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세계의문학> 가을호는 전호에 이어서 '포스트 이후의 포스트'란 기획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서점에서 훑어만 보고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담비에 리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MAIN&rsec=MAIN&idxno=6070). '패스트-리딩'만 해서는 곤란하겠지만, 워낙에 다들 바쁘잖은가. 또 리뷰라도 챙겨두면 좋지 아니한가.

담비(07. 09. 17) 세계의문학 가을호'포스트 이후의 포스트' 

‘세계의 문학’ 2007 가을호가 ‘포스트 이후의 포스트’의 두 번째 순서에서 ‘대륙의 동쪽에서 전개된 포스트 이론’을 다루고 있다. 다섯 명의 필자가 러시아, 일본, 중국, 홍콩, 한국에서 일어나는 포스트 현상에 대해 논의를 펼쳤다. 변현태의 ‘포스트 소비에트 문예학과 바흐친의 유산’, 황호덕의 ‘무상無常의 시간과 구제救濟의 시간’, 서광덕의 ‘1990년대 이후 중국 사상계의 지형도’, 유영하의 ‘방법으로서의 홍콩’, 허윤진의 ‘헌책방의 문턱’이 그것이다.

변현태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독립국가연합의 한 공화국으로 러시아가 등장한 이후, 이른바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 문예학의 향방을 추적한다. 그 향방은 두 가지 입장으로 대별되는데, 소련 이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러시아의 문학적 유산을 상속받아 포스트 소비에트적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입장과, 서유럽 또는 서유럽과 러시아의 접점에서 포스트 소비에트적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버지-인문학자 대 그 가치를 일단 파괴하고 보자는 아들-니힐리스트의 대립, 슬라브주의 대 서구주의의 대립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둘의 긴장관계가 현금의 어떤 풍요로운 이론적 생산물을 쏟아내고 있는지 그려낸다.

황호덕의 글은 어떤 의미에서 ‘고바야시 히데오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왜 이 일본 비평가가 쟁점이 되는가? 대동아전쟁을 비롯한 역사에 대한 현대 일본인의 태도의 근본을 요약해주는 것이 고바야시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객관적 사실에서 독립시켜, 주관의 회상을 통해 주어지는 ‘마음’의 영역으로 축소시키고, 이 ‘마음’ 속에서 탈가치적인 ‘죽은 자 일반의 무상함’을 객관적 역사 대신 떠올리는 데서 야스쿠니 참배를 비롯해 역사에 면죄부를 주는 현금의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가능했다. 이런 비판적 논의를 배경으로 겐겐다이시소(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일본 지성계 최대 쟁점 중 하나인 ‘21세기의 매니페스토·탈패러사이트 내셔널리즘’을 통해 표현된 국민국가에 환원되지 않는 형태의 정치론 등을 살핀다.

서광덕의 글은 중국의 개혁 정책이 성공의 배후에서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사상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야기된 도시와 농촌, 지역간의 대립, 계층간의 분화, 제도의 부패 그리고 환경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 지성계의 다양한 입장을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다. 논자의 흥미로운 통찰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사상계가 매우 다양한 입장 차이를 보여주지만, ‘모두 중화전통에 대한 회귀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중매체가 고전 강독의 스타 만들기에 열중하는 것도 이런 회귀의 화두와 관련이 없지 않다. 논자가 우려하듯 이런 중화성 지향이 정치적 장체서 민족주의와 결합해 새로운 인종주의를 초래하지 않을까? 이런 중화주의에서 예외는 왕후이 정도의 지식인이라고 논자는 말한다. 이런 중국의 모습에 대해 한 일본인 중국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중간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두 방향을 모두 충분히 열어놓는 길, 가장 요원하게 보일지라도 최고의 공정성을 가져올 수 있는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중국도 중국을 모르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 매우 계획적인 사회통제를 통해 가능한 이런 주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유영하의 글은 올해로 반환 10주년을 맞은 홍콩의 현주소를 찾는다. 1967년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좌파 주도의 대규모 폭동이 발생한 이래 영국은 홍콩의 탈중국화를 일관되게 추구했고, 결과적으로 ‘홍콩은 조국이 없다’는 점이 홍콩인들에게 입력됐다. 이제 홍콩인은 외국인과 비교하면 중국인이고, 대륙의 중국인과 비교하면 외국인이다. 이 글은 중국 반환 이후 지난 10년간 홍콩인들이 후식민주의 시대에 어떻게 외국과 중국 사이의, 또는 ‘식민자와 식민자 사이의’ 이중 소외로부터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는지 추적한다. 그것은 저우레이가 홍콩 후식민의 장래를 ‘이중불가능’으로 정리한 데서 나타난다. 홍콩은 영국 식민주의에 굴복하지 않았듯이 중국 국적주의의 재림에도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 분야에 있어서 중국보다 이미 선진적인 홍콩이 자기보다 뒤진 중국으로부터 온갖 정치적, 문화적 간섭을 받아야 하는 사태는 매우 심한 사회적 스트레스로 폭발하거나 아니면 사회 전체의 퇴행과 무기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허윤진의 글은 주로 여러 평론가들의 글을 읽어가며 한국 문학에서 1980년대와 오늘날의 거리를 가늠하고 있다. 이 글의 특이한 점은 ‘우리’라는 화자 외에 ‘나’라는 화자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라는 화자는 거기에 독자가 밀착할 때는 가장 강력한 보편적 언어를 쏟아내며, 그렇지 않을 때는 제한된 개인의 언어를 쏟아내는 특수성을 지닌다. 논자는 이 렌즈 속에서 독자들에게 1980년대 또는 그 유산과의 거리 가늠을 제안한다.(리뷰팀)

07.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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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자료로 쓰기 위해 정리한 내용을 옮겨둔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서 '아버지'의 의미에 대한 교양강의인데, 내가 텍스트로 고른 건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이다. 오래전에 읽고서 정리한 적이 있지만 파일을 찾지 못해서 이번에 다시 정리했다. 아주 얇은 분량임에도 책은 네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후반부는 내용이 만만찮다.

