormous learning and a theory capable of sustaining a balance between such an aberrant history and more conventional historical models.

Of Bakhtin's preternatural erudition there can be no doubt—he belongs to the tradition that produced Spitzer, Curtius, Auerbach and, somewhat later, René Wellek. Many times when we have consulted specialists in the various fields from which Bakhtin so easily draws his recherché examples, it was only to be told that such and such a work did not exist, or, if it did, it was not "characteristic." A few days later, however, after some more digging or thinking, the same specialist would call to say that indeed there was such a work, and, although little known even to most experts, it was the most precisely correct text for illustrating the point Bakhtin sought to make by invoking it.

He has, then, a knowledge of West European civilization detailed enough to permit him to use traditional accounts as a dialogizing background to sustain the counter-model he will propose. And that counter-model is motivated by a theory that can rationalize not only its own subversions, but the effects of mainstream traditions as well.

I say theory and not system—the two do not always go hand in hand—because Bakhtin's motivating idea is in its essence opposed to any strict formalization. Other commentators, such as Tsvetan Todorov in a forthcoming book devoted to Bakhtin, have seen this as a weakness in his work. They have come to this conclusion, I believe, because they bring to Bakhtin's work expectations based on the kind of thinking characteristic of other major theorists who engage the same issues as Bakhtin.

Bakhtin is constantly working with what is emerging as the central preoccupation of our time—language. But unlike others who have made substantial contributions to our understanding of language in the twentieth century—Saussure, Hjelmslev, Benveniste and, above all, Roman Jakobson (all of whom are systematic to an extraordinary degree)—Bakhtin is not. If you expect a Jakobsonian order of systematicalness in Bakhtin, you are bound to be frustrated. This does not mean, however, that he is without a peculiar rigor of his own. It is rather that his concept of language stands in relation to others ;of the sort that occupy linguists) much as the novel stands in opposition to other, more formalized genres. That is, the novel—as Bakhtin more than anyone else has taught us to see—does not lack its organizing principles, but they are of a different order from those regulating sonnets or odes. It may be said Jakobson works with poetry because he has a Pushkinian love of order; Bakhtin, on the contrary, loves novels because he is a baggy monster.

At the heart of everything Bakhtin ever did—from what we know of his very earliest (lost) manuscripts to the very latest (still unpublished) work—is a highly distinctive concept of language. The conception has as its enabling a priori an almost Manichean sense of opposition and struggle at the heart of existence, a ceaseless battle between centrifugal forces that seek to keep things apart, and centripetal forces that strive to make things cohere. This Zoroastrian clash is present in culture as well as nature, and in the specificity of individual consciousness; it is at work in the even greater particularity of individual utterances. The most complete and complex reflection of these forces is found in human language, and the best transcription of language so understood is the novel.

Two things must immediately be added here. First, while language does serve to reflect this struggle, it is no passive stuff, no mere yielding clay. Language itself is no less immune from the effects of the struggle than anything else. Its nature as a system is even more fraught with the contest, which may be why it occupies so central a place in the activity of mind. Bakhtin, need it be said, is not working in this dichotomy of forces with the kind of binary opposition that has proved so important in structuralist linguistics (and so seductive to social scientists and humanists lusting for a greater degree of systematicalness). That opposition leads from human speech to computer language; it conduces, in other words, to machines. Bakhtin's sense of a duel between more widely implicated forces leads in the opposite direction and stresses the fragility and ineluctably historical nature of language, the coming and dying of meaning that it, as a phenomenon, shares with that other phenomenon it ventriloquates, man.

Secondly, language must not be understood in these essays in the restricted sense in which it occupies professional linguists. As Bakhtin says (in "Discourse in the Novel"), "At any given moment... a language is stratified not only into dialects in the strict sense of the word (i.e., dialects that are set off according to formal linguistic [especially phonetic] markers), but is...stratified as well into languages that are socio-ideological: languages belonging to professions, to genres, languages peculiar to particular generations, etc. This stratification and diversity of speech [razvorechivost'] will spread wider and penetrate to ever deeper levels so long as a language is alive and still in the process of becoming."

The two contending tendencies are not of equal force, and each has a different kind of reality attaching to it: centrifugal forces are clearly more powerful and ubiquitous—theirs is the reality of actual articulation. They are always in praesentia; they determine the way we actually experience language as we use it—and are used by it—in the dense particularity of our everyday lives. Unifying, centripetal forces are less powerful and have a complex ontological status. Their relation to centrifugal operations is akin to the interworking that anthropologists nominate as the activity of culture in modeling a completely different order called nature. As Bakhtin says (again in "Discourse"): "A unitary language is not something that is given [dan], but is in its very essence something that must be posited [zadan]—at every moment in the life of a language it opposes the realities of heteroglossia [raznorechie], but at the same time the [sophisticated] ideal [or primitive delusion] of a single, holistic language makes the actuality of its presence felt as a force resisting an absolute heteroglot state; it posits definite boundaries for limiting the potential chaos of variety, thus guaranteeing a more or less maximal mutual understanding...."

The term Bakhtin uses here, "heteroglossia" [raznorechie], is a master trope at the heart of all his other projects, one more fundamental than such other categories associated with his thought as "polyphony" or "carnivalization." These are but two specific ways in which the primary condition of heteroglossia manifests itself. Heteroglossia is Bakhtin's way of referring, in any utterance of any kind, to the peculiar interaction between the two fundamentals of all communication. On the one hand, a mode of transcription must, in order to do its work of separating out texts, be a more or less fixed system. But these repeatable features, on the other hand, are in the power of the particular context in which the utterance is made; this context can refract, add to, or, in some cases, even subtract from the amount and kind of meaning the utterance may be said to have when it is conceived only as a systematic manifestation independent of context.

This extraordinary sensitivity to the immense plurality of experience more than anything else distinguishes Bakhtin from other moderns who have been obsessed with language. I emphasize experience here because Bakhtin's basic scenario for modeling variety is two actual people talking to each other in a specific dialogue at a particular time and in a particular place. But these persons would not confront each other as sovereign egos capable of sending messages to each other through the kind of uncluttered space envisioned by the artists who illustrate most receiversender models of communication. Rather, each of the two persons would be a consciousness at a specific point in the history of defining itself through the choice it has made—out of all the possible existing languages available to it at that moment—of a discourse to transcribe its intention in this specific exchange.

