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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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고 해도 몇가지 에피소드는 기억이 날만한데 책을 다 읽을때까지 기억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역시나 아닌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 이 암울한 이야기는 두번 읽고 싶지 않다, 라는 기억만으로는 십여년이 지난 지금 재출간으로 다시 읽어 볼 기회가 생긴 것을 외면할수는 없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정의 실현,을 말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보게 하는 작가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환야의 내용도 전혀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닌데 얄궂게도 마지막의 결말이 생각나버려서 극적 긴장감은 없었지만 이 비극적인 대 서사시의 내용이 어쩌면 더 적나라하게 우리의 현실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하게 된다.

 

"환한 낮의 길을 걸으려고 해서는 안 돼.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1권 334)

"미후유, 네 손은 더럽히지 않았다고 여기는 거야. 하지만 아니지, 너도 사람을 죽였어. 너는 나를 죽였어. 내 혼을 죽였다고"(2권 302)

 

스스로 어둠의 길을 걸어가는 그녀와 그녀에게 빠져들어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개인의 안위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행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모두 그렇게 그녀의 악행에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팜므파탈같은 마후유의 모습이 강조되기 보다는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가 당하고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순박한 이들이 사기범의 유혹에 빠져든다기보다는 그들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서 명확하게 그녀의 범죄에 대해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마후유의 악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사야 역시 처음의 시작은 대지진으로 무너진 돌에 깔린 고모부가 살아있음을 알면서도 돌을 집어들어 살인을 저지른 죄를 은폐한 것 아닌가.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했던가, 보석매장의 독가스 사건으로 미후유와 처음 마주친 형사 가토는 이후 소가의 실종 사건과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뭔가 마음에 걸리는 미해결점들을 파고 들어가며 점차 미후유의 정체에 다가서기 시작하고...

마침내 세 사람이 만나는 접점에서 이야기는 끝이면서 또한 새로운 시작을 보여준다.

이 암울한 비극을 또 읽고 싶지는 않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환야의 시작은 일본의 한신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참혹한 현장에서 시작되고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첫번째는 또한 일본을 떠들석하게 했던 무차별 독가스 살포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냥 과거의 사건으로만 묻혀버릴 수 없는 세기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것을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조금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독가스를 이용해 하나야 보석매장에서의 계획을 이루는 과정에서 스토킹 당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도 되풀이되는 문제점, 그러니까 위협을 느낀다 해도 물리적인 폭행을 당하기 전에는 경찰에 신고를 해 봐야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한때 뉴스에서 계속 언급되던 성범죄자들의 폭행시도에 대한 처벌에 대한 논란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이런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계속 읽게 하는 매력 중 하나인 것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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