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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축제로서의 언어'란 글이 실려 있다. 글의 출전은 New Left Review 135(1982)에 실린 'Wittgenstein's Friends', 즉 '비트겐슈타인의 친구들'이란 논문인데(이 글은 이글턴의 단행본 비평집 'Against the grain'(1986)에 재수록돼 있다), '축제로서의 언어'는 이 논문의 제2장이다. 제목이 알려주듯이 실제로 논문은 비트겐슈타인의 친구들 이야기로 구성돼 있는데, 제2장에서 거명되고 있는 친구가 바로 바흐친이다. 한데, 이 '바흐친'은 우리가 아는 '미하일' 바흐친이 아니라, 그의 형 '니콜라이' 바흐친을 가리킨다(*이 니콜라이 바흐친이 등장하는 소설이 이글턴의 <성자와 학자>(한울, 2007)이다). 

 

 

 

 

이글턴은 이 장의 서두에서 니콜라이의 생년을 1896년이라고 했는데(그에 따라 국역본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1895년생인 미하일보다 1년 빠른 니콜라이의 생년은 1894년이다. 니콜라이에 대한 정보를 이글턴은 영어권 바흐친 연구의 원조인 마이클 홀퀴스트와의 대화에서 얻었다고 하는바,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카테리나 클라크와의 공저로 홀퀴스트의 바흐친 전기가 출간되는 것은 1984년의 일이다(이 책의 국역본이 <바흐친>(문학세계사, 1993)이다. 몇 개 장이 누락돼 있는데, 완역본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때문에 논문을 쓰면서 이글턴이 다소 부정확한 정보/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이해할 만하다.  

 

 

 

 

홀퀴스트의 전기에 따르면, 니콜라이는 동생 미하일보다 2년 먼저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수학하게 되며 형의 영향으로 미하일 또한 고전문헌학부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대한 미하일 바흐친의 깊은 관심은 형 니콜라이의 영향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18년에 헤어지게 되는데, 니콜라이는 (비록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만) 반혁명군이었던 백군에 가담하게 되며 이후에 이들 형제는 재회하지 못한다. 니콜라이는 프랑스의 외인부대원으로 참전하는 등 갖은 역정 끝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1935년에 사우스햄턴의 유니버시티 대학에서 고전문학 강사가 된다. 이후 1938년에 버밍엄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가 되며 1945년에는 동대학에 언어학과를 창설하고 교수로 재직한다.   

"그는 1945년에 현대 그리스에 대한 개론서 한 권을 개인적으로 출간했으며, 톨스토이, 푸슈킨, 마야코프스키, 희극의 리얼리즘과 러시아 상징주의 등에 관한 별로 괄목할 만하지 못한 그의 논문과 강의록 모음집이 1963년에 오스틴 던컨-존스에 의해 편집되었다."(<바흐친과 문학이론>, 71쪽)는 게 니콜라이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요약이다. 한데, 이 번역문에서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개론서'는 '현대 그리스어 입문서(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odern Greek)'로, '희극의 리얼리즘'은 '사실주의극(realism in theatre)'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특출한 성격의 니콜라이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인바, 니콜라이의 아내 콘스탄스의 회고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바흐친을 사랑했으며" 두 사람은 "끝없는 토론"을 즐겼다(레이 몽크의 전기에 나오는 내용인가?). 비트겐슈타인은 바흐친을 만나면 항상 즐거워했으며 한번도 절교하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에게) 바흐친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의 서문에서 언급하듯이 그에게 <트락타투스>의 사상을 설명했던 그러한 친구였다."(<철학적 탐구>의 서문 어디를 말하는 걸까?)   

"두 사람이 정확하게 무엇을 토론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흐친은 플라톤의 보편성의 독재에 대해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구체성의 우월이라고 간주한 것을 열렬히 신봉했으며, 우리는 이러한 생ㅇ각이 일반적으로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언어철학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잘 알 수 있다."(72족) 그러니까 니콜라의 바흐친의 사상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사이에 상당한 친연성이 있다는 것(인용문에서 '보편성'은 '보편자(the universal)' 혹은 '보편적인 것'을 가리키며, '구체성'은 '특수자(the particular)' 혹은 '특수한 것'을 뜻한다).

게다가 니콜라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대 플라톤'이란 논문에서 플라톤적의 단성적인 형이상학에 반대흐는 '도덕적 가치의 살아있는 다수성'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사고틀이 비트겐슈타인의 조망(=관점)과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활자화된 시의 치명적 효과(deadening effect)에 반대하여(시는 활자화되면 죽은 시라는 것) 언어의 에너지 개념과 '열정적인 특수성'을 강조한 음성중심주의적 태도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역시나 니콜라이가 미하일 바흐친의 형이라는 사실이며 두 사람은 1918년 이후에는 만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소식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1930년 파리에서 니콜라이는 동생 미하일의 도스토예프스키론(<도스토예프스키 시학>) 사본을 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매우 동질적인 문학적-지적 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학생시절에 그들은 20세기 러시아 문화 생활에 있어 가장 자극적이고 격렬했던 한 시기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동창생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언어철학에 기초한 경력에 발을 들여놓게 되어 있었고, 니콜라이의 논문과 20세기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에 있어 분명히 가장 훌륭한 글 중 하나인 미하일의 '담론과 소설'에 대한 강의 사이에는 어떤 근친성이 있다."(73쪽)

인용문 마지막 문장에는 오역이 포함돼 있는데, 근친성이 있다고 얘기되는 것은 '니콜라이의 논문'과 '미하일의 강의' 사이가 아니라 '니콜라이의 논문과 강의'와 '미하일의 '담론과 소설'이란 글' 사이이다. 이글턴이 '담론과 소설(Discourse and the Novel)'이라고 적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소설 속의 담론(Discourse in the Novel)'을 뜻한다. 그것이 20세기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에서 가장 훌륭한 문건 중 하나라는 것.

'소설 속의 담론'을 이글턴은 홀퀴스트가 편역한 <대화적 상상력(The Dialogic Imagination)>(1981)에서 인용하고 있는데(책의 목차와 서문은 아래에 자료로 옮겨놓았다), 네 편의 에세이가 영역된 이 책에서 세 편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작과비평사, 1988)이다. 국역본에 빠진 건 '소설 담론의 전사(前史)'란 에세이이다.

다소 에둘러 오긴 했지만, 이글턴이 지적하고자 한 것은 니콜라이 바흐친을 매개로 해서 비트겐슈타인이 미하일 바흐친과 만난다는 얘기이다. "흥미있는 역사적 굴곡에 의거하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주류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73쪽) 그 연관성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이어지는데,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06. 08. 16-17. 

P.S. 아래는 영역본 '대화적 상상력'의 표지와 목차, 그리고 서문이다.

 

Table of Contents

  • Acknowledgments
  • A Note on Translation
  • Introduction
  • Epic and Novel
  • From the Prehistory of Novelistic Discourse
  • Forms of Time and of the Chronotope in the Novel
  • Discourse in the Novel
  • Glossary
  • Index

Introduction

I

Mikhail Mikhailovich Bakhtin is gradually emerging as one of the leading thinkers of the twentieth century. This claim will strike many as extravagant, since a number of factors have until recently conspired to obscure his importance. Beyond the difficulties usually attending the careers of powerful but eccentric thinkers, there are, in Bakhtin's case, complications that are unique. Some of these inhere in his times: his two most productive periods occurred during the darkest years of recent Russian history: the decade following 1917, when the country reeled under the combined effects of a lost war, revolution, civil war and famine; and the following decade, the thirties, when Bakhtin was in exile in Kazakhstan, and most of the rest of Russia was huddling through the long Stalinist night. It was in these years that Bakhtin wrote something on the order of nine large books on topics as major and varied as Freud, Marx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Only one of these (the Dostoevsky book) appeared under his own name during these years. Three others were published under different names (see section III of this introduction); some were partially lost during his forced moves; some disappeared when the Nazis burned down the publishing house that had accepted his large manuscript on the Erziehungsroman; some were "delayed'' forty-one years in their publication when journals that had accepted manuscripts were shut down, as happened to the Russian Contemporary in 1924; others, such as the Rabelais book, were considered too aberrant for publication, due to their emphasis on sex and body functions (see section II of this introduction).

Another factor that has clouded perception of the scope of Bakhtin's activity in the anglophone world, at least, is the tradition in which he was working. He was trained as a classicist during a period when the German model of philology dominated Russian universities; thus he inherited a certain heaviness of style and a predilection for abstraction that English or American readers, accustomed to a more essayistic prose, sometimes find heavy going. Bakhtin's style, while recognizably belonging to a Russian tradition of scholarly prose, is, nevertheless, highly idiosyncratic. Language in his texts works somewhat as language does in the novel, the genre that obsessed him all his life: according to Ian Watt (The Rise of the Novel), "the genre itself works by exhaustive presentation rather than by elegant concentration." The more we know about Bakhtin's life, the clearer it becomes that he was a supreme eccentric, of an order the Russians express better than we in their word chudak, which has overtones of such intense strangeness that it borders on chudo, a wonder. And this peculiarity is reflected not only in the strange history of his texts (why, ultimately, did he publish under so many names?), but in his style as well, if one may speak of a single style for one who was so concerned with "other-voicedness." Russians immediately sense this strangeness: again and again when we have gone to native speakers with questions about a peculiar usage of a familiar word or an unfamiliar coinage, the Russians have thrown up their hands or shaken their heads and smiled ruefully.

Another difficulty the reader must confront is the unfamiliar shadings Bakhtin gives to West European cultural history. He tends to ignore the available chapterization into familiar periods and -isms. It is not so much Periclean Athens or Augustan Rome that attracts him as it is the vagaries of the Hellenistic age. He is preoccupied by centuries usually ignored by others; and within these, he has great affection for figures who are even more obscure. A peculiar school of grammarians at Toulouse in the seventh century A.D. may appear to others as an obscure group working in a backwater during the darkest of the Dark Ages; for Bakhtin the work of these otherwise almost forgotten men constitutes an extremely important chapter in the human struggle to accommodate the mysteries of human language. He keeps returning to the Carolingian Revival or the interstitial periods between the Middle Ages and the Renaissance. When he does cite a familiar period, he often tends to isolate an otherwise obscure figure within it—thus his focusing on Pigres of Halicarnassus or Ion of Chios among the Greeks, on Varro among the Romans; when dealing with the nineteenth century, it is the relatively unfamiliar Wezel or Musäus he cites.

Bakhtin throws a weird light on our received models of intellectual history. It is as if he set out to carnivalize—to use a verb that has become modishly transitive due to his own work on Rabelais—the normal periods and figures we use to define the relay of culture. Clearly, one could make such a perverse undertaking pay its way only if possessed of two prerequisites: enormous learning and a theory capable of sustaining a balance between such an aberrant history and more conventional historical models.

Of Bakhtin's preternatural erudition there can be no doubt—he belongs to the tradition that produced Spitzer, Curtius, Auerbach and, somewhat later, René Wellek. Many times when we have consulted specialists in the various fields from which Bakhtin so easily draws his recherché examples, it was only to be told that such and such a work did not exist, or, if it did, it was not "characteristic." A few days later, however, after some more digging or thinking, the same specialist would call to say that indeed there was such a work, and, although little known even to most experts, it was the most precisely correct text for illustrating the point Bakhtin sought to make by invoking it.

He has, then, a knowledge of West European civilization detailed enough to permit him to use traditional accounts as a dialogizing background to sustain the counter-model he will propose. And that counter-model is motivated by a theory that can rationalize not only its own subversions, but the effects of mainstream traditions as well.

I say theory and not system—the two do not always go hand in hand—because Bakhtin's motivating idea is in its essence opposed to any strict formalization. Other commentators, such as Tsvetan Todorov in a forthcoming book devoted to Bakhtin, have seen this as a weakness in his work. They have come to this conclusion, I believe, because they bring to Bakhtin's work expectations based on the kind of thinking characteristic of other major theorists who engage the same issues as Bakhtin.

Bakhtin is constantly working with what is emerging as the central preoccupation of our time—language. But unlike others who have made substantial contributions to our understanding of language in the twentieth century—Saussure, Hjelmslev, Benveniste and, above all, Roman Jakobson (all of whom are systematic to an extraordinary degree)—Bakhtin is not. If you expect a Jakobsonian order of systematicalness in Bakhtin, you are bound to be frustrated. This does not mean, however, that he is without a peculiar rigor of his own. It is rather that his concept of language stands in relation to others ;of the sort that occupy linguists) much as the novel stands in opposition to other, more formalized genres. That is, the novel—as Bakhtin more than anyone else has taught us to see—does not lack its organizing principles, but they are of a different order from those regulating sonnets or odes. It may be said Jakobson works with poetry because he has a Pushkinian love of order; Bakhtin, on the contrary, loves novels because he is a baggy monster.

At the heart of everything Bakhtin ever did—from what we know of his very earliest (lost) manuscripts to the very latest (still unpublished) work—is a highly distinctive concept of language. The conception has as its enabling a priori an almost Manichean sense of opposition and struggle at the heart of existence, a ceaseless battle between centrifugal forces that seek to keep things apart, and centripetal forces that strive to make things cohere. This Zoroastrian clash is present in culture as well as nature, and in the specificity of individual consciousness; it is at work in the even greater particularity of individual utterances. The most complete and complex reflection of these forces is found in human language, and the best transcription of language so understood is the novel.

