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술가와 걷다 - 나치 시대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이현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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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는 어떤 문화도 만들 수 없지만, 문화로는 정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문화로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나는 1941년과 1943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군에게 폭탄 세례를 받은 헤센 주립도서관의 소장도서를 기억하는 전시였다. 한쪽에는 카셀에 떨어진 폭탄 세례 속에서 가까스로 구해낸 책들을 불에 그을린 채로 진열했고, 다른 한쪽에는 나치가 불온도서라며 불태운 책들을 나무토막에 조각하여 전시했다. 책도 나무도 없는 세상에서 인류의 생존이 가능할지 반문해볼 기회였다. 다른 하나는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응답이다. 브라이언 융겐에게 미술은 인간 중심의 문화가 아니다. 그는 울타리를 쳐놓고 개와 동행하지 않은 인간에게 출입을 불허하는 전시장을 만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인간 아닌 존재를 배제하는 세계관에 갇혀 사는지 깨닫게 되며, 지구를 나눠 쓰는 타자에게 응답하며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문화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를 가능케 하리라"(297-299)

 

조금은 길지만 저자의 에필로그에 적힌 글을 옮겨적었다. 긴 글을 짧게 요약하느라 선뜻 이해가 안될지 모르겠지만 첫문장에 대한 이해를 한다면 나머지 글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독일 미술가와 걷다]는 독일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그 부제- 나치 시대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에 조금 더 정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나치의 편의와 이용가치에 따라 권장되는 예술이 있는 반면, "있지도 않은 독일적인 예술의 순수성을 더럽힌다는 명목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감시하고 배제했다"

서문에서 저자는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를 언급하는데, 나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민족주의자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경식 선생의 에세이를 통해 처음 접한 그림이어서였을까, 디아스포라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나치는 이데올로기 선전도구로 이용하였고 그로인해 현대 독일인들은 나치의 화이트리스트 작가들을 외면하게 되어버렸다. 이데올로기로 인해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예술가, 문인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랜 세월 외면당하거나 그들의 친일행적이 가려져온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쨌거나 저자는 이 책에서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작가들의 작품과 삶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는데, 사실 내게 낯익은 이름은 콜비츠와 바우하우스 정도였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도판으로 실려있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려니 낯익은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렘부르크의 조각이나 키르히너의 그림들, 딕스의 원색적인 사실감이 드러나는 그림은 특히 더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다. '퇴폐'라는 언어의 개념때문에 '퇴폐미술전'이라고 하면 순간 거부감이 먼저 생기는데, 나치 시대에 그들이 만들어 낸 블랙리스트라고 이해를 하면 오히려 왜 퇴폐미술전이 그리 인기를 끌었는지 이해가 된다.

특별히 독일 미술가,라고 해서 글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나치즘으로 인해 훌륭한 자국의 현대미술가들을 억압했으며 독일 현대미술의 발전도 더디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는동안에는 사실 독일의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보며 예술서적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저자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정치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없지만 문화로는 정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며 다시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나 역시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은연중에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모두가 쉽게 접근하며 볼 수 있는 판화작품을 고집한 콜비츠의 작품과 그녀의 작품에 녹아든 평화 사상은 그림 하나로 수많은 이야기와 외침을 농축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욱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니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책을 들고 독일 미술가와 함께 독일 미술관을 순례하는 기분으로 다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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