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함께 160824

 

플란다스의 개

 

아이의 독후감을 봐 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 책을 읽게 된다. 이번에 고른 책은 플란다스의 개이다. 아이의 독서 편식이 꽤 있어, 문학 계열의 책을 잘 안 읽는다. 당연히 독후감도 어렵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플란다스의 개>는 책이 아니라 TV 만화 영화 (후지TV 애니메이션)로 각인되어 있다. 첫 번째 시청은 TBC 방송으로 아마 전회를 봤을 것이다. 두 번째 시청은 1980년 초반이었데, 볼 수 있으면 봤고, 못 본 회도 꽤 되었다. 마지막은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대학생 때이었다. 이 세 번째 시청은 마지막 회만 봤다.

 

대학생 시절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자고 했고 다른 친구와 함께 초대한 친구 집에서 맛있는 것을 실컷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베개를 베고 누었고 TV를 틀었다. TV의 소리는 자장가 같았고, 두 친구는 잠이 들었다. 나도 잠에 들려할 때,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 회가 방영되었다. 비몽사몽간 만화 영화 시작을 들었는데, 점차 잠에서 깨면서 정신이 들었고 만화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2~3주 지나서 몇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얼마 전 집으로 식사를 초대한 것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이야기 말미에 두 친구들이 자고 있을 때, 만화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친구들이 무슨 대학생이 만화를 보면서 우냐, 무슨 남자가 만화를 보면서 우냐라는 빈정거림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외로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모두 진지하게 어쩌면 숙연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대학생 시절 그 마지막 회를 보지 못했다면 (울지 않았을 테고), 아마 어른 되어 <플란다스 개>를 보면서 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나는 대학생 시절에 그 마지막 회를 보고 울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그 만화 영화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 회를 보면서 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 이후로 다시 보지 못했지만.

 

(링크된 책은 아이와 함께 읽은 책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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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4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V만화 「플란다스의 개」는 가슴 아픈 죽음이 `성냥 팔이 소녀`를 연상케 해서 예전에 보고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와 `엄마 찾아 3만리`의 마르코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졌던 것 같이 기억되네요 ㅋ

마립간 2016-08-24 10:33   좋아요 2 | URL
‘엄마 찾아 3만리’를 기억하신다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기억하시겠네요. 제 대학 친구도 같은 불평을 했습니다. 쿠로다 요시오,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마지막에 지브리 스튜디오로 이어지는 그림 풍으로 생각됩니다.

겨울호랑이 2016-08-24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네로, 마르코, 하이디가 모두 친척 같아 보였어요 ㅋ

cyrus 2016-08-2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S에서 해주던 만화를 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화 이야기 분위기가 애들이 보기에 암울했어요. 파트라슈가 네로를 만나기 전에 상인에게 학대받는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네로가 마을 사람들한테 따돌림 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

마립간 2016-08-24 14:24   좋아요 0 | URL
아이가 fairy tale에서 사실주의 동화로 옮겨가려 하는데, 쉽지 않더군요.^^
 

 

* 아이와 함께 160822

- 파자마 파티

 

지난 토요일 오부부터 일요일 점심때까지 딸아이의 친구 2명이 우리 집에서 1박을 하면서 지냈다. 아이들끼리는 이를 파자마 파티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 지낸 아이 친구 2명과 나는 알고 지내는 사이이고, 내가 있을 때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지만, 잠을 같이 잔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아이 한명을 돌보는 것과 둘을 돌보는 것이 차이가 있고, 둘을 돌보는 것과 셋을 돌보는 것이 차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이 셋과 함께 있으면서 내 영혼이 두세 번 가출한 듯싶다.

 

개인적으로 매우 희소한 경험을 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부모와 떨어져 잠을 잘 수 없었고, 아이가 더 크게 되면 남의 집에서 잠을 자는 것도 불편할 것이거니와 나와는 무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내 준 두 아이의 부모님께도 감사할 일이다. 안해가 내 감상을 물었을 때, 딸 세쌍둥이 키우기 일일 체험을 한 것 같다고 했다.