The two will, like everyone else, have been born into an environment in which the air is already aswarm with names. Their development as individuals—and in this Bakhtin's thought parallels in suggestive ways that of Vygotsky in Russia (see Emerson, 1978) and Lacan in France Isee Bruss, in Titunik's translation of Volosinov's Freudianism, 1976)—will have been prosecuted as a gradual appropriation of a specific mix of discourses that are capable of best mediating their own intentions, rather than those which sleep in the words they use before they use them. Thus each will seek, by means of intonation, pronunciation, lexical choice, gesture, and so on, to send out a message to the other with a minimum of interference from the otherness constituted by pre-existing meanings (inhering in dictionaries or ideologies) and the otherness of the intentions present in the other person in the dialogue.

Implicit in all this is the notion that all transcription systems— including the speaking voice in a living utterance—are inadequate to the multiplicity of the meanings they seek to convey. My voice gives the illusion of unity to what I say; I am, in fact, constantly expressing a plenitude of meanings, some intended, others of which I am unaware. (There is in this obsession with voice and speech a parallel with the attempts of two important recent thinkers—both in other ways very different from Bakhtin—to come to grips with the way intimacy with our own voice conduces to the illusion of presence: Husserl in the Logical Investigations and Derrida in his 1967 essay "Speech and Phenomenon.")

It is the need to confront this multiplicity in a principled way that impels Bakhtin to coin some of his more outre terms (the word "heteroglossia" itself, "word-with-a-loophole," "wordwith-a-sidewards-glance," "intonational quotation marks" and so forth). He uses these rather than the more conventional terminology we associate with a linguistic concern for language first of all because traditional linguistics has taken little heed of the problem of alterity in language. Bakhtin, like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1962), Searle (Speech Acts, 1969) and particularly Grice (the legendary but still unpublished 1967 James lectures on Logic and Conversation), stresses the speech aspect of language, utterance, to emphasize the immediacy of the kind of meaning he is after. He does so as well to highlight his contention that language is never—except for certain linguists—what linguists say it is. There is no such thing as a "general language," a language that is spoken by a general voice, that may be divorced from a specific saying, which is charged with particular overtones. Language, when it means, is somebody talking to somebody else, even when that someone else is one's own inner addressee.

Bakhtin's theory of metalanguage is extremely complicated and deserves detailed study. I have merely alluded to it here in order to provide a context for the more particular subject matter unifying these four essays—the novel. I began with Bakhtin's insistence on the primacy of speech because what he has to say about novels is incomprehensible if the emphasis on utterance is not always kept in mind. In section IV we shall once again take up the relationship between Bakhtin's ideas about language and his distinctive theory of the novel's extraliterary importance.

II

Bakhtin was born 16 November 1895 in Orel into an old family of the nobility, dating from at least the fourteenth century, that no longer owned property at the time of his birth. Bakhtin's father was a bank official who worked in several cities as Mikhail Mikhailovich was growing up. The early years of his childhood were spent in Orel, then in Vilnius (Lithuania) and finally Odessa, where he finished the gymnasium and entered the historical and philological faculty of the local university in 1913. He soon transferred to Petersburg University, where his brother Nikolaj (later professor of Greek and Linguistics at Birmingham University) was a student.

It was an exhilarating time to be in St. Petersburg. There was the stimulation of attacks and counterattacks by Symbolists, Acmeists and Futurists in poetry. Criticism, too, took on a new urgency and glamor: the very year Bakhtin came to the city Shklovsky published the article that was to be the first salvo in the battles that raged around the Formalists. The university was an especially exciting place to be, notably in the areas of Bakhtin's interests. D. K. Petrov, the distinguished Hispanist and student of Baudouin de Courtenay, the philosopher A. I. Vvedenskij and Aleksandr N. Veselovskij, a founder of the modern study of comparative literature, were teaching at this time. But Bakhtin was influenced particularly by the great classicist F. F. Zelinskij; some of Bakhtin's key concepts can be traced back to suggestions in Zelinskij's works, primarily those dealing with the Roman oratorical tradition. During these years Bakhtin laid the foundations of his prodigious knowledge of philosophy, especially classical and German thinkers. Vvedenskij was the leading Russian Kantian, and N. O. Losskij, another of Bakhtin's teachers, had studied under Windelband and Wundt. In 1918 Bakhtin finished the university and moved to Nevel', a west Russian city, where he taught school for two years.

It was here that the members of the first "Bakhtin Circle" (with the exception of P. N. Medvedev, who became associated with it in 1920 in Vitebsk) came together: Lev Pumpianskij, later professor in the Philological Faculty at Leningrad University; V. N. Volosinov, later a linguist, but at this time a musicologist and would-be Symbolist poet; M. V. Judina, later one of Russia's greatest concert pianists; I. I. Sollertinskij, later artistic director of the Leningrad Philharmonic; and B. M. Zubakin, archeologist, Mason and grand eccentric. There were others as well who attended discussions less frequently, but who shared the passionate interest of the group in threshing out literary, religious and political topics. But the most frequent topic of discussion, the subject of most burning concern for the majority of the group—certainly for Bakhtin—was German philosophy. At this point Bakhtin thought of himself essentially as a philosopher and not as a literary scholar.

A very important member of the group for him, then, was Matvej Isaich Kagan, later an editor of the monumental Encyclopedia of Soviet Energy Resources, but at this time still a professional philosopher—a philosopher, moreover, who had just returned from Germany, where he had spent almost ten years studying at Marburg and Berlin. He had been close to the Marburg Neo-Kantians: he translated Natorp and was highly thought of by Hermann Cohen and Ernst Cassirer. Kagan was Bakhtin's best friend in these years, in some ways filling the personal and intellectual gap left by the departure of Bakhtin's brother, Nikolaj. We can see traces of Kagan's influence in the concern for such NeoKantian preoccupations as axiology and the need to rethink the mind/world opposition that are present in Bakhtin's first published work, "Art and Responsibility." This small 1919 piece is actually a précis of a major work on moral philosophy to which Bakhtin devoted himself while in Nevel' that was never published (except in portions, and then only sixty years later, in 1979.