Two things must immediately be added here. First, while language does serve to reflect this struggle, it is no passive stuff, no mere yielding clay. Language itself is no less immune from the effects of the struggle than anything else. Its nature as a system is even more fraught with the contest, which may be why it occupies so central a place in the activity of mind. Bakhtin, need it be said, is not working in this dichotomy of forces with the kind of binary opposition that has proved so important in structuralist linguistics (and so seductive to social scientists and humanists lusting for a greater degree of systematicalness). That opposition leads from human speech to computer language; it conduces, in other words, to machines. Bakhtin's sense of a duel between more widely implicated forces leads in the opposite direction and stresses the fragility and ineluctably historical nature of language, the coming and dying of meaning that it, as a phenomenon, shares with that other phenomenon it ventriloquates, man.

Secondly, language must not be understood in these essays in the restricted sense in which it occupies professional linguists. As Bakhtin says (in "Discourse in the Novel"), "At any given moment... a language is stratified not only into dialects in the strict sense of the word (i.e., dialects that are set off according to formal linguistic [especially phonetic] markers), but is...stratified as well into languages that are socio-ideological: languages belonging to professions, to genres, languages peculiar to particular generations, etc. This stratification and diversity of speech [razvorechivost'] will spread wider and penetrate to ever deeper levels so long as a language is alive and still in the process of becoming."

The two contending tendencies are not of equal force, and each has a different kind of reality attaching to it: centrifugal forces are clearly more powerful and ubiquitous—theirs is the reality of actual articulation. They are always in praesentia; they determine the way we actually experience language as we use it—and are used by it—in the dense particularity of our everyday lives. Unifying, centripetal forces are less powerful and have a complex ontological status. Their relation to centrifugal operations is akin to the interworking that anthropologists nominate as the activity of culture in modeling a completely different order called nature. As Bakhtin says (again in "Discourse"): "A unitary language is not something that is given [dan], but is in its very essence something that must be posited [zadan]—at every moment in the life of a language it opposes the realities of heteroglossia [raznorechie], but at the same time the [sophisticated] ideal [or primitive delusion] of a single, holistic language makes the actuality of its presence felt as a force resisting an absolute heteroglot state; it posits definite boundaries for limiting the potential chaos of variety, thus guaranteeing a more or less maximal mutual understanding...."

The term Bakhtin uses here, "heteroglossia" [raznorechie], is a master trope at the heart of all his other projects, one more fundamental than such other categories associated with his thought as "polyphony" or "carnivalization." These are but two specific ways in which the primary condition of heteroglossia manifests itself. Heteroglossia is Bakhtin's way of referring, in any utterance of any kind, to the peculiar interaction between the two fundamentals of all communication. On the one hand, a mode of transcription must, in order to do its work of separating out texts, be a more or less fixed system. But these repeatable features, on the other hand, are in the power of the particular context in which the utterance is made; this context can refract, add to, or, in some cases, even subtract from the amount and kind of meaning the utterance may be said to have when it is conceived only as a systematic manifestation independent of context.

This extraordinary sensitivity to the immense plurality of experience more than anything else distinguishes Bakhtin from other moderns who have been obsessed with language. I emphasize experience here because Bakhtin's basic scenario for modeling variety is two actual people talking to each other in a specific dialogue at a particular time and in a particular place. But these persons would not confront each other as sovereign egos capable of sending messages to each other through the kind of uncluttered space envisioned by the artists who illustrate most receiversender models of communication. Rather, each of the two persons would be a consciousness at a specific point in the history of defining itself through the choice it has made—out of all the possible existing languages available to it at that moment—of a discourse to transcribe its intention in this specific exchange.

The two will, like everyone else, have been born into an environment in which the air is already aswarm with names. Their development as individuals—and in this Bakhtin's thought parallels in suggestive ways that of Vygotsky in Russia (see Emerson, 1978) and Lacan in France Isee Bruss, in Titunik's translation of Volosinov's Freudianism, 1976)—will have been prosecuted as a gradual appropriation of a specific mix of discourses that are capable of best mediating their own intentions, rather than those which sleep in the words they use before they use them. Thus each will seek, by means of intonation, pronunciation, lexical choice, gesture, and so on, to send out a message to the other with a minimum of interference from the otherness constituted by pre-existing meanings (inhering in dictionaries or ideologies) and the otherness of the intentions present in the other person in the dialogue.

Implicit in all this is the notion that all transcription systems— including the speaking voice in a living utterance—are inadequate to the multiplicity of the meanings they seek to convey. My voice gives the illusion of unity to what I say; I am, in fact, constantly expressing a plenitude of meanings, some intended, others of which I am unaware. (There is in this obsession with voice and speech a parallel with the attempts of two important recent thinkers—both in other ways very different from Bakhtin—to come to grips with the way intimacy with our own voice conduces to the illusion of presence: Husserl in the Logical Investigations and Derrida in his 1967 essay "Speech and Phenomenon.")

It is the need to confront this multiplicity in a principled way that impels Bakhtin to coin some of his more outre terms (the word "heteroglossia" itself, "word-with-a-loophole," "wordwith-a-sidewards-glance," "intonational quotation marks" and so forth). He uses these rather than the more conventional terminology we associate with a linguistic concern for language first of all because traditional linguistics has taken little heed of the problem of alterity in language. Bakhtin, like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1962), Searle (Speech Acts, 1969) and particularly Grice (the legendary but still unpublished 1967 James lectures on Logic and Conversation), stresses the speech aspect of language, utterance, to emphasize the immediacy of the kind of meaning he is after. He does so as well to highlight his contention that language is never—except for certain linguists—what linguists say it is. There is no such thing as a "general language," a language that is spoken by a general voice, that may be divorced from a specific saying, which is charged with particular overtones. Language, when it means, is somebody talking to somebody else, even when that someone else is one's own inner addressee.

Bakhtin's theory of metalanguage is extremely complicated and deserves detailed study. I have merely alluded to it here in order to provide a context for the more particular subject matter unifying these four essays—the novel. I began with Bakhtin's insistence on the primacy of speech because what he has to say about novels is incomprehensible if the emphasis on utterance is not always kept in mind. In section IV we shall once again take up the relationship between Bakhtin's ideas about language and his distinctive theory of the novel's extraliterary importance.

II

Bakhtin was born 16 November 1895 in Orel into an old family of the nobility, dating from at least the fourteenth century, that no longer owned property at the time of his birth. Bakhtin's father was a bank official who worked in several cities as Mikhail Mikhailovich was growing up. The early years of his childhood were spent in Orel, then in Vilnius (Lithuania) and finally Odessa, where he finished the gymnasium and entered the historical and philological faculty of the local university in 1913. He soon transferred to Petersburg University, where his brother Nikolaj (later professor of Greek and Linguistics at Birmingham University) was a student.

It was an exhilarating time to be in St. Petersburg. There was the stimulation of attacks and counterattacks by Symbolists, Acmeists and Futurists in poetry. Criticism, too, took on a new urgency and glamor: the very year Bakhtin came to the city Shklovsky published the article that was to be the first salvo in the battles that raged around the Formalists. The university was an especially exciting place to be, notably in the areas of Bakhtin's interests. D. K. Petrov, the distinguished Hispanist and student of Baudouin de Courtenay, the philosopher A. I. Vvedenskij and Aleksandr N. Veselovskij, a founder of the modern study of comparative literature, were teaching at this time. But Bakhtin was influenced particularly by the great classicist F. F. Zelinskij; some of Bakhtin's key concepts can be traced back to suggestions in Zelinskij's works, primarily those dealing with the Roman oratorical tradition. During these years Bakhtin laid the foundations of his prodigious knowledge of philosophy, especially classical and German thinkers. Vvedenskij was the leading Russian Kantian, and N. O. Losskij, another of Bakhtin's teachers, had studied under Windelband and Wundt. In 1918 Bakhtin finished the university and moved to Nevel', a west Russian city, where he taught school for two years.

It was here that the members of the first "Bakhtin Circle" (with the exception of P. N. Medvedev, who became associated with it in 1920 in Vitebsk) came together: Lev Pumpianskij, later professor in the Philological Faculty at Leningrad University; V. N. Volosinov, later a linguist, but at this time a musicologist and would-be Symbolist poet; M. V. Judina, later one of Russia's greatest concert pianists; I. I. Sollertinskij, later artistic director of the Leningrad Philharmonic; and B. M. Zubakin, archeologist, Mason and grand eccentric. There were others as well who attended discussions less frequently, but who shared the passionate interest of the group in threshing out literary, religious and political topics. But the most frequent topic of discussion, the subject of most burning concern for the majority of the group—certainly for Bakhtin—was German philosophy. At this point Bakhtin thought of himself essentially as a philosopher and not as a literary scholar.

A very important member of the group for him, then, was Matvej Isaich Kagan, later an editor of the monumental Encyclopedia of Soviet Energy Resources, but at this time still a professional philosopher—a philosopher, moreover, who had just returned from Germany, where he had spent almost ten years studying at Marburg and Berlin. He had been close to the Marburg Neo-Kantians: he translated Natorp and was highly thought of by Hermann Cohen and Ernst Cassirer. Kagan was Bakhtin's best friend in these years, in some ways filling the personal and intellectual gap left by the departure of Bakhtin's brother, Nikolaj. We can see traces of Kagan's influence in the concern for such NeoKantian preoccupations as axiology and the need to rethink the mind/world opposition that are present in Bakhtin's first published work, "Art and Responsibility." This small 1919 piece is actually a précis of a major work on moral philosophy to which Bakhtin devoted himself while in Nevel' that was never published (except in portions, and then only sixty years later, in 1979.

In 1920 he moved to Vitebsk, in the same general area. Vitebsk was at that time a cultural boom town, an island of light in the dark currents of revolution and civil war, a refuge for such artists as El Lisitskij, Malevich and Marc Chagall. Several prominent scientists also lived in the Belorussian city at this time, as well as leading musicians from the former Mariinskij Theater who taught at the Conservatory. A lively journal, Iskusstvo, was started, and there were constant lectures and discussions.

Two events of great personal importance occurred during the Vitebsk period: in 1921 Bakhtin married Elena Aleksandrovna Okolovic, who was indispensable to him until her death in 1971; and in 1923 the bone disease that was to plague Bakhtin all his life—and that would lead to the amputation of a leg in 1938— made its first appearance. In 1924 Bakhtin moved back to Leningrad, working at the Historical Institute and consulting for the State Publishing House. Bakhtin was finally moved to let some of his work see the light of day.

In the fate of an early article we can see the emergence of a vicious pattern that was to repeat itself throughout his life: continually, Bakhtins manuscripts were suppressed or actually lost, by chance or by the opposition of determined enemies. Just as Bakhtin's "On the Question of the Methodology of Aesthetics in Written Works" was about to appear, Russkij sovremennik, the journal that had commissioned the piece, ceased publication. Thus this seminal work was not published until fifty-one years iater. These were nevertheless fruitful years for Bakhtin, during which he continued his constant discussions, now with a circle made up of such friends and followers as the poet N. A. Kljuev, the renowned biologist I. I. Kanaev, the experimental writers Konstantin Vaginov and Daniil Kharms, the Indologist M. I. Tubianskij.

Although Bakhtin had been studying and thinking ceaselessly during these years, his first major published work finally appeared only in 1929, the magisterial Problems of Dostoevsky's Art, in which Bakhtin's revolutionary concept of "dialogism" (polyphony) was first announced to the world. The book, controversial as only a radically new vision of an old topic can be, was nevertheless well received. Some (including the Minister of Education and the leading Party intellectual Anatoly Lunacharsky) even recognized it to be the revolutionary document that it has indeed proved to be. The impact of the book was muffled, however, because just as it appeared, Bakhtin was sent to the wilds of Kazakhstan. He spent the next six years in exile as a bookkeeper in the obscure town of Kustanaj. Several of his closest associates disappeared forever during the purges of the late 1930s. Bakhtin somehow continued to work even in Kustanaj, and several of his most important essays, such as "Discourse [Slovo] in the Novel," were written during these years. He was supplied books from the Saltykov-Shchedrin Library in Leningrad and the Lenin Library in Moscow by his friends.

In 1936 he was able to teach courses in the Mordovian Pedagogical Institute in Saransk and in 1937 moved to the town of Kimry, two hundred kilometers from Moscow, where he finished work on a major book devoted to the eighteenth-century German novel (Erziehungsroman). This manuscript was accepted by the Sovetskij Pisatel' Publishing House, but the only copy of it disappeared during the confusion of the German invasion—yet another example of the hex at work in Bakhtin's publishing career. The only other copy of this manuscript Bakhtin—an inveterate smoker—used as paper to roll his own cigarettes during the dark days of the German invasion (which gives some idea, perhaps, of how cavalierly Bakhtin regarded his own thoughts once they had already been thought through). It was only after the most strenuous arguments by Vadim Kozinov and Sergej Bocarov that Bakhtin could be persuaded first of all to reveal the whereabouts of what unpublished manuscripts he had (in a rat-infested woodshed in Saransk) and then to permit them to be retranscribed for publication.