 

* 내가 약자 혐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아이 혐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동 학대라는 말을 있어도.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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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사전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았어도 `아동 혐오`라는 말을 쓰는 기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에 `아동 혐오`라고 검색창에 쳐보면 단어가 들어간 기사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립간 2016-08-22 15:39   좋아요 0 | URL
아동학대가 아동혐오와 다른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동혐오`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은 좀 경솔했네요.

책읽는나무 2016-08-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도 지난주말 딸들이 노래부르던 파자마 파티를 해줬습니다
딸들의 배꼽친구와 그배꼽친구의 오빠를 데리고 와 파자마 파티를 해줬어요
아이가 다섯이었는데 아이들이 조금 크니 좀 낫더라구요
2년 전 여름방학때도 이집 오누이를 불러 와 파자마 파티를 했을땐 제 영혼도 가출?한 줄 알았거든요^^
암튼 그때 생각이 나서 마립간님의 상황에 공감이 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립간 2016-08-23 12:36   좋아요 0 | URL
제 경험한 수고야, 어머니들께서 흔하게 하는 수고인데요.

그런데 어쩌면 아이 셋보다 넷이었다면 좀 더 편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 아이와 함께 160818

- 아이의 견우와 직녀독후감

 

아이가 독후감을 쓰는데, 틈틈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뭐를 써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 이 때의 내가 도움을 주는 방식은 대화를 하고 그 대화 내용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번의 책은 견우와 직녀. 나와 안해와 아이가 돌아가면서 느낌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했다. (아래 글 순서는 문장 길이 순서로 재배치했다. 누구 무슨 말을 했는지 추론하는 재미를 느끼시라고. 중복된 내용은 생략함.)

 

1) 연예는 꼭 해야 하나./연예 하지 말자./연예 너무 많이 하지 말자.

2) 진전한 사랑은 반드시 이뤄진다.

3) 남자 잘 못 만나 매년 고생한다. (고생보다 개고생이 어감이 나지만,)

4) 견우와 직녀를 갈라놓은 옥황상제는 나쁘다.

5) 지금도 너희들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뭐냐

6) 꽃밭을 짖밟을 정도의 사랑의 몰입은 타당한가.

7) 너무 힘든 사랑은 3자를 괴롭힌다. 까마귀, 까치들 무슨 고생이냐.

8) 소를 키우는 것과 베를 짜는 것 ; 근력에 따른 공정인가 아니면 사회적 편견인가.

9) 인류( 장애인, 인종,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사랑은 없지만 단 한 사람만을 향한 사랑은 긍정적인가?

 

세 사람이 모여서 한 이야기인 위글 이외에, 이런 궁금증도 있다.

1) (옥황상제가 남자라면 이는 남성 중심 사고이겠지만 이것을 제외하고,) 이 이야기에서 남성 중심, 즉 가부장제적 사고를 보여주는 줄거리의 흐름이나 장면(클리셰?)은 뭐가 있을까?

2) 직녀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었다면 직녀의 행동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링크된 책은 우리 가족이 읽은 책이 아님.)

 

뱀발 ; 김원중이 부른 직녀에게는 행간의 의미 때문에 금지곡이 아닌 금지곡 대우를 받았던 노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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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8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해보면 까마귀, 까치들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이었어요. 견우와 직녀의 극적인 만남이 인상적이어서 까치와 까마귀의 희생을 잊고 있었어요. 치악산 전설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겠어요.

마립간 2016-08-18 14:26   좋아요 2 | URL
예전과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까마귀`입니다. 예전에는 외모를 보고 싫어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긍정적이 되네요.
 

 

* 雜記 160811

 

영화 주토피아를 보고 영화 감상문을 쓰다가 별족 님이 먼저 올린 감상평과 겹치는 것이 많아 알라딘에 포스팅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족 님의 글에 없는 내 감상이 있는데, 편견에 관한 것이다. 주토피아를 본 분은 알겠지만, 이 만화 영화는 편견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잘 보이지 않는 새로운 편견을 보기도 한다. 내 의견은 편견과 정형을 구분한다는 것이었다.