내가 정리한 건 1장 ‘3중의 몰락’과 2장 ‘세 가지 차원’이다. 2장은 주로 라캉 정신분석학에서의 아버지를 다루는데, 세 가지 차원이란 간단히 말하면, 상징적 아버지, 상상적 아버지, 실재적 아버지이다. 실재적 아버지에 대한 설명은 읽기에 명쾌하지 않은데(사실 ‘실재적’이란 말의 정의 자체가 그렇지만) 그렇다고 대조해볼 수도 없어서 그냥 다른 책들을 참조해야겠다. 정리는 발췌/축약에 간단한 췌사들을 덧붙여놓은 형식이며 따로 코멘트를 달지는 않는다. 제목이 되어준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재의 아버지는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상상적일 때, 노아의 외투야말로 (더) 좋은 분석의 대상이다.”(89쪽)   

1. 아버지란 무엇인가?

(1)아이에 대한 권리

 

서양에서 ‘아버지임’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원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란 처음에는 정치적․종교적 아버지였으며,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는 파생된 개념이다(아버지, 그는 법이며 신이다). 아버지는 다름아닌 정치적․종교적 지배자이므로 그는 가정과 집을 대표하는 지배자, 즉 도미누스(dominus)이다. 그는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사람이다.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라는 법률적 지위, 즉 마트리모니움(matrimonium)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지배자는 자신을 특정한 어린아이의 아버지로 만든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아들을 낳는 것은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 것이다. ‘아버지임’을 정의하는 것은 혈연관계, 즉 피가 아니라 ‘나는 아버지이다’라고 공적으로 선언하고 아이를 자신에게로 받아들이는 정치적․종교적 지배자의 행위였다.  

 

‘아버지임’에 대한 이러한 순환적 정의로부터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 즉 자녀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고 벌하거나 가둘 수 있는 권리, 그리고 특히 보존해야 할 재산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아들 혹은 딸의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아버지의 권리가 도출된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커다란 전환이 일어난 후, ‘아버지임’의 이 정의는 2세기에 걸쳐 꾸준히 쇠퇴했다.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가 아니라 형제애에 근거한다. 프랑스에서 행해진 루이 16세의 처형은 이에 대한 사회적 증상이다. 즉 그것은 부친살해가 아니었겠는가?

그 변화는 다음의 두 결과를 낳았다. 첫째, 정치․종교․가족의 영역 모두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되던 아버지의 권위는 이제 오로지 19세기 부르주아의 이상에 따라 운영되는 가족에 대한 권리로 축소되었다. 이제 아버지의 권리는 한 여자를 데려와 그녀를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자의 권리일 뿐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영역은 축소되고 세분되었다. 그것은 공적-사회적 존재에서 사적-사회적 존재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창립자이며 지배자였던 아버지는 이제 특정한 여자의 남자로 위축되었다.

둘째, 절대왕정이 쇠퇴하면서 정치적 절대주의 및 ‘가정의 왕권’이 배척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가정 내부에서조차 아버지 권력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임’의 이러한 쇠퇴는 18세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국가가 점차적 교회를 대체하게 되는 시대 이전에 이미 교회의 영향하에서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어쨌든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만을 말하던 시기는 지나갔고, 교회를 통해서건 국가를 통해서건 아버지이 권력이 제한되고 아이의 권리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2)아이의 권리

 

‘아버지임’에 대한 두 번째 권리는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특히 19세기 이후부터 아이의 권리를 많이 고려하게 됨으로써 나타났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이 행복과 이익, 안락함을 위해 점점 더 많은, 그리고 세분화된 권리를 갖는다. 이로부터 ‘아버지임’의 새로운 정의, 즉 수행해야 할 역할과 이행해야 할 과제의 측면을 중시하는 ‘아버지임’의 정의가 생겨난다. 아버지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 즉 단지 삶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문화세계로 편입시킴으로써 어른들의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사람이 되었다.

이 이미지는 19세기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 핵가족 속에 뿌리를 내린다. 20세기 들어 사람들이 ‘새로운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 즉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며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어린아이의 언어로 대화하는 아버지와 더불어 이 이미지는 전성기에 도달한다. 그는 어린아이가 직접 말을 걸고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몰락하기 쉬운 아버지이다. 왜냐하면 이때의 아버지란 어린아이에게 이익과 행복, 안락함을 제공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아버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역할은 점점 약화되었는데, 다음 두 요인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시민사회가 어린아이의 복지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든다. 둘째, 민법적으로 어머니의 권리가 강화되었다. 국가가 점점 더 가정 속으로 개입하고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대체될 수 없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아버지의 사회적인 몰락은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3)아이에 대해 친권을 소유할 권리

아버지임을 생물학적 ‘진리’에 근거시키려 하는 것은 아버지임의 기초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아버지를 출산자로 정의하려 할 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오히려 아버지는 더욱 몰락하게 되었다.

2. 아버지의 세 차원


(1)이름으로서의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와 아이 사이에 제3의 자리를 설치한다. 어린아이에 대해 그녀는 글자가 새겨질 자리에, 즉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 불렀고, 라캉은 대타자, 혹은 상징적 질서라 일컬었던 구조에 제3의 자리를 설치한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어머니를 위한 아이의 욕망이 아니라, 어머니 자체에 대한 아이의 욕망이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아이는 어머니 자체를 욕망하는가? 아이의 욕망의 원인은 무엇인가? 아이에게 처음으로 생기는 질문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어머니는 끊임없이 왔다갔다한다. 왜? 대답은 어머니로부터 온다.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를 통해 어머니 속에, 대타자 속에 있는 결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체에게 해답이 주어진다. 아버지의 이름의 기표가 어머니의 욕망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기표를 대체한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에 대해 의미, 즉 팔루스(phallus)의 의미가 생겨난다. 여기서 팔루스란 어머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육체적) 기관이 아니며, 남자의 이미지도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욕망 그 자체, 즉 결핍의 기표이다. 어린아이는 팔루스가 되고 싶어한다.


(2)이상형으로서의 아버지

이름으로서의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온다. 그렇다면 이상형으로서의 아버지는? 그는 어린아이로부터 온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가 지나고 초자아가 내면화되는 나이, 즉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될 때 어린아이는 실재의 아버지를 지워버린다. 아이는 대신 은밀히 아버지 상을 생각해내는데, 이것은 모든 면에서 보통이 넘는 모습이다. 아이가 이러한 아버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능력 있는 아버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욕망에 걸맞는 아버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를 충족시켜줄 능력이 없다. 그리하여 그의 나르시시즘이 깨진다.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려고 하지만 아이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달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소원을 충족시켜주는 이상형으로서의 아버지를 찾는다. 아이는 이 아버지를 사랑하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가 끝나면 아이는 자기를 그 아버지와 동일시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바 있듯이 아버지의 입법자적 음성, 양심의 음성을 몸속으로 받아들인다. 프로이트는 아버지가 남겨준 이 유산에 초자아라는 이름을 주었다(초자아는 오이디푸스의 유산이다).