In 1920 he moved to Vitebsk, in the same general area. Vitebsk was at that time a cultural boom town, an island of light in the dark currents of revolution and civil war, a refuge for such artists as El Lisitskij, Malevich and Marc Chagall. Several prominent scientists also lived in the Belorussian city at this time, as well as leading musicians from the former Mariinskij Theater who taught at the Conservatory. A lively journal, Iskusstvo, was started, and there were constant lectures and discussions.

Two events of great personal importance occurred during the Vitebsk period: in 1921 Bakhtin married Elena Aleksandrovna Okolovic, who was indispensable to him until her death in 1971; and in 1923 the bone disease that was to plague Bakhtin all his life—and that would lead to the amputation of a leg in 1938— made its first appearance. In 1924 Bakhtin moved back to Leningrad, working at the Historical Institute and consulting for the State Publishing House. Bakhtin was finally moved to let some of his work see the light of day.

In the fate of an early article we can see the emergence of a vicious pattern that was to repeat itself throughout his life: continually, Bakhtins manuscripts were suppressed or actually lost, by chance or by the opposition of determined enemies. Just as Bakhtin's "On the Question of the Methodology of Aesthetics in Written Works" was about to appear, Russkij sovremennik, the journal that had commissioned the piece, ceased publication. Thus this seminal work was not published until fifty-one years iater. These were nevertheless fruitful years for Bakhtin, during which he continued his constant discussions, now with a circle made up of such friends and followers as the poet N. A. Kljuev, the renowned biologist I. I. Kanaev, the experimental writers Konstantin Vaginov and Daniil Kharms, the Indologist M. I. Tubianskij.

Although Bakhtin had been studying and thinking ceaselessly during these years, his first major published work finally appeared only in 1929, the magisterial Problems of Dostoevsky's Art, in which Bakhtin's revolutionary concept of "dialogism" (polyphony) was first announced to the world. The book, controversial as only a radically new vision of an old topic can be, was nevertheless well received. Some (including the Minister of Education and the leading Party intellectual Anatoly Lunacharsky) even recognized it to be the revolutionary document that it has indeed proved to be. The impact of the book was muffled, however, because just as it appeared, Bakhtin was sent to the wilds of Kazakhstan. He spent the next six years in exile as a bookkeeper in the obscure town of Kustanaj. Several of his closest associates disappeared forever during the purges of the late 1930s. Bakhtin somehow continued to work even in Kustanaj, and several of his most important essays, such as "Discourse [Slovo] in the Novel," were written during these years. He was supplied books from the Saltykov-Shchedrin Library in Leningrad and the Lenin Library in Moscow by his friends.

In 1936 he was able to teach courses in the Mordovian Pedagogical Institute in Saransk and in 1937 moved to the town of Kimry, two hundred kilometers from Moscow, where he finished work on a major book devoted to the eighteenth-century German novel (Erziehungsroman). This manuscript was accepted by the Sovetskij Pisatel' Publishing House, but the only copy of it disappeared during the confusion of the German invasion—yet another example of the hex at work in Bakhtin's publishing career. The only other copy of this manuscript Bakhtin—an inveterate smoker—used as paper to roll his own cigarettes during the dark days of the German invasion (which gives some idea, perhaps, of how cavalierly Bakhtin regarded his own thoughts once they had already been thought through). It was only after the most strenuous arguments by Vadim Kozinov and Sergej Bocarov that Bakhtin could be persuaded first of all to reveal the whereabouts of what unpublished manuscripts he had (in a rat-infested woodshed in Saransk) and then to permit them to be retranscribed for publication.

From 1940 to the end of World War II Bakhtin lived in the environs of Moscow. In 1940 he had submitted a long dissertation on Rabelais, but it could not be defended until after the war was over. In 1946 and 1949 his defense of the dissertation split the Moscow scholarly world into two camps: the original and unorthodox manuscript was accepted by the official opponents appointed to preside over the defense, but other professors felt strongly enough about Bakhtin to intervene against its acceptance. There were several stormy meetings (one lasting seven hours until the government finally stepped in) in the end the State Accrediting Bureau denied his doctorate. Thus Rabelais and Folk Culture of the Middle Ages and Renaissance, which has since gone through many editions in several languages, had to wait until 1965, nineteen years later, before it was published.

But Bakhtin's friends were no less determined than his enemies, and a group that had been attracted to him during his stay in Saransk in 1936 now invited him back to be the chairman of the General Literature Department. Thus began Bakhtin's long and affectionate relationship with the institution that, when it was upgraded from teacher's college to university in 1957, made him head of the expanded Department of Russian and World Literature. A beloved teacher himself (whenever he lectured the hall was sure to be crowded), he influenced generations of young people who went out to teach. In August of 1961 Bakhtin was forced to retire due to declining health. In 1969 he returned to Moscow for medical treatment, living in the city until his death on 7 March 1975.

These last years were busy and fulfilling for Bakhtin, finally bringing him the fame and influence he so long had been denied. A group of young scholars at Moscow University (under V. Turbin) and at the Gor'kij Institute, most notably V. Kozinov and S. Bocarov (yet another Bakhtin Circle), energetically took up his cause. He was also aided by the eminent linguist and theoretician, V. V. Ivanov. The Dostoevsky book was republished in 1963, largely due to the extraordinary efforts of Kozinov, whose role in this affair does him honor. Its appearance created a sensation that helped to rekindle interest in basic questions of literary study. In 1965 the Rabelais book was published following a series of programmatic articles in leading journals. In 1975 a collection of Bakhtin's major essays outlining a historical poetics for the novel, Questions of Literature and Aesthetics (from which the four essays in this volume are taken), came out soon after his death. Just before he died he learned that Yale University was trying to arrange for him to be awarded an honorary degree.

III

There is a great controversy over the authorship of three books that have been ascribed to Bakhtin: Freudianism (1927) and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1929; 2nd ed. 1930), both published under the name of V. N. Volosinov, and The Formal Method in Literary Scholarship (1928), published under the name of P. N. Medvedev. This is not the place to go into the arcana of Bakhtin's textology. The question is of a complexity that requires extended treatment on its own. The view of the present editor is that ninety percent of the text of the three books in question is indeed the work of Bakhtin himself.

IV

The most immediate contribution these essays make is to the theory of the novel, a particularly vexed area of literary scholarship.