 

편견은 일말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 이 문장은 편견, 정형, 상식, 전통은 시공간의 전제와 통계적 확률을 가지고 일말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이다. 이러한 암묵적 조건들 때문에 나는 편견과 정형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 글은 3편의 글을 재구성한 것인데, 첫 번째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에 관한 이야기이고, 세 번째 이야기는 cyrus 님과 이야기하려 했던 성희롱과 강간에 관한 미끄럼 논리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구조를 유행에 따라 성차별과 여성혐오로 바꿨다. 두 번째 글은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글에 대한 의견이다.

 

반론에 있을 것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면 가짜논리에서 언급한 미끄러운 내리막논리 오류는 전칭이 아니고 특칭이다.

 

* 映畵鑑賞 주토피아

- 사실판단에서 가치판단으로 미끄러운 내리막?

 

토끼가 말한다. “토끼끼리 서로 귀엽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동물이 나에게 귀엽다고 말하는 것은 불쾌해요.”

 

나는 알라딘에서 위 글을 읽고 누군가에게 귀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돌이켜 봤다.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한 번도 안 한 것은 아니리라.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아마도 귀엽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사실판단, 가치판단, 감정평가와 같은 정형을 사용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정형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며 내가 만들어 낸 말이나 나 혼자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다른 분도 사용한다. 그렇다고 공식적 용어도 아닌 것 같다.)

 

* 독서일기 140328 <맹자>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55849

 

잠깐 여담을 하자면 딸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귀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송아지만한 시베리안 허스키보고 귀엽다고 하고, 쥐며느리와 같은 벌레를 보고도 귀엽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귀엽다고 말하는 횟수가 줄고 있다.

 

* 토끼는 귀엽다. ; 이 문장을 내 정형으로 분석하면, 사실판단일까, 가치판단일까?

내가 발설을 했다면 사실판단일 것이다. 내가 사실판단을 했는데, 상대가 가치판단으로 받아들이면, ... 내 의견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발설을 말자.

 

- 판단의 주체

내가 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려 한다. 내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있다면 그 근거는? 누군가 무엇을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자격, 여건, 상황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일단 알라딘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가치평가 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여성이 남성을 가치평가 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이 말이 이상한가? (어느 알라디너의 조언에 따라) 내 의견을 먼저 제시하면 평가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내 딸이 나와 안해를 가치평가 한다. 가치평가가 옳았느냐는 논의의 대상이지만, 아이에게 위계질서에 의해 가치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부모의 평가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대화가 이뤄지지도 않을 것이다.)

 

토끼는 귀엽다.라는 평가는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가 아닐까.

 

국민의 한 사람(남자)으로서 선출직(여성)을 판단하는 것은 가한 것 같지만, 이 상황을 메타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까.

 

- 성차별에서 여성혐오로 미끄러운 내리막?

 

가짜논리32. 걱정도 팔자 미끄러운 내리막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p 솔닛은 여성에 대한 이런 폭력, 혐오, 폄훼는 낱낱이 떨어진 사건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맥락이 배태한 현상의 여러 표출 형태이다. 게다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용인하는 태도는 모든 차원에서 작동하며 자칫하면 더 나쁜 방향으로 미끄러지기 쉬운 연속된 경사로에 놓여 있으므로, 강간은 나쁘지만 맨스플레인은 웃고 넘어가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태평하게만 말할 순 없다. 여성의 입을 다물게 하고 세상에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같으므로.

 

증오하는 입p22 혐오발언은 증오의 피라미드5단계, 즉 편견, 편견에 의한 행위, 차별, 폭력, 제노사이드의 일부로 설명되곤 한다.