 

(3)한 여자의 남자

 

프로이트는 법률 격언을 인용하여 어머니는 확실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불확실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임’의 진리는 다른 질서에 속한다. ‘아버지임’의 진리를 증명하려 할 때 생물학적 지식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에 대하여 실재의 아버지는 한 여자의 남자이다. 실재의 아버지는 어린아이에게 거세, 즉 ‘아니라고 말함’을 도입하는 아버지이다. 너는 네 어머니의 팔루스가 아니다, 너는 네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재적 아버지는 이러한 거세의 대행자이다. 그는 결코 복수심에 불타는 경쟁자로 아이를 거세하지는 않는다. 실재적 아버지가 거세의 대행자라는 말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어린아이를 위해 베일을 드리운다는 의미이다. 그는 어떤 특정한 여자를 자신의 욕망의 원인으로 만들고 어린아이를 위해 베일을 드리운다. 달리 표현하면 실재적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그 여자에 관한 자신의 향유를 알지 못하게 한다.


 

실재적 아버지는 아들 함이 나체로 보았던, 취해서 침대에 누워 잠든 아버지이다. 그 아들은 자기의 지식을 다른 형제들이 나누어 가질 것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의 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다가와 아버지에게 외투를 덮어주었다. 노아는 나중에 잠이 깨어 이들에게 감사하고 함을 저주했다.


창세기 9:18-29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 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29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07.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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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강의자료라구요?
만약 제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이 말들을 듣는 즉시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7-08-28 18:24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용은 아니구요. 2장은 좀 어렵지만 1장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비로그인 2007-08-2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강의 들어보고 싶어요 :)

로쟈 2007-08-28 20:56   좋아요 0 | URL
그냥 뒷얘기로만 들으시는 게 좋으실 듯한데요.^^;

허영 2007-09-0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노아는 왜 함이 아닌 가나안에게 저주를 한 걸까요?ㅡㅡ;

로쟈 2007-09-07 15:51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목사님께 물어봐야겠는데요.^^;

지혜 2007-09-14 13:32   좋아요 0 | URL
가나안은 직접적으로 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아비 함과의 혈통적 유대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저주의 내용 자체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혈통에 대한 저주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자식에 대한 아비의 권리와 책임 때문에 이런 결과가 가능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큰성경,편찬대표 김의환 박사,성서교재간행사>에 해설 부분에 이렇게 씌여 있네요.
 

이탈리아 정국에 관한 한 기사를 읽고 문득 테어도르 데일림플의 한 에세이가 생각이 나서 페이퍼를 만들어둔다. 기사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자신이 새로 만든 당의 간판으로 30대의 젊은 여성 사업가를 내세웠다는 것이고 이러한 '미인계'가 과연 통할까, 라는 설왕설래를 낳고 있다는 것. 데일림플의 에세이는 <브레이크 없는 문화>(이카루스미디어, 2007)에 수록된 '정직한 관료주의보다 부패한 관료주의가 낳은 이유'이다. 여기서 물론 '낳은'은 '나은'의 오기이다(이런 오기가 어떻게 역자와 편집자 라인을 두루 통과할 수 있었을지 미스테리하다).

데일림플의 책을 '상반기 베스트' 중의 한 권으로 꼽아두기도 했지만 사실 혼자서 몰래 읽어도 좋을 책이다(양서는 혼자서만 읽어라, 도 독서의 한 원칙이다!). 정신과의사 출신의 칼럼리스트인지라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취미는 가끔씩 온라인에서 그의 글을 찾아 번역본과 대조해가며 읽는 것인데, '정직한 관료주의보다 부패한 관료주의가 나은 이유'의 원 칼럼 제목은 'The Uses of Corruption'(http://www.city-journal.org/html/11_3_oh_to_be.html) 이다. '부패의 효용'쯤 될까? 영국과 이탈리아를 비교하면서 50년 전만 해도 가난한 나라였던 이탈리아가 오늘날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히려 더 활력있는 나라로 변신하게 된 원인으로 이탈리아 관료주의의 부패를 들고 있는 독특한 시각의 에세이이다. 나는 베를루스코니 같이 '부패한' 정치인/기업인(그는 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하다)의 집권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문을 가지면서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수준을 낮춰봤었는데 데일림플의 칼럼을 읽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이탈리아 공직자들의 부패는 국민에게 국가는 자신들의 후원자나 보호자가 아니라 적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국민은 국가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세금을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탈세를 하게 된다.(...) 이탈리아 '암거래' 경제는 다른 어떤 유럽 국가들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는 사실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시장의 규모가 공식적으로 1인당 GNP가 영국과 비슷한 이탈리아가 영국보다 훨씬 더 부유해 보이는 이유다."(295쪽)

"거대하고 정직하지만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국가 관료제도는 의존과 반감이라는 서로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대를 주게 된다. 이탈리아에선 이 같은 기대감이 존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선 누구도 정직한 체하지 않으며 따라서 공적 행정의 자선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대하고 표면적으로 호의적인 국가는 한때 방문객들이 주목했던 영국 국민의 자부심과 강인한 독립심을 완전히 부식시키고 있다. 현재 영국인들의 40%는 수입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직접 국고에서 지급받는 정부보조에 의존하고 있다."(297쪽)

"어쨌든 이탈리아인들은 자기 나라에 정직한 정부가 들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을 만큼 자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당선되기 전 벨루스코니(*베를루스코니) 수상에게 퍼부어진 부정직에 대한 주장이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했던 이유다. 벨루스코니 수상에 대한 비난이 사실이었다 해도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이 소규모로 하고 있는 것을 신임수상은 대규모로 한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거대국가는 그것이 부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대하기 때문에 해롭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사실 부패하지 않은 거대국가는 부패한 거대국가보다 더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302쪽) 

나는 이러한 이탈리아인들의 정치의식이 냉소주의인지, 현실주의인지, 혹은 낙천주의인지 헷갈리지만 여하튼 베를루스코니가 한번 더 집권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또 그런 부패한 정부와 무관하게 이탈리아 사회가 굴러가는 일이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걸. 우리의 현 정부도 지속적으로 공무원의 숫자를 늘려왔는데, 이탈리아 모델을 따르자면 문제는 우리의 관료들이 도덕적인 체한다는 데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데일림플의 탁견을 빌자면, "공무원들이 정직한 곳에선 오히려 누구도 관료주의의 폐해를 막을 수 없게 된다." 혹은 거꾸로 도덕적 권위주의를 앞세운 현 정부에서도 이 정도나마 국가가 굴러가는 건 관료주의의 '숨은 부패'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고. 아래는 서두에서 언급한 외신기사이다.

