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함께 170509

 

- 어른스러운 아이 DY, 두 번째 이야기

 

이번 파자마 파티에서도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대개 <TT>를 포함한 최신 가요를 불렀다. 그런데 DY는 한스밴드가 부른 <오락실>이라는 노래를 두 번이나 불렀다. 아이가 태어나기 20년 전 유행했던 노래를 불렀다.

 

DY가 이 노래의 곡조를 좋아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사 때문에 이 노래를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DY의 아버지가 직장을 옮겼고, 새 직장을 얻기까지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다. DY 아버지가 사직한 직후에는 DY는 사직 사실을 몰랐다(DY 어머니가 이야기했다). 이후 어느 시점에서 아이가 아빠의 실직 상황을 인지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혹시 아이가 아빠의 공백기 사실을 아예 모를 수도 있다. 또는 아이가 아빠의 실직과 무관하게 <오락실>이라는 노래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부른 노래는 노래방을 나오기 전, 딱 한곡 이었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오락실>를 포함해서 전부 신나는 노래였다. 내 노래로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내 의도는 아니었다. 결혼 후에는 삶의 무게를 딸을 포함하여 가족과 함께 나눠지었기 때문에 그리 무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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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함께 170508

 

- 어른스러운 아이 DY, 첫 번째 이야기

 

지난 4월 말에 딸아이와 아이 친구 3(일명 F4)이 우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가졌다. 이중의 한 명, DY는 평소에 어른스럽다는 평을 들었던 아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골고루 초콜릿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아저씨에게 한 개 줄 사람?”라고 하니, 선뜻 제 것 한 개 드세요.”라고 답했다. 다른 에피소드로는 내가 자기가 자고 난 잠자지는 자기가 개어야지.” 다른 아이들이 미적거리는 사이 DY는 바로 이불 개기 시작한다.

 

이런 칭찬 받는 면인 어른스러움이 당사자에게 꼭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에피소드는 ; F4DY를 제외한 3명이 입술에 무엇인가를 발랐다. 나는 아이들에게 쥐 잡아 먹어냐라고 하니 웃는다. 그런데 DY는 입술에 바른 것을 거부했다. DY에게는 입술에 (화장도 아닌) 무엇인가를 바르고 지우는 것이 아이들 장난과 같은 느낌을 준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DY와 다른 아이 3명과의 동질감을 약화시킨다. 동질감의 약화는 친밀감의 약화를 유발한다.

 

결국 어떤 사건을 계기로, 4명 사이에서 감정이 폭발했다. 나는 (여성 비언어적 해결 방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 언어적 해결 방법을 적용해서) 각자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각자의 생각 및 감정 상태를 확인한 후에 어떤 결정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서 동질감, 친밀감, 유대감의 이행을 이야기한다. 방향이 비도덕적-비윤리적인 경우에 마찬가지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는 남성 내집단 편향 (male gene-meme ingroup bias)을 비판한다. 나는 (, some) 페미니즘을 여성 내집단 편향 (female gene-meme ingroup bias)으로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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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7-05-0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너무너무 오랜만에 들리게 되네요.
성장하는 따님의 이야기가 참으로 정겹고 반갑습니다. ^^

동질감의 약화가 친밀감의 약화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래도 DY의 독특함이 사랑스럽네요. 다만
˝쥐 잡아 먹었냐˝ 라는 농담은 웃기면서도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입술을 빨갛게 칠하는 행동이 부정적이구나 라고 받아들이게 되고, 더욱 안 좋은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겠지요.
부모가 무의식 중에 하는 습관에서 형성된 틀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이 크답니다.

저보다 더욱 좋은 아버지이시지만,
마립간님께 주된 고민 중의 하나인 친밀감과 관련된 문제가 DY에게도 있을까 염려하시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제 의견을 전달해드린답니다.

요즘 상담, 특히 부부나 가족상담, 또는 정신병리적 상담을 많이 하게 되면서
심신이 지쳤는지 누군가와의 소통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져서 알라딘에 글을 쓰지 않게 되네요.
제게 있어 현재 소통이나 정서적 교류가 넘쳐 흐르는 상황인 것 같아요.
내년까지는 이런 상태일 가능성이 크고... 제가 간간히 들어왔을 때 변치않는 마립간님을 만나는 것은 기쁨입니다.

마립간 2017-05-09 15:0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 님, 반갑습니다.

저는 한 동안 (아이가 어느 정도 성숙될 때까지) 알라딘 서재에 머물 것 같습니다. 아이가 제 서재 글을 읽기 때문에 서재의 글은 아이와 소통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쥐 잡아 먹었냐˝ 라는 제 말은 제가 선호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으려 했지만, 세련되지 못했네요. (좀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7-05-12 23:12   좋아요 0 | URL
아버지가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따님이 알기 때문에 스스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아빠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을 자신도 싫어하는 방향으로 은연 중의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뒷부분 말씀처럼 아이들과의 동질감이 중요하시다면, 아버지의 의견을 밝히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빠는 선호하지 않지만, 아이들과의 동질감을 위해서 너는 입술을 빨갛게 하는 행위를 선호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은 자녀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이중적인 메시지라고 보입니다.