 

성차별과 여성혐오는 같은 것일까, 아닐까? (1) 여성혐오는 성차별보다 더 나쁜 것일까? (2) 성차별은 여성혐오만큼 나쁜 것일까? 어떤이는 성차별은 여성혐오는 질적으로 같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어떤이는 성차별과 여성혐오는 양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

 

나는 플라톤-노자주의를 제 1 가치관으로 하고 디오게네스-양주주의를 제 2 가치관으로 하나 다음의 것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3의 가치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리스텔레스-장자주의가 적용되는 분야 ; 1) 진화론, 2) 군사학(병법), 3)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로 이행되기도 한다. 4) 편견(, 정형, 상식, 전통)(시공간의 전제와 통계적 확률을 가지고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기본 가치관이 아리스텔레스-장자주의인 예수님이 플라톤-노자주의입장을 취한 구절이라면, 나는 기본적으로 플라톤-노자주의가치관을 지향하지만, 이 지점에서는 아리스텔레스-장자주의입장에 선다. “예수님, 어떻게 음욕을 품은 사람과 연쇄 강간범과 같습니까?”

 

뱀발 ; 성차별과 여성혐오 ; 당신은 (1) 번 의견을 지지합니까, (2) 번 의견을 지지합니까? (trolleyology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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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6-08-11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논쟁에서 피곤한건 다변성에 대한 배제인 것 같네요. 뭔가 하나로 재단되어야한다는 식으 논리 역시 폭력인데 말이죠

마립간 2016-08-11 10:30   좋아요 0 | URL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을 때의 저의 관점은 `페미니스트로 호모 소셜을 만든다는 것은 문제가 없나`입니다.

다변성(다면성)을 고려해도 변수의 가중치가 있으므로, 그리고 실제에서 모든 변수를 고려할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페미니스트의 입장으로 이해하는 하나, 그로 인해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것은 일반화시키지 않겠습니다.)은 꽤 피곤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8-11 11:21   좋아요 0 | URL
예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영화 <서프러제트> 원작 펭크허스트 여사의 자서전인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서평을 적었는데, 어느 여성 블로그거가 오셔서 남긴 덧글과 제 답글에서 엄청난 짜증을 경험했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의 덧글에서 서평 본문과 답급에 대한 전후맥락성을 보지 않고, 칼날이 선 공격성 덧글만 달고, 나중에 중복해서 저보고 문맥이 이상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더군요.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란 제 서평을 보고 전지적 신 관점, 중립적 관점이라 하여 이상한 불만을 제기하는데, 타인의 가치관과 사회적 흐름성을 배제한 시선에서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런 건 아니나, 우선 여성문제에 대한 글이 나오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방과 대화해야 하는데, 일단 공격부터 하자는 식(일부 여성만 그런 겁니다)에서 페미니즘이 어느 순간 그 자체에 도달해야 할 사상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인류학 영역에서도 페미니즘은 하나의 가치관으로 존중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메인스트림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을 존중하는 것은 사회적 다변성과 가치관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이지 주객전도는 아닌 것 같네요.

마립간 2016-08-11 11:29   좋아요 0 | URL
제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종교화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제 느낌과 비슷한 경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제 의견에, 어느 분이 제게 도움말을 주셨는데, ; 무엇가가 종교화되었다면 당사자에게는 핵심적이면서, 존중받고 싶은 것에 욕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침해라고 느꼈을 때의 반발도 크지 않을까.

그래서 이성마저 마비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판단 : 저것은 사과다`는 그 한 가지 상황에 대한 판단일 확률이 높은 반면
가치 판단은 한 가지 상황에 대한 판단이기보다는 그동안 쌓였던 것이 대한 총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과 18범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사람들에게 받는 경우는 가치 판단이죠. ˝ 저놈이죠. 뭐... ˝

즉, 남자가 여자에게 귀엽다`라고 말했을 때 그 행위에 불쾌하다는 가치 판단을 내렸다면 그것은 그 여자가 그 한 가지 팩트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그 남자의 애티튜드를 종합해서 내린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 여자가 성적으로 개방적이면 무조건 쌍년이라고 말하는 말버릇을 지켜보던 사람으로서 그 남자가 자기에게 ˝ 귀여운데... ˝ 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불쾌하지 않을까연 ? 뭐... 그런 생각으 드내요.. ㅎㅎ.