From 1940 to the end of World War II Bakhtin lived in the environs of Moscow. In 1940 he had submitted a long dissertation on Rabelais, but it could not be defended until after the war was over. In 1946 and 1949 his defense of the dissertation split the Moscow scholarly world into two camps: the original and unorthodox manuscript was accepted by the official opponents appointed to preside over the defense, but other professors felt strongly enough about Bakhtin to intervene against its acceptance. There were several stormy meetings (one lasting seven hours until the government finally stepped in) in the end the State Accrediting Bureau denied his doctorate. Thus Rabelais and Folk Culture of the Middle Ages and Renaissance, which has since gone through many editions in several languages, had to wait until 1965, nineteen years later, before it was published.

But Bakhtin's friends were no less determined than his enemies, and a group that had been attracted to him during his stay in Saransk in 1936 now invited him back to be the chairman of the General Literature Department. Thus began Bakhtin's long and affectionate relationship with the institution that, when it was upgraded from teacher's college to university in 1957, made him head of the expanded Department of Russian and World Literature. A beloved teacher himself (whenever he lectured the hall was sure to be crowded), he influenced generations of young people who went out to teach. In August of 1961 Bakhtin was forced to retire due to declining health. In 1969 he returned to Moscow for medical treatment, living in the city until his death on 7 March 1975.

These last years were busy and fulfilling for Bakhtin, finally bringing him the fame and influence he so long had been denied. A group of young scholars at Moscow University (under V. Turbin) and at the Gor'kij Institute, most notably V. Kozinov and S. Bocarov (yet another Bakhtin Circle), energetically took up his cause. He was also aided by the eminent linguist and theoretician, V. V. Ivanov. The Dostoevsky book was republished in 1963, largely due to the extraordinary efforts of Kozinov, whose role in this affair does him honor. Its appearance created a sensation that helped to rekindle interest in basic questions of literary study. In 1965 the Rabelais book was published following a series of programmatic articles in leading journals. In 1975 a collection of Bakhtin's major essays outlining a historical poetics for the novel, Questions of Literature and Aesthetics (from which the four essays in this volume are taken), came out soon after his death. Just before he died he learned that Yale University was trying to arrange for him to be awarded an honorary degree.

III

There is a great controversy over the authorship of three books that have been ascribed to Bakhtin: Freudianism (1927) and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1929; 2nd ed. 1930), both published under the name of V. N. Volosinov, and The Formal Method in Literary Scholarship (1928), published under the name of P. N. Medvedev. This is not the place to go into the arcana of Bakhtin's textology. The question is of a complexity that requires extended treatment on its own. The view of the present editor is that ninety percent of the text of the three books in question is indeed the work of Bakhtin himself.

IV

The most immediate contribution these essays make is to the theory of the novel, a particularly vexed area of literary scholarship.

The enormous success of the novel in the nineteenth century has obscured the fact that for most of its history it was a marginal genre, little studied and frequently denounced. Even in an age such as our own, when there is no dearth of books devoted to "the novel," there is very little agreement as to what the word means. Consider three examplary titles in which the substantive "novel" is preceded by the definite article: Lukacs' Theory of the Novel (1920), Ian Watt's The Rise of the Novel (1957) and Lucien Goldmann's Towards a Sociology of the Novel (1964, English tr. 1975). These are all important books that have greatly advanced our understanding of certain kinds of novels, but each in its own way dramatizes the same shortcoming: they seek to elevate one kind of novel into a definition of the novel as such (as does René Girard in another very influential book, Deceit, Desire and the Novel [1961]). They lack a field theory capable of encompassing not only the texts nominated by the others as novels, but two millennia of long prose fictions preceding the seventeenth century—the period when, according to consensus, the novel experienced its "birth." (The same view holds that the novel "rose" in the eighteenth century and "triumphed" in the nineteenth—its "death" in the twentieth century is a foregone conclusion by the same historical logic.)

A major reason why so little powerfully syncretic work has been done in the area of novels, even by those who recognize the dilemma posed by excluding pre-seventeenth-century narrative such as Scholes and Kellogg (The Nature of Narrative [1966]), is that the absolute novelty of the novel has not been adequately recognized. Bakhtin's advantage over everyone else working on novel theory is that he is able to include more texts from the past in his scheme than anyone else—and this because, paradoxically, he more than others perceives the novel as new. Not new when it is said to have "arisen," but new whenever that kind of text made its appearance, as it has done since at least the ancient Greeks, a text that merely found its most comprehensive form in Cervantes and those who have come after. In order to see what kind of text might have so radical a novelty, we shall have to rethink the basic categories of genre and style.

Syncretic chronicles of such genres as the ode, the lyric or tragedy may be written extending back to classical times, because each such history will have as its subject a set of formal characteristics so fixed—from the earliest days of European culture— that nuanced modulations (in their surface features, at least) can be recognized with relative ease. It is probably for this reason that such discursively homogeneous genres accord so well with received ideas about the periodization of general history into such chapters as "classical antiquity," the "Age of Louis XIV" and so forth.

So militantly protean a form as the novel raises serious problems for those who seek to confine it to the linear shape of most histories. The difficulty is compounded if we recognize further that such histories usually begin by presupposing the very organizing categories that it is the nature of novels to resist. Histories are like novels in that they set out to provide more or less comprehensive accounts of social systems. Histories occupy themselves with relationships between the strata of legal codes, religious beliefs, economic organization, family structure and so forth, in order to create a series of moments in which the interaction of these forces can be seen in their simultaneity as well as their continuity. And novels, too, concern themselves more or less with such interrelationships, the particular assemblage of discourses that define specific cultures.

But histories differ from novels in that they insist on a homology between the sequence of their own telling, the form they impose to create a coherent explanation in the form of a narrative on the one hand, and the sequence of what they tell on the other. This templating of what is enunciated with the act of enunciation is a narrative consequence of the historian's professional desire to tell "wie es eigentlich gewesen ist." The novel, by contrast, dramatizes the gaps that always exist between what is told and the telling of it, constantly experimenting with social, discursive and narrative asymmetries (the formal teratology that led Henry James to call them "fluid puddings").

History has perhaps most often been compared with the novel because both presume a certain completeness of inventory. Each in its own way strives to give narrative shape to material of encyclopedic variety and plentitude. Thus, a good history of Russia, for instance, might very well seek to be what Belinsky said Evgenij Onegin was, "an encyclopedia of Russian life": like the novel, such a history would describe rank, manners, differences between the capital and the provinces and so forth. But as Bakhtin has said of Pushkin's work, it is not an encyclopedia that merely catalogs inert institutions, the brute things of everyday life: "Russian life speaks in all its voices [in Evgenij Onegin], in all the languages and styles of the era. Literary language is not represented in the novel [as it is in other genres] as a unitary, completely finished off, indubitably adequate language—it is represented precisely as a living mix of varied and opposing voices [raznorechivost']."

The emphasis on social variety dramatized as contests between different voices speaking various intralanguages of the abstract system we call "the" Russian language is what defines the "devilish difference" [djavol'skaja raznica] making Evgenij Onegin a novel in verse, and not just a long poem. And insofar as Evgenij Onegin is a dialogized system made up of the images of "languages, styles and consciousnesses that are concrete and inseparable from language," it is typical of all novels. It dramatizes in these features both the difficulty of defining the novel as a genre and the reason the question of its history is so fraught. Other genres are constituted by a set of formal features for fixing language that pre-exist any specific utterance within the genre. Language, in other words, is assimilated to form. The novel by contrast seeks to shape its form to languages; it has a completely different relationship to languages from other genres since it constantly experiments with new shapes in order to display the variety and immediacy of speech diversity. It is thus best conceived either as a supergenre, whose power consists in its ability to engulf and ingest all other genres {the different and separate languages peculiar to each), together with other stylized but nonliterary forms of language; or not a genre in any strict, traditional sense at all. In either case it is obvious that the history of what might be called novels, when they are defined by their proclivity to display different languages interpenetrating each other, will be extremely complicated.

The only history of the novel adequate to such complexity has been proposed by Mikhail Bakhtin, whose definition of the genre as a consciously structured hybrid of languages I have used in the preceding remarks. Bakhtin has succeeded in forging a history capable of comprehending the very earliest classical texts jsuch as the Margites traditionally ascribed to Homer, Hellenistic and Roman texts and medieval romances, as well as the titles that are usually advanced in more traditional accounts of the genre, such as Guzman Alfarache and Don Quixote. It is a history that includes as well elements from the oral tradition of folklore going back to prehistoric times.

And Bakhtin has been able to do this because he has grasped that the novel cannot be studied with the same set of ideas about the relation of language to style that we bring to bear on other genres. Most versions of literary stylistics—whether Spitzer's or Vinogradovs—assume that language operates more or less as professional linguists tell us it does, both in our everyday lives and in hterary texts. Literary texts simply intensify certain capabilities of language that are potential in spoken speech as well: "Poetry is violence practiced on ordinary speech," to paraphrase the young Jakobson. Style in this view means the sum of the operations performed by the poet in order to accomplish the violence necessary to mark the text off as literature.

Valuable work has been done in most genres by critics presuming style so understood. The reason is that not only most critics, but most genres begin with this assumption: the homogeneity of the genre corresponds to ideas about the privileged status of a unitary, centripetalizing language shared by its practitioners on the one hand and its students on the other.

The novel is utterly different from such genres because it presumes a completely other relationship to language. But, according to Bakhtin, this has not yet been perceived by its students who—if they are not utterly lost in the morass of gossipy "character analysis," ethical high-mindedness and watered-down psychology that frequently passes as novel criticism—continue to view the novel through the optic of a traditional stylistic that has proved so successful with other text types, but is quite inappropriate to novels.

The most recent form this approach has taken is a concern no longer for a Lansonian attention to the language of the text, but rather for the "language" of the plot—what, following Propp's ground-breaking work, has been called the morphology or syntagmatics of narrative. Attempts have been made to apply to the novel the kind of structural analysis that has been so remarkably successful with short formulaic forms such as folktales, detective stories and industrial folklore, that is, serial novels for children (Tom Swift, etc.). The work of men such as Greimas in France (Du sens, 1970) or Van Dijk in Holland (Some Aspects of Text Grammars, 1972) has led others (such as Meir Sternberg ["What Is Exposition?" in The Theory of the Novel, ed. John Halperin, 1974]) to conclude that the novel, too, might lend itself to tree diagrams and Freytag pyramids. Such critics forget what Eikhenbaum pointed out in 1925: that "the novel and the short story are forms not only different in kind but also inherently at odds...." ("O. Henry and the Short Story"). The lugubrious results of these analyses serve to confirm what Bakhtin concluded long ago: "The utter inadequacy of [most existing] literary theory is exposed when it is forced to deal with the novel" (see "Epic and Novel"). The situation he decried in the thirties is no better in the seventies. This situation Bakhtin addresses in the four essays in this collection.

V

By the time Bakhtin came to write these essays he had completed the Dostoevsky book, which made what appeared at the time to be rather extravagant claims for that author's uniqueness. The second edition (1963) has attached to it new material that seeks rather to place the Dostoevskian novel into a tradition. The new material and the point of view that it entails are drawn from work on the history of the novel Bakhtin pursued during the thirty-four years that intervened between the two editions. In those years Bakhtin came to regard the Dostoevskian novel not so much as an absolutely unprecedented event in the history of the genre, but rather as the purest expression of what always had been implicit in it. Viewing the history of the novel through the optic of the Dostoevskian example had revolutionary consequences. The novel ceases to be "merely one genre among many" ("Epic and Novel"). It becomes not only "the leading hero in the drama of literary development in our time" ("Epic and Novel"), but the most significant force at work even in those early periods when most other scholars would argue that there were no novels being written at all.

Such scholars would, within their own terms, be correct in asserting that there were no novels in Plato's Athens or during the Middle Ages, or at least no novel as we have come to know it. But Bakhtin is clearly not referring to that concept of a novel that begins with Cervantes or Richardson. These books, and especially the nineteenth-century psychological novel that evolved from them, have become the canon of the genre-novel. The majority of literary scholars are most at home when dealing with canons, which is why Bakhtin said that literary theory is helpless to deal with the novel. Rather, "novel" is the name Bakhtin gives to whatever force is at work within a given literary system to reveal the limits, the artificial constraints of that system. Literary systems are comprised of canons, and "novelization" is fundamentally anticanonical. It will not permit generic monologue. Always it will insist on the dialogue between what a given system will admit as literature and those texts that are otherwise excluded from such a definition of literature. What is more conventionally thought of as the novel is simply the most complex and distilled expression of this impulse.

The history of the novel so conceived is very long, but it exists outside the bounds of what traditional scholars would think of as strictly literary history. Bakhtin's history would be charted, among other ways, in devaluation of a given culture's higher literary forms: the parodies of knightly romances (Cervantes), pastorals (Sorel), sentimental fictions (Sterne, Fielding). But these texts are merely late examples of a tendency that has been abroad at least since the ancient Greeks. Bakhtin comes very close to naming Socrates as the first novelist, since the gadfly role he played, and which he played out in the drama of precisely the dialogue, is more or less what the role of the novel always has been. That role has been assumed by such unexpected forms as the confession, the utopia, the epistle or the Menippean satire, in which Bakhtin is particularly interested. Even the drama (Ibsen and other Naturalists), the long poem (Childe Harold or Don fuan) or the lyric (as in Heine) become masks for the novel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As formerly distinct literary genres are subjected to the novel's intensifying antigeneric power, their systematic purity is infected and they become "novelized."