마녀고양이 2017-05-12 23:15   좋아요 0 | URL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는 부모의 다양한 메시지는 자아와 타인, 세계상의 기초가 되니까요. ^^

이렇게 얘기하면서,
제가 코알라에게 하는 이중적인 메시지는, 아하하, 엄청납니다. ㅋ

마립간 2017-05-13 16:48   좋아요 0 | URL
저는 모순적 (상보적) 상황을 확인하는 지식적 접근에 머무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면, 병자호란의 주화파, 주전파 모두 의미가 있고, 개화기 시절의 개화파, 위정척사파 모두 애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중적이기도 하고, 딸과 그런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7-05-14 23:27   좋아요 1 | URL
이중구속 즉 더블 바인드에 해당하는 의사소통 부모의 자녀가 얼마나 큰 심리 손상을 입는지 자주 확인해서 제가 예민했을 수 있습니다. 마립간님의 언어와 행동이 그 정도로 불일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해하실까 하여...

마립간 2017-05-15 07:57   좋아요 0 | URL
아! ‘이중구속‘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상보성보다는 인지부조화에 더 가깝군요.
 

 

* 身邊雜記 170429

 

- 맨스플레인 Mansplain의 대척말

 

안해와 이야기하던 중 내가 안해에게 ‘맨스플레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맨스플레인의 (내가 생각하는) 남녀 대척어가 무엇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우먼플레인 Womanplain (= woman +explain)은 아니다. 이것은 여자의 성-정조 개념이 남성의 성-정조 개념과 대척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경제력이 대척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안해가 제시한 단어는 모두 틀렸다고 했다. 답은 ‘...’

 

안해는 이런 이야기 괜히 알라딘에 올려 분란 紛亂을 일으키거나 미움 받지 말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런 것으로 미움을 받는다면 내가 알라딘에서 미운 받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아래 궁금증 때문에 글을 남긴다.

궁금증] 1) mansplain의 남녀 이분법은 정당한가. 2) 남자의 일반화는 정당한가?

 

통찰에 대한 선취권을 위해 ; 답은 ‘W*********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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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7-04-2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우쭐거리면서 남성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은 합당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자체가 성차별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립간 2017-04-29 12:51   좋아요 2 | URL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글쓴이 ‘리베카 솔닛‘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 이 책에 유래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며, 지금은 (거의?) 보통 명사 취급을 받습니다.

syo 님의 대화글에도 말씀드렸지만, 개인을 보는 관점과 집단을 보는 관점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성(이라는 집단)의 성향에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려 한다는 반례가 위 명제의 반증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2017-05-0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2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7-05-0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omanplaint( Woman + Complaint)입니다.
 

 

* 身邊雜記 170428

 

- 반려악기 樂器 2 ; 바이올린

 

서재 지인의 글에 드럼 연습실이라는 댓글 남겼다. 그런 글을 남기고 더 열망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일정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것이 바이올린 연습이다. 사진의 바이올린은 20153월에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에게 (나의 투사 projection) 악기 하나 정도는 익히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는 아이가 피아노를 고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바이올린을 골랐다. 아이는 방과후학습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아이의 연습용 바이올린 1/4을 구입하면서 내 것도 함께 구입했다. 그 가게에서 가장 싼 바이올린으로. 나는 한번 붙잡게 되면 꽤 긴 시간으로 매달리니, 내가 함께 하면 아이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나 역시 현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열망했던 악기는 거문고였으나 일단 잠정적으로 미루고( 어쩌면 포기?), 바이올린으로.

 

특별히 배우는 것은 아니고 아이가 연습할 때 함께 연습했다. 활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동요를 연주했는데, 클래식 소품을 연주하려니 한계에 부딪힌다. 지금은 아이에게 활 쓰는 법을 코치받고 있다.

 

현악기에 주려했던 이름은 주희 朱喜. 이 아이가 주희가 될 듯 싶다.

