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하는 사람이 위험에 직면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190)

이 책을 읽는 내내 편하지 않았음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거짓된 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도 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적나라한 모습을 봐야했으니까.
나는 언제나 진실이라는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내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진실'이기 때문에 그것에 직면해서는 결코 고개를 돌려서는 안된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진실을 직면한다는 것과 그에 더하여 끔찍한 증오를 만나게 된다면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세상에 대해 환멸과 좌절을 느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상상하던 끔찍함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는가를 느꼈다. 과연 진실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인식에 관한 것이다. 또는 인식의 결핍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직해져보자. 우리의 경제, 사회체제는 지구를 죽이고 있다. 다른 생물은 차치하고 인간만 보더라도 우리의 활동은 전례없는 궁핍을 만들어내고 있다. ... 우리는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명백한 부정의에 대해 누군가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지적을 하면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끝까지 공격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공동의 미래를 파괴한다. 정복에 저항한 원주민 부족들을 사람들은 얼마나 열광적으로 억압해왔는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강하게 저항하는 이들에게 똑같은 결말을 안겨주기 위해 사람들은 얼마나 그들을 열성적으로 공격하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게 되었는가'(8-9, 서문)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끔찍한 세상의 적나라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때로는 증오하라고 부추기는 듯, 데릭 젠슨은 도전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그런 인식조차 없이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이런 끔찍한 세상의 적나라함을 보여주고, 이제 그 피비린내나는 역사가 바로 잡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어쩌면 더욱더 끔찍하고 증오로 가득차서 교묘한 피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도대체 그는 왜 증오를 부추기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하는가?

'이 책은 하나의 무기다. 잔학 행위에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손에 쥐어진 총이고, 그 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메뉴얼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식을 묶어두고 지금 같은 세상에 우리를 묶어두는 밧줄을 자르는 칼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성냥이다.'(11)
문득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라는 성서말씀이 떠오른다.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동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인 예수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데릭 젠슨의 말이 일맥상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사실 책을 읽었음에도 나는 '거짓된 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 얘기하기가 힘들다. 다만 어렴풋이 잡히는 윤곽만을 보면서 이 끔찍한 세상을 바라보려고 애써볼뿐이다. 물론 지금도 외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있지만).

마이클 무어의 영화(볼링 포 콜롬바인 bowling for columbine)에서 희화적으로 그려졌지만 - 나는 그 영화를, 끔찍한 진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풍자적인 표현과 간단 명료한 진실의 접근에 마구 웃으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  침략과 약탈의 역사 위에 세워진 북아메리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8mm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져 그 인기를 실감케했던 에미넴의 화이트 아메리카 (white america)도 거친내용과는 달리 역동적이면서 경쾌한 리듬으로 풍자된 백인들의 아메리카에 대해 웃으면서 노래를 듣곤했었다. 나는 세상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인식속에서 구역질날만큼 끔찍하고 증오에 가득차고 온통 피바다였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씌여졌길래 그리 끔찍하다는 이야기를 자꾸하는지 궁금해지려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감상적인 리뷰를 읽기보다 직접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계급, 인종, 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가 이 책의 부제이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씌여졌지만 - 간혹 너무 광범위하고 세세한 자료 조사로 인해 내 이해의 수준을 넘어버려 이해하기가 어려울때도 있긴 했지만 - 소화해낼 수 없는 범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가끔 - 아니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아주 자주 '그래, 잔인하고 폭력적인 약탈과 침략으로 일으켜 세운 피의 아메리카 얘기일뿐이야'라고 내뱉었었다.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죽이고 있는 것이 피의 아메리카뿐은 아닐진대 나는 역시 그렇게라도 생각하면서 또 진실을 슬그머니 빗겨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괴물들이 있기는 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위험한 것은 평범한 인간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프리모 레비)
우리는 괴물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결코 기계인간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지금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진실을 직면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지구 환경에서 마음껏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위해 세상에 불을 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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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1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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