The first essay in this volume seeks to establish the distinctiveness of the novel by opposing it to the epic. What emerges is a definition of novels as peculiarly suited to our post-lapsarian, post-industrial civilization, since it thrives on precisely the kind of diversity the epic (and by extension, myth and all other traditional forms of narrative) sets out to purge from its world. The essay posits a novel defined by what could be called the rule of genre inclusiveness: the novel can include, ingest, devour other genres and still retain its status as a novel, but other genres cannot include novelistic elements without impairing their own identity as epics, odes or any other fixed genre.

This essay will inevitably be compared with the use Lukács, in his Theory of the Novel, makes of the same contrast, and will, no doubt, be compared as well to the way Auerbach (Mimesis [1946]) distinguishes between Homeric and Biblical texts. Bakhtin differs from Lukacs in his evaluation of the novel's fallen state: just as his concept of heteroglossia is a happy redaction of the conditions otherwise so gloomily charted by Derrida's epigones as "differance," so his concept of the novel's relation to epic is an affirming version of what the pessimistic Lukács means when he says the novel is the characteristic text of an age of "Absolute sinfulness." Bakhtin differs from Auerbach (with whom he shares, otherwise, many suggestive parallels, both in his life and in his work) in that the Bible could never represent the novel in a contrast with epic, since both, Bible and epic, would share a presumption of authority, a claim to absolute language, utterly foreign to the novel's joyous awareness of the inadequacies of its own language. But since the novel is aware of the impossibility of full meaning, presence, it is free to exploit such a lack to its own hybridizing purposes.

The second essay, "From the Prehistory of Novelistic Discourse," is less conventional than the first, and outlines in a most economical way how a number of disparate texts from the distant past finally coalesced into what we now know as the modern novel. It is a thumbnail history of the force Bakhtin calls "novelness," an epistemological capability larger than any concrete expression of it before the novel as a text type emerges in its own right.

The third essay introduces one of Bakhtin's coinages in its title. "Chronotope" is a category that no brief introduction (much less glossary) can adequately adumbrate. The long essay uses the concept as yet another way to define the distinctiveness of the novel by means of its history, using differing ratios of time-space projection as the unit for charting changes.

The fourth essay in this volume, "Discourse in the Novel," is one of Bakhtin's most suggestive and, with the exception of certain chapters in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the most comprehensive statement of his philosophy of language. It has as its skeleton yet another model for a history of discourse that eventuates in the supreme self-consciousness (consciousness of the other) marked by the heteroglossia of the modern novel.

It will be clear from even so cursory an overview that the essays in this volume have been arranged in order of their complexity, with the simplest and most conventional appearing first, and the most difficult appearing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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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경험론에 대한 걸 정리해놓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생산적인' 뭔가에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이때 '생산'은 노동가치와 관련된다), 해야 할 일들이 계속 미뤄지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이런 '일' 때문인가?). '들뢰즈와 경험론'에 관련한 읽을 거리들도 머리속에 몇 개 생각해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책들도 분산돼 있기 때문에 한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이디어는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2002) 중 '보론'으로 포함돼 있는 글 '경험론과 철학 - 들뢰즈, 레비나스, 데리다'를 정리하면서 살을 붙인는 것이었다. 이 보론은 짧지만 생각할 거리들은 많이 제공해주는 유익한 글이다. 나는 막바로 3절부터 시작하겠다. '경험론에서 계사는 존재 동사가 아니라 접속사이다'란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 들뢰즈와 데리다를 레비나스를 사이에 두고 비교하는 내용이다(인용문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많은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철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와 레비나스를 같은 종족으로 묶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은 사상적으로 그리스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 로고스 없이 경험의 부스러기들만을 가진 자들이라는 점이다."(64쪽) 들뢰즈와 레비나스는 철학의 고향을 아테네가 아닌 다른 곳을 가정하므로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 대신에 레비나스가 '예루살렘'을 새로운 고향으로 지목하는 데 반해서, '노마드' 들뢰즈는 그러한 태생적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차이일까?

저자가 이어서 읽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와 차이>에 실린 데리다의 레비나스론의 한 구절인데, "경험론과 관련하여 데리다와 들뢰즈의 극명한 대립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줄 이 구절은 물론 레비나스 비판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65쪽) 그렇다면, 레비나스의 주장은 무엇이었나?

"레비나스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끔 하는 본질인 '존재'를 존재자의 모든 이기적 권력의 원천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타인에 대한 폭력은 존재 사건 자체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윤리의 가능성은 '존재와 다르게'라는 부사구를 통해서 타인에게 접근하려고 할 때 비로소 희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이 '존재와 다르게'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저자의 <차이와 타자>, <일상의 모험>을 참조.)  그런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 경우 "윤리적 언어는 '존재한다'라는 동사를 가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한데, 그런 언어는 불가능하다는 것. 즉, 레비나스여, 그게 가능합니까? 라고 젊은 철학자 데리다는 묻는다.

데리다 왈: "레비나스에 따르면 비폭력적인 언어는 동사 '존재하다'가 금지된 언어, 즉 어떤 술어적 기능도 없는 언어일 것이다. 술어적 기능은 최초의 폭력이다. 동사 '존재하다'와 술어적 활동은 모든 다른 동사와 모든 보통 명사 속에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비폭력적인 언어는 궁극적으로... 모든 '동사'로부터 정화된 언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언어가 여전히 언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로고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리스인들은 그런 언어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명사들과 동사들의 얽힘을 전제하지 않는 로고스는 없다고 말한다."(65-6쪽)

데리다의 견해로는 레비나스적/윤리적 언어가 술어적 기능을 갖는 '존재' 사를 금지할 경우 그것은 그리스적 의미에서 '언어'란 이름에 값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레비나스의 윤리는 언어적 표현을 가질 수 없다는 것. 그와는 반대로, "타자들을 그들의 진리 속에 '내맡겨져' 있게끔 하는 유일한 것"이 존재이며(보가 구체적으로는 '존재(est/is)'라는 계사(copula)이며), "존재의 이 근본성 때문에 데리다는 동사 '존재하다'는 모든 다른 동사와 모든 보통 명사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령, '책상'이란 말에는 '책상(이 있다)'가 함축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건은 경험론이 '존재하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가이며, "진정한 경험론은 존재 개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 때문에 멸망하기는커녕, 바로 데리다가 레비나스를 비판하기 위해 옹호하는 그 존재동사 'est'를 극복해야 할 표적으로 삼는 데서 비로소 경험론으로서 존립한다. 데리다와 정반대로, 경험론은 모든 동사들과 명사들을 존재 동사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다."(66쪽)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들뢰즈이다. 그가 <디알로그>에서 말하고 있는 경험론의 핵심은 이렇다: "철학, 철학사는 존재의 문제 때문에, 이다EST 때문에 방해받는다. 사람들은 속사(속성)의 판별(하늘은 푸르다le ciel est bleu)과 현존의 판별(신은 있다Dieu est)을 논의한다... 그것은 항상 '존재etre' 동사와 원리에 관한 물음이다. 오로지 영국인들과 미국인들만이 접속사들을 해방시켰고, (주어와 속사 사이를 맺는) 관계들에 대해 반성해왔다." 문단이 길기 때문에 잠시 쉰다. 여기서도 '앵글로-색슨' 들뢰즈의 면모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문법, 모든 삼단논법은, 존재 동사에 대한 접속사들의 종속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꿰뚫고 변조시키며, 존재를 손상시키고 무너뜨리는 관계들과 만나야 한다. EST를 ET로 대체해야 한다(A 'et' B). ET는 심지어 특정한 관계나 접속사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의 기초를 이루는 것, 모든 관계들을 열어주는 길이다. 그것은 관계들이... 존재, 일자, 전체 바깥에서 짜이도록 만든다. ET는 특별한 존재extra-etre이고 사이의 존재inter-etre이다... EST를 사유하는 대신에, EST를 '위해' 사유하는 대신에, ET와 '더불어' 사유하는 것, 경험론에 이것 말고 다른 비밀은 없다."(66-7쪽)

경험론의 유일무이한 비밀을 누설하고 있는 만큼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데, 국역본 <디알로그>(동문선, 2005)에서 한번 더 인용하기로 한다. 2장 '영미문학의 탁월함에 대하여'에 나오는 대목이다.

"철학, 철학사가 존재의 문제, 즉 -이다/있다(EST)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만큼 이러한 관계들의 지리학은 그만큼 더욱더 중요합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전제하는, 귀속판단(하늘은 파랗다)과 존재판단(신은 있다)에 대해 논하죠.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존재' 동사이고 원리의 문제입니다. 오로지 영미인들만이 접속사들을 자유롭게 하고 관계들에 대해 성찰했습니다. 이는 영미인들이 논리학에 대해 아주 특별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109쪽)

서동욱의 인용에서 생략된 부분을 마저 인용하면 이렇다: "다시 말해 그들은 논리학을 제1원리들을 은닉하는 본래적 형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들은 논리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중 하나를 발명하게 되겠지요!' 논리학은 정확히 대로(大路) 같은 것으로, 처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관계들의 논리학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계판단의 권리들을 존재판단 및 귀속판단과 별개인 자율적 영역으로 재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접속사들(가령 '그런데' '그리하여' 등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관계들이 존재동사에 종속된 채로 남지 못하게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110쪽) 요는 관계판단 또한 존재 동사에 종속되는 것을 면치 못한다는 것.

즉, "모든 문법, 모든 삼단논법은 접속사들이 존재동사에 계속해서 종속되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접속사들의 존재동사의 둘레를 돌게끔 만드는 수단이죠. (따라서) 더 멀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관계들과의 마주침이 모든 것을 꿰뚫고 망가뜨리도록, 존재를 침식시키도록 만들어야 하고, 존재가 동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다/있다(EST)를 그리고(ET)로 대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A 그리고 B."

"그리고(ET)는 특별한 관계도, 특별한 접속사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 모든 관계들의 길을 연결하는 것이죠. 관계들이 그 항들의 바깥, 그 항들 집합의 바깥, 존재나 일자나 전체로 결정될 수 있을 모든 것의 바깥에서 질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불어에서 EST와 ET는 발음이 동일하다. 이게 영어로는 IS와 AND이다. 우리말로는 좀 번거루운데, '-이다/있다'와 '과(와)'가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열외-존재, 사이-존재로서의 그리고(ET). 관계들은 여전히 그 항들 사이에서 혹은 두 집합들 사이에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성립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고는 관계들에 다른 방향을 부여하고, 항들과 집합들이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도주선 위로 차례차례 도주하도록 만듭니다. -이다/있다(EST)를 사유하거나 -이다/있다를 위해 사유하는 대신에 그리고(ET)와 함께 더불어 사유하기 - 경험론에는 이것 외에 다른 비밀이 결코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110-1쪽)

대동소이한 두 번역에 대해서 따로 이견을 달지 않겠다. 다만, "ET는 특별한 존재(extra-etre)이고 사이의 존재(inter-etre)이다"와 "열외-존재, 사이-존재로서의 그리고(ET)"란 번역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약간 부절적하며, 두 경우 모두 '-존재'라고 풀어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ET/AND는 무슨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존재-바깥'이며 '존재-사이'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존재론으로 포섭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요컨대, 철학은 'EST철학'(IS철학)과 'ET철학'(AND철학)으로 대별될 수 있다(편의상 'IS철학'과 'AND철학'이라 부르겠다). 'IS철학'이 전통적인 형이상학으로서의 존재론을 집약하는 별칭이라면, 'AND철학'은 들뢰즈적인 접속론의 다른 이름이다. 들뢰즈의 용어를 더 갖다 쓰자면, 'IS철학'은 '나무-철학'이며, 'AND철학'은 '리좀-철학'이다.

이 두 철학은 세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술/분절한다. 가령, "들뢰즈 IS 철학자"와 "들뢰즈 AND 철학자"로. 이 'AND철학', 혹은 들뢰즈적인 경험론은 IS(계사)라는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사들끼리(혹은 머리들끼리) 막바로 헤딩하게 한다.  

 

 

 

   

여기서 콜브룩의 안내를 잠시 따라가본다(이 책은 순서상 '초월적 경험론' 장부터 읽는 게 타당하다). "들뢰즈에게 경험론은 철학적 이론이나 특별한 사상학파에 대한 인정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다."(<질 들뢰즈>, 135쪽). 여기서 '인정(commitment)'은 '관련'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이 경험론이 갖는 함축: "들뢰즈는 매개에 반대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관념들에 의해 매개되거나 질서 잡히는 삶이나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삶은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관념들이 우리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세계 자체가, 그것에 대해 우리가 결과로서 드러나는, 그런 관념들이나 이미지들을 생산한다."(136-7쪽) 그리하여 "오히려 관념들은 경험의 결과이다."

