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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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다. 언젠가 죽어서 흙이나 재가 되어도, 인류가 멸종되어도, 지구 위에서는 분명 앞으로도 빛을 먹고  사는 생명의 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정말로 신기하다. 각각의 생명체가 갖고 있는 정묘한 메커니즘이, 식물이나 동물은 왜 태어나는지. 태어났는데 왜 또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가는 길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왜 모두 어두이 아니라 빛을 식량으로 삼아 살아가는지."(459-460)

 

표지가 이뻐서 자꾸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사랑 없는 세계'는 제목과 달리 사랑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이게 정말 사랑이야기가 맞나? 싶어진다. 중반을 넘어 이야기의 끝이 보일즈음까지도 자꾸만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이다...

 

후지마루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맛집으로 소문난 엔푸쿠테이에서 일을 한다. 처음부터 직원을 뽑지 않고 주인 혼자 일을 하는 식당인데 후지마루의 정성이 통했는지 드디어 그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물론 여기에는 주인 쓰부라야의 연애사가 담겨있다. 식당에서 주거하며 일을 하던 쓰부라야가 연애를 하고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주거지를 옮기게 되니 방범이 허술한 식당을 누군가 지켜줘야 할 필요가 생겼는데 마침 후지마루가 또 다시 엔푸쿠테이를 찾아간 것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후지마루는 그곳의 직원이 되었고 요리를 배우며 지내게 되고 단골 손님도 생기고 어쩌다보니 하나둘씩 배달요리도 늘어나며 나날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후지마루는 바로 앞 대학의 자연과학부 연구실로 배달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가끔씩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오던 교수와 연구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는 애기장대를 연구하는 모토무라가 있었는데 그녀가 연구하는 식물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자주 만나게 되면서 후지마루는 점차 그녀를 좋아하게 되는데...

 

더 이상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재미를 사라져버리게 할수도 있으니 하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춰버리는 것은 나 역시 저자처럼 이야기의 끝에 설레임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일수도 있어서 후지마루의 짝사랑에 이어 모토무라의 식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식물학 강의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는 해야하겠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한번 거절의 맛을 본 후지마루지만 더 열심히 식당일을 하며 식물과 사랑에 빠진 모토무라를 이해하며 변함없는 마음을 갖는다.

 

사랑이야기,로 끝이 났다면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그냥 그렇게 잊혀져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일에 열심인 그들이 보낸 청춘의 한 시기는 연애감정인 사랑뿐만 아니라 각자의 삶의 일부가 되는 또 다른 무엇인가에 빠져드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음에 눈길을 주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문가 이상으로 설명하고 있는 식물 실험연구의 이야기는 책을 읽으면서 애기장대가 어떻게 생겼나 찾아보게 할 만큼 정교한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냥 연애소설,의 범주를 넘어서는 소설인 것이다. 사랑이야기,라고 믿었다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또 다시 어쩌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설령 끝이 없고 덧없는 행위였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쓸데없다, 라고 말할수는 없다... ....식물이 우직하게 빛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면, 태어난 이상은 뭔가의 일을, 연구를, 사랑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을 향하여 그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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