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고 이 느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하고 있는데 책표지가 눈에 띈다.

"그냥 '사실'일 뿐이지"

그렇지, 여자라는 생물, 그냥 사실일 뿐인 이야기. 그런데 그 사실을 보고 느낀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을 뿐인데 어쩌면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는 이렇게도 한결같이 공감하지 않을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일까.

이번 이야기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물론 중간에 그녀의 이야기에 의하면 나는 남자일까, 라는 생각을 한번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가볍게 킬킬거리면서 맞다, 맞아 하다가 문득 씁쓸하거나 행복해지거나 추억을 떠올리거나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거나. 아니, 그러고보니 이건 그냥 나의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

 

"흔히 듣는 말 중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하는 것도 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에 이어지는 말을 적어보라. 그런 시험이 있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로 태어났으면..... 생각나지 않는다" (150)

 

생각해보니 한때는 여자라는 것이 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힘에 밀리는 일이 생길 때, 성적인 희롱의 대상이 되어있을 때, 사상이나 의식, 삶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이쁘고 늘씬한 것이 여자의 최고라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지만 실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시작했을 때...

이제는 젊지도 않고 원래 이쁘지도 않은 내가, 또한 결혼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낳아본적도 없는 내가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똑같지는 않은데서 약간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이다.

 

언젠가 마당에서 아이를 안은 친구와 이야기중이었는데,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하자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 않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조금 충격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유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엄마'의 모습인 것이었다. 또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다 먹은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려있다가 엄마의 몸 속으로 덥석 손을 집어넣고 가만히 있는데 아이가 엄마의 가슴을 만지며 좋아하는 모습이 보인다. 같은 테이블에 다 여자만 앉아있어서 엄마가 그냥 뒀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 역시 엄마이기에 아이를 위해 그냥 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내가 그와 같지는 않기 때문에 더 정확히 말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마스다 미리 역시 자기 자신의 현실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그 순간들에 느끼고 깨닫게 되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 큰 공감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뜻밖의 깨달음을 준 이야기 하나. '이해심 있는 화장실'과 '이해심 없는 화장실'. 화장실 휴지걸이 주변에 소지품 올려놓을 공간이 있고 없고에 따라 편리함이 달라지는데, 이해심 없는 화장실을 만나면 분명 이건 남자들이 생각한 화장실 구조일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이용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반대인 경우도 있으려나?'라는 물음을 던진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몰라 답답해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도 그럴것이다. 아마도 그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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