마립간 2016-08-11 10:34   좋아요 0 | URL
`한 가지 상황에 대한 판단이기보다는 그동안 쌓였던 것이 대한 총합`이라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와 이로 인한 편견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어야겠죠.

그동안 쌓였던 그 남자의 애티튜드를 종합해서, 여자가 성적으로 개방적이면 무조건 쌍년이라고 말하는 말버릇을 지켜보던 사람으로서 그 남자가 ; 맥락과 생략된 암묵적 조건을 고려하면 곰곰발 님의 말씀이 맞지만,

해당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편견이죠. 이 관점은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08-23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身邊雜記 160728

- 성희롱

 

내 초등학교 시절의 여자와 폭력 사건을 글로 정리하다보니 성희롱 사건도 떠올랐다. (누군가의 이야기로 시작하려 했으나 사실) 내 이야기다. 2000년 초반으로 10년이 조금 넘은 이야기다.

 

그 때 나는 직장일로 미국을 방문 중이었고, 동행한 사람 중에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국제 대학교 교수님도 계셨다. 어느 날 업무를 마치고 숙소에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다음 날을 상의하던 중에, 교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낮에 그 미국 여성이 한 말이 어느 정도 성희롱 내용을 가진, 동양인을 얕잡아 보고 한 말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상대 여성에게 항의를 할까 말까 주저하시다가 적절한 시기를 놓치셨다고 하셨다.

 

나는 영어가 짧아 사전적이 의미도 겨우 알아듣는 실력에 사전 외적인 맥락을 통한 의미를 알아 챌 수가 없었다. 그 여성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직급도 낮았다. 나이 어리고 직급이 낮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성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측면에 있어 권력 관계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권력 관계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있어서 언어 능력이다.

 

내가 알라딘에서 페미니즘 논쟁을 하면서 일부 남성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서 남자로 살면서 여성에게 성희롱 당하지는 않잖아요.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여성에게 남성이 성희롱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 때 당사자인 남성은 그것이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한국의 남자(는 또는 남자)는 자신에 대한 성희롱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면서 남자에 대한 성희롱이 없는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성희롱이 피해자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피해자로 여겨져야 하는 남자가 피해를 못 느낀다는 점에서 또는 즐기는 상황을 성희롱으로 정의해야할 지는 의문이다.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사건이 피해자?로서의 유일무이한 성희롱 사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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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6-07-2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한국의 여성으로 당해야 하는 성희롱, 성폭력이 지나치게 남성보다 많다는 점이 문제일 것 같아요. 남성들이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요즘 논의대로 사회가 그렇게 형성되어 그렇게 보고 자랐기 때문일테죠. 때로는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조차 그럴 때가 있으니까요.

제가 당한 성희롱과 성폭력의 역사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 한 그것들이 정말 상당하구나, 책 한 권 넘겠구나 싶었어요.