The enormous success of the novel in the nineteenth century has obscured the fact that for most of its history it was a marginal genre, little studied and frequently denounced. Even in an age such as our own, when there is no dearth of books devoted to "the novel," there is very little agreement as to what the word means. Consider three examplary titles in which the substantive "novel" is preceded by the definite article: Lukacs' Theory of the Novel (1920), Ian Watt's The Rise of the Novel (1957) and Lucien Goldmann's Towards a Sociology of the Novel (1964, English tr. 1975). These are all important books that have greatly advanced our understanding of certain kinds of novels, but each in its own way dramatizes the same shortcoming: they seek to elevate one kind of novel into a definition of the novel as such (as does René Girard in another very influential book, Deceit, Desire and the Novel [1961]). They lack a field theory capable of encompassing not only the texts nominated by the others as novels, but two millennia of long prose fictions preceding the seventeenth century—the period when, according to consensus, the novel experienced its "birth." (The same view holds that the novel "rose" in the eighteenth century and "triumphed" in the nineteenth—its "death" in the twentieth century is a foregone conclusion by the same historical logic.)

A major reason why so little powerfully syncretic work has been done in the area of novels, even by those who recognize the dilemma posed by excluding pre-seventeenth-century narrative such as Scholes and Kellogg (The Nature of Narrative [1966]), is that the absolute novelty of the novel has not been adequately recognized. Bakhtin's advantage over everyone else working on novel theory is that he is able to include more texts from the past in his scheme than anyone else—and this because, paradoxically, he more than others perceives the novel as new. Not new when it is said to have "arisen," but new whenever that kind of text made its appearance, as it has done since at least the ancient Greeks, a text that merely found its most comprehensive form in Cervantes and those who have come after. In order to see what kind of text might have so radical a novelty, we shall have to rethink the basic categories of genre and style.

Syncretic chronicles of such genres as the ode, the lyric or tragedy may be written extending back to classical times, because each such history will have as its subject a set of formal characteristics so fixed—from the earliest days of European culture— that nuanced modulations (in their surface features, at least) can be recognized with relative ease. It is probably for this reason that such discursively homogeneous genres accord so well with received ideas about the periodization of general history into such chapters as "classical antiquity," the "Age of Louis XIV" and so forth.

So militantly protean a form as the novel raises serious problems for those who seek to confine it to the linear shape of most histories. The difficulty is compounded if we recognize further that such histories usually begin by presupposing the very organizing categories that it is the nature of novels to resist. Histories are like novels in that they set out to provide more or less comprehensive accounts of social systems. Histories occupy themselves with relationships between the strata of legal codes, religious beliefs, economic organization, family structure and so forth, in order to create a series of moments in which the interaction of these forces can be seen in their simultaneity as well as their continuity. And novels, too, concern themselves more or less with such interrelationships, the particular assemblage of discourses that define specific cultures.

But histories differ from novels in that they insist on a homology between the sequence of their own telling, the form they impose to create a coherent explanation in the form of a narrative on the one hand, and the sequence of what they tell on the other. This templating of what is enunciated with the act of enunciation is a narrative consequence of the historian's professional desire to tell "wie es eigentlich gewesen ist." The novel, by contrast, dramatizes the gaps that always exist between what is told and the telling of it, constantly experimenting with social, discursive and narrative asymmetries (the formal teratology that led Henry James to call them "fluid puddings").

History has perhaps most often been compared with the novel because both presume a certain completeness of inventory. Each in its own way strives to give narrative shape to material of encyclopedic variety and plentitude. Thus, a good history of Russia, for instance, might very well seek to be what Belinsky said Evgenij Onegin was, "an encyclopedia of Russian life": like the novel, such a history would describe rank, manners, differences between the capital and the provinces and so forth. But as Bakhtin has said of Pushkin's work, it is not an encyclopedia that merely catalogs inert institutions, the brute things of everyday life: "Russian life speaks in all its voices [in Evgenij Onegin], in all the languages and styles of the era. Literary language is not represented in the novel [as it is in other genres] as a unitary, completely finished off, indubitably adequate language—it is represented precisely as a living mix of varied and opposing voices [raznorechivost']."

The emphasis on social variety dramatized as contests between different voices speaking various intralanguages of the abstract system we call "the" Russian language is what defines the "devilish difference" [djavol'skaja raznica] making Evgenij Onegin a novel in verse, and not just a long poem. And insofar as Evgenij Onegin is a dialogized system made up of the images of "languages, styles and consciousnesses that are concrete and inseparable from language," it is typical of all novels. It dramatizes in these features both the difficulty of defining the novel as a genre and the reason the question of its history is so fraught. Other genres are constituted by a set of formal features for fixing language that pre-exist any specific utterance within the genre. Language, in other words, is assimilated to form. The novel by contrast seeks to shape its form to languages; it has a completely different relationship to languages from other genres since it constantly experiments with new shapes in order to display the variety and immediacy of speech diversity. It is thus best conceived either as a supergenre, whose power consists in its ability to engulf and ingest all other genres {the different and separate languages peculiar to each), together with other stylized but nonliterary forms of language; or not a genre in any strict, traditional sense at all. In either case it is obvious that the history of what might be called novels, when they are defined by their proclivity to display different languages interpenetrating each other, will be extremely complicated.

The only history of the novel adequate to such complexity has been proposed by Mikhail Bakhtin, whose definition of the genre as a consciously structured hybrid of languages I have used in the preceding remarks. Bakhtin has succeeded in forging a history capable of comprehending the very earliest classical texts jsuch as the Margites traditionally ascribed to Homer, Hellenistic and Roman texts and medieval romances, as well as the titles that are usually advanced in more traditional accounts of the genre, such as Guzman Alfarache and Don Quixote. It is a history that includes as well elements from the oral tradition of folklore going back to prehistoric times.

And Bakhtin has been able to do this because he has grasped that the novel cannot be studied with the same set of ideas about the relation of language to style that we bring to bear on other genres. Most versions of literary stylistics—whether Spitzer's or Vinogradovs—assume that language operates more or less as professional linguists tell us it does, both in our everyday lives and in hterary texts. Literary texts simply intensify certain capabilities of language that are potential in spoken speech as well: "Poetry is violence practiced on ordinary speech," to paraphrase the young Jakobson. Style in this view means the sum of the operations performed by the poet in order to accomplish the violence necessary to mark the text off as literature.