한국일보(07. 08, 27) 伊 "미인계 이용해 정권 탈환" 과연 통할까?

1년6개월 전 총선에 패배한 이탈리아 중도우파 연합이 ‘미인계’를 통한 정권 탈환을 선언, 눈길을 끌고 있다. 이색 정략의 중심에 선 인물은 돌출 행위와 부패 스캔들로 이름을 떨쳐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0) 전 총리. 그는 최근 선관위에 신당 ‘자유당’과 휘장을 등록했다.

자유당의 대표는 올해 39세의 비즈니스 우먼 미켈라 비토리아 브람빌라. 20여년 전 미인대회에 출전해 ‘포토제닉’상을 받은 미녀이다. 사업가로 변신한 브람빌라는 철학을 전공한데다가 정치경력이 거의 없어 이탈리아 정계에서도 그 돌연한 등장을 놓고 논란이 불붙고 있다. 현지 정가에선 자유당이 베를루스코니의 지휘 아래 로마노 프로디 중도좌파 정권에 맞서는 선봉으로 나설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아직 브람빌라가 자신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진 않으나 차기 정권에선 여성이 총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에둘러 말해, 그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언론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자유당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자임하면서 브람빌라를 당사무총장으로 지명했으며 이로 인해 중도우파 안에서 반발이 고조되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중도우파 내부에선 브람빌라에 대해 “야심이 없는데다가 대중적인 인기도 전무하다”며 반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를루스코니가 정권을 되찾기 위한 카드로 내세운 브람빌라는 철강회사 집안 출신으로 18살 때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에 나가 결선까지 진출하며 입상했다. 대학에 들어가선 가업을 잇기 위한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고 철학을 배워 아버지의 노여움을 샀다. 그러나 학교 졸업 후 사업에 뛰어 들어 어류수입회사를 경영, 수완을 발휘했고 지금은 이탈리아 청소년벤처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전도 유망한 기업인으로 꼽히고 있다.

미인대회 출신의 아름다운 외모와는 걸맞지 않게 “내 말을 누구든 막을 수 없다”고 스스로 호언할 정도로 직설적인 성격을 가진 브람빌라는 상당한 추진력도 갖춘 여장부 스타일로 전해졌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함께 사는 남자친구 에로스 마지오니도 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그와의 사이에 두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브람빌라는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서 2005년 그의 눈에 처음 띄었다. 베를루스코니가 지난해 총리에서 퇴진한 뒤 브람빌라는 전국에 5,000개의 자유클럽을 만들어 지지자를 결집, 중도좌파로부터 정권을 탈환한다는 선거전략안을 건의해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정치 분석가들은 베를루스코니의 밀어 붙이는 성향에서 브람빌라가 중도우파 연합 내부의 반발을 극복하고 오는 10월 ‘민주당’으로 통합되는 중도좌파의 왈테르 벨트로니 로마 시장의 대항마로서 옹립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벨트로니 로마 시장은 프로디 총리의 후계자로서 일찍부터 중도좌파 연합의 ‘황태자’로 불려 왔다.(한성숙 기자)

07. 08.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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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8-2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보니 공감이 가는데.
경제학자가 아니니 그냥 살면서 느낀것이라면 지금 한국경제의 활력을 빼앗은것도 공무원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자영업자들 카드 수수료 문제가 신문에 오르내리는데 아마 이런것 신경쓴 먹물들은 없는것으로 봅니다. 점심 짜장면 먹고 주인장한테 여기 카드 수수료 얼마요 물어보면 대략 4.5%전후, 이건 주로 중소 자영업자들의 카드 수수료인데요. 매출이 2천이면 90만원이 수수료 나가는것이죠. 이게 수수료만이 아니라 소득액 노출이 되어서 세금도 더내고 부가가치세도 내게 되면 대충 계산하면 2천이라면 달에 다른것 빼고 150-200정도를 나라에 더 받치게 되는것인데요. 이런부분이 자영업자의 탈세와 연관이 되지만 역으로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의 나름대로의 자생력을 확보해온 부분이라고도 볼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되거든요.
열심히 일하면 세금 내는대신 자신의 종자돈을 모을수 있는것이 이런 자영업자들이었는데
투명화가 되면서 자신이 설수있는 기반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도덕적으로 버는만큼 세금내라라는 애기는 좋지만. 벌곳이 없어지면, 그리고 그 낸 세금이 간판정리나 기타 시장님이나 나랏님 관심분야에 주로 투자되고 공무원들 퇴직후 자리보전하는 사업에 우선적으로 이용된다면(이건 공약사업이라 법적인 하자도 없고, 서류꾸면 투명하게 처리하면 아예 하소연도 못하는 짓이 주변을 살짝만 봐도 보이는데)
과연 소득을 투명하게 한다는것이 누구 좋은일이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거든요.
소득투명화를 내걸고 전국민 카드사용(공제를 위해)하게 만들었는데 재테크의 기본은 카드사용하지 말라인데요.800만인가 신용불량자을 만들어버린 카드의 위력은 공무원들의 협잡에 놀아난 꼴 같기도 하고요.
소득이 적어지면 택시운전사가 술집삐끼가 되고 아줌마들은 전화방 노래방으로.
밑바닥이 붕괴된다는 느낌과 거기에서 돈을 모을수 있는 방법이 원천봉쇄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데 쩝.

로쟈 2007-08-27 12:18   좋아요 0 | URL
데일림플의 논점은 작은 국가의 경우엔 정직한 관료주의가 미덕이지만(예컨대 싱가폴 같은 경우를 들 수 있을까요) 거대국가(리바이던)의 경우 정직한 관료주의라는 건 부패한 관료주의보다도 유해하다는 것인데, 말씀대로 우리의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을 듯하네요. 최선의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도, 의도로 모든 걸 변명할 수는 없겠죠...

자꾸때리다 2007-08-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눈에는 별로 안 예쁘군요. 적어도 손예진, 한지민, 엘렌 그뤼모 정도는 되어야 미인이라 할 수 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쟈 2007-08-28 08:36   좋아요 0 | URL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마스크이긴 합니다.^^;

웅아 2007-08-2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부이탈리아만 놓고 보면 아마 유럽에서 가장 잘 살 겁니다. 권력도 장악하고 있고 모가 아쉽겠습니까? 부패가 더 좋죠. 남부이태리가서 저런 소리하면 글쎄....

