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0년 6월
구판절판


"우리 딸, 나는 절대 이런 포즈를 취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 특별한 무언가를 타고 태어난다더니."(478)

사토리얼리스트의 사진들은 스콧 슈만이 가장 아끼는 사진들만을 엄선한 아름다운 사진집,이라고 한다. 사토리얼리스트는 '자기만의 개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신사'를 의미하며 그들에게는 자기 존중감과 스스로의 품위를 패션으로 완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이 그리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짬이 났을 때 훌러덩 책장을 넘기며 뚝딱 책 한권을 넘겨버려야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의 사진들을 읽고 있었다. 많은 사진들을 술렁거리며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을 다 읽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시대의 감각을 넣은 패션사진일꺼라고만 예상을 했는데, 이건 진짜 사토리얼리스트인 것이었어.

역시 기억에 남는 것은 옷보다 미소인 듯 하다. 사진기만 들이대면 얼굴이 굳어버렸다는 그녀에게 마지막 컷을 외치고 사진촬영이 끝났음을 알린 순간의 미소를 포착한 마지막 컷이었다고 하는 이 사진은 그녀의 스타일을 훨씬 더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미소가 있었다.

이 사진은 '아버지의 양복'이라는 타이틀을 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털실로 짠 속바지를 입는 어머니는 살이 계속 빠지면서 엉덩이뼈에 속바지가 자꾸 헤어져서 천을 덧대 기워입으시곤 했다. 겨울이 다 지나갈즈음 속바지를 거꾸로 입으셨길래 뒤집어졌다 말씀드렸더니 덧댄천도 닳으려고 해서 일부러 뒤집으셨댄다. 우리의 부모님은 다 그런걸까?
단지 아까워서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옷은 색이 바래 입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도 못 버리고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 오래되어 낡은 옷이 지나온 세월은 단지 낡음의 의미만은 아닌것이다.

이제 올리는 몇장의 사진들은 스타일이 맘에 들어서라기 보다는 뜻밖의 의외성으로 그냥 맘에 들거나 기억에 남는 사진들이다.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유대교 종파의 하나인 하시디즘에 속한 이 신사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했을 때 그는 철저한 종교생활처럼 진지한 바른생활 자세가 아니라 할리우드의 건달들이나 하는 식으로 모자를 눌러써서 눈을 가리고 공중전화박스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었다. 어떤 옷보다 서 있는 폼이 그에 관한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98)

나는 이 사진이 맘에 든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니까? 그가 잘생겼기때문에?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전체적으로 까맣게 챙겨입은 그의 까만 가방에 너무도 이쁜 장미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하.하.

5달러짜리 의사 가운, 스톡홀름에서.

"내가 이 청년을 본 건 스톡홀름의 매우 '힙한'지역이었고, 보는 순간 모델인 줄 알았다. 프라다 패션쇼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나는 얘기를 나누며 그가 입은 코트를 계속 흘긋거리다 결국 프라다인지 질 샌더인지 물었다. 깔끔한 라인이며 단순하면서 세련된 색감은 이 두 브랜드의 특징이다. 그는 벼룩시장에서 5달러를 주고 산 의사 가운이라고 말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의사 가운은, 아니 적어도 그런 색깔의 의사 가운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직접 염색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이 코트를 입고 그렇게 멋질 수 있었던 이유는 코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의 느긋함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그 가운을 입었다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훔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244)

빽구두의 신사가 아니라 하얀 부츠의 여인이다. 이런 자태로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왠지 자전거를 탈 때는 원래 이런 복장이라야 하는거야,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좀 색다른 특이한 치마네,라고만 생각하고 그리 특별한 것이 없는데? 하며 지나쳐 간 사진.
그런데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버지 와이셔츠를 이용해 만든 치마인것이다.


누구나 저마다 특별한 걸 타고났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패션테러리스트라고 해도 될만큼 스타일을 구기며 다니지만 그러한 나 역시 나만의 개성으로 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생각하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울리는 멋있는 옷이라해도 내가 입으면 옷의 멋이 사라진다거나 그 누가 입어도 우스꽝스러운 옷이지만 내가 입으면 맞춘듯이 어울리는 옷 스타일이 있기도 한 것처럼.

순간 떠오른 사진들을 찾아 보면서 책을 뒤적이다 보니 또 맘에 드는 사진들이 나온다. 분위기와 색상의 조화를 담은 맘에 드는 스타일은 또 따로 있었고. 몇번씩 펴볼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말 역자의 이야기처럼 반년쯤 후에 이 책을 다시 펴들고 사진을 읽듯이 보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사진을 골라낼지 궁금해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