Valuable work has been done in most genres by critics presuming style so understood. The reason is that not only most critics, but most genres begin with this assumption: the homogeneity of the genre corresponds to ideas about the privileged status of a unitary, centripetalizing language shared by its practitioners on the one hand and its students on the other.

The novel is utterly different from such genres because it presumes a completely other relationship to language. But, according to Bakhtin, this has not yet been perceived by its students who—if they are not utterly lost in the morass of gossipy "character analysis," ethical high-mindedness and watered-down psychology that frequently passes as novel criticism—continue to view the novel through the optic of a traditional stylistic that has proved so successful with other text types, but is quite inappropriate to novels.

The most recent form this approach has taken is a concern no longer for a Lansonian attention to the language of the text, but rather for the "language" of the plot—what, following Propp's ground-breaking work, has been called the morphology or syntagmatics of narrative. Attempts have been made to apply to the novel the kind of structural analysis that has been so remarkably successful with short formulaic forms such as folktales, detective stories and industrial folklore, that is, serial novels for children (Tom Swift, etc.). The work of men such as Greimas in France (Du sens, 1970) or Van Dijk in Holland (Some Aspects of Text Grammars, 1972) has led others (such as Meir Sternberg ["What Is Exposition?" in The Theory of the Novel, ed. John Halperin, 1974]) to conclude that the novel, too, might lend itself to tree diagrams and Freytag pyramids. Such critics forget what Eikhenbaum pointed out in 1925: that "the novel and the short story are forms not only different in kind but also inherently at odds...." ("O. Henry and the Short Story"). The lugubrious results of these analyses serve to confirm what Bakhtin concluded long ago: "The utter inadequacy of [most existing] literary theory is exposed when it is forced to deal with the novel" (see "Epic and Novel"). The situation he decried in the thirties is no better in the seventies. This situation Bakhtin addresses in the four essays in this collection.

V

By the time Bakhtin came to write these essays he had completed the Dostoevsky book, which made what appeared at the time to be rather extravagant claims for that author's uniqueness. The second edition (1963) has attached to it new material that seeks rather to place the Dostoevskian novel into a tradition. The new material and the point of view that it entails are drawn from work on the history of the novel Bakhtin pursued during the thirty-four years that intervened between the two editions. In those years Bakhtin came to regard the Dostoevskian novel not so much as an absolutely unprecedented event in the history of the genre, but rather as the purest expression of what always had been implicit in it. Viewing the history of the novel through the optic of the Dostoevskian example had revolutionary consequences. The novel ceases to be "merely one genre among many" ("Epic and Novel"). It becomes not only "the leading hero in the drama of literary development in our time" ("Epic and Novel"), but the most significant force at work even in those early periods when most other scholars would argue that there were no novels being written at all.

Such scholars would, within their own terms, be correct in asserting that there were no novels in Plato's Athens or during the Middle Ages, or at least no novel as we have come to know it. But Bakhtin is clearly not referring to that concept of a novel that begins with Cervantes or Richardson. These books, and especially the nineteenth-century psychological novel that evolved from them, have become the canon of the genre-novel. The majority of literary scholars are most at home when dealing with canons, which is why Bakhtin said that literary theory is helpless to deal with the novel. Rather, "novel" is the name Bakhtin gives to whatever force is at work within a given literary system to reveal the limits, the artificial constraints of that system. Literary systems are comprised of canons, and "novelization" is fundamentally anticanonical. It will not permit generic monologue. Always it will insist on the dialogue between what a given system will admit as literature and those texts that are otherwise excluded from such a definition of literature. What is more conventionally thought of as the novel is simply the most complex and distilled expression of this impulse.

The history of the novel so conceived is very long, but it exists outside the bounds of what traditional scholars would think of as strictly literary history. Bakhtin's history would be charted, among other ways, in devaluation of a given culture's higher literary forms: the parodies of knightly romances (Cervantes), pastorals (Sorel), sentimental fictions (Sterne, Fielding). But these texts are merely late examples of a tendency that has been abroad at least since the ancient Greeks. Bakhtin comes very close to naming Socrates as the first novelist, since the gadfly role he played, and which he played out in the drama of precisely the dialogue, is more or less what the role of the novel always has been. That role has been assumed by such unexpected forms as the confession, the utopia, the epistle or the Menippean satire, in which Bakhtin is particularly interested. Even the drama (Ibsen and other Naturalists), the long poem (Childe Harold or Don fuan) or the lyric (as in Heine) become masks for the novel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As formerly distinct literary genres are subjected to the novel's intensifying antigeneric power, their systematic purity is infected and they become "novelized."

The first essay in this volume seeks to establish the distinctiveness of the novel by opposing it to the epic. What emerges is a definition of novels as peculiarly suited to our post-lapsarian, post-industrial civilization, since it thrives on precisely the kind of diversity the epic (and by extension, myth and all other traditional forms of narrative) sets out to purge from its world. The essay posits a novel defined by what could be called the rule of genre inclusiveness: the novel can include, ingest, devour other genres and still retain its status as a novel, but other genres cannot include novelistic elements without impairing their own identity as epics, odes or any other fixed genre.

This essay will inevitably be compared with the use Lukács, in his Theory of the Novel, makes of the same contrast, and will, no doubt, be compared as well to the way Auerbach (Mimesis [1946]) distinguishes between Homeric and Biblical texts. Bakhtin differs from Lukacs in his evaluation of the novel's fallen state: just as his concept of heteroglossia is a happy redaction of the conditions otherwise so gloomily charted by Derrida's epigones as "differance," so his concept of the novel's relation to epic is an affirming version of what the pessimistic Lukács means when he says the novel is the characteristic text of an age of "Absolute sinfulness." Bakhtin differs from Auerbach (with whom he shares, otherwise, many suggestive parallels, both in his life and in his work) in that the Bible could never represent the novel in a contrast with epic, since both, Bible and epic, would share a presumption of authority, a claim to absolute language, utterly foreign to the novel's joyous awareness of the inadequacies of its own language. But since the novel is aware of the impossibility of full meaning, presence, it is free to exploit such a lack to its own hybridizing purposes.