너무 오래 끌고 있어서 '남은 비밀'은 다음에 누설하기로 한다...  

06. 04. 25 -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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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4-2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글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있었는데..다시 시작하셨군요...^^
팍팍 진행되길 바랍니다..

저는 들뢰즈의 계사존재론과 지젝이나 라캉의 주체론을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데..로쟈님은 이건 어떻게 보시는지...


로쟈 2006-04-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팍팍'은 안되네요(--;). 일단 한두 권도 아닌 책들이 분산돼 있어서 한꺼번에 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고, 또 견적이 견적인지라... '재미있는 이야기'는 yoonta님이 해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브리핑하기에도 벅찹니다.^^

yoonta 2006-04-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낼정도로 구체화시키질 못해서요..지젝이나 라캉의 매개없는 주체..공백으로서의 주체와 들뢰즈의 계사존재론과는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데가 있다고 보거든요..로쟈님이 들뢰즈뿐만 아니라 지젝에 관심이 많으신분이라 한번 여쭤봤습니다.

로쟈 2006-04-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의 '계사존재론'은 아니죠.^^ '접속사론'이고, 이게 (지향하는 건) '존재론-바깥'이니까.

yoonta 2006-04-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 아이러니인거 같아요..계사"존재"론이 아니라는 님의 말도 맞지만 여전히 로고스적 언어(존재론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접속사론도 서양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전통속에 있다고 보거든요..그런점에서 계사'존재'론이라는 표현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로쟈 2006-04-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가 말하는 건 적어도 AND존재론인데, AND가 '계사'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ET는 심지어 특정한 관계나 접속사도 아니다"라고 했으니까 '접속사존재론'이란 말도 어폐가 있긴 하지만, 뭐라고 부르기는 해야 하니까... 더불어, 들뢰즈가 여전히 '로고스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죽은 철학자가 좀 유감스러워할 거 같습니다. 그는 적어도 '비틀거리는 언어'로 쓰고 있는 거 아닌가요?(그래서들 읽기 어렵다고 하는 거지만)...

yoonta 2006-04-2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고보니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is가 계사고 and가 접속사죠..들뢰즈는 접속사존재론이라고 해야겠네요...
 

 

 

 

 

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를 옮겨오도록 한다. 작년 봄 한겨레(2005. 05. 31)에 실렸던 것으로 대담자는 컬럼비아대학에서 고진의 강의를 듣기도 한 황종연 교수이다(<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저자 서문에는 두 사람이 인연이 잠깐 언급돼 있다). 동아시아 지성들과의 연쇄 대담 시리즈의 한 꼭지였는데, 타이틀은 "중/일은 '동양은 하나'라고 말해선 안돼"이며, 주요 화제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이다. 작년봄에 읽을 때에는 굳이 옮겨오거나 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보인다. 고진에 입문하시려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고려대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긴키대 교수를 황종연 동국대 국문학 교수가 만났다. 황 교수는 <문학동네>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 등을 주제로 삼은 활발한 문학평론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라타니와 황 교수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한·일 민족주의 극복 등에 관해 대담했다. 

황종연= 동아시아론이 유력한 지역주의 담론이 됐다. 이런 지역주의 유행은 ‘중화 체제’ 붕괴 이후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한다. 어떤 중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라타니= 세계사 전체에서 역사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120년 전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1880년대의 동아시아를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현재 중국은 제3세계 사회주의 국가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청나라 말기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제국주의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유럽의 공동체 형성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지역적 공동체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는 동시에, 중동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놓여 있다.

황종연= 동아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나름의 교역 체제를 갖고 있었다. 핵심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 체제다. 여기서 유래한 국제적 교역 공동체가 현재 동아시아 경제의 강력한 통합 고리를 이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동아시아 경제 통합의 움직임과 관련해 과거 중화 제국 체제와는 다른 어떤 초국민국가적 질서가 가능한가.

가라타니= 조공은 구 제국의 세계적 모습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두루 존재했다. 이때 구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를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다른 국민국가를 지배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각지의 국민국가 형성을 (저해한 게 아니라) 촉발시켰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는 각 국민국가들이 민족 자결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 한국, 중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독립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때의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경계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런 제국주의를 파괴하면서 현대의 국민국가가 성립됐다. 유럽의 경우에는 제국의 이념이 유럽 통합의 이념 아래 계속됐다.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분쟁하지 말자는 형태로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유럽은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을 형성했다. 나는 제국주의가 아닌 지역 공동체를 제국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동아시아에서 그런 제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다.

-1880년대에도 여러 선택의 길이 있었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결합했다. 일본은 현재 중국 공산당과 북한에 의한 군사적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종류의 위협은 없다. 그 위협은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위협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또는 동아시아 제국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황종연=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에서는 국민국가 이념과 함께 지역 정치공동체의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근대 일본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담론 전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의 아시아주의나 동양론은 제국주의와 얽혀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공동체 주장을 들을 때면 역사의 악몽이 떠오른다.

가라타니= 어떤 슬로건이건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오카쿠라 덴싱이 말한 ‘동양’이라는 이상은 대단히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동양’은 그가 일본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 시기의) 동양 또는 아시아는 하나라는 말은 오카쿠라라는 사람을 내쫓은 ‘국가’의 말이다. 그러니 말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동양이 하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그런 말을 하는 게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이나 대만이 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장래에 형성이 된다면 그 열쇠를 쥔 것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북한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5개 나라 가운데 스스로 시민운동을 일으킨 것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80년대 이후 일본에 출현한 포스트모던한 상황에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나는 ‘백치의 천국’이 될 가능성, 다른 하나는 광신적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갈 가능성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가라타니=당시 내 예언이 맞은 것 같다.(웃음) 1980년대 일본인들의 행동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백치들의 천국’은 세계적 현상이 돼버렸다. 미국의 경우 한편으론 백치 천국이 되고 있고, 한편으론 기독교나 유대교의 근본주의가 퍼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것이다. 세계 근대 시스템 전체를 모더니즘이라 본다면, 이를 뛰어넘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지금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안에 국한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황종연= 지금 우리는 상호연관성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여러 문화가 중첩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만큼 확고한 소속감과 충성심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다중적 소속감과 다면적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코스모폴리턴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언젠가 한일작가회의에 참석해 칸트의 코스모폴리턴한 이상에 대해 말했었다.

 

 

 

 

가라타니= 작가회의에서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웃음) 칸트가 말한 ‘공공(public)’이라는 개념은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흔히 공공을 국가나 민족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칸트는 반대로 매우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칸트는 한 개인이 가족이나 국가에 속해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공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코스모폴리턴이다. 그래서 코스모폴리터니즘은 민족적·지역적인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부정하면 오히려 진정한 코스모폴리터니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국민국가를 극복한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게 된다면, 오히려 보다 국가적·민족적인 흐름에 빠질 수 있다.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자기가 처한 위치를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다.

황종연= 최근 한일 양국의 대중 언론은 일제히 내셔널리즘으로 복귀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양국의 민간에서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내셔널리즘을 넘어선 연합이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라타니=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각 국가 안에서 해결돼야 한다. 한국인이 일본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일본인이 한국 내셔널리즘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굉장히 모순된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대의 내셔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난 2000년 한일 작가회의에 참석한 뒤에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통해 일본에도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이런 신뢰 속에서 ‘연합’이라는 것이 가능하다.(정리 안수찬 기자)

06. 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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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최신작인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 2006)의 표제 강연문을 나는 이미 <문학동네>(2004년 겨울호) 버전으로 읽은 바 있지만, 저자 자신이 단행본에 수록하면서 전면적인 개정을 가했다고 하므로 다시 읽어봄 직하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펼쳐놓는다. 원래는 2003년 10월, 고진이 몸담고 있던 긴키대학의 한 연속강연에서 행한 강의록인데, 출간을 위해서 꼼꼼하게 다시 가필을 한 듯하다.

재작년에 이 글이 번역/소개되면서 언론의 주목과 함께 문단에도 잠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당시 한겨레 신문(2004. 11. 26)의 최재봉 기자는 '혁명을 팽개친... 문학은 끝장났다'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을 정리/소개했었다. 새롭게 고진의 이야기를 따라가보기 전에 먼저 기사를 읽어본다(*를 한 코멘트와 강조는 나의 것이다).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오래 전에 확인된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문학의 의연한 생존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그런 선언은 양치기 소년의 되풀이되는 거짓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문학의 죽음에 관한 풍문이야말로 거꾸로 문학의 생존 근거이자 양식이라는 주장조차 나오는 판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살아 있는가. 여기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글이 있다.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일본의 문학평론가 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3)의 <근대문학의 종말>이 그것이다. 이 글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행한 강연을 풀어 쓴 것이다.

 

 

 

 

-가라타니의 논리는 ‘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주관성)’이라는 사르트르의 정의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하자면 정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혁명의 핵심을 문학이 담당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체적 비평과 포스트모던 문학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근대문학’은 이런 혁명적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것은 일본의 경우에 ‘1980년대에 끝났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미국은 더 일러서 1950년대로 시점이 올라간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진은 (가령 앨빈 커넌처럼)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근대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근대문학'이란 (근대)소설과 동의어이다. "따라서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것은 소설 또는 소설가가 중요했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러한 소설/소설가의 전범으로 고진의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가 '근본적으로 소설가'라고 간주하는 사르트르이다. 그는 문학이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이라고 주장했던 것. 그런 (과잉)부담으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울 때, 그건 곧 (근대)문학의 죽음/종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진이 보기에) 프랑스의 경우에는 1960년대 들어서 사르트르의 시대가 끝나고, '소설' 대신에 '에크리튀르' 같은 개념이 보급되면서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경우엔 1950년대이고, 일본의 경우엔 1980년대라는 것. 이러한 현상을 고진은 대중문화(텔레비전)의 보급/발달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제도적 상관물은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즉 문창과의 등장과 급증이다. 가령, 포크너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사창가의 포주가 돼 보라고 권유했지만, 요즘에 등단하는 작가들은 사창가 출신들이 아니라 대개가 문창과 출신들인 것. 하지만, 정작 고진이 문학의 종언을 실감한 것은 한국의 경우를 목도하면서라고.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한 문학행사에 참석해 ‘일본에서 문학은 죽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문학평론가인 자신이 평론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인데,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만은 문학의 역할이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해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그는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끝장이 났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일본문학의 죽음에 대한 고진의 선언과 짝을 이루었던 것은 (문학이 아닌) '상품'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브랜드의 세계화였다. 고진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90년대 이후 하루키는 한국 독자들도 열성적으로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 "한국에서는 문학의 역할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 거라고" 예견했지만, 그건 오판이었던 것이다. 문학코너의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하루키의 작품들을 이런 관점에서 다시 읽자면, '문학 상실의 시대', '문학의 유령', '문학의 저편', '문학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식이 될 것이다. 하루키로선 그게 별로 유감스러운 게 아닌데, 그에겐 문학 대신에 위스키가 있으며, 게다가 브래지어 위를 흐르는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하루키의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문학의 급속한 쇠퇴는 1990년대 말에 일어나게 되는데, 그걸 징후적으로 드러내주는 작가는 김영하가 아닌가 싶다(그는 신경숙이나 윤대녕, 공지영 같은 '진지한' 작가들과 경향/유형을 달리하며 등장했다). '우리는 문학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문학)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다오', '엘리베이터에 낀 문학은 어떻게 되었나', '문학은 왜 (아직도 버티고 있나)' 등등. 문학의 죽음 이후의 문학? 그건 '포스트잇'으로서의 문학이며, '랄랄라 하우스'이다.

-가라타니는 문학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서 존립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한 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면, 문학은 단지 오락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문학’은 오락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나아가 일본 만화처럼 세계적인 상품으로 팔리는 문학을 권장하기조차 한다. 다만, 거기에다 본디 의미의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문학으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가 끝났다고 한다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도 소설가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그저 직업적 직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물론 여전히 1억원 고료, 5천만원 고료의 소설을 쓰는 일은 가능하다. 더불어 가능한 것은 소설가가 미국과 일본에서처럼 문창과 교수가 되고 문화센터의 강사가 되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되는 일이다(잘 나가는 소설가에 국한된 일이긴 하지만). 그걸 '사회적 책임'으로 용인하는 태도가 가능하듯이. 하지만, '문학'이 윤리적/지적인 과제를 짊어지기 때문에 영향력을 갖는 시대는 기본적으로 끝났다. 그 잔영만이 있을 뿐이다, 라는 게 고진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고진의 말을 직접 옮기자면,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을어 주시기 바랍니다.(*우리의 처지에서 보자면, '한류'에 한몫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한국에서 팔리는 일본 소설의 경우를 고려해보면, 멜로계에도 상당히 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됩니다."

