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비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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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 이유를 콕 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그 이유중 하나가 이런 은유적인 그림때문만은 아니다. 그림을 보면 확실히 피에타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거룩함과 희생과 슬픔의 상징인 피에타와 달리, 이 그림의 내용은 죽어가는 창녀를 품에 안은 모습이다. 거세당한 남자가 생계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가 역겹다 라는 말 한마디이거나 신성모독, 혹은 또 다른 비유와 상징으로 쓸 수 있는 것이기나 할까? 나는 사실 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 수많은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어서,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큰 위화감없이 지나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알수없는 불편함은 뭐라 설명할수가 없다.



내가 성경이야기는 흘려들었던 것으로라도 알고 있지만 코란은 잘 알지 못해서 책을 읽는 동안 이슬람의 이야기인지 작가의 상징적인 비유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한 것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무지함과 작가의 글을 혼동하며 읽을수밖에 없었고, 겨우 성경의 흐름과 비슷하면서도 딴판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대해서나 알아챌뿐이었다.



주말동안 책을 읽으면서 눅눅하고 처지는 날씨와 비례해서 내 마음도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가라앉았다. '하비비'라는 말뜻은 '나의 사랑'이라고 하는데, 성경의 아가서처럼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을 온몸으로 사랑하는, 서로의 모든 것을 완전히 사랑하는 도돌라와 잠의 이야기이다. 가슴 설레며,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라 기대하며 읽는 사랑이야기가 아니어서 내 마음은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하드. 가장 위대한 자하드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했던가.


그리고 간혹 튀어나오는 이런 그림 한 장은 무더운 여름날, 땀을 삐질거리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내게 비수처럼 다가왔다.

"홍수만 아니라면 다른 재해는 여전히 올 수 있다는 뜻일까?"


필경사에게 팔려가고 다시 노예로 끌려가던 도돌라가 어린 잠을 데리고 도망간 사막, 그곳에서 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신화와 전설같은 이야기를 따라 그들의 여정이 펼쳐진다. 그리고 끝내 둘은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은 이미 그들이 지내던 사막이 아니다.
예전에 살던 사막도 낙원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도돌라와 짐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함께하는 사막이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 사막을 잊고 살수는 없을 것이다.

하비비, 나의 사랑이 이 사막을 지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나의 마음은 조금씩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사막을 거쳐 또다시 도시로 돌아간 도돌라와 잠의 이야기는 여전히 비극적이고 두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끄집어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이 대서사를 다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은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하비비, 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 내가 사랑을 모른다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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