The second essay, "From the Prehistory of Novelistic Discourse," is less conventional than the first, and outlines in a most economical way how a number of disparate texts from the distant past finally coalesced into what we now know as the modern novel. It is a thumbnail history of the force Bakhtin calls "novelness," an epistemological capability larger than any concrete expression of it before the novel as a text type emerges in its own right.

The third essay introduces one of Bakhtin's coinages in its title. "Chronotope" is a category that no brief introduction (much less glossary) can adequately adumbrate. The long essay uses the concept as yet another way to define the distinctiveness of the novel by means of its history, using differing ratios of time-space projection as the unit for charting changes.

The fourth essay in this volume, "Discourse in the Novel," is one of Bakhtin's most suggestive and, with the exception of certain chapters in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the most comprehensive statement of his philosophy of language. It has as its skeleton yet another model for a history of discourse that eventuates in the supreme self-consciousness (consciousness of the other) marked by the heteroglossia of the modern novel.

It will be clear from even so cursory an overview that the essays in this volume have been arranged in order of their complexity, with the simplest and most conventional appearing first, and the most difficult appearing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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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경험론에 대한 걸 정리해놓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생산적인' 뭔가에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이때 '생산'은 노동가치와 관련된다), 해야 할 일들이 계속 미뤄지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이런 '일' 때문인가?). '들뢰즈와 경험론'에 관련한 읽을 거리들도 머리속에 몇 개 생각해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책들도 분산돼 있기 때문에 한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이디어는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2002) 중 '보론'으로 포함돼 있는 글 '경험론과 철학 - 들뢰즈, 레비나스, 데리다'를 정리하면서 살을 붙인는 것이었다. 이 보론은 짧지만 생각할 거리들은 많이 제공해주는 유익한 글이다. 나는 막바로 3절부터 시작하겠다. '경험론에서 계사는 존재 동사가 아니라 접속사이다'란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 들뢰즈와 데리다를 레비나스를 사이에 두고 비교하는 내용이다(인용문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많은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철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와 레비나스를 같은 종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은 사상적으로 그리스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 로고스 없이 경험의 부스러기들만을 가진 자들이라는 점이다."(64쪽) 들뢰즈와 레비나스는 철학의 고향을 아테네가 아닌 다른 곳을 가정하므로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 대신에 레비나스가 '예루살렘'을 새로운 고향으로 지목하는 데 반해서, '노마드' 들뢰즈는 그러한 태생적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차이일까?

저자가 이어서 읽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와 차이>에 실린 데리다의 레비나스론의 한 구절인데, "경험론과 관련하여 데리다와 들뢰즈의 극명한 대립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줄 이 구절은 물론 레비나스 비판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65쪽) 그렇다면, 레비나스의 주장은 무엇이었나?

"레비나스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끔 하는 본질인 '존재'를 존재자의 모든 이기적 권력의 원천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타인에 대한 폭력은 존재 사건 자체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윤리의 가능성은 '존재와 다르게'라는 부사구를 통해서 타인에게 접근하려고 할 때 비로소 희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이 '존재와 다르게'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저자의 <차이와 타자>, <일상의 모험>을 참조.)  그런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 경우 "윤리적 언어는 '존재한다'라는 동사를 가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한데, 그런 언어는 불가능하다는 것. 즉, 레비나스여, 그게 가능합니까? 라고 젊은 철학자 데리다는 묻는다.

데리다 왈: "레비나스에 따르면 비폭력적인 언어는 동사 '존재하다'가 금지된 언어, 즉 어떤 술어적 기능도 없는 언어일 것이다. 술어적 기능은 최초의 폭력이다. 동사 '존재하다'와 술어적 활동은 모든 다른 동사와 모든 보통 명사 속에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비폭력적인 언어는 궁극적으로... 모든 '동사'로부터 정화된 언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언어가 여전히 언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로고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리스인들은 그런 언어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명사들과 동사들의 얽힘을 전제하지 않는 로고스는 없다고 말한다."(65-6쪽)

데리다의 견해로는 레비나스적/윤리적 언어가 술어적 기능을 갖는 '존재' 사를 금지할 경우 그것은 그리스적 의미에서 '언어'란 이름에 값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레비나스의 윤리는 언어적 표현을 가질 수 없다는 것. 그와는 반대로, "타자들을 그들의 진리 속에 '내맡겨져' 있게끔 하는 유일한 것"이 존재이며(보가 구체적으로는 '존재(est/is)'라는 계사(copula)이며), "존재의 이 근본성 때문에 데리다는 동사 '존재하다'는 모든 다른 동사와 모든 보통 명사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령, '책상'이란 말에는 '책상(이 있다)'가 함축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건은 경험론이 '존재하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가이며, "진정한 경험론은 존재 개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 때문에 멸망하기는커녕, 바로 데리다가 레비나스를 비판하기 위해 옹호하는 그 존재동사 'est'를 극복해야 할 표적으로 삼는 데서 비로소 경험론으로서 존립한다. 데리다와 정반대로, 경험론은 모든 동사들과 명사들을 존재 동사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다."(66쪽)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들뢰즈이다. 그가 <디알로그>에서 말하고 있는 경험론의 핵심은 이렇다: "철학, 철학사는 존재의 문제 때문에, 이다EST 때문에 방해받는다. 사람들은 속사(속성)의 판별(하늘은 푸르다le ciel est bleu)과 현존의 판별(신은 있다Dieu est)을 논의한다... 그것은 항상 '존재etre' 동사와 원리에 관한 물음이다. 오로지 영국인들과 미국인들만이 접속사들을 해방시켰고, (주어와 속사 사이를 맺는) 관계들에 대해 반성해왔다." 문단이 길기 때문에 잠시 쉰다. 여기서도 '앵글로-색슨' 들뢰즈의 면모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문법, 모든 삼단논법은, 존재 동사에 대한 접속사들의 종속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꿰뚫고 변조시키며, 존재를 손상시키고 무너뜨리는 관계들과 만나야 한다. EST를 ET로 대체해야 한다(A 'et' B). ET는 심지어 특정한 관계나 접속사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의 기초를 이루는 것, 모든 관계들을 열어주는 길이다. 그것은 관계들이... 존재, 일자, 전체 바깥에서 짜이도록 만든다. ET는 특별한 존재extra-etre이고 사이의 존재inter-etre이다... EST를 사유하는 대신에, EST를 '위해' 사유하는 대신에, ET와 '더불어' 사유하는 것, 경험론에 이것 말고 다른 비밀은 없다."(66-7쪽)

경험론의 유일무이한 비밀을 누설하고 있는 만큼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데, 국역본 <디알로그>(동문선, 2005)에서 한번 더 인용하기로 한다. 2장 '영미문학의 탁월함에 대하여'에 나오는 대목이다.