 

 

 

 

(*)즉, 작가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어떤 종류의 '문학'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고나 쓰라는 것이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90년대 중반 <문학동네>의 창간은 한국문단에서 '문학의 종언'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됨 직하다. '창작과 비평'이니 '문학과 지성'이니 하는 '문학시대'의 거창한 타이틀을 그들은 내걸지 않았다(그들은 잘난 체하지 않았다). 그냥 '문학동네'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들은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문학이 무엇인지 감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때문에 창간 10주년이 되는 해에 게재된 고진의 평문 '근대문학의 종말'은 일면 '문학동네'의 뒤늦은 마니페스토로도 읽힌다. 문학동네 여러분,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본디 의미의 문학에 충실한 사례로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문학을 그만둔’ 두 사람의 사례를 든다. 부커상 수상작인 <작은 것들의 신>의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그리고 <녹색평론> 발행인인 ‘전직’ 평론가 김종철씨가 그들이다. “위기의 시대에 한가롭게 소설 따위를 쓸 수는 없다”는 로이,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문학이 지극히 협소한 것만 다루게 되었”기 때문에 문학을 그만두었다는 김종철씨야말로 “‘문학’을 정통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대로, “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밖에는 읽히지 못할 통속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나 “그 존재가 문학의 죽음을 역력하게 증명할 뿐인 패거리”는 문학의 생존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그는 일갈한다. 그는 “역사적 이념도 지적·도덕적인 내용도 없이 공허한 형식적 게임에 목숨을 거는” ‘일본적 스노비즘’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문학을 떠나서 생각하라”고 결론 삼아 제안한다.(*기사는 여기까지이다.)

 

 

 

 

(*)먼저, 로이 이야기: "그녀는 처녀작으로 (부커)상을 받은 후, 소설은 쓰지 않고 인도에서 댐건설 반대운동, 반전운동 등으로 분주합니다. 발표하는 저작도 그런 종류의 에세이뿐입니다. 구미에서 인기를 얻은 인도 작가는 아메리카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화려한 문단생활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 소설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로이는 자신은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쓸 것이 있을 때만 쓰며, 이런 위기의 시대에 무사태평하게 소설 따위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는 식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로이의 언동은 문학이 책임지고 있던 사회적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김종철 이야기: "김종철이라는 고명한 문학비평가는 문학을 그만두고 생태운동을 시작하며,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그는 최근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었는데, 이번이 네번째라고 말하는 타입의 인물입니다(*즉 대단한 문학애호가라는 것). 나는 왜 문학을 그만 두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 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동감을 표했습니다."

(*)문학비평가 김종철의 경우를 사례로 제시하기 이전에 고진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의 학생운동이다. 노동운동이 탄압받던 독재시대에 강렬한 정치운동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언 한국에서의  학생운동도 실제의 정치운동,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레 종언을 고하지 않았느냐고(물론 이건 고진의 탁견이 아니라 그냥 상식이다). "한국에서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그것이 노동운동이 불가능한 시대, 일반적으로 정치운동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리적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통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 학생운동은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문학도 그것과 닮았습니다. 실제 한국에서 문학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이 모든 것을 떠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나갔고, (문학으로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적어도 현저하게).

(*)이미 대학의 총학생회가 비운동권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는 건 뉴스거리도 되지 않지만, 투표율 저조로 투표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겨우겨우 당선자를 낸 올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노골적으로 反운동권을 표방하고 나선 '30대 인디밴드 가수'였다('학생운동의 종언'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동아일보(06. 04. 15)의 분석기사는 이렇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대학 총학생회(총학)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2일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황라열(30) 씨의 독특한 이력이 알려진 뒤부터다. 현실적인 공약을 내세운 인디밴드 가수 출신의 황 씨는 거대담론을 외쳤던 운동권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탈(脫)이념’ 현상 가속화=이번 서울대 총학 선거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대학 총학 선거에서도 비운동권 출신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몇 년 전부터 급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한 ‘탈이념’ 현상이 갈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각 대학의 동아리들도 대체로 이 같은 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치적, 이념적 이슈보다는 학교생활이나 취업 등과 관련된 학내 활동에 학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 여기에 특히 올해 들어 두드러진 현상은 총학 구성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가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총학은 지난해 11월 ‘총학 선거에서 투표율이 50%를 넘겨야 한다’는 규정에 걸려 구성이 무산됐다. 이후 이달 4일부터 재선거를 한 뒤 투표 기간과 시간까지 연장하면서 결국 최종 투표율 50.6%로 가까스로 구성됐다. 고려대 총학도 지난해 투표율 저조로 총학 선거가 무산되자 재선거를 하고서야 투표율이 커트라인을 통과한 경우다. 52.7%라는 투표율 역시 학교 측에서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병설 보건대 2, 3학년생 표를 제외하면 51.1%로 떨어진다. 서울시립대와 동국대의 경우 지난해 저조한 투표율로 총학 선거가 무산돼 총학 없이 1년을 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이념 추구든 현실적 공약이든 총학 선거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정치적 관심사와 개별 사안에 따라 ‘∼빠’, ‘∼안티’ 등의 형태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며 “자기 관심사에 따라 조직하고 어울리는 대학생들이 굳이 총학 조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학 학생회, 대안 찾기에 나섰지만…=이에 따라 아직 뚜렷한 지향점은 없지만 일부에서는 운동권도, 비운동권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01년 이후 ‘명예혁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비운동권을 자처한 한양대의 경우 5년째 총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학 총학생회장인 신재웅(23) 씨는 “당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대항하며 비운동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운동권도 비운동권도 아니다”라며 “기존 학생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봉사, 학내 복지 개선 활동 등이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주요 요소”라고 설명했다.

 

-건국대 손석호(26) 총학 집행위원장은 “학생운동 1세대가 정치투쟁이 목적이었다면 2세대는 학내 문제에 집중했다”며 “이제 3세대 학생회는 학생들과 소통하고 학내 문제를 해결한 뒤 학생들과 관련된 정치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宋虎根) 교수는 “투표율은 떨어지고 선거 형태도 다양해지는 것은 자기 계발, 개성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요즘 학생들의 특성이 집단운동 형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소집단과 집단운동의 정체성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날씨도 궂은 날이지만, 대학가에서는 (오늘) 4.19 기념행사도 대거 취소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형편이라고(중간고사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은 지난 17일부터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등록금 동결 등의 이슈르 내세우며 단식농성중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런 게 대학가의 현실이다. 요는 정치와 정치참여 방식이 변화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으며, 예전과 같은 학생운동은 더이상 그러한 시대의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근대문학은 끝났다." 이건 오버가 아니다.

한국문학의 경우 4.19세대와 함께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어야 하지만, (일본과 달리) 얼마간 연장된 것은 학생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80년 광주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80년대 한국문학은 '위대한' 문학이다. 이건 그 문학의 퀄리티와는 다소 무관하다. 문학의 위대함은 문학성과 같은 내적 자질이나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외부'에 의해 규정된다. 시대가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시대는 위대한 문학을 요청한다. 이런 시대에는 문학에 '과부하'가 걸린다. 우리의 80년대가 그러했다.

 

 

 

 

역설적인 것은 그러한 '과부하'로부터 도망가는 문학까지도 위대함의 아우라를 나눠갖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문학시대'의 마지막 비평가라 할 고 김현(1942-1990)의 비평이 위대했다고 생각한다(그는 자신이 생의 마지막까지 4.19세대로서 사고하고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요구에 복무하는 문학에 맞서 문학의 자율성을 끝까지 옹호하고자 했지만, 그러한 긴장관계 바깥의 '통속적인' 문학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문학주의적 태도를 '식물성의 저항'으로 요약하고 있는 작가 이인성도 그의 문학적 성취와 무관하게 대단한 작가이다. '낯선 문학 속으로', '문학의 한없이 낮은 숨결', '마지막 문학의 상상' 등이 그가 문학시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운동으로서의 문학시대'에 고집스레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인성의 소설들이 맥이 풀리게 되는 것은 90년대 접어들면서 문학에 대한 시대적, 정치적 과부하가 더이상 걸리지 않게 되면서부터이다. '미쳐버리고 싶은' 시대, 하지만 '미쳐지지 않는' 시대에, 그의 문학은 그냥 '강 어귀에 섬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와는 대비되는 것이 80년대의 대표작가에서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 작가/조감독을 거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는 이창동이다. 그는 문학의 시대가 곧 물건너간다는 걸 예감했던 것일까?(최근의 사례로는 역시나 작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재중 감독 장률이 있다.)

 

 

 

 

고진에 따르면, 과거 네이션 형성에 기반이 되었던 근대소설은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 해서,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면, 소설을 쓰는 것보다 영화를 만드는 쪽이 빠르겠죠. 혹은 만화가 좋을 것입니다. 요컨대, 활자문화가 아니라, 시청각으로 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쪽이 대중이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라고 충고한다. 가령, 새로운 시대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젠 영화나 만화에서나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게 억측만은 아닌 것. 만화를 좀 아는 지인은 우라사와 나오키,  미우라 켄타로, 후루야 미노루 등을 내게 권했다(일찍이 루카치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고 공언한 바 있으니, 그는 소설의 언어로 만화를 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만화의 시대인가?(물론 올해는 축구의 해이지만.)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의 문제가 문학이나 소설의 차원에서만 사고될 수 없으며, 그렇게 돼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문학이나 소설만을 생각하면 잘 이해되지 않으며 의미도 없습니다. 원래 근대라는 개념만 해도 매우 불명료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근대비판이나 포스트모던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더욱 불명료해질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전개 속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66쪽) 하지만, 그의 사고를 따라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분량상/시간상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06. 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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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4-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아룬타티 로이나 김종철의 태도가 방관자의 태도(더러운 거 몸에 묻히고 싶지않은)처럼 보입니다. 문학이야말로 "협소"한 것들의 설왕설래는 아닌지... 김영하의 경우 오히려 저홀로 발랄해지려는 게 안쓰러울때도 있습니다. [검은꽃]은 그이의 "발광"이었다는 생각이...

로쟈 2006-04-1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관자적 태도'라는 건 좀 모호한 표현 아닐까요? 두 사람 다 문학에 기대했던 사회적 역할이 막혀버리자 다른 방식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것인 텐데요. 더불어, '협소한 것들의 설왕설래'라는 건 문학 이후의 문학 아닐까요? 역사적으로 문학이 대단했던 시대가 있었고(문학이 잘 나서가 아니라 다만 시대적 조건이 그러한 문학을 요구했었던 것이지만), 다만 그 시대가 이제는 '과거'라는 게 문학종말론의 요지입니다...

twoshot 2006-04-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관자의 태도'가 모호한 표현이긴 합니다. 헌데 제가 보기에 아룬다티 로이나 김종철이나(저 '녹색문학'으로 가버린) 어째 '문학'을 떠나버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투철함'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정치적으로 저도 충분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사소함'들을 애써 '괄호'치려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었습니다.

로쟈 2006-04-1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버린 사람'처럼'이 아니라 (잠정적으로라도) 떠난 사람들 아닌가요? 그리고,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더불어 고진이 문제삼는 것은 문학의 사소화, 오락화이구요(그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twoshot 2006-04-1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횡설수설한 김에 마저 적겠습니다. 문학의 종언이다...그렇다면 영화도 마찬가지..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가 다시 오지않을 것 같은 것처럼 타르코프스키나 베리만의 시대도 끝났다..는 식의 표현은 그저 탄식이나 안타까움으로 충분하다는 거죠.고진이 "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끝장이 났다는 견해를 내놓"았다고 하는데(여기서 제가 꼬였습니다) 이런 표현은 그저 오만으로만 보입니다. 그 사람 한국말 할 줄아나요? 그럼 한국문학은? 한국문학에 대한 상찬은 그럼 그저 '주례사'였던건가요? 무슨 '종언'을 말할 게 아니라 누구처럼 꾸준히 '월평'을 쓰는게 더 생산적으로 보입니다.

yoonta 2006-04-19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문학이 "자신에게 부여되는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서 존립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2000년대 작가?는 바로 귀여니가 아닐까요? ..그의 글들을 보면 정말 저게 문학인지 일기장인지 혼동스럽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게 뭐냐면 문학이 죽었다면 그 이후에 나오는 글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오락거리로서 심심풀이로서 기능하는 문학이 (근대)문학이 아니라면 그러한 (근대)문학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자기표현행위자체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죽었다"기 보다는 단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게 정확하지 않을까요? 때문에 문학의 사회적 문화적 기능이 변화되는 것일 뿐인데 그것을 보고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좀 오바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비록 그가 문학종말론을 이야기함으로써 강조하고자하는 "시대의 변화"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하긴 하지만요.
그리고 앞으로 김영하나 하루키나 귀여니같은 작가들이 점점 더 늘고 문학의 주류로 자리잡는다고 하더라도 사르트르와 같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하리라고 봅니다. 물론 그처럼 사회적 대중적 파급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요.

p.s.아참 그리고 한가지 제안을 드리면 페이퍼를 읽을때 로쟈님 코멘트와 인용글이 혼동될때가 많거든요? 두가지를 글자체를 달리하던가 색을 바꿔서 써주시는게 어떨까요?..로쟈님글을 즐겨보는 애독자로서 종종느끼는 불편함이 있어 한번 말씀드려봅니다. ^^

로쟈 2006-04-1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다 문학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계시군요. 이미 철학의 종말, 역사의 종말, 인간의 종말까지 다 유행담론처럼 지나가 버린 상황에서 '문학의 종말' 정도 언급되는 게 기이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문학의 시대-영화의 시대-TV의 시대-멀티미디어 시대-모바일시대(?) 등으로 이행해가고 있다는 게 억지일까요? 보다 자세한 제 의견은 본문에서 개진하겠습니다.

yoonta님/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한데, 인용과 코멘트에 대한 제 구분은 (-)와 (*)입니다. 최소한의 구분이지만, 눈에는 띄게 해놓고 있습니다. 글에 칼라는 입히는 건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

그리고, "제가 궁금한게 뭐냐면 문학이 죽었다면 그 이후에 나오는 글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오락거리로서 심심풀이로서 기능하는 문학이 (근대)문학이 아니라면 그러한 (근대)문학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자기표현행위자체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죽었다"기 보다는 단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게 정확하지 않을까요?"라고 하신 건 고진의 주장과 배치되지 않습니다. 고진이 말하는 건 '정치운동으로서의 근대문학의 종언'일 뿐이니까. 덧붙이지면, 그 종언 이후의 '오락거리로서, 심심풀이로서 기능하는 문학'이 이전의 후광을 자기것인 양 잘난 체하지 말라는 것뿐입니다...