 

뱀발] 아이가 자신에 악기의 이름으로 주희하고 싶다고 한다. 바이올린 4/4를 구입하게 되면 그 악기가 주희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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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28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마립간님 따님께서 바이올린으로 대성하면 이 악기는 ‘주자(朱子)‘가 되겠군요^^:

마립간 2017-04-28 13:50   좋아요 1 | URL
딸아이가 바이올린으로 성공을 하면 주자朱子는 아이의 호로 악기 이름은 朱喜에서 朱熹로 바꿔야겠네요.^^
 

 

* 身邊雜記 170422

 

- 결혼이 목표

 

"이 청년 결혼시키는 게 제 목표입니다" 심상정

결혼이 위험 부담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249&ref=nav_mynews

 

위 신문기사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야?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가정 경제원리와 국가 경제원리는 다르다. 가정 경제원리는 잉여이고, 국가 경제원리는 균형이다. 결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관점에서 결혼은 선택이다. (나 역시 비혼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었고, 후배에게는 결혼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사회의 관점에서는 결혼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그렇게 때문에 결혼률이 높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요인, 악조건의 환경에서 결혼률이 높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용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한된 사회자원으로 사용하는 데는 공정-차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사회자원(, 여기서는 국가재정)을 결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비혼 1인 1가구를 지원하는데 사용할 것이냐’ 명백하게 수혜자는 구별되게 마련이다.

 

위 기사를 읽어 보면 비혼을 차별하려는 의도는 없다. 의도가 없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Black face는 의도와 상관없이 흑인 차별로 여긴다. 성희롱의 의도가 없다고 해서 성희롱이 아닌 것이 아니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는 읽지 않았다. 비혼인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뭘 어쨌다는 것이 아니다.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 "결혼이 위험 부담인 시대를 사는 이 청년들 결혼시키는 게 제 목표입니다" (여기서의 청년은 gender를 구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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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4-22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비약 아닐까요? 4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이 하고 싶다고 밝히며 최저임금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청년을 결혼 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발언의 취지는 최저임금 올리겠다는 것이겠고, 워딩 그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이 청년˝을 결혼시킬 수 있는 사회에서부터 시작해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청년들을 결혼시키는 사회까지 열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해도, 청년들을 무조건 결혼시키는 사회라고 말한 것도 아니구요.

결혼하려는 사람이나 결혼을 한 사람에게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말 또한 최소한 저 기사엔 없잖아요? 최저임금 이야기 같은데....

저는 이 기사에서 마립간님처럼 비혼을 차별하려는 의도를 못 읽었을 뿐더러 비혼을 차별한 사실이나 결과도 못 읽었는데 제가 오독했거나 뭔가를 놓친 걸까요?

마립간 2017-04-22 14:41   좋아요 0 | URL
제목이 차별적이라는 것이죠. syo 님의 의견대로라면 기사 제목이 ‘최저임금 보장‘이 되어야죠.

어느 여자 배우가 ‘여배우‘라는 단어는 여성혐오라고 주장했습니다. 배우가 남성 기준이며, 여배우는 여자 차별이고 여자 차별은 여자 혐오라는 논리입니다. 이 주장이 비약이라면, 위 글도 비약이겠죠.

결혼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혼에 대한 차별이다. ; 이것은 제 개인적이 생각이 아니라 사회 일각의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

Black face를 검색해 보시면 알겠지만, 의도나 서술된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명제 자체가 차별로 여겨지는 것도 있습니다.

충분히 제 의견이 설명되었는지 모르겠네요.

syo 2017-04-22 17:01   좋아요 0 | URL
그, 말씀하신 것이 전혀 이해가 안되는데요.

차라리 심상정의 말 자체에 비혼 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말씀하시면, 동의는 못하더라도 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겠는데, 기사 제목에 문제를 제기하시는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기사 제목이 ‘최저임금 보장‘이 되어야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구요. 저 제목은 심상정의 말을 인용한 거잖아요? <홍준표, ˝설거지는 여자의 일˝>이라는 제목도 제목 자체 여성 차별이라는 말씀이세요? 예로 드신 여배우 이야기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설사 저 여배우의 논리에 비약이 있다 하더라도, 제겐 마립간님의 논리가 훨씬 비약적으로 뛰었다고 보이거든요.

결혼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혼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마립간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사회 일각의 의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그 사회 일각인데요, 저는 비혼주의에, 현재 이 나라의 결혼 제도 자체가 건전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래디컬에 속하는 편입니다. 근데 제 눈에는 저 기사 제목에서 결혼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을 차별로 여기는 태도가 읽히지 않습니다.

음, 저는 이 ˝비혼˝이라는 용어 자체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혼인이 있고, 혼인의 부정으로 정의된 용어라는 것이 별로 탐탁치 않습니다. 이를테면 동성애:이성애:양성애 같은 무언가의 부정이 아닌 방식의 용어가 새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결혼주의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소수인 비혼주의자로서 제가 봐도 이렇게 용어가 마음에 안드는데, 남녀 성비가 거의 1:1에 가까울 정도인 배우집단에서, 남자배우는 ˝배우˝, 여자 배우는 ˝여배우˝라고 불리는 것이 어떻게 ˝배우˝라는 용어를 남성기준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명제 자체가 차별로 여겨지는 것도 있다는 말씀에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저게 그거냐는 거죠.