"철학, 철학사가 존재의 문제, 즉 -이다/있다(EST)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만큼 이러한 관계들의 지리학은 그만큼 더욱더 중요합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전제하는, 귀속판단(하늘은 파랗다)과 존재판단(신은 있다)에 대해 논하죠.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존재' 동사이고 원리의 문제입니다. 오로지 영미인들만이 접속사들을 자유롭게 하고 관계들에 대해 성찰했습니다. 이는 영미인들이 논리학에 대해 아주 특별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109쪽)

서동욱의 인용에서 생략된 부분을 마저 인용하면 이렇다: "다시 말해 그들은 논리학을 제1원리들을 은닉하는 본래적 형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들은 논리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중 하나를 발명하게 되겠지요!' 논리학은 정확히 대로(大路) 같은 것으로, 처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관계들의 논리학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계판단의 권리들을 존재판단 및 귀속판단과 별개인 자율적 영역으로 재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접속사들(가령 '그런데' '그리하여' 등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관계들이 존재동사에 종속된 채로 남지 못하게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110쪽) 요는 관계판단 또한 존재 동사에 종속되는 것을 면치 못한다는 것.

즉, "모든 문법, 모든 삼단논법은 접속사들이 존재동사에 계속해서 종속되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접속사들의 존재동사의 둘레를 돌게끔 만드는 수단이죠. (따라서) 더 멀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관계들과의 마주침이 모든 것을 꿰뚫고 망가뜨리도록, 존재를 침식시키도록 만들어야 하고, 존재가 동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다/있다(EST)를 그리고(ET)로 대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A 그리고 B."

"그리고(ET)는 특별한 관계도, 특별한 접속사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 모든 관계들의 길을 연결하는 것이죠. 관계들이 그 항들의 바깥, 그 항들 집합의 바깥, 존재나 일자나 전체로 결정될 수 있을 모든 것의 바깥에서 질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불어에서 EST와 ET는 발음이 동일하다. 이게 영어로는 IS와 AND이다. 우리말로는 좀 번거루운데, '-이다/있다'와 '과(와)'가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열외-존재, 사이-존재로서의 그리고(ET). 관계들은 여전히 그 항들 사이에서 혹은 두 집합들 사이에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성립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고는 관계들에 다른 방향을 부여하고, 항들과 집합들이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도주선 위로 차례차례 도주하도록 만듭니다. -이다/있다(EST)를 사유하거나 -이다/있다를 위해 사유하는 대신에 그리고(ET)와 함께 더불어 사유하기 - 경험론에는 이것 외에 다른 비밀이 결코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110-1쪽)

대동소이한 두 번역에 대해서 따로 이견을 달지 않겠다. 다만, "ET는 특별한 존재(extra-etre)이고 사이의 존재(inter-etre)이다"와 "열외-존재, 사이-존재로서의 그리고(ET)"란 번역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약간 부절적하며, 두 경우 모두 '-존재'라고 풀어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ET/AND는 무슨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존재-바깥'이며 '존재-사이'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존재론으로 포섭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요컨대, 철학은 'EST철학'(IS철학)과 'ET철학'(AND철학)으로 대별될 수 있다(편의상 'IS철학'과 'AND철학'이라 부르겠다). 'IS철학'이 전통적인 형이상학으로서의 존재론을 집약하는 별칭이라면, 'AND철학'은 들뢰즈적인 접속론의 다른 이름이다. 들뢰즈의 용어를 더 갖다 쓰자면, 'IS철학'은 '나무-철학'이며, 'AND철학'은 '리좀-철학'이다.

이 두 철학은 세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술/분절한다. 가령, "들뢰즈 IS 철학자"와 "들뢰즈 AND 철학자"로. 이 'AND철학', 혹은 들뢰즈적인 경험론은 IS(계사)라는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사들끼리(혹은 머리들끼리) 막바로 헤딩하게 한다.  

 

 

 

   

여기서 콜브룩의 안내를 잠시 따라가본다(이 책은 순서상 '초월적 경험론' 장부터 읽는 게 타당하다). "들뢰즈에게 경험론은 철학적 이론이나 특별한 사상학파에 대한 인정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다."(<질 들뢰즈>, 135쪽). 여기서 '인정(commitment)'은 '관련'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이 경험론이 갖는 함축: "들뢰즈는 매개에 반대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관념들에 의해 매개되거나 질서 잡히는 삶이나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삶은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관념들이 우리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세계 자체가, 그것에 대해 우리가 결과로서 드러나는, 그런 관념들이나 이미지들을 생산한다."(136-7쪽) 그리하여 "오히려 관념들은 경험의 결과이다."

너무 오래 끌고 있어서 '남은 비밀'은 다음에 누설하기로 한다...  

06. 04. 25 -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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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4-2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글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있었는데..다시 시작하셨군요...^^
팍팍 진행되길 바랍니다..

저는 들뢰즈의 계사존재론과 지젝이나 라캉의 주체론을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데..로쟈님은 이건 어떻게 보시는지...


로쟈 2006-04-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팍팍'은 안되네요(--;). 일단 한두 권도 아닌 책들이 분산돼 있어서 한꺼번에 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고, 또 견적이 견적인지라... '재미있는 이야기'는 yoonta님이 해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브리핑하기에도 벅찹니다.^^

yoonta 2006-04-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낼정도로 구체화시키질 못해서요..지젝이나 라캉의 매개없는 주체..공백으로서의 주체와 들뢰즈의 계사존재론과는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데가 있다고 보거든요..로쟈님이 들뢰즈뿐만 아니라 지젝에 관심이 많으신분이라 한번 여쭤봤습니다.