니브리티 2006-04-1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이 잘난체 하지 마라! 라고 말했다면 아마 하루키는 꼰대의 훈계 정도로 흘려버리지 싶네요.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진정성의 소비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요. 다만 그것이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제스처(이미 죽은 근대문학식 제스처vs쿨한 제스처)의 형태로 나타날 뿐이지 둘 모두 '삶의 진정성'을 옹호하긴 마찬가지죠. 근데 그들이 옹호하는 '삶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사실 허구라면? 아니 그들이 말하는 진정성이 사실은 발화와 동시에 소비되는 방식(그러나 문화적 축적과 성장이라는 생산적 소비양식으로서의 소비)일 뿐이라면... 말이죠.

니브리티 2006-04-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로쟈님 지인께서 권한 만화는 그 세계의 입문용으로 꽤 괜찮아 보이네요. 세 명 모두 일정정도의 꽤 큰 범위의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죠. 요즘 저는 <충사>라는 만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기생수>나 <에덴>같은 중급고전들도 대단한 포스를 가지고 있죠. 만화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해요...^^

로쟈 2006-04-1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브리티님마저 무궁무진한 만화의 세계에 빠져계시다면, '근대문학의 종언'은 그냥 사실 확인 정도의 의미만 갖겠습니다(아무런 센세이션 없이).^^ 제가 고진에게 공감하는 것은 제스처나 진정성의 문제가 아닌 객관적 정세(=역사성)에 근거하고 있어서입니다. 저는 그게 고진의 파워라고 생각합니다.

사량 2006-04-1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플랭카드... 어이없네요. '탈이념'이란 게 몰상식, 몰염치, 무례 등등과 같은 뜻일까요.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혐오가 요즘에는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어요. 대학에서든 인터넷에서든 비아냥거릴 수 있는 자유도 사실 어느 날 하늘에서 문득 떨어졌던 게 아닌데 말입니다.

로쟈 2006-04-2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연대에 정치가 '현실'이었던 만큼 요즘의 反정치, 혹은 '다른 정치'도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이 다른 것처럼...(그리고 플랜카드가 걸린 곳은 고대 같은데, 일부 총학 학생들의 점거농성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이 출교' 처분을 받았다고 뉴스에 크게 뜨는군요. 교권을 무시했다고.)

니브리티 2006-04-1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문학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는 경우가 있어요. 특히 서사적 틀 안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영상매체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그렇지만 그 불안이 어떤 경로로 유포된 것인지는 뻔히 보이는 그런 것)과 불만 말이죠. 그런데 들뢰즈가 영화와 철학을 함께 펼쳐낼 때 저는 거기서 어떤 장르적 우위나 우월감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고진이 정세판단을 했다면 문학의 종언이 아니라 근대의 종언이었겠죠. 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했었는데 거기서 배운 것이라곤 역사=진실이라는 등식의 허구였습니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실망)과 주관적 보상을 넘어선, 진리라고만 말할 수 없는 어떤 근본에 대한 강력한 주장 같은 것을 저는 믿습니다.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판단컨대 고진이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의 죽음>이 아니라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해 본적도 없는데 혁명의 시대가 가버렸다는 말이 씁쓸하게 들리는 것만큼이나, 제가 종언을 선언으로 읽고자 하는 저를 문학근본주의자로 이끌고 갈 수도 있고 그에 따라 끌려가고 싶기도 하는 욕망을, 또한 부인하지는 않지만... 이라고 써놓고보니 대책없는 낭만주의자로 보이는군용...ㅜ.ㅜ

로쟈 2006-04-20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빠를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브리핑'은 얼마간 축약하고 단순화시키니까요. 고진의 주장은 특정한 한 종류의 문학, 하지만 역사적 근대에 지배적이었던 그 문학이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므로, 문학 일반의 죽음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그때의 '문학'이 일반적으로는 '근대문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때의 종언은 애도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비관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문학이 해오던 것을 영화니 만화니 뭐니 하는 다른 영역, 다른 매체가 대신한다고 해서 크게 억울하거나 분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물론 그때도 어떤 영화인가, 만화인가가 문제가 되겠죠. '통속적인' 영화/만화를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영화하는 친구들의 오해처럼). '늙으면 죽어야지'란 속된 표현도 있는데, 현장에선 뛰기엔 (근대)문학은 충분히 늙었습니다. 지금 교태를 부리며 번성하는 건 다른 문학이죠. 아직 '잔영'으로 일부 남아있는 근대문학, 즉 '정치'나 '종교'로서의 문학을 약간 빼면...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고진이 말하는 근대문학은 '문학은 위대하다' '문학은 전부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문학입니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뭐 별거나' 아니면, '고게 좀 재미있네, 귀엽네' 수준이죠. 후자를 전자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나어릴때 2006-04-22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어려워라. 저는 조용히 추천하고 퍼갑니다. 늘 감사해요...^^;;

2020-04-18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워크샵 참석차 2박 3일간 지방에 다녀왔다. KTX를 타고 대구에 내려가 팔공산에서 1박하고 경주 보문단지에서 2박을 한 후에 다시 KTX를 타고 올라왔다. 대구는 처음 내려가보는 것이었고, 경주는 11년만이었다. 그래봐야 별로 구경한 것이 없는지라 들러본 자취조차 벌써 지워졌겠다. 

 

직접 제 발로 걸어보지 않은 여정이란 별로 의미가 없다. 보문단지의 경우도 4월의 벚꽃이 진해만큼 아름답다고 하는데, (물론 아직 이르긴 하지만) 그 눈부신 벚나무길을 걸어보지 않았으니 경주에 다녀왔다는 말도 삼가해야겠다. 그러니, 경주에 다녀왔지만 '생활'은 발견하지 못했다(다음엔 새마을호를 타봐야할까?). 그나마 우산을 챙겨가서 쫄딱 비를 맞지 않은 게 다행인 것인지?(어제 대구에는 비가 좀 내렸다.)

  

텍스트를 읽는 것 또한 그러하다. 직접 텍스트의 가로수길을 제 발로 걸어보지 않는다면, 그저 KTX식 다이제스트로 대신한다면,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읽었지만 읽은 것 같지 않은 책들'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가급적 그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목록을 좀 줄여보고 싶다. 이런저런 텍스트들을 자세히 읽고자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텍스트의 발견'이 없다면, 읽기는 얼마나 단조롭고 무의미한가!).

그런 생각과 맞물려서 마침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옮겨오는 건 고진의 텍스트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에 대한 자세히 읽기이다. 2003년 1월에 쓴 것이니까 그 또한 벚꽃과는 인연이 없던 계절에 작성된 것이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먼지를 털어서 창고에 넣어둔다(나중에 좀 때깔을 내서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읽기'에 부록으로 포함시킬 예정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과 관련하여 내가 갖고 있는 텍스트는 세가지이다. 첫째는 우리말 번역서 <유머로서의 유물론>(문화과학사, 2002)에 실린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E1이라고 부르겠다)이고, 둘째는 박유하 교수의 번역으로 <세계의문학>(94년 겨울호?)에 실린 '언어와 정치'(E2라고 부르겠다)이며, 셋째는 박 교수의 글을 쿤데라(소조)님이 교정해서 올린 카페(비평고원) 자료실의 '내셔널리즘과 에끄리뛰르'(E3라고 부르겠다)이다.

<유머로서의 유물론>에 실린 비평문들 가운데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이 바로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이다. 쿤데라님에 의하면, "이 글은 맨 처음 <비평공간> 92년 10월호에 발표되었다가, 93년 고진의 <유머로서의 유물론>이란 책에 실리게 된다. 그러다 이 논문을 수정 보완한 <내셔널리즘과 에크리뛰르>이란 논문으로 95년, <인문학 담론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재발표된다. 이때 이 논문에 대한 데리다의 서설이 유명하다."(데리다의 텍스트는 http://www.pum.umontreal.ca/revues/surfaces/vol5/derrida.html을 참조할 수 있다). 

고진이 데리다에게서 많은 시사를 얻었다는 이 글에서 고진은 거꾸로 데리다의 몇몇 논점을 비판하고 있고, 데리다 또한 그 비판이 부적절함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기에 옆에서 지켜보기에 퍽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관전에 앞서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은 문제의 텍스트를 확정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관람할 것인가를 확정하고, 자리 정리라도 해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일이 필요한 것은 세 텍스트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오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에크리튀르'란 불어의 번역. 보통, 문자, 글말, 문어 등으로 번역되는데, E2에서 박교수는 '문장어'라는 말로도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번역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문장과 계열관계를 이루는 단어나 구, 문단 등을 떠올려 보라). 어쨌든 에크리튀르는 구어(입말)와 대비되어 쓰이고 있다. 고진의 첫 번째 논점은 음성중심주의가 서양의 경우에만 국한되지/한정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다(E1, 62쪽). 그런데, 이 논점은 좀 이상한 논점이다. 그것은 음성중심주의(phonocentrism)란 것이 서양 형이상학적 전통에 국한된다라는 전제에 대한 반박으로서 제기된 것일 텐데, 그러한 전제를 주장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자신이 한번도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음을 자신의 반박문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고진이 좀더 정확하게 말하려면, 데리다가 말하는 음성중심주의가 서양뿐만 아니라 (데리다가 미처 다루지 않은) 동양에서도 발견된다라고 해야 한다.

어쨌든 이 문제는 음성중심주의가 근대 내이션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고진의 두 번째 논점(사실 이것이 고진의 핵심적인 주장이자 우리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과 함께 다음에 '메인-이벤트'를 다룰 때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서는 '텍스트 비판'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E1과 E2/E3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문단의 배열은 사뭇 다르다(비교하는 작업마저 어지러울 지경이다). 고진 자신이 원텍스트를 수정한 듯한데, E2/E3가 <비평공간>(1992년 10월)에 발표된 걸 번역한 것이라고 하니까 <유머로서의 유물론>(1993)에 실린 E1이 더 나중에 발표된 것이고, 따라서 수정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우리말 번역은 99년판을 옮긴 것이다(거기에 증보나 개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여기선 E1이 저자의 생각을 더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E1의 두 번째 대목(64쪽 이하)에서 고진은 데리다의 소쉬르 독해를 소개하고 그것의 불충분성 혹은 결함을 비판한다. E1의 역자는 differance(디페랑스)를 옮기지 않았고, E2에서는 그것을 '차연'이라, E3에서는 '차이'라 옮겼다. 물론 일반적인 역어는 '차연'이다. 고진의 논점은 데리다처럼 소쉬르를 형이상학 비판이라는 문맥에서만 읽을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소쉬르가 문자를 언어학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소쉬르가 문자를 언어학에서 배제한 것은, 그것이 음성보다 이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문자가, 배제될 수 없을 정도로 음성 언어에 침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E1, 65쪽) "소쉬르가 문자를 언어학에서 배제시킨 것은, 문자가 음성에 비해 이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문자에,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음성 언어가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E2, 108쪽/E3) 여기서 E1과 E2/E3의 내용이 상반되는데, 물론 E1이 논리적으로도, 그리고 문맥상으로도 맞는 말이다. E2의 경우 역자가 오역을 했거나, 아니면 그보다 가능성은 낮지만 고진 자신이 잘못 썼거나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제의 소쉬르 인용(내가 '문제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 대목을 확인하기 위해서 반나절 이상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세 텍스트 모두 <언어학 서설>에서 인용한 걸로 돼 있는데, 이건 전부 오역이다. 왜냐하면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텍스트는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이기 때문이다. 그걸 일본에서는 <언어학 서설>로 부른다 하더라도 우리말로 <언어학 서설>로 번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진의 인용.

