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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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에 대해서도 미학을 논할 수 있을까?

위작에 대한 예술적 논의는 한번쯤 지켜볼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포르노그래피에서 생각이 막힌다. 솔직히 예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는데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인 사유를 읽고 있으려니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미적인 것이라는 영역의 설정은 인간이 세계와 관여하는 방식을 이해할 때 고려해야 할 차원을 하나 더 인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귀여움이나 아름다움의 판단은 대상이 시추인지 몰티즈인지를 인식하기 위한 지성적 판단과는 다르다. 굳이 그 영역을 언급해야 한다면 감성의 영역이다. 이렇게 미적인 것은 지식이나 도덕과는 별개인 또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을 상정하게 해준다"(85)

그러니까 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며 지식, 특히 도덕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영역이라고 일컫는 것에서 더 어려움이 생긴다.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B급 정서를 이야기할 때 너는 재미없지만 나는 재미있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해,라고 한다면 B급의 미학은 어떻게 논할것인가.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었을 때 위작의 예술성은 어떻게 판단해야할 것인가. 포르노그래피는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농담과 유머에 담겨있는 예술과 도덕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공포영화의 무서움을 견뎌내며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명쾌한 답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깊이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사유는 산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명백히 도덕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가짜는 나쁜것이고 포르노그래피는 절대로 예술에 대해 논할 수 없을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반례를 읽다보면 자꾸만 헷갈리게 된다. 페르메이르 위작 사건은 이미 너무 유명한데, 위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치밀한 작업뿐만 아니라 나치에게 위작을 판매한 것이 밝혀지며 정치적인 조작으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 영웅이 되기도 한 판 메이헤런의 이야기에 더해 그가 그린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위작 여부를 떠나 예술성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짬짬이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의학의 시선으로 미술을 이야기하는 인문학서적이다. 그중 한 꼭지에 '아스클레피오스를 찾아온 여신들'이라는 작품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화가 포인터가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 싶었는데 사회적으로 음란의 시비가 두려워 여인대신 여신의 누드, 그러니까 여신의 몸을 진료하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미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포르노그래피가 될까, 예술성을 갖춘 고전작품이 될까?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그림엽서 중 하나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이라는 것은 솔직히 유쾌하지 않은 농담같은 이야기 같았다. 포르노그래피의 성차별과 폭력적인 언급은 차치하고라도 세상의 근원에 대한 예술성은 무엇일까.


농담과 유머라고 툭 내뱉지만 그것이 전혀 가볍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을 때 그것이 그저 농담일뿐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툭 던진 돌멩이에 맞아죽는 개구리처지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해도 되는걸까. 무심코 툭 던지는 행위에 도덕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불온한 것들의 미학'을 읽고 미학논쟁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져버렸다. 사실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들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사유는 명확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팔랑귀처럼 나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 같다. 어쩌면 생각의 여유없이 저자가 이야기해주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기만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찬찬히 미학,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 대해 사유를 해봐야겠다. 아, 물론 도덕성,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아야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특히 포르노그래피의 폭력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학과 예술성에 대한 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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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군 2020-12-3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짧은 문장 몇 개를 읽고 님과 같은 고민에 빠지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책 구입도 하기 전 인데요. 책 구입을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뷰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