이태리의 행운은 미국과 멀다는거... 미국의 전가의 보도 기업투명성에 걸리지 않으니 ...

로쟈 2007-08-28 08:38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는 2차 대전 이후 60차례 이상 정권이 교체되었다는군요. 애당초 정치적 안정 같은 건 (남부로서도) 기대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섬나무 2007-08-2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한 원칙을 깨신 로쟈님의 아량 추천!^^

로쟈 2007-08-29 19:36   좋아요 0 | URL
^^
 

도서출판 앨피의 '루틀리지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로 세 명의 여성 철학자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 세 명의 여성이고 이 시리즈를 긁어모으는 나로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또 모두 주문을 했다(버틀러는 배송일이 달라서 조금 미뤄두었다). 

 

그래서 어제 받아본 책이 노엘 맥아피의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이다. 맥아피의 원서를 구할 수 있어서 <크리스테바>를 먼저 손에 들었고 서론격인 '왜 크리스테바인가?"를 읽었다. 예전에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787972)란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관심이 있으신 분은 먼저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름대로는 크리스테바 컬렉션을 갖추고 있을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라 바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가는 걸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건 나의 타협안은 일단 이 서론만 읽어두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는 우리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가로 꼽힌다. 크리스테바는 '말하는 존재'가 구술문학과 기록문학, 정치와 국가적 정체성, 섹슈얼리티, 문화와 자연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별자리가 된다고 보는 극히 드믄 철학자이다."(19쪽)

'가장 주목할 만한'은 'most original'의 번역이다. 그리고 '말하는 존재'는 'speaking being'을 가리키는데, 원문에는 강조표시가 돼 있지 않지만 크리스테바의 키워드이다. 그녀의 관심대상은 '말하는 존재(speaking being)',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크리스테바는 문학과 정치, 섹슈얼리티, 정신분석 등 종횡무진이다. '말하는 존재'는 그 모든 것에 두루 걸치는 '불가사의한 접면(strange fold)'이어서이다.

"크리스테바의 통찰 속에서는 경계의 어느 쪽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힘들의 포위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정통 정신분석학자가 치료하는 '경계성'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경계성은 불가리아 출신의 이민자/망명자인 크리스테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국역본에는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란 타이틀이 붙여졌을 터이다). 그녀는 그러한 경계성을 일반화하며 그리하여 "크리스테바의 작업은 소위 주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늘 빈약한 성취에 불과한지, 그것이 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역동적 과정인지를 보여준다."(20쪽)

이때 '주체성(subjectivity)'은 '자아(self)'와 구별되어야 한다. "'자아'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흔히 '내가 말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킨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이다.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같은 주체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 철학적 전통의 한 갈래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에 크리스테바는 철학계와 문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탈구조주의' 운동을 예고한 선도적 사상가들 중 한 명이다."(21쪽) 이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평가와도 일치한다. "나는 탈구조주의의 한 유형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 중 한 명이다."(29쪽) 그 중에서도 크리스테바를 도드라지게 하는 점은, 곧 '왜 크리스테바인가?'란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녀가 언어와 문화 사이의 접면에서 나타나는 '말하는 존재'를 언어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이해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로 제안했다는 점"이다.

해서, "누군가 정신분석 이론과 종교학, 아방가르드 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널리 펼쳐져 있는 분야의 통찰을 통합하고자 한다면, 크리스테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힐 것이다."(23쪽)

 

 

 

 

이러하 평가에 이어지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간략한 전기이다. 알려진 대로 그녀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의대를 나오고서 교회의 회계사로 일한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린 줄리아는 공산당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게 된다(그러니까 크리스테바는 수녀들로부터 불어를 마스터하게 된다). 이때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는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당시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사회/문학 철학자인 동유럽의 미하일 바흐친의 작업도 접했다."(러시아 사상가 바흐친을 '동유럽의 사상가'라고 한 것은 특이하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프랑스 누보로망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에 크리스테바는 프랑스 정부초청 장학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 공산주의자 학장이 모스크바에 가 있던 1965년 겨울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지도교수가 그녀를 프랑스 대사관으로 데려다 주고 거기서 그녀는 장학금 수혜를 위한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는 막바로 불가리아를 떠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장학금은 1월부터 받게 돼 있었지만 학장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올 경우 유학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단돈 5달러만 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 도착한다(그리고 가방에는 달랑 바흐친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크리스테바의 전설이다. 그야말로 '사무라이' 아닌가?

무사들

다행히도 그녀는 우연히 불가리아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장학금이 올 때까지 같이 지내게 된다. 그리곤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지식인들의 세대에 합류하게 된다. 파리 고등실업연구원(파리 고등 사회과학연구원의 전신인데, Pratique를 '실업'이라고 옮기나?)에서 뤼시앵 골드만(1913-1970)과 만나게 되는바 "루마니아 출신의 망명 동료이자 문학이론가인 뤼시앵 골드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크리스테바를 도와주었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그것은 조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정류의 도움이었다."(26쪽) 이런 자전적인 내용은 크리스테바의 소설 <사무라이들>에서도 자세히 그려진다(한때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골드만의 책은 현재 한권도 구할 수 없는 듯하다). 골드만은 소설의 기원에 관한 그녀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게 되며 또한 그녀를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세미나에 소개한다. 그녀는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롤랑 바르트의 가르침은, 내가 환원적이고 호소력 있다고 느낀 형식주의를 이해하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이 대목은 오역이다. 원문은 "the teaching of Roland Barthes attracted me because of its capacity to make formalism, which I had found reductive, extreamly appealing."(5쪽)이다. "내가 형식주의를 호소력 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바르트가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extreamly appealing)'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다시 옮기면, "롤랑 바르트의 강의는 내가 환원적이라고 생각했던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1960년대 중반의 바르트라면 구조주의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이다.

