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함께 160826
- 에어컨
폭염이라는 더위도 세월에는 장사 없다. 이번 여름은 무척 더웠는데, 내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와 맞먹을 정도로 더웠다.
우리 집에는 (대개 다른 집 식구들이 놀러 와서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두 가지) TV와 에어컨이 없다. 특히 아이가 영아기를 보낼 때는 에어컨 없이 지내는 것에 대해 약간의 비난조가 섞인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집에 에어컨을 들여 놓지 않는 이유는 생태 순환 가치관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불편을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에어컨을 구입 및 설치하는 비용만을 생각한다면, 구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더운 날 모두 가동을 한다면 전기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1년에 매우 더운 날 7일 정도만 가동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가동한 에어컨이 5~6년이 지나면 고장이 난다. 그러니까 35일~42일 정도 가동한 가전제품이 망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서늘한 곳에 있다가 더운 곳에 가면 숨이 막힌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에어컨을 틀다가 끄면 숨이 막히는 느낌을 준다. 나의 결론은 에어컨을 사서 전기료 걱정 없이 사용을 하거나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아이 친구들이 파자마 파티를 하면서 우리 집에 방문했고, 아이의 엄마 두 분도 함께 방문했다. 두 분은 방문해서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을 것을 아셨다. 한 분이 안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왜, 이렇게 사세요?”
위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생태 순환이 무엇이건대, 불편하게 사는 것이냐를 묻는 것이다. 나는 육식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해마다 해외여행을 하며, 짧은 거리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덥다고 에어컨을 틀면서 녹색당에 투표를 했다고 해서 생태 순환적 삶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육식은 공장식을 축산을 의미하고 해외여행은 비행기와 같은 탈것으로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장거리 여행을 의미한다. 나는 개고기 논쟁이나 캣맘 논쟁은 핵심을 벗어났다고 본다.
두 번째 해석은 ‘남자인 남편-아빠의 의도에 휘둘리냐’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직장에서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는다. (작년에는 틀지 않고 지나갔다.) 반면 안해는 직장에서 에어컨을 틀고 산다. 이 사실은 집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에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의 평등, 공정의 의미를 적용한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옳았을까.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p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해를 시키려 노력한다’는 말, 묘하게 모순입니다. 이해란, 원래 시키는 게 아니라 하는 겁니다. ; 소통과 상대의 이해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면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곤란하지 않을까. 내가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면 아마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마 독립운동가도 독립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애써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내 안해와 (그리고 대견스럽게도) 아이는 나를 이해해준다(이거나 아니면 자뻑이거나. 그것이 이해였다면). 감사할 일이다.
뱀발 1 ; 스스로 잠재적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생각지 않으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는 남자는 헛것이듯, 불편함을 참지 못하면서 생태 순환을 외치는 것 역시 헛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 육식과 자동차는 2σ안에 있고, 올해 처음 해외여행, 에어컨과 TV은 언제쯤?
뱀발 2 ; 우리나라 에어컨 보급률이 80%라지.
뱀발 3 ; 내가 가족들에게 에어컨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 자체가 약자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강자는 밀어붙이잖아.
뱀발 4 ; 아이에게는 대견스럽다는 수식어를 붙이고, 안해 앞에는 수식어 없는 것 대해, 안해가 ‘그럼 나는 뭐야’라고 생각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