"언어와 문자. 이는 연대적인 듯이 생각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입말만이 언어학의 대상인 것이다. 언어학의 시간 속으로의 분류는 오직 언어가 받아 씌어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자의 중요성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제로 그것들은 문명의 어떤 단계와, 언어활동의 사용상 어떤 완성도의 단계를 각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글말과 문자는 입말에 반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말과 입말의 혼동은 초기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유치한 잘못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E1)

이 대목에서 E2/E3는 '입말'을 '구어'로 '글말'을 '문장어'로 번역한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어(written language)/구어(spoken language)를 굳이 글말/입말로 번역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고('음성'이나 '문자' 같은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문어'를 '문장어'로 번역한 것은 이미 지적했듯이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문제의 인용을 우리말 <일반언어학 강의>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 알다시피 <일반언어학 강의>는 소쉬르가 쓴 책이 아니라 그가 제네바 대학에서 세 차례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들이 세 번째 강의를 중심으로 노트를 모아 편찬해낸 책이다. 그런데, E1에서 '<언어학 서설>1908-1909'라고 한 건, 1908-9년에 행해진 소쉬르의 두 번째 강의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말 <일반언어학 강의>(민음사, 1990)과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인용문의 핵심은 문어가 아닌 구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우리말 번역은 "언어적 물체는 쓰여진 낱말과 발음된 낱말의 결합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후자 하나만으로써도 이 물체를 구성한다."(최승언 역, 35-6쪽)이다. 나는 밤중에 소쉬르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뒤적이다가 이 대목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언어학의 대상'을 정말 황당하게도 '언어적 물체'라고 번역해놓고 있는 것이다! '숨어있는 오역찾기' 게임이 있다면 거의 골든벨 수준에 해당하는 오역이다.

90년 간행 이후에 여러 판을 찍은 책에서(요즘은 절판된 걸로 나오는데) 어떻게 이런 오역을 발견할 수 있을까?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차츰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2006년판이 12월에 새로 나왔다. 오역들이 수정됐는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요컨대, (나도 그랬지만) 우리말 번역 <일반언어학 강의>를 아무도 읽지 않은/않는 것이다! 지난주(2003년) 한겨레 책세상에선 김재기 교수가 <일반언어학 강의>를 권유하는 리뷰를 실은 바도 있지만, 이런 번역이라면 핵생들에게 권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물론 딱 이 부분만 어처구니없는 오역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 3학년만 돼도 이 정도의 오역은 하지 않는다.

어쨌든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반언어학 강의>의 옛날 번역판을 도서관에서 찾았다. 오원교 역(형설출판사, 1973)에서 이와 관련된 대목은 "언어와 문자법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기호 체계다. 후자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전자를 표기하는 일이다. 언어학의 대상은 쓰여진 낱말과 말해진 낱말의 결합인 것으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말해진 낱말만이 그것의 대상이다."(41쪽) 역시나 흡족한 번역은 아니지만, 최승언 역만큼의 오역은 아니다. 참고로 이 부분에 대한 바스킨(W. Baskin)의 영역은 이렇다: "Language and writing are two distinct systems of signs; the second exists for the sole purpose of representing the first. The linguistic object is not both the written and the spoken forms of words; the spoken forms alone constitute the object."

나는 이어서 혹시 두 번째 강의에 대한 번역은 없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다행히 도서관에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두 번째 강의, 1908-1909'에 관한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Eisuke Komatsu(예스케 고마츠?) 교토대 교수와 G. Wolf 교수가 편집한 불영 대역본이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강의의 발췌역이 작고한 김방한 교수의 <소쉬르>(민음사, 1998)에도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한 김교수의 번역은 이렇다: "언어의 위치를 정하고 분류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을까? 시간 속에서 언어의 분류가 가능한 것은 언어가 쓰여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문자의 중요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초기의 언어학이 범한 그 수많은 유치한 과오는 쓰여진 언어와 말하는 언어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는 언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206-7쪽)

이 인용부분은 불영대역본과 일치한다. 즉 고진이 인용한 부분과 비슷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의아하게도 똑같지는 않다. 차이가 나는 부분은, "언어와 문자. 이는 연대적인 듯이 생각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것들은 문명의 어떤 단계와, 언어활동의 사용상 어떤 완성도의 단계를 각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글말과 문자는 입말에 반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부분들은 내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글말과 문자의 입말에 대한 반작용 운운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고 왜 불(영)어 원전에도 없는 내용이 일역본에는 들어가 있을까?

고진이 인용한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서 나로선 그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문제는 일단 미루어두기로 한다. 대신에 인용문을 쿤데라님이 다시 번역해 주셨는데, 조금 이해가 용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명료하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쿤데라님의 번역: "언어와 문자. 이것은 흔히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때에 따라선 근본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구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다. 통시적인 언어학적 분류는 언어가 쓰여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해선 안 된다. 실제로 문자에는 문명의 단계와, 언어활동에서 있어 사용상 완성도 단계가 각인되어 있으며, 문어와 문자는 구어에 대해 반작용한다. 하지만, 문어과 구어의 혼동은 초기에 수많은 유치한 잘못의 원인이 되었다."

여기서 처음에 언어라고 번역된 건 불어의 '랑그'(=언어)일 것이다. 알다시피 소쉬르는 언어활동으로서의 랑가주를 랑그와 파롤로 구분하고 랑그만을 언어학의 대상으로 설정한다(랑그가 언어란 뜻이니까 언어가 언어학의 대상이라는 말은 아주 상식적이지만). 그런데, 사람들이 보통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을 '쓰여진 말'과 동일시하는 바, 소쉬르는 거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참고로 E2/E3의 경우 인용문의 '문장어' 옆의 원어 병기가 모두 잘못됐다. 'langue ecrite'를 E2는 'langue ercite'로 잘못 표기했고, E3는 'langue ereite'로 잘못 타이핑했다. 다시 읽어본 결과 E3는 E2의 '내이션'을 전부 '국민'으로 통일한 것과 각주가 미주로 돌려진 것 말고는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후엔 E1과 E2만을 비교하도록 하겠다.)

요컨대 랑그(언어)는 다시 문어와 구어로 나뉘는 바, 구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라고 소쉬르는 확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데리다는 소쉬르의 음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고진은 음성(중심)주의는 그런 식의 형이상학 비판이라는 문맥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문맥에서 이해할 때 보다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E1이나 E2 모두 영어로 'historical linguistics'에 해당하는 것을 '역사적 언어학'이라고 번역하는데, 내 생각엔 '역사언어학'이라고 옮겨야 한다('역사적 언어학'이란 말은 보지 못했다). 소쉬르가 공시언어학을 제창하면서 의식했던 것은 당시 언어학계를 풍미했던 '역사-비교 언어학'이고, 이러한 학풍(지금은 언어학의 한 분야가 됐지만)을 우리 언어학계에서는 관행적으로 '역사언어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와 같은 것을 일본(학계)에서는 '역사적 언어학(歷史的 言語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말이 나온 김에 E1 번역에서 이런 관점에서 불만스런 부분 몇 곳을 지적하기로 한다.

"따라서 이런 데이터 없이는 왜 민족지학자가 결코 재정(裁定)을 내릴 수 없었을까가 질문되고 있습니다."(E1, 68쪽)에서 '재정'이란 말은 (내 감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이거나 일본어이다. 그것을 E2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민족지학자는 왜 이러한 자료 없이는 결코, 판단을 내리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 의문시되고 있습니다."(120쪽)라고 하여 '재정'을 '판단'으로 옮겼는데, 우리말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E1에서는 '재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이라고 각주를 달았는데, 그렇게 거창하게/거추장스럽게 처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에서 E1은 "언어학자가 **어라고 동정(同定)하면"이라고 옮겼는데(이건 사실 실사는 놔두고 토씨만 옮기는 격이다), 이때의 '동정'은 한국어가 아니라 거의 100% 일본어이다. 그것은 마치 "언어학자가 **어라고 디파인(define)하면"이라고 옮기는 것과 같다(이런 게 독자를 우롱하는 일이란 걸 역자들은 알 필요가 있다). 다행히 E2에서는 "언어학자가 **어라고 규정하면"이라고 옮기고 있다.

하나만 더 예를 들자. E1에서 "나치스의 '제3제국'(아리아 인종에 의한 근대국가의 양기(揚棄) 출현으로 적중했던 것이다"(70쪽)라고 옮긴 부분. 제대로 교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인데, 원래대로라면 "나치스의 '제3제국'(아리아 인종에 의한 근대국가의 양기(揚棄))의 출현으로 적중했던 것이다"일 것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양기'라는 일본어이다. 떨칠 양(揚)에다 버릴 기(棄)자를 쓴 걸로 미루어 짐작할 도리밖에 없는데, E2의 역자는 그것을 지양(止揚)이라고 제대로 옮겼다: "나치의 '제3제국'(아리아 인종에 의한 근대국가의 지양)에서 적중한 것이다."(122쪽) 지양은 물론 헤겔의 개념인데, 그것을 일어로는 '양기'라고 옮기는 모양이다.

여하튼 이런 몇 가지 사례를 놓고 볼 때, E1의 역자의 일어실력이란 게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덧붙여 불만스러운 것은 각주 문제. E1의 경우 각주가 원주인지 역주인지가 밝혀져 있지 않고(모두 역주인가?), E2에는 붙어 있는 원주가 빠져 있다(고진이 뺀 것인가?).

다시 원래의 문맥으로 돌아와서, 고진이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는 글은 소쉬르의 <제네바 대학 취임강연>이다. 이걸 E1의 역자는 '쥬네브 대학'이라고 옮겼다. 사실 국내의 소쉬르 학자들도 불어인 '쥬네브'(혹은 주네브)라고 옮기는 수가 많은데, (무)의식적으로 티내는 치레에 불과해 보인다. 프랑스 파리를 영어식으로 '패리스'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E1에는 내용이 빠져 있지만(66쪽의 각주로 처리돼 있다), 이 강의는 E2에 의하면 마에다 히데키(前田秀樹)가 번역/주석한 것이다(마에다의 저작은 <침묵하는 소쉬르>이다).

 

 

 

 

일단 감탄스러운 건,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일본의 소쉬르학 수준이고(이 취임강연을 도서관 등지에서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궁금한 건 고진의 소쉬르론이 얼만큼 독창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그가 일본의 소쉬르학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 내가 알기에, 그리고 내가 읽은 소쉬르 입문서 등에서 소쉬르 언어학에 관한 정치적 해석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대개는 기호학의 창시자로서의 소쉬르 조명으로 채워져 있다). 여담이지만, 최근엔 동경대 시리즈 <지의 논리>(경당, 1996)에서 소쉬르와 동시대 화가 파울 클레를 비교하는 글을 읽었는데, 역시나 계발적이었다(덕분에 클레의 책들을 사고 있다!). 일본 지식인들이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다 그런 베이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진은 그 취임강연을 근거로 소쉬르의 음성주의를 마치 <라쇼몽>에서처럼 상식과는 다르게 재구성한다. 그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다. "역사언어학에서는 문화=문명과 음성언어가 동일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 거기에서는 외적인 것의 우연적인 소산(이것도 '산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이 마치 '내적'인 연속성인 것처럼 상정된다. 언어학은 언어 외적인 것, 또는 '외적 언어학'의 결과를 언어의 법칙으로 취급해 왔다... 따라서 소쉬르가 '내적 언어학'에 구애되는(E2는 '천착하는'으로 옮겼다) 것은 '외적'인 것을 무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적'인 것의 소산을 내면화하고 있는 언어학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쉬르가 언어학의 대상을 어디까지든 음성언어에 한정하는 것은, 그가 음성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언어학이 지닌 음성중심주의의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서이다."(E1, 66-67쪽/ E2, 110-1쪽)



소쉬르가 보기에 문자화된 음성("역사언어학자가 말하는 음성은 이미 문자이다"), 즉 에크리튀르의 외부성으로서의 음성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제관계"를 의미하며, 소쉬르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그러한 정치성을 내면화시킴으로써 (마치 없는 것처럼) 소거해버리는/소멸시켜버리는 언어학이다. 그렇다면, 소쉬르를 음성(중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데리다의 태도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물론 데리다는 이에 대해 변호한다). 고진이 보기에 (흔히 내적 언어학이라 불리는) 소쉬르의 언어학이야말로 대단히 정치적이며("역사언어학에 대한 소쉬르의 비판에는, 분명히 역사언어학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대한 비판이 있다." 70쪽), 소쉬르야말로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자인 것이다...

06.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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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6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2-1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농담도.^^

paby 2006-02-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말"과 "입말"은 (한자어를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어", "문어"가 좋지 않은 번역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번역어들이 아닐까 싶군요. "구어"와 "문어"는 대부분의 경우 표현상의 차이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음성언어냐 문자언어냐를 구별해서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요. 그래서 구어로 쓰여진 소설이 있을 수 있고, 문어로 이야기하는 (좀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요. 역자는 아마도, "글말"과 "입말"은 잘 사용되지 않는 말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그러한 오해의 소지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리고 "문장어"는 혹시 "문자어"의 오타가 아니었을까요?)

곰집 2006-02-1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일한 텍스트를 읽는 다양한 방법을 로쟈님을 통해 "실제로" 그 흐름을 확인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로쟈 2006-02-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by님/ '동정'이나 '양기' 같은 일어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역자가 '입말'/'글말'에 대해서 그렇게 고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문장어'는 반복해서 쓰고 있는 걸로 보아 오타 같지는 않지만, 현재 텍스트를 갖고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습니다...

earthmt 2020-02-1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isuke Komatsu(예스케 고마츠?), 는 小松英輔(현행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고마쓰 에이스케)인 듯합니다.
http://webcatplus.nii.ac.jp/webcatplus/details/creator/25324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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