로쟈 2006-04-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의 '계사존재론'은 아니죠.^^ '접속사론'이고, 이게 (지향하는 건) '존재론-바깥'이니까.

yoonta 2006-04-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 아이러니인거 같아요..계사"존재"론이 아니라는 님의 말도 맞지만 여전히 로고스적 언어(존재론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접속사론도 서양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전통속에 있다고 보거든요..그런점에서 계사'존재'론이라는 표현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로쟈 2006-04-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가 말하는 건 적어도 AND존재론인데, AND가 '계사'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ET는 심지어 특정한 관계나 접속사도 아니다"라고 했으니까 '접속사존재론'이란 말도 어폐가 있긴 하지만, 뭐라고 부르기는 해야 하니까... 더불어, 들뢰즈가 여전히 '로고스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죽은 철학자가 좀 유감스러워할 거 같습니다. 그는 적어도 '비틀거리는 언어'로 쓰고 있는 거 아닌가요?(그래서들 읽기 어렵다고 하는 거지만)...

yoonta 2006-04-2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고보니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is가 계사고 and가 접속사죠..들뢰즈는 접속사존재론이라고 해야겠네요...
 

 

 

 

 

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를 옮겨오도록 한다. 작년 봄 한겨레(2005. 05. 31)에 실렸던 것으로 대담자는 컬럼비아대학에서 고진의 강의를 듣기도 한 황종연 교수이다(<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저자 서문에는 두 사람이 인연이 잠깐 언급돼 있다). 동아시아 지성들과의 연쇄 대담 시리즈의 한 꼭지였는데, 타이틀은 "중/일은 '동양은 하나'라고 말해선 안돼"이며, 주요 화제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이다. 작년봄에 읽을 때에는 굳이 옮겨오거나 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보인다. 고진에 입문하시려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고려대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긴키대 교수를 황종연 동국대 국문학 교수가 만났다. 황 교수는 <문학동네>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 등을 주제로 삼은 활발한 문학평론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라타니와 황 교수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한·일 민족주의 극복 등에 관해 대담했다. 

황종연= 동아시아론이 유력한 지역주의 담론이 됐다. 이런 지역주의 유행은 ‘중화 체제’ 붕괴 이후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한다. 어떤 중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라타니= 세계사 전체에서 역사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120년 전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1880년대의 동아시아를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현재 중국은 제3세계 사회주의 국가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청나라 말기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제국주의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유럽의 공동체 형성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지역적 공동체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는 동시에, 중동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놓여 있다.

황종연= 동아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나름의 교역 체제를 갖고 있었다. 핵심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 체제다. 여기서 유래한 국제적 교역 공동체가 현재 동아시아 경제의 강력한 통합 고리를 이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동아시아 경제 통합의 움직임과 관련해 과거 중화 제국 체제와는 다른 어떤 초국민국가적 질서가 가능한가.

가라타니= 조공은 구 제국의 세계적 모습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두루 존재했다. 이때 구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를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다른 국민국가를 지배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각지의 국민국가 형성을 (저해한 게 아니라) 촉발시켰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는 각 국민국가들이 민족 자결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 한국, 중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독립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때의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경계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런 제국주의를 파괴하면서 현대의 국민국가가 성립됐다. 유럽의 경우에는 제국의 이념이 유럽 통합의 이념 아래 계속됐다.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분쟁하지 말자는 형태로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유럽은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을 형성했다. 나는 제국주의가 아닌 지역 공동체를 제국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동아시아에서 그런 제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다.

-1880년대에도 여러 선택의 길이 있었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결합했다. 일본은 현재 중국 공산당과 북한에 의한 군사적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종류의 위협은 없다. 그 위협은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위협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또는 동아시아 제국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황종연=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에서는 국민국가 이념과 함께 지역 정치공동체의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근대 일본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담론 전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의 아시아주의나 동양론은 제국주의와 얽혀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공동체 주장을 들을 때면 역사의 악몽이 떠오른다.

가라타니= 어떤 슬로건이건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오카쿠라 덴싱이 말한 ‘동양’이라는 이상은 대단히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동양’은 그가 일본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 시기의) 동양 또는 아시아는 하나라는 말은 오카쿠라라는 사람을 내쫓은 ‘국가’의 말이다. 그러니 말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동양이 하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그런 말을 하는 게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이나 대만이 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장래에 형성이 된다면 그 열쇠를 쥔 것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북한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5개 나라 가운데 스스로 시민운동을 일으킨 것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80년대 이후 일본에 출현한 포스트모던한 상황에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나는 ‘백치의 천국’이 될 가능성, 다른 하나는 광신적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갈 가능성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가라타니=당시 내 예언이 맞은 것 같다.(웃음) 1980년대 일본인들의 행동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백치들의 천국’은 세계적 현상이 돼버렸다. 미국의 경우 한편으론 백치 천국이 되고 있고, 한편으론 기독교나 유대교의 근본주의가 퍼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것이다. 세계 근대 시스템 전체를 모더니즘이라 본다면, 이를 뛰어넘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지금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안에 국한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황종연= 지금 우리는 상호연관성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여러 문화가 중첩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만큼 확고한 소속감과 충성심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다중적 소속감과 다면적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코스모폴리턴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언젠가 한일작가회의에 참석해 칸트의 코스모폴리턴한 이상에 대해 말했었다.

 

 

 

 

가라타니= 작가회의에서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웃음) 칸트가 말한 ‘공공(public)’이라는 개념은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흔히 공공을 국가나 민족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칸트는 반대로 매우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칸트는 한 개인이 가족이나 국가에 속해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공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코스모폴리턴이다. 그래서 코스모폴리터니즘은 민족적·지역적인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부정하면 오히려 진정한 코스모폴리터니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국민국가를 극복한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게 된다면, 오히려 보다 국가적·민족적인 흐름에 빠질 수 있다.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자기가 처한 위치를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다.

황종연= 최근 한일 양국의 대중 언론은 일제히 내셔널리즘으로 복귀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양국의 민간에서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내셔널리즘을 넘어선 연합이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라타니=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각 국가 안에서 해결돼야 한다. 한국인이 일본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일본인이 한국 내셔널리즘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굉장히 모순된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대의 내셔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난 2000년 한일 작가회의에 참석한 뒤에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통해 일본에도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이런 신뢰 속에서 ‘연합’이라는 것이 가능하다.(정리 안수찬 기자)

06. 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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