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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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소설로 읽는 철학의 문제일까 싶었다. 쓰나미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점점 물에 잠기는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탈출을 해야하는 가족이 있다. 11명의 가족이 타기에는 배가 작아 8명은 배를 타고 떠날 수 있지만 나머지 3명은 남아있어야 한다. 과연 가족에게 강요된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결정이 되었든 또 다른 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서 소설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고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긴장감과 긴박함, 스릴이 넘쳐나는 가족의 앞날은, 지금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감과 겹쳐서 그런지 지구의 미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쓰나미 이후의 세계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듯 해 더 마음 졸이며 읽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니 실상은 언제나 그렇듯 세상경험 많은 이들의 눈에는 보였던 자연의 징조들은 무시되었고 괜찮다는 말만 믿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쓰나미가 밀려왔고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마디와 파타네 집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물이 빠지기 시작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며 생활에 적응해보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물이 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수위가 높아져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집마저 침수될 위기에 처해있다.

마디의 가족 11명이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자그마한 배 한 척, 그러나 배에는 8명 이상 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물의 수위는 점차 차올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에게 결단은 강요되고... 결국 세 아이를 남겨두고 부모는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집에 남겨진 세 아이는 ... 우연찮게도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중간의 아이들이다. 의외로 부모의 결정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를 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미가 도대체 뭔가. 그녀는 지금까지 파타의 무모함을, 어리석은 희망을, 말이 안되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로테를 잃어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그녀의 실책이었고, 그녀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왜 하필 로테일까? 언덕 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을 어쩌겠는가. 사무치는 슬픔을 어쩌겠는가.(178)

 

이야기는 남겨진 아이들의 생활과 떠난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집에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떠난 이들에게도 첫날은 견딜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고통과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게 되고...

그 나날들의 묘사가 세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공포감을 주고 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소설은 끝을 향해가고 있는데 도무지 이 이야기의 끝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이들 이야기의 끝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거나 그들앞에 망망대해만 펼쳐졌다, 라는 것일까봐 더 두려웠다는 것이 맞을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한박자 쉬어가지만 이야기는 끝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라는 탄식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긴장감 넘치는 가족의 고통과 시련에 공포감이 더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기 급한 독서였는데 다시 곱씹어볼수록 생각해볼거리가 너무 많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는 판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는 가치는 무엇일까 ... 정말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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