이어서 크리스테바는 파리 지성계의 모든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부터 에밀 방브니스트, 자크 라캉, 미셀 푸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구조주의자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현재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 즉 미하일 바흐친과 상호텍스트성, 대화, 소설의 카니발화 등과 같은 개념들을 소개"하며 이것이 곧바로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다(그녀의 이 소논문에 대해서는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에서 다루었다). <세미오티케>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바흐친은 정태적인 텍스트 분석을 문학적 구조가 단지 '존재하는' 모델이 아닌, 또 다른 구조와 관련하여 생성되는 모델로 대체한 최초의 사람이다. 구조주의에 역동적인 차원을 부여한 것은 '초점'(고정된 의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텍스트 표층들의 교차', 말하자면 저자와 수신자(또는 인물) 그리고 동시대이거나 이전의 문화적 맥락의 여러 저술들 사이의 대화를 의미하는 '문학적 언어'라는 개념이다."(27쪽)

영역본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1980)으로부터 인용된 이 대목은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와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 각각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한데, <세미오티케>를 당장 갖고 있지 않아서(연구실 공동서가에 꽂아놓았다가 잠정 분실했다) 어떻게 번역돼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point'를 '초점'이라고 한 것은 오역이다. 그건 말 그대로 '점'이란 뜻이다. 바흐친은 '문학적 언어(literary word)'를 고정된 의미를 갖는 '점'이 아니라 복수적 텍스트의 '교차면'으로 본다는 것이다('이 '문학적 언어'는 아마도 러시아어 'slovo'의 번역어이며, 우리말로는 '말', '담론' 등으로도 번역돼 있다).

여하튼 크리스테바는 바흐친을 서구 이론/지성계에 최초로 소개한 공로가 있다. 그리고 "바흐친에 대한 그녀의 설명과 확장이 널리 인정받게 되면서, 크리스테바는 바로 미국에서 강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28쪽) 이 대목은 처음 알게 된 것인데, 그녀는 그 제안을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을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전위적 문학그룹이었던 <텔켈>지 편집위원으로 가세하게 되며 그 멤버 중의 하나였던 필립 솔레르(솔레르스; 1936- )와 1975년에 결혼한다(작가이기도 한 솔레르스의 작품들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다. <여자들>과 <모차르트 평전>을 포함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래 사진은 만리장성에서의 솔레르스와 크리스테바.  

어쨌든 1960년대 중반의 파리는 지적으로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고 크리스테바에게도 '황홀한 시기'였다. 그녀는 그 시대를 호흡하며 성장하며 당시의 유행사조이던 구조주의를 탈구조주의로 변형시킨다. "탈구조주의는 그것이 역사, 시간, 과정, 변화, 사건 등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새로웠다."(29쪽)고 지적되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구조주의에 시간성/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와 다른 탈구조주의자들은 앞서 소개한 '자아' 개념을 버리고 역사, 언어, 기타 결정력의 변화에 종속된 '말하는 존재' 개념을 제안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저서'(이면서 가장 어려운 저서)는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이다.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 등과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시인들을 다룬 그녀의 국가박사 학위논문이기도 한데, 영역본과 국역본 이 방대한 저작의 모두 부분 번역이다. 이 책에서 크리스테바는 언어적 혁명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모색한다.

1968년 5월 혁명의 좌절 이후 텔켈 그룹과 크리스테바는 중국의 마오쩌둥에 경도된다.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이 대거 마오이스트가 된 것인데, 이들은 1974년 직접 3주간 중국을 여행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환멸을 느낀다. "크리스테바 일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천상의 사회주의 대신에 크리스테바가 불가리에서 이미 겪은 바 있는 소련식 공산주의의 종말 징후를 발견했다. 중국 여행은 크리스테바가 나중에 말하는 대로 '정치와의 결별'을 예정한다."(32쪽) '불가리'는 '불가리아'의 오타이다.

이 중국 여행의 결과로 나온 것이 "그녀가 나중에 스스로 '서투른 책'이라고 일컬은 <그림자 연극(Des Chinoises)>(1974)"이다. 한데, 이 책은 영어로는 <중국 여성에 대하여(About Chinese Women)>라고 부분 번역된 책이고 또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림자 연극'이라고 옮겨졌는지 모르겠다(그런 중의성을 갖는 것인가?).

아무튼 맥아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이 중국이 크리스테바에게 갖는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중국은 크리스테바에게 그녀가 마주칠 필요가 있었던 내부 영토의 섬광을 제공한다.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우리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유일한 대륙'을 독학하는 길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32쪽) 

 

 

 

 

"1960년대와 70년대 저술이 기호학과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면, 1980년대의 텍스트들은 말하는 주체의 정신분석학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게 크리스테바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인데,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중국(=무의식)이고 중국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크리스테바의 저술은 두 가지의 새로운 전환"을 선보이는데, 일련의 소설들이 그 하나이고 정치학 에세이들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소설들로는 <사무라이>(1992)와 <노인과 늑대들>(1994),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1996) 등이 있고, 이 중 두 권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다만 아직 <국가주의 없는 국가> 등 후자에 속하는 책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크리스테바는 현재 파리 7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정신분석의로도 활동하고 있고, 콜롬비아(컬럼비아)대학과 토론토대학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책은 게르만계(독일계) 미국인 이론가(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저술과 생애를 다룬 삼부작이다.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이 중 클라인을 다룬 책의 국역본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멜라니 클라인>(아난케, 2006)은 근간 예정이다, 가 아니라 작년에 출간됐다. 알라딘에 없을 뿐이다...

07. 07. 07. 

P.S.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소개하고 있는 '크리스테바의 모든 것'이란 장에서 내가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로스 구베르만이 편집한 <줄리아 크리스테바 인터뷰>(1996)이다(언어학에 대한 동영상 인터뷰 http://www.youtube.com/watch?v=IXLUsoEDYPw도 한번 구경해보시길. 영어 자막이 붙어 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24개의 상이한 인터뷰들로 구성된 책"으로서 "크리스테바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대화체 어조와 문답 구성 덕분에 그녀의 저술 이면에 있는 사유를 쉽고 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책의 중심부에는 크리스테바의 유년기부터 1960년대 파리 체류기, 그리고 유럽의 중견 문명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활동하는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20여 장의 크리스테바 사진이 실린 포토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맥아피의 책보다 조금 늦게 나온 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역시나 크리스테바 전문가인 존 레흐트와 마리아 마르가로니 공저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살아있는 이론>(2004).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며 존 레흐트는 <한권으로 보는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의 저자이다...

P.S.2. 한편 오래전에 정리해놓은 데리다와 크리스테바의 대담('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은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0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2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3 참조.


