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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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 - 항상 먼저 있으니까요."(131)

"저 밖에는 어둠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둠이 있다.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은 언제나 빛보다 앞선다. 예전의 루는 어둠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불편해했다.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란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질문을 던질 차례이다."(501)


SF소설이라 생각하면 늘 '공상과학'을 떠올린다. 그래서 처음 굉장한 평가를 받고 있는 '어둠의 속도'를 읽을 때 살짝 당황스러웠다. 굳이 장르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SF가 붙어있으면 좀 다른 느낌이어야하지 않나,라는 선입관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글을 계속 읽다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재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고, 내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이것은 삶의 방식이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연결되며 좀 더 단순하게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되어간다.


출산 전 자폐치료가 가능해지며 더이상 자폐인이 나오지 않는 시대, 루는 마지막 자폐인 세대이다. 루를 비롯한 몇몇 자폐인들은 회사의 특수부서에서 지원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현 시대의 상황을 비추어볼 때 그들에 대한 지원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을 것임은 예상이 되고 있는 것이며 자폐인을 바라보는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루의 주위에는 그가 그저 자신들과 조금 다른 사람일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패턴을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루는 펜싱 경기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그를 해치려하는 칼을 든 돈을 단숨에 제압하기도 한다. 그런 루에게 회사에서는 자폐를 고칠 수 있다며 임상실험같은 뇌수술을 제안하는데...


루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낯이 익다. 편견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것은 낯익은 현실이지만 자폐인의 일상과 행동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를뿐이라 말해주고 있다. 아니 어쩌면 굳이 구별하려 하지 않으면 다를 것도 없어보인다. 가끔씩 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루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정말 좋았다. 루가 타인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그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는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조금 더 자폐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겠지만.


... 뭔가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풀어놓다가 잠시 멈추고 있으려니 너무 많은 질문이 뒤섞이며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자폐를 고칠 수 있다면 뇌수술을 시도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좀 비껴나 치매를 고친다면 뇌수술을 시도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그보다 좀 더 쉬운 답변이 나올 것인가. 

잠시 고민에 빠져있다가 문득, 어둠의 속도는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것 이전에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윤리적인 논의, 인간을 인간답게, 존재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다름'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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