물론, 비혼주의자인 제가 저 제목에서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차별이 없는 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그건 논리도 뭣도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스스로, 남성이며 비혼주의자니까, 여성차별보다는 당사자 문제에 해당하는 비혼차별에 더 감수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지금 이 사안들에서는 여성차별만 느낄 뿐 비혼차별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저게 그거라고? 저게 그거라고? 하면서 이렇게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쭙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마립간님은 지금 ‘배우‘라는 단어가 남성 기준으로 소비되고 여배우는 차별적 용어라는 주장에 비약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맞지요? 마립간님은 위에 말씀하신 비혼차별의 논리가 비약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니까요. 저는 두 논리의 비약관계가 같이 간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같이 간다고 생각하시는 마립간님께서 비혼차별을 느끼셨으니 마립간님도 여배우 발언에 관련해서는 저와 같은 의견이라고 보이는데, 그건 제가 틀렸나요?

마립간 2017-04-22 19:16   좋아요 0 | URL
쉬운 답변부터 말씀드리면 ‘여배우’가 여성혐오냐고 물으면 저는 ‘아니요’라고 답하겠지만, 이는 ‘예-아니요’ 답변에서 0-100%의 의미가 아닙니다. 100% 여성 혐오가 아니라고 하려면 ‘Black face’ 역시 인종차별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앞의 글에서 ‘black face’를 인종차별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즉 논리와 상관없이 당사자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이지요. ‘여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이 정상, 비혼의 차별 ; 경제 철학에서 ‘잉여의 원칙’과 ‘균형의 원칙’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느냐의 질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정상이기도 하고 정상으로 보는 것이 차별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실질적 5명 중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 후보의 관한 기사에 ‘결혼이 목적’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기사 제목입니다. 제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옳은 것‘이죠.

생산적인 댓글 대화가 되기 위해 제 의견을 (인정, 용납과 관련없이)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할 의사가 있습니다. 더 설명이 필요하다면 다시 답변-댓글을 달겠습니다.

syo 2017-04-22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 답변도 너무 어렵습니다ㅠ 조금만 더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음, 여배우와 관련한 제 질문이 모호했는데, 그러니까 제가 궁금해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저 여배우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비약이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하고, 여배우의 발언에 공감하는지 두 가지였는데, 논리와 무관하게 당사자의 감정을 존중한다고 후자의 질문에는 대답을 해 주신것 같고, 전자는 어떻게 되나 해서요. 여전히 마립간님은 저 기사의 제목을 비혼차별로 보는 것이 비약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느끼고 있고, 저 여성의 발언 또한 비약은 아니라는 말씀이신지요.

그, 두번째 결혼의 정상 비정상 말씀에서 ‘잉여의 원칙‘과 ‘균형의 원칙‘이 뭔지 자체를 모르겠어요. 검색했는데도 막 부동산 가격 이야기 나오고..ㅜ

아마 그 다음에 말씀하신 ˝결혼은 정상이기도 하고 정상으로 보는 것이 차별이기도 하다.˝는 말씀의 근거가 되는 이론이겠지요? 근데 저는 그게 궁금한 것이 아니에요. 저는 결혼을 정상으로 보는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립간님처럼 ‘결혼은 정상이기도 하고 정상으로 보면 차별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보다 차별로 보이는 발언에 더 강하게 반대할 의지가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기사제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립간님은, 저 제목을 보고, ˝뭐야, 누구 맘대로 누굴 결혼식장에 집어 쳐넣겠다는거야? 결혼 안하고 사는 사람은 그럼 뭐, 어쩌란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실질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 후보는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청년을 결혼시키는 목적을 지니면 안 되는 건가요? 심지어 그 결혼이라는 말이 저 청년을 결혼식장에 집어쳐넣는게 목표라는 게 아니라,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말의 에두른 표현이라는 것이 내용상 명백한데요.

저도 이 대화와 별개로 며칠 전에 저 기사를 직접 읽었는데요. 이 청년 결혼시키는 게 목표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이 청년‘이 누군지 궁금해져서 클릭했거든요. 읽어보니 주구장창 주장하던 최저임금 이야기였구요. 모든 청년들의 결혼을 장려한달지, 결혼을 해서 애를 나아야 이 사회가 앞으로 나간달지 이런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고, 오히려 마립간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신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가 저 기사의 요지라고 자연스레 파악됐어요.

그 내용을 전달하기에 저 제목이 직접적이지 않을수는 있지만, 맹목적으로 결혼이 목적이라고 읽히는 제목도 아니지 않은가요?

마립간 2017-04-23 07:54   좋아요 0 | URL
제 입장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댓글로 이어 가기에는 내용이 많네요.

시간 나는 대로 페이퍼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