P.S.3. 크리스테바의 신작소설도 오랜만에 번역돼 나왔다. <비잔틴 살인사건>(소담, 2007). "크리스테바의 장편소설 ‘비잔틴 살인사건’은 팩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도시 산타바르바라를 무대로 전개되는 역사추리소설인 것이다. 마피아와 사이비종교단체가 지배하는 도시 산타바르바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음성이 중첩된 형이상학적 탐정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21세기 현대 문명의 잔혹한 이면을 비판하면서 느닷없이 십자군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대입시킨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의 비밀을 연구하는 세바스찬 교수가 핵심적 인물로 등장한다. 1000년 전 비잔틴제국의 역사도 되돌아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모국인 불가리아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이 소설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조선일보)라는 소개기사를 참조해볼 수 있겠다. 크리스테바 자신은 일종의 '안티-다빈치코드'라고 불렀다 한다.

07.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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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되기에 예고만 되고 아직 안 나온 책으로 알았습니다.^^

빌보 2008-01-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낮의 우울 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책을 보고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을 읽어보려고 검색하던 중 님의 글을 보게 됐네요.
크리스테바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의외로 번역된 책들이 많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ㅎㅎ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알라딘의 서재 개편이 며칠 미뤄지는 바람에 '말년휴가'도 머쓱하게 돼버렸다. 지난달말부터 한 주 가량 나는 서재를 접었다가 대략 오늘(6월 6일) '서재2.0'과 함께 컴백할 계획이었는데, 복귀 일정이 2-3일 당겨졌고('주간서재의 달인'이 폐지된 것도 복귀의 빌미가 돼 주었다), 새 서재의 오픈은 최소 2-3일은 늦춰진 듯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1.0 알라디너'이다. 그리고 그 알라디너 로쟈의 '고통'도 여전하다. 

종종 서재를 집어치울까 고민하게 만드는 나의 고통은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너무 부족한 데서 비롯한다. '정상적인' 생활, 곧 본업과 관련한 일들도 잔뜩 쌓여 있건만(이것도 고통이다!) 그 한편에서 '로쟈의 일'도 자꾸만 늘어간다(이건 악순환의 되먹임이어서 더 열심히 할수록 일은 더 많아진다!). 적어도 하루에 2-3가지 아이템을 놓고 나는 포기하거나 연기할 명분을 찾아야 한다(그럴 때 나는 펌글들로 입막음한다). 다 쓸 수 없으니까. '6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계속 미뤄지고 있고, 어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에이젠슈테인'란 타이틀을 포기했다(다음주에도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흐지부지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알로이스 리글'에 대한 글을 포기하려다가 조금 비틀어서(그러니까 약간 타협해서) 여기에 몇 자 적어두기로 했다(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나도 이젠 적잖은 나이를 먹었기에).    

계기는 어쩌다 들뢰즈의 <대담>(솔, 1993)에서 한두 페이지를 읽은 것(이 책에서도 통제사회에 대한 푸코와 네그리의 대담을 정리해두는 것 역시 오래전에 포기된/연기된 아이템 중 하나이다). 최근 영화이론서를 읽고 있는지라(읽어야만 하는지라) 겸사겸사 '낙관, 비관, 그리고 여행'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세르쥬 다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잠깐 읽어보려고 펼쳐들었다가 일이 또 번진 것인데,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번 당신의 책 <비탈>(1983)은 <수첩(Cahiers)>지에 기고한 글들을 엮은 것이었지요. 그 글들이 진정한하나의 책을 이룬 것은 당신이 그것들을 <수첩>지가 거쳐온 여러 시대들의 분석에 따라, 그리고 특히 영상 이미지의 여러 가지 기능 분석에 따라 분류해놓았기 때문입니다."(80쪽)

'수첩'지는 물론 저명한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말한다. '까이에 뒤 시네마' '카예 뒤 시네마' 등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지만, 이 고유명사를 '수첩'지라고 옮기는 건 드문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대담>은 내 기억에 들뢰즈의 저작으론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92)에 이어서 두번째로 국내에 소개된 책이다. 이때만 해도 들뢰즈는 한국에서 '전설'이었고 '미래의 철학자'였다. 나는 <대담>을 아마도 서점에서 보자마자 집어들었고 한동안 물신적인 애착까지 느꼈던 듯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몇 편의 대담이나 읽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여하튼 당시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에 나는 친구에게 앞으로 '들뢰즈의 책들이 나오게 될 거야'라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장담은 십수 년이 지난 현재 거의 실현된 듯하다(곁들여 독일 철학자로선 니콜라스 루만의 책들이 소개되어야 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그다지 현실화되지 않았다). 말년의 <시네마>까지 완역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모든 끝난 것은 아니며 이제 제대로 된 '교정'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즉,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가 <카프카>(동문선, 2001)로 재번역된 것처럼 시효성을 다한 <대담> 또한 재번역될 필요가 있다. 

언젠가 지적한 한 것 같기도 한데, 책은 적잖은 오역/오류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반대로 이후에 축적된 국내의 들뢰즈 이해/연구의 성과들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국역본은 완역이 아니다. 전체 18편의 대담 꼭지들 가운데 12편이 번역돼 있으니까 2/3 번역이다. 영역본을 기준으로 본문 200쪽이 안되는 책이므로 새로운 번역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성싶지도 않다(물론 번역은 들뢰즈에 대한 충분한 사전이해를 필요로 하겠지만). 새 번역이 나와서 <디알로그>(동문선, 2005)와 함께 들뢰즈의 육성을 우리말로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나는 영역본과 함께 지난 2004년에 나온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다).

Переговоры. 1972 - 1990

다시 다네로 돌아오면 들뢰즈는 여기서 <카이에>의 편집장까지 지낸 이 걸출한 영화평론가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의 작업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여담을 붙이자면, 나는 '세르주 다네(1944-1992)'란 이름을, 그리고 그가 앙드레 바쟁 이후 프랑스 최고의 영화평론가란 사실을 오래전에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통해서 접했다. 작년 가을만 해도 그는 '정성일의 가을영화 산책'이란 글(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1767)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는) 산책의 대가들의 명단. 보들레르의 산책. 지가 베르토프의 산책. 모네의 산책. 알베르틴의 산책. 다이스케의 산책. 벤야민의 산책. 로셀리니의 산책. 도미오카와 유키코의 산책. 솔레르의 산책. 차이밍량의 산책. 홍상수의 산책. (고작해야) 그들을 흉내내고 있는 나의 산책. 더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대한 메모만으로 가득 찬 산책-글쓰기는 내 오랜 꿈이었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세르주 다네의 (신문 <리베라시옹>에 1981년 7월18일 프리츠 랑으로 시작해서 1986년 1월24일 펠리니의 <진저와 프레드>로 연재를 마친) ‘영화-일지’(Cine-Journal)를 읽으면서 배웠다. 물론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해봐야 다네만큼 높이 상공 비행한 다음 내려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다네가 보여준 더 많이 보려는 욕망. 그는 어떤 영화는 슬로모션처럼 보아야 하며, 어떤 영화는 디졸브하듯이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화를 보는 내가 영화-되기.

