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라는 말은 익숙해져있지만 사실 이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역시 죄와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외에는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런 내가 무작정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한 것이 무리였는지 모르겠다. 

그의 소설 백치의 주제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하는데 도스토옙스키가 조카딸 이바노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백치의 주요사상은 '온전히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 세상에서 '온전히 아름다운 인간은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아름다운 이상'의 모델로 간주한 도스토옙스키는 미시킨을 그와 비슷하게 그리고자 한다"(139)라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백치를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되새기기는 하지만 그 책을 읽은 적 없는 지금 현재의 나로서는 이 책을 쓴 저자의 글을 그냥 읽는 것뿐 내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알면서도 책을 꾸역꾸역 읽다보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이나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그 맛을 음미할 줄 알아야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인데.


"아름다움은 윤리학을 넘어 종교적 미학과 만나면서 의미의 지평이 확대된다. 아름다움은 진과 선이라는 추상의 영역으로부터 ‘신성한 물질성‘의 영역으로 강림하게 된다. 이 강림한 아름다움이 바로 성스러움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최고의 아름다움은 성스러움으로, 그의 소설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은 항상 초월적인 성스러움과 함께한다."(138)


물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지 않아도 이 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해하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런 이야기인가보다,하며 술렁술렁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좀 한심해보인것은 사실이다. 

두리뭉실하게 정리해보자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고자하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의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아닌데 - 아니,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사상에 더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으니 천천히 그의 문학작품에 인용된 그림에 대한 생각도 비교해볼 수 있고 그림뿐 아니라 문학작품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움'의 사상에 대해 고찰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좀 많이 아쉽다. 그 유명한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 담겨있는 그림의 의미뿐만 아니라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을 보는 시선 역시 새삼스럽다. 아무래도 익숙한 그림에 더 눈길이 가게 마련이고 그에 대한 비유와 작품과의 연관이 더 쉽게 이해되고 기억에 남기는 하겠지만 이 책에서 그림과 관련된 글을 떠올리게 된다면 야코비의 [죄수들의 휴식]에 대한 사실적인 언급과 그 그림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사실적인 비평이다. 그림에 묘사된 세부적인 부분들 - 발목의 쇠고랑이라든가 죽어가는 죄수의 몸에 보석이 남아있을리 없으리라는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단순히 그런 사실적인 부분들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고차원의 리얼리티"가 담겨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 그림을 바라보는 도스토옙스키의 시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도스토엡스키의 문학작품을 읽으며 직접적으로 언급된 미술작품을 다시 보고 그의 문학속 인물들을 다시 살펴본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지려나.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문장의 의미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ika 2022-11-0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 그림에 방점을 두고 읽었으나 이 책은 그림이 아니라 문학작품에 방점을 두고 읽어야하지 않나,라는 생각.
뭔가 좀 집중이 안되어 아쉬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