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은 말이지,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한테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야."
 예상을 한참 빗나간 대답이었다. 뜻밖의 대답에 멍한 나를 보고 선생님은 스스럼없이 소리 내 웃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우린 소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만화, 영화로 주인공의 고뇌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내가 그러는 것처럼 고민하는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아."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철이 들기 전부터 텔레비전이나 그림책 같은 온갖 매체로 이야기를 접한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서도 주인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망설이고 고민한다.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해도 ‘큰일 났다‘, ‘혼나기 싫은데, 비밀로 해버릴까‘ 등등 숨기는것 없이 마음속 상태를 말하는 주인공들을 보고 별 자각 없이 다른사람의 내면을 접해온 것이다.
"옛날 사람들도 소설 속에서 심정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는 주인공을 만나면서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았을 거야. 자신과 똑같은 생각이나 다른 생각을 알고,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깨닫게 된 거지.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독서란 다른 사람의 사고를 더듬어가는 행위이기도 한 모양이다.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동작을 할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매우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나 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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