지금 모두들 영화비평의 위기를 말한다. 지금 다시 떠올려볼 만한 다네의 유명한 제안, 영화에 관한 평이란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평 없이도 영화를 보고, 극장은 글 없이도 가득 채울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평이란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영화를 본 다음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관한 평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경험의 연장이며, 보충이며, 대리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평은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겹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본 다음 정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핵심은 그 인상을 보존하고, 그것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의 중재. 그냥 영화를 본 다음 인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 수첩을 가득 채운 두서없는 메모. 이 글은 그렇게 쓰여졌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기에 따로 후렴이 필요하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용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세르주 다네의 <영화-일지>(1986) 서문이 바로 들뢰즈의 이 글 '세르쥬 다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들 역시 들뢰즈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이 세심하게 따라가며 읽어야 한다. 가령 이 페이퍼의 빌미가 된 미술학자 알로이스 리글(1858-1905)에 대한 언급.

"조형 예술의 저명한 선구자인 리글(Riegl)은 예술의 목적을 자연 미화, 자연 정신화, 자연 필적이라는 세 가지로 나눠놓았지요('미화', '정신화', '필적'이라는 말들은 그에게 있어서 단호한 역사적-논리적 의미를 가지는 것들입니다)."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이 한 문장이다(이럴 때 '공부'는 이런 문장에 주석을 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전제된 리글의 미술사관이다(나는 그 주석을 달아보기 위해서 한 시간 정도 웹서핑을 했다). 찾아보니 리글의 책은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이 없다(해서 몇몇 주저들이 번역/소개되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에서 그의 <양식의 문제>(1893)의 골자 정도를 읽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주저와 관련 논문들 두어 개를 읽어보기 위해 찜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민 타협안이 리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는 것. 

그리고서 책을 덮으려고 하는데 눈에 띈 에이젠슈테인. 아니 국역본대로 하면 '아인슈타인': "당신은 최근 책에서 이 대백과사전의 상징물로서 아인슈타인의 서재, 아인슈타인 박사의 서가를 제안하고 있지요. 한데 당신은 영화가 저절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전쟁이 암살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사실 모스크바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서가는 죽은 곳, 박탈된 곳, 용도 변경된 곳이 되어버렸지요). 시베르버그는 발터 벤야민의 몇몇 생각을 아주 멀리까지 밀고 나가 히틀러를 영화인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지요..."(81쪽)

'모스크바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서가'라는 말까지 읽게 되면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참고로 영역본을 옮겨놓으면 "In your new book you offer Eisenstein's library, the Cabinet of Doctor Eisenstein, as asymbol of this great encyclopedia. Now, you've pointed out that this form of cinema didn't die a natural death but was killed in the war (Eisenstein's office in Moscow, indeed, became a dead, dispossessed, derelict place). Syberberg extensively developed some remarks of Walter Benjamin's about seeing Hitler as a filmmaker..."(69쪽)

Метод. Том 1. Grundproblem

'한데'('Now')를 기점으로 문단이 나뉘는데, 인용문 이전에 들뢰즈는 영화사의 첫번째 시대가 '몽타주 기법'에 의해 정의될 수 있으며 그것이 지향했던 바는 '세계의 백과사전'이었다고 정리한다. 그리고는 이 인용문의 첫 문장에서, 다네가 그 '대백과사전'의 상징으로 '에이젠슈테인의 서재'를 들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 그 서가를 'the Cabinet of Doctor Eisenstein'이라고 부연하는 것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1919)에 대한 인유인데 그걸 살려주자면 '아인슈타인 박사의 서가'가 아니라 '에이젠슈테인 박사의 밀실'이라고 옮겨야 한다(아마도 '박사'란 말 때문에 역자는 '에이젠슈테인'이 아닌 '아인슈타인'을 먼저 떠올렸을 법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금 영화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서재/밀실의 주인은 전쟁이 끝난 이후인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그의 죽음도 또한 페이퍼 거리지만 참아두기로 한다).

한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시베르버그(Syberberg)'는 '지버베르크'라고 읽는 게 맞다(러시아어로는 '시베르베르그'라고 옮기지만). <히틀러>(1978)를 만든 독일의 영화감독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1935- )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기에. 그에 대해서는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을 참조할 수 있다('지버베르크의 히틀러'가 책의 한 장이다)...

07. 06. 06.

P.S. 세 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페이퍼를 완성한 다음에 드는 생각. 이런 페이퍼라는 게 책을 읽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다네의 제안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책에 관한 자질구레한 이런 페이퍼는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이런 참견 없이도 책을 (안)읽고 삶은 '마시지'를 통해서 오히려 건강하고 윤택해진다. 해서, 리뷰니 페이퍼니 하는 건 모두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다음에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보통 두세 가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책을 안 읽을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가 이보다 더 좋은 책을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젠장, 언제까지나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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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8-03-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시간을 투자한 페이퍼를 30분은 들여다봐야할 것 같은 강박감을 느낍니다.^^
하여간 전 이런 류의 페이퍼가 좋습니다. 책에 대한 정보는 기본, 로쟈님의 사변이 주제들인...^^ 어떻게 이런 페이퍼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비밀 하나 알려드리자면 저의 즐거움 중 하나는 로쟈님의 페이퍼들을 뒤지는 일입니다.-기억력이 제로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취미 입니다. 수고로운-밥벌이도 안 되는데-로쟈님을 생각하면 걍 페이퍼들 접으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느끼는 공허감이 좀 클 것 같아서요...^^ 가까이 계시면 커피 대신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사 드릴텐데... 전 홀짝이는 커피값이 젤 아까운 사람이거든요ㅎㅎ 하여간 감사하는 인간 있다는 거 잊지 마시구요 귀찮을 땐 가끔 접으시고 그리고 또 힘도 내시고 그러시길...

로쟈 2008-03-18 13:21   좋아요 0 | URL
ㅎㅎ 덕분에 저도 옛날 얘기를 잠깐 읽어봤습니다.^^

섬나무 2008-03-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석에 박힌 댓글도 눈에 띄나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