길 가다가 모르는 이들에게 고등학교부터 당한 것들을 빼더라도,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남성 위주의 금융권 대기업에서 홀로 회식 자리에 참석하여 부르스를 대부분의 선배들이나 상사들과 추는 상황에 들어가거나, 커피를 안 타주겠다고 거부해서 회의에서 이름이 거론된거나, 회식 2차에서 ˝oo아, 넌 이제 가라, 여자들 부를 거다˝ 라고 선배가 말했던거나...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우리들에게는 그게 유리 천장이었죠. 아마 코알라 세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것 같지만, 그렇게 버텨낸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한 발 한 발 넘어갔죠. 그렇다고 그 남성 선배들이 못 돼 처먹었냐, 그건 아니였어요. 저를 아껴주고 가르쳐주고 많이 챙겨주고, 그저.... 몰랐던 거죠. 최근 대학 동기들(공대 졸업이다 보니 거의 남자)과 밴드를 하는데, 후후, 이대로 나두면 모두 성희롱으로 고소당하겠네 싶을 때가 있어요, 아직도. ^^ .......... 그래도 전 그들을 아낍니다. 서로 배우고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해하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마립간 2016-07-28 10:50   좋아요 0 | URL
한국의 여성으로 당해야 하는 성희롱, 성폭력이 지나치게 남성보다 많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해석하는 방식이 권력으로 매개로 합니다. 제 해석은 한국에서 권력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권력가진 여성과 없는 남성, 권력가진 남성과 없는 여성과의 성희롱(성폭력)의 발생 빈도가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분석해도 남성 가해자의 빈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생리학적 문제도 바탕에 있죠.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희롱도 만만치 않은데,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희롱은 ... 아는 바가 없군요.)

고등학생 이하의 성희롱은 완력腕力이 권력의 매개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남학생이 얼굴에 칼자국있고 문신 새겨진 여학생에게 성희롱을 할까요?

남자가 스스로 당한 성희롱에 무지, 무관심하다는 것은 남자가 (또는 자신이) 여자에게 가하는 성희롱에도 무지, 무관심할 수있기에 역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마녀고양이 2016-07-28 11:36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궁극적으로 힘을 가진 자가 누구냐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한편으로는 힘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느냐, 자신의 아래에 놓을 수 있느냐의 테스트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립간님의 초등학교 경험 역시 이런 것일 가능성도 있겠네요.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희롱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제가 중간 관리자로 있었던 시절에 신입 남직원에게 뒤태가 이쁘다는 등의 성희롱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저 역시 장난이고 재미였지, 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힘과 통제, 상하 관계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만일 그때 그 친구가 팀장님도 뒤태가 예쁘세요 라고 했다면, 저는 이렇게 건방지고 위아래 없는 녀석이 있나 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희롱이란 주로 힘의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힘이 더 센 자나, 자리가 더 높은 자.
혹은 마립간 님 같은 경우는 언어 사용권자의 우월성`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립간 2016-07-28 14:16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니, 제가 여성이 당하는 성희롱에 예민하지 않는 것에 직무에 대한 무게를 둔 것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풀이해서 이야기하자면,

제가 여자인데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당장 사표내죠. 그리고 더 나은 조건으로 다른 직장에 이직합니다. 위 마녀고양이 님의 언급한 통제, 누군가의 아래에 있지 않는 것, 또는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직무를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가 완화되겠죠.

그런데, (남녀를 떠나) 이런 직무는 거의 사라지고, (산업, 상업, 금융, 토지의) 자본만이 힘을 가지게 되니 ... 남자로서도 피해자 입장에 설 것이냐, 더 약한자를 착취할 것이냐의 기로에 있군요.

페크pek0501 2016-07-2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희롱, 성추행. 이런 것들 때문에 딸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고 느껴요. 그런 세상입니다. 좋은 세상이 아닌 거죠.
그래서 한때 여성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실제로 대통령 선거에선 지지하지 않았지만...)
유능함과 권력이 (남자들과 똑같이) 여자에게도 주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이었어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힐러리- 여성이 대선 주자로 나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새삼 놀랐어요. 처음이라니...
아직도 미국에선 여성 대통령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저는 남자들에게 쏠려 있는 권력 때문에 성희롱도 생긴다고 보는 쪽이에요.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남녀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가 되는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 걸까요?


마립간 2016-07-28 15:10   좋아요 0 | URL
저는 딸을 키우면서 아들보다 키우기 쉽다거나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이 있는 이 사회에서 딸아이에게 최선의 육아가 무엇인가만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관계에서 수평관계가 되는 시대는 영원히 (최소한 저와 아이의 생애에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녀관계 역시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은 지속되리라 봅니다.

제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의 나머지 영역에서는 아이가 감당할 몫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