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편집 후기 여름, 책
에밀리 헨리 지음, 이미정 옮김 / 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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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약에 말이야. '여름 편집 후기'가 '로맨스 소설'이라는 홍보로만 접했다면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만약'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붙이지 않더라도 지금의 나는 로맨스 소설에는 관심이 없다. 그 유명한 폭풍의 언덕 - 이 책에서 비유적으로 표현되는 히스클리프라는 이름때문에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과 오스틴의 여러 작품들을 읽었지만 현시대로 옮겨온 '본격' 로맨스 소설은 언제 읽어봤더라... 하게 된다. 그런데 집어든 소설이 로맨스 소설이었다니!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로맨스 소설의 그 흔한 공식에 따라 찰리와 노라의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 싶었고, 역시나 그 공식에 따라 여러 변주가 담기겠지만 노라의 동생 리비의 가정 역시 행복을 찾았습니다,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기에 책의 분량은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았다. 예상되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짧고 굵은 소설과 예상되지 않아서 더 몰입하게 되는 기나긴 이야기책도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도 많은데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이리도 길게 잡아두고 있다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라의 말처럼 - 소설의 주인공은 당연히 클리셰 범벅인 인생이겠지만, 그 역시 현실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노라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 다같이 클리셰 범벅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깊이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여름 편집 후기,는 좀 더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내가 읽기에 찰리와 노라의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노라와 리비 자매의 이야기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크게 느껴진다. 결국 모두는 모두의 행복을 바라고 있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행복을 유지해나간다고 믿는 사람과 그 책임감이 행복을 빼앗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뒤범벅이 되는 순간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역시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 속 찰리와 노라가 서로를 좋아하기때문에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지만 사랑하게 되면서 더욱더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심을 버리게 되는 것처럼.


내 취향이 아닌 로맨스 소설이라고 했지만, 또한 진부한 클리셰의 반복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는 나름의 클리셰를 뒤집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내어줘야하는 등가교환의 법칙같은 세상살이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 소설 속 소설에는 그 원칙대로 이어져가는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 여름 편집 후기에는 오래전에 이미 많은 것을 내어주는 인생살이였기에 그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처럼 행복한 이야기로 끝을 맺어서 아쉬움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또 다른 로맨스 소설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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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지만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의 한 때, 시간죽이기에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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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맥락이라는 이름의 노이즈를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때.
그럴 때는 쉬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지쳤을 때는 쉬자. 그리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회복시키자. 책 같은 건 읽지 않아도 좋다. 취미 같은 건멀리해도 좋다. 힘겨울 때는 무리해서 교우 관계를 넓히지않아도 좋고, 지쳐 있을 때 억지로 새로운 것을 먹지 않아도 좋은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리고 회복한 뒤, 새로운 맥락을 받아들이고 싶어졌을때 다시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반신으로 일하기‘가 당연한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런 사회야말로 ‘일하고 있어도 책을읽을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진 타자의 맥락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맥락은 멀리 떨어져 있다고는해도 나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자기와 연결될 수 있는 맥락일 수도 있다.
간혹 보면 ˝책이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즉, 지금 당장은 자기의 맥락•과 곧바로 이어질지 어떨지도 모를 만큼 멀리 떨어져 있을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의 지식은 모두 언젠가는 어딘가에서 내게로 이어져 온다고 생각한다. 타인은 자기와 다른 인간이지만 그래도 자기에게 영향을 주거나 혹은 자기가 영향을 주게 되는 것과마찬가지다.
멀리 떨어진 타인 또한, 언젠가의 나와 이어지는 맥락에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시 책 읽기란 어딘가에서 나와 관계를 맺을지 모르는 맥락을 아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일과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일하면서 일하는 것 이외의 맥락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 것. 그런 사회야말로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일하고 있어도 일하는 것 이외의 맥락이라는 노이즈가 들리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일하고 있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288-289

새로운 맥락이라는 이름의 노이즈를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때.
그럴 때는 쉬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지쳤을 때는 쉬자. 그리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회복시키자. 책 같은 건 읽지 않아도 좋다. 취미 같은 건멀리해도 좋다. 힘겨울 때는 무리해서 교우 관계를 넓히지않아도 좋고, 지쳐 있을 때 억지로 새로운 것을 먹지 않아도 좋은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리고 회복한 뒤, 새로운 맥락을 받아들이고 싶어졌을때 다시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반신으로 일하기‘가 당연한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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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슈이치의 [어른들은 무엇을 읽고 있나:성인의 독서 범위와 내용]에 따르면 최근 수년 동안 독서량이 '줄었다'라고 대다한 사람(3.5%)가운데 SNS의 영향을 든 사람(6.2%)보다 "회사일이나 집안일로 바빠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사람(49%)이 훨씬 많았다. 

스스로 독서량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독서량 감소 원인으로 '회사일이나 집안일로 바빠서'라고 하니, 이 책 서장에서부터 줄곧 이야기해 온 것처럼 '일을 하면 책을 못 읽게 되는' 현상 그 자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독서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독서를 '오락'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정보'로서 파악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독서 얘기는 아니지만, 이나다 도요시는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에서 영화 감상을 '정보'로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나다는 현대인의 영화 감상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감상물-감상모드

오락-소비물-정보수집모드

이런 구분이 사람들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보다'와 '알다'는 다른 체험이라는 것이다. 이나다는 빨리감기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목적은 '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독서-노이즈가 포함된 지식 얻기

정보-노이즈를 제거한 지식 얻기

(노이즈=역사,다른 작품의 맥락, 예상하지 못한 전개)

272-274




독서란 '맥락'속에서 자아내는 것이다. 예컨대 서점에 가면, 그즈음 신경 쓰고 있는 주제나 관심사 따위에 따라서 눈길 가는 책이 달라진다.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 일에 도움이 될 지식을 찾을지도 모르고, 집안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 해결에 도움이 될 책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는 것은 자기가 신경이 쓰이는 '맥락'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에는 여러가지 '맥락'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좋아하는 작가라는 맥락을 발견하거나, 좋아하는 장르라는 새로운 맥락을 찾을지도 모른다. 단 한 권의 독서라 하더라도, 그 책 속에는 저자가 살아온 맥락이 가득 차 있다. 

책 안에는 우리가 갈구하고 있으면서도 그 욕망조차 미처 알지 못하는 지식이 존재한다. 

지 知는 언제나 미지 未知이며, 우리는 '무엇을 알고 싶은지' 모른다. 무엇을 읽고 싶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 타자의 맥락에 접할 수 있다.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진 맥락에 접하는 일, 그것이 독서인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란 새로운 맥락을 만들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에게서 떨어진 곳에 있는 맥락을 그저 노이즈라고만 생각해 버린다. 노이즈를 머릿속에 넣을 여유가 없다. 자기와 관련된 것만을 갈구하고 만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하고 있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일 이외의 맥락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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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나 진실을 좋아해."
"누구나 항상 그런 건 아냐. 때로는 진실이 개떡 같아서 모르는게 나아."
"착각 속에 사는 것보다는 진실을 아는 게 항상 낫지."
"그래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라는 게 있다고."
"아, 그거." 찰리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고개를 끄덕인다. "작가의 책이 마음에 안 들어도 점심 식사는 하고나서 말하는 거?"
"그런다고 죽지는 않거든."
"죽을 수도 있지. 휘태커 노인이 그랬잖아. 비밀은 독약이 될 수도 있어"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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