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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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파울은 현재를 사랑했다. 현재가 아직 미래이거나 이미 과거일때는 기다려지거나 애석해하는 대상이 되지만, 그것이 현재일 때는경멸받고 낭비된다. 이 순수한 현재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매 순간 현재를 무로 만들어버린다. 현재는 시간의 바깥, 즉 삶의 바깥에만, 기억이나 글쓰기가 보기 드문 무언가를 이뤄낼 때만 존재한다. 소설 『크빈투스 픽슬라인의 생애」에서 말하기를, 연기는 고통스러운 우리들의 실존에서 솟아올라 안티몬 증기처럼 새로운 기쁨의 꽃들로 피어오른다. 그 꽃은 단지 시의 꽃, 혹은 글쓰기가 소진되어가는 이 삶에서 끌어낸 이미지들일 뿐이다. 마음의 형상들을 투영해내는 무無로부터 끌려나온 이 비물질적 공간의 빛은 구체적인 현실에 반사되어, 아늑한 집을 ˝우주의 궁륨 속에 파고든 자그마한 자기집˝으로 바꿔놓는다. 장 파울이 아주 다정히 노래했던 가족 목가는 우주적 차원을 취한다. 부부의 사랑, 집안일, 행복한 하루, 요람과 관 등 가정생활을 노래한 서사시는 무한의 씨실과 날줄에 섞여 짜인다. 시간이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리아 부츠의 전기 작가는 ˝우리 실존의 허무함을 느꼈고 그토록 보잘것없는 삶을 경멸하고 누리고 깊이 음미할 것